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195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9년 12월 2일 03시 19분 등록



[시간들

 

안현미

 

침묵에 대하여 묻는 아이에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은 침묵이다

시간에 대하여도 그렇다

 

태백산으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갔던 여름이 있었지요

 

그때 앞서 걷던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당신만큼 나이가 들면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그 나이만큼 되어 시간은 내게 당신 같은 사람이 되었냐고

 묻고 있습니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어 말라죽은 나무 옆에서 말라

죽어가는 나무를 쳐다보기만 합니다

 

그러는 사이 바람은 안개를 부려놓았고 열일곱 걸음을 걸어가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시간을 따라갔으나 나의 시간은

그곳에 당도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은, 당신은 수수께끼 당신에 대하여 묻는 내게가장 아름다운 

대답인 당신을 침묵과 함께 놓아두고 죽은 시간

 

열일곱 걸음을 더 걸어와 다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태백에

왔습니다 한때 간곡하게 나이기를 바랐던 사랑은 인간의 일이었지만

그 사랑이 죽어서도 나무인 것은 시간들의 일이었습니다

 

안현미 시집『이별의 재구성』, 창비, 2009

 


20181016_142417.jpg

IP *.174.136.4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4 [시인은 말한다]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 다니카와 슌타로 정야 2021.11.22 3460
243 [시인은 말한다] 새출발 / 오보영 file 정야 2019.07.05 3065
242 [시인은 말한다] 너에게 보낸다 / 나태주 file 정야 2020.09.21 3036
241 [시인은 말한다]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다스릴 바람이 없다 / 이은규 정야 2021.12.13 2904
240 [리멤버 구사부] 나를 마케팅하는 법 정야 2021.12.13 2883
239 [시인은 말한다] 빗방울 하나가 5 / 강은교 정야 2022.01.03 2877
238 [시인은 말한다] 어떤 나이에 대한 걱정 / 이병률 정야 2021.12.20 2873
237 [시인은 말한다] 작은 것을 위하여 / 이기철 정야 2021.10.25 2860
236 [시인은 말한다] 오래 말하는 사이 / 신달자 정야 2021.11.15 2810
235 [시인은 말한다] 벌레 먹은 나뭇잎 / 이생진 file 정야 2020.10.05 2809
234 [시인은 말한다] 제도 / 김승희 정야 2021.09.27 2795
233 [리멤버 구사부] 나는 트리맨(treeman)이다 정야 2022.02.28 2766
232 [시인은 말한다] 깨달음의 깨달음 / 박재화 정야 2021.10.11 2755
231 [리멤버 구사부] 실재와 가상 정야 2021.12.31 2753
230 [리멤버 구사부] 삶에 대한 자각 정야 2021.11.15 2717
229 [리멤버 구사부] 한잠을 자고 일어나면 정야 2021.10.11 2709
228 [시인은 말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랜터 윌슨 스미스 file 정야 2019.04.08 2683
227 [리멤버 구사부] 삶의 긍정, 그것은 이렇다 정야 2021.11.01 2659
226 [시인은 말한다] 세상 쪽으로 한 뼘 더 / 이은규 정야 2022.02.03 2628
225 [리멤버 구사부] 이해관계 없는 호기심 정야 2021.10.18 2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