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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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말수가 아주 적은 사람도 아니다. 숫기가 많지 않은 탓에 처음 사람을 만나면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주로 듣는 입장에 선다. 하지만 어느 정도 상대가 파악되고 내 자신을 상대에게 어느 정도 노출시키고 난 후에는 말이 좀 많아진다. 그런데 이렇게 말을 많이 하다보면 가끔 실수도 하게 되고, ‘괜한 얘기를 했다’고 후회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말을 좀 더 조심스럽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그런 유쾌하지 못한 경험의 결과인 것 같다.
사람들은 왜 말을 할까?
말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우리는 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희노애락을 표현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갖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커뮤니케이션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말을 하는 것이 즐겁다면, 그 건 어떤 즐거움일까?
우선 자기를 남에게 알리는 즐거움이 있는 것 같다. 말을 통해서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자신을 알리는 것. 상대방을 생각하게 만들고 상대방이 뭔가를 느끼게 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그것에 대해서 내게 반응하고, 내가 상대방의 반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또 다른 어떤 느낌을 갖고... 이런 되풀이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대화)은 지적인 그리고 감정적인 경험과 함께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이 과정은 상대방과의 공감을 만들기도 하고, 공감은 즐거움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즉 이런 과정 자체가 기쁨, 즐거움, 편안함, 흥분, 슬픔, 노여움 등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말을 들어주는 상대방이 없어도 사람은 말을 할까?
영화 빠삐용에서 주인공은 독방에 오랫동안 갇혀 있으면서도 말을 계속 한다. 자기 자신에게도 말을 하고, 벌레나 새에게도 말을 한다. 빠삐용은 습관적으로 또는 미치지 않기 위해서 말을 한다. 영화 로빈슨크루소에서도 주인공은 호박으로 인형을 만들어 놓고 그 인형과 끊임없이 말을 한다. 빠삐용과 비슷하다. 두 예를 보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사람은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사람은 습관적으로 말을 해야만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말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 살아있음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중요한 ‘말’을 잘 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팔순이 넘으신 우리 어머님이 항상 내게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다. “말조심해라.”, “말이 제일 무섭다.” 이제 사회에서 중견 소리를 듣고도 남을 나이인 아들에게 볼 때마다 이 말씀을 하신다.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체험을 통해 아신 때문일 게다. 사람들은 말로써 상처받고, 말 때문에 싸우게 되고, 말을 잘 못해서 심각한 문제에 처하기도 한다. 반면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빛 갚는다’는 속담처럼 말을 잘해서 곤란한 지경을 벗어나기도 하고,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기도 한다.
중년에 들어서고 나이를 먹다 보면 말(대화) 상대가 자신보다 후배인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나는 후배들과 대화를 할 때는 특히 조심을 하는 편이다. 내가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될 수 있으면 들어주는 입장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나이 많은 선배가, 그것도 직장 상사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 자연히 대화의 주도권은 나이 많은 선배가 가지게 된다. 경험 많은 선배는 편안하게 또 자연스럽게 말을 많이 하게 되고, 말이 많아지고 길어지다 보면 십중팔구는 불필요한 잔소리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소리를 하는 선배(또는 상사)는 늙은 선배다. 난 혹시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을까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은 이게 잘 안 되는 때가 있다. 바로 술자리에서다. 처음에는 그럭 저럭 잘 나가다가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고 흥이 돋아 지면, 할 얘기 못할 얘기를 가리지 않게 된다. 그 때 얘기는 젊은 시절 무용담에서부터, 군대얘기, 첫사랑 얘기, 시시콜콜한 인생살이 얘기... 술 먹으면 그렇듯이 대부분은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 놓고, 영웅이 된 김에 또 술 먹은 김에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 해버린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면... 내가 어제 뭔 소릴 했지? 이런 정신 나간.....
사기열전에는 말에 관한 아주 많은 말들이 나온다.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 줄 아는 것이다.[87, 한비자]
“많이 듣고 그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그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실행한다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벼슬은 그 가운데 저절로 얻어진다.”[172, 공자]
상군이 말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겉치레 말은 허황되고,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은 진실되며, 듣기 괴로운 말은 약이 되고, 달콤한 말은 독이 된다.’”[208, 상군열전]
신이 듣건대 “옛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라고 합니다.[516, 악의열전]
많이 하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말을 필요한 때에 할 수 있는 능력. 내 말을 듣는 상대방에게 기쁨과 희망,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말하는 지혜를 키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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