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재용
 - 조회 수 1366
 - 댓글 수 1
 - 추천 수 0
 
불안한 그대에게 (또 나에게)
고민, 고민이 많아 보여. 걱정이 많다는 건 두려운 게 많다는 거야. 두려움은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거라고들 하잖아, 아마 네가 하는 지금의 걱정에도 실체가 없을지도 몰라. 실체가 없다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거야. 고민 없는 사람은 없지. 고민 없는 사람은 보통 사람은 아니야. 대부분 사람들은 걱정을 안고 살고 있어. 근데 너의 고민은 남다르게 많아. 조금 더 진행되면 걱정과 고민이 병적으로 많아지게 돼. 그렇게 되면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할지도 몰라. 공황장애, 심인성 불면증,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지. 삶에는 곳곳에 긴 한숨을 배치해 놔야 해. 리부팅을 주기적으로 끊임없이 해줘야 하는 거야. 책상 위에 컴퓨터도 하는 걸 하물며 사람이. 그런데 너 아니? 사람은 그걸 잘 못한다? 히히. 인간은 컴퓨터와 또 달라서 심호흡, 휴식, 휴가, 안식 없이는 번아웃으로 곧장 가게 돼. 너는 너의 삶에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더 잘하려 하지 않아도 돼. 남들보다 더 뛰어나려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훌륭하고, 근사하게 살고 있어. 그래서 말이야, 딴짓해도 괜찮아.
나 일하는 베트남에선 낮 12시 정각이 되면 현지 직원들은 하던 일을 일제히 멈추고 책상 밑에 이불을 펴기 시작해. 그 전에 어떤 급박한 일을 했든 ‘아, 나는 모르겠고’ 일단 자리 깔고 누워. 그리곤 그대로 잠이 든단 말씀이야. 이렇게 능동적인 시스템 재부팅을 본 적이 없는데 한국에선 일하는 중에 휴식이라 해 봤자 기껏해야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거나 의자에 길게 앉아서 조는 수준이잖아. 책상 밑에 이불 펴고 누워 자는 사람들을 보고 처음엔 놀랐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방법은 사시사철 더운 이 나라에서 지치지 않고 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편이란 걸 알게 됐지. 오수(午睡)라고도 한다지. 낮잠은 오전과 오후를 이어주고 밤잠은 하루와 하루를 이어주는 훌륭한 리부팅 시스템이었던 거야. 너도 너만의 ‘매일 리부팅 시스템’을 만들어 보는 건 어때? 그렇다고 사무실에 침낭을 펴진 마셔.
어느 날 책을 읽다가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하나 알게 됐어. 남아메리카의 어느 토인 족은 사람이 죽으면 묘지에다가 우리나라처럼 사자 死者가 쓰던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 주듯이 ‘말’을 하나씩 묻어준다고 해. 그러니까 그 토인 족은 죽은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그 종족의 언어 중에 하나를 떼서 그와 함께 그 말을 묻고는 후에 그 말을 쓰지 않는다는 거야.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와 함께 묻히는 어휘는 빈도가 많은 말로 선택된다고 해.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는데 나는 그 뒤가 무척이나 궁금했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문득 스스로 물었어. 나는 어떤 말을 가져갈까?
사람들에게 더 이상 쓰지 못하게 하는 말을 생각하면서 혼자 웃었어. ‘엄살’을 같이 묻으면 사람들은 얼마나 각박해질까? 가만있자, ‘ㅆㅂ’을 데리고 가면 이 세상에 스트레스로 넘쳐날걸? ‘사랑’을 묻어버리면 사랑에 가려진 온갖 진실들이 드러날까? ‘침묵’을 묻으면 소란해 살 수 있을까? 이거 완전 재미있군그래. 누군가, 위대한 권력자가 ‘고민’이란 단어를 가져가면 우린 즐거울 거야. 그런데 그러고 나면 삶이 약간은 가벼워질 것 같기도 한데 그럼 이렇게 하지. ‘고민’은 남아메리카 토인 족 어느 실력자가 가져간 것으로 하고 우리 삶에는 긴장, 초조, 떨림 1g만 남겨두기로 하는 건 어때? ‘작게 되는 것은 한때 큰 것이었음에 틀림없다’고 하니 지금 우리 앞을 가로막는 큰 것들은 언젠가 작아지게 될 거야. 걱정 마.
어떤 형태로든 오늘 하루를 살았다면 지금까지 가장 위대한 날을 산 것이니, 어깨에 힘을 쫙 빼고, 박수 세 번.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4354 | 삶의 여정: 호빗과 함께 돌아본 한 해 [1] | 어니언 | 2024.12.26 | 957 | 
| 4353 | 엄마, 자신, 균형 [1] | 어니언 | 2024.12.05 | 979 | 
| 4352 | [수요편지] 발심 [2] | 불씨 | 2024.12.18 | 1016 | 
| 4351 | [수요편지] 능력의 범위 | 불씨 | 2025.01.08 | 1024 | 
| 4350 | [내 삶의 단어장] 크리스마스 씰,을 살 수 있나요? [1] | 에움길~ | 2024.08.20 | 1058 | 
| 4349 | [수요편지] 형세 [3] | 불씨 | 2024.08.07 | 1089 | 
| 4348 | [수요편지] 문제의 정의 [1] | 불씨 | 2024.08.21 | 1111 | 
| 4347 | [목요편지] 흉터 [2] | 어니언 | 2024.07.11 | 1128 | 
| 4346 | [목요편지] 육아의 쓸모 [2] | 어니언 | 2024.10.24 | 1132 | 
| 4345 | [목요편지] 장막을 들춰보면 | 어니언 | 2024.08.22 | 1155 | 
| 4344 | 
                    
                         
                        [책 vs 책] 무해한 앨리스 화이팅!                     |                                                                                                                                                                                                                 에움길~ | 2024.07.22 | 1157 | 
| 4343 | [월요편지] 세상이 분노가 가득한데 [1] | 에움길~ | 2024.07.08 | 1162 | 
| 4342 | 새로운 마음 편지를 보내며 [4] | 어니언 | 2024.07.04 | 1165 | 
| 4341 | [목요편지]’호의’라는 전구에 불이 켜질 때 [4] | 어니언 | 2024.07.18 | 1166 | 
| 4340 | [수요편지] 행복 = 고통의 결핍? | 불씨 | 2024.07.10 | 1167 | 
| 4339 | [내 삶의 단어장] 알아 맞혀봅시다. 딩동댕~! [1] | 에움길~ | 2024.07.30 | 1174 | 
| 4338 | [책 vs 책] 어디든, 타국 [1] | 에움길~ | 2024.08.26 | 1180 | 
| 4337 | [목요편지] 별이 가득한 축복의 밤 [3] | 어니언 | 2024.12.19 | 1180 | 
| 4336 | [수요편지] 성공의 재정의 [2] | 불씨 | 2024.07.03 | 1186 | 
| 4335 | [수요편지] 불행피하기 기술 [3] | 불씨 | 2024.07.17 | 119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