- 장재용
- 조회 수 885
- 댓글 수 1
- 추천 수 0
불안한 그대에게 (또 나에게)
고민, 고민이 많아 보여. 걱정이 많다는 건 두려운 게 많다는 거야. 두려움은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거라고들 하잖아, 아마 네가 하는 지금의 걱정에도 실체가 없을지도 몰라. 실체가 없다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거야. 고민 없는 사람은 없지. 고민 없는 사람은 보통 사람은 아니야. 대부분 사람들은 걱정을 안고 살고 있어. 근데 너의 고민은 남다르게 많아. 조금 더 진행되면 걱정과 고민이 병적으로 많아지게 돼. 그렇게 되면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할지도 몰라. 공황장애, 심인성 불면증,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지. 삶에는 곳곳에 긴 한숨을 배치해 놔야 해. 리부팅을 주기적으로 끊임없이 해줘야 하는 거야. 책상 위에 컴퓨터도 하는 걸 하물며 사람이. 그런데 너 아니? 사람은 그걸 잘 못한다? 히히. 인간은 컴퓨터와 또 달라서 심호흡, 휴식, 휴가, 안식 없이는 번아웃으로 곧장 가게 돼. 너는 너의 삶에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더 잘하려 하지 않아도 돼. 남들보다 더 뛰어나려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훌륭하고, 근사하게 살고 있어. 그래서 말이야, 딴짓해도 괜찮아.
나 일하는 베트남에선 낮 12시 정각이 되면 현지 직원들은 하던 일을 일제히 멈추고 책상 밑에 이불을 펴기 시작해. 그 전에 어떤 급박한 일을 했든 ‘아, 나는 모르겠고’ 일단 자리 깔고 누워. 그리곤 그대로 잠이 든단 말씀이야. 이렇게 능동적인 시스템 재부팅을 본 적이 없는데 한국에선 일하는 중에 휴식이라 해 봤자 기껏해야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거나 의자에 길게 앉아서 조는 수준이잖아. 책상 밑에 이불 펴고 누워 자는 사람들을 보고 처음엔 놀랐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방법은 사시사철 더운 이 나라에서 지치지 않고 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편이란 걸 알게 됐지. 오수(午睡)라고도 한다지. 낮잠은 오전과 오후를 이어주고 밤잠은 하루와 하루를 이어주는 훌륭한 리부팅 시스템이었던 거야. 너도 너만의 ‘매일 리부팅 시스템’을 만들어 보는 건 어때? 그렇다고 사무실에 침낭을 펴진 마셔.
어느 날 책을 읽다가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하나 알게 됐어. 남아메리카의 어느 토인 족은 사람이 죽으면 묘지에다가 우리나라처럼 사자 死者가 쓰던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 주듯이 ‘말’을 하나씩 묻어준다고 해. 그러니까 그 토인 족은 죽은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그 종족의 언어 중에 하나를 떼서 그와 함께 그 말을 묻고는 후에 그 말을 쓰지 않는다는 거야.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와 함께 묻히는 어휘는 빈도가 많은 말로 선택된다고 해.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는데 나는 그 뒤가 무척이나 궁금했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문득 스스로 물었어. 나는 어떤 말을 가져갈까?
사람들에게 더 이상 쓰지 못하게 하는 말을 생각하면서 혼자 웃었어. ‘엄살’을 같이 묻으면 사람들은 얼마나 각박해질까? 가만있자, ‘ㅆㅂ’을 데리고 가면 이 세상에 스트레스로 넘쳐날걸? ‘사랑’을 묻어버리면 사랑에 가려진 온갖 진실들이 드러날까? ‘침묵’을 묻으면 소란해 살 수 있을까? 이거 완전 재미있군그래. 누군가, 위대한 권력자가 ‘고민’이란 단어를 가져가면 우린 즐거울 거야. 그런데 그러고 나면 삶이 약간은 가벼워질 것 같기도 한데 그럼 이렇게 하지. ‘고민’은 남아메리카 토인 족 어느 실력자가 가져간 것으로 하고 우리 삶에는 긴장, 초조, 떨림 1g만 남겨두기로 하는 건 어때? ‘작게 되는 것은 한때 큰 것이었음에 틀림없다’고 하니 지금 우리 앞을 가로막는 큰 것들은 언젠가 작아지게 될 거야. 걱정 마.
어떤 형태로든 오늘 하루를 살았다면 지금까지 가장 위대한 날을 산 것이니, 어깨에 힘을 쫙 빼고, 박수 세 번.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676 | 배움의 즐거움 | 어니언 | 2023.07.06 | 891 |
3675 | [수요편지] 너를 위하여 [1] | 불씨 | 2023.01.31 | 892 |
3674 | [일상에 스민 문학] - 아빠 구본형과 함께 [2] | 정재엽 | 2018.04.11 | 893 |
3673 |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19. 열하일기 2 [3] | 제산 | 2019.03.24 | 893 |
3672 |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_와인의 나라, 와인을 먹는 사람들 | 알로하 | 2019.10.20 | 893 |
3671 | [화요편지]주인으로 사는 삶, '포트폴리오 인생' [3] | 아난다 | 2019.04.16 | 894 |
3670 |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한 여름에 즐기는 와인 | 알로하 | 2019.08.04 | 894 |
3669 | [화요편지]4주차 워크숍_사랑하는 나에게 | 아난다 | 2019.08.13 | 894 |
3668 | [수요편지] 내 '남사친' 이야기 | 장재용 | 2019.11.06 | 894 |
3667 | 목요편지 -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 운제 | 2020.02.21 | 894 |
3666 | [수요편지] 채움 [3] | 불씨 | 2023.07.18 | 894 |
3665 | 창업상담도 '때'가 있습니다 | 이철민 | 2018.01.04 | 895 |
3664 | [수요편지] 존 스튜어트 밀과 월급쟁이 | 장재용 | 2020.01.21 | 895 |
3663 | [알로하의 두번째 편지] 나비를 꿈꾸며... 2 | 알로하 | 2020.08.02 | 895 |
3662 | [라이프충전소] 글이 안 써질 때 써먹을 수 있는 방법 [4] | 김글리 | 2022.01.21 | 895 |
3661 | [라이프충전소] 나만의 세상을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 [1] | 김글리 | 2022.02.04 | 895 |
3660 | 함께한 기억(4/14 마음편지) [1] | 어니언 | 2022.04.21 | 895 |
3659 | [라이프충전소] 나만의 오리지널을 구축하는 법 3.끝까지 가라 | 김글리 | 2022.06.10 | 895 |
3658 | 숙제에서 ‘팔아야 할 비즈니스’로 [1] | 어니언 | 2022.10.06 | 895 |
3657 | [금욜편지 61- 기질별 인생전환 로드맵- 1번 완벽주의자- 특성] | 수희향 | 2018.11.02 | 8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