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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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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일 21시 14분 등록
그러니까 그 날 우리 자매는 뉴욕의 갑부들이 산다는 어퍼이스트 지역을 걷고 있었습니다. 전날 밤 여행에 대한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 한참을 싸웠었나 봅니다. 둘 다 뾰로통 해서 서로의 얼굴도 쳐다보지도 않고 각자의 발만을 쳐다보고 걷고 있었습니다. 둘 다 좀처럼 화해를 할 것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맨하탄의 센트럴 파크. 하얀 입김이 새어져 나오는 겨울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날씬한 남녀가 긴 다리를 휘저으면서 새벽부터 조깅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발라서 아침으로 팔고 있는 노점상들이 보이고 까만 모자를 쓴 유태인들도 어딘가를 향해 바삐 출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우리는 서로에게 난 화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각자 앞만 보고 열심히 걷고 있던 우리들의 눈 앞에서 두 눈을 의심할 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아지들이 모피 코트를 입고 주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내 눈을 의심을 하며,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뜨고 강아지들의 모피 코트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분명 모피 코트였습니다. 매우 고급스러운 얇은 모직으로 된 외피 안에 밍크털로 보이는 털들이 윤기를 자르르 내면서 앉아있는 그런 모피 코트였습니다. 주먹 만한 조그만 강아지들이 그 모피 코트의 칼라를 세우고 주인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서 센트럴 파크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쯤 되니 뾰로통한 얼굴을 풀고 동생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생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나를 바라 보았습니다.

“우하하하하”

우리 자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크게 터뜨렸습니다. 너무 웃겨서 가던 걸음도 멈추고 한참을 그 자리에서 배꼽을 쥐고 웃고 있었습니다.

“언니, 쟤들이 입고 가는 거 그거 모피코트 맞지?”
“응, 진짜야 너무 웃겨, 저거 봐, 분명 버버*나 구* 이런 상표가 붙어있는 것 같은데.”
“게다가 색깔도 어쩌면 자기들 털 색이랑 그리도 잘 맞추었는지. 저 카키색 코트는 미색 털을 가진 강아지와 너무 잘 어울린다. 그치?”
“언니, 나 저 강아지들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먹고 자고 놀고 할머니가 저렇게 산책도 시켜주는 데 얼마나 좋을까?”
“나두, 저 강아지들처럼 뉴욕의 상류층에서 살고 싶어.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속담이 여기서 나왔나봐, 우하하하”

공교롭게도 우리가 그 날 향하던 곳은 맨하탄의 할렘 지역이었습니다. 흑인과 빈자들이 주로 살며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그런 지역이었습니다. 누군가 여자 둘이서 그런 곳을 여행하면 위험하다고 말했었지만 우리는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어차피 인간이 사는 동네인데 무서우면 얼마나 무섭겠냐며 우리 자매는 배짱도 좋게 그곳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오겠다며 걱정하던 이들을 안심까지 시켰습니다.

그 이상한 강아지들 덕분에 우리는 서로 다시 친해졌습니다. 다시 재잘 재잘 대기 시작했고 걸음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아지들을 만난 어퍼 이스트 지역을 지나서 몇 블록을 더 올라갔을까 드디어 할렘이라고 부르는 지역이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아!’

다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다를지는 몰랐습니다. 우리는 흑인 갱단들이 나오는 영화의 한 장면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들어가는 순간 한 동안 우리의 심장 박동은 멈추었습니다. 고개가 빳빳해질 정도로 근육이 긴장을 했습니다. 그 곳은 밝고 세련된 여느 맨하탄의 거리와는 매우 달랐습니다. 우충충한 거리와 어두운 사람들의 표정. 페인트가 제대로 칠해진 건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군데군데 총탄 자국들이라니. 사람들은 모두 삶에 찌든 표정인 것처럼 보였고 우리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우리의 표정을 보고 누군가가 시비를 걸까 봐 함부로 속도를 올리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서로 꼭 붙어서 소근소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니, 무섭지 않아? 우리 계속 더 안 쪽으로 들어가도 되는 걸까?”
“응, 무서워. 사람들 표정이 너무 무섭지 않냐? 그냥 돌아갈까?”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가 가 보자던 식당도 안 보고 가자니 좀 아쉽긴 하다.”
“좀 더 들어가볼까? 암튼 골목으로는 들어가지는 말자. 큰 길로 다니자.”
“언니야 말로 표정 관리를 좀 하란 말이야. 굳어있지 말고 좀 자연스럽게 좀 해봐.”

거리엔 온통 흑인들 뿐이었습니다. 백인들과 황인들은 한 명도 볼 수 없었습니다. 조금씩 그 거리의 모습에 익숙해 지자 약간씩 마음이 놓이기는 했지만. 총격, 싸움, 도망, 그리고 총소리. 이상한 상상들이 계속 머리 속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애써 달래면서 안 쪽으로 안 쪽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우리 자매는 남부 요리로 유명한 식당 한 곳을 들러서 점심을 먹고 흑인들식의 복음 성가를 부른다는 교회를 한 군데 둘러볼까 했습니다. 그리고 여유롭게 할렘 지역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사는지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어퍼이스트 지역에서 한 블록 더 멀어질수록 우리의 불안은 가중되어만 같습니다. 겨우 그 식당을 찾아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식당 내에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내 남부식 후라이드 치킨을 시켜서 점심으로 먹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재빨리 일정을 수정했습니다.

“우리 밥만 먹고 빨리 가자.”
“응. 그러자. 더 들어가면 점점 더 무서워질 것 같아.”

식사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벌떡 일어나서 걸어 들어온 길을 되돌아 나갔습니다. 혹시라도 누가 시비를 걸까 봐 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 잰 걸음으로 얼른 할렘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 날 하루는 나는 이상한 나라를 다녀온 앨리스 같았습니다. 모피 코트를 두르고 유유히
공원에서 산책을 하던 강아지들과 총탄이 뚫린 벽에 페인트칠마저 하지 않은 채 살아가던
할렘의 주민들. 그들은 불과 한 블록의 차이를 두고 같은 땅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IP *.72.22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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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6.02 12:29:48 *.244.220.254
할렘가의 흑인들이 더 무서워하지는 않았을까? ㅎㅎㅎ 농담~
모피코트와 할렘가. 난 그래서 미국(米國)을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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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6.02 20:07:43 *.122.143.151
제목만 딱 보고 울 현정이 드뎌 동화를 썼구나!! 했지..
나두 동화를 썼는데 어쩜 이리 타이밍도 같냐!! 했지..
근데 말이시.. 읽다보니 말일시..
제목만 동화네, 이런... 당황스럽네...
하지만 느끼는게 하나 있어..
현정의 글엔 말일시, 뭔가 뻑쩍지근 거시기스런
미스테리야스런 얼룩 다크니스가 있단 말일시..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것지? 모르면 대충 새겨들어...
그래서 글을 읽다보면 살짜꿍 끌린다 이런 야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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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6.03 10:12:49 *.97.37.242
모피 코트를 두른 강아지, 상쾌한 공원, 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할렘
미국은 이상한 나라야. 그런 부조화 속에서 조화를 만들며 사는 나라.
어느 나라나 그런 부분이 있지만, 미국은 그런 게 좀 두드러져 보이는 것 같아. 재밌는 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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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6.03 17:20:42 *.84.240.105
거암 오라버니,
내 생각도 바로 그거에염..할렘 흑인들이 날 무서워했을 거야..우리 자매 원래 포스가 장난이 아니라서...저번에 호주 갔을 때는 소매치기를 우리가 하두 때리고 소리쳐서 걔가 도망갔쟎아요..ㅋㅋ
사실 할렘은 원래 걸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래요..그런데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걸어갔죠 뭐..

재우 오라버니,
얼룩 다크니스 ~ 그거 좋은 거죠? 배리배리 감사..
사실, 내가 그 뉴욕 상류층의 강아지가 되어 보는 걸로 동화를 하나 쓸까 하다가 실패한 것임..오라버니야 말로 내 속을 읽고 있음..ㅋㅎㅋㅎ

정산 오라버니,
그러니까요..그 나라 미쿡..절대 나라가 운영이 안 될 것 같은데도 세계 최강이니..우리가 좀 반성을 해봐야 할 지도 모르겠어요..이렇게 다수가 똑똑하고 부지런하기까지 한 민족이 요 모양인 것에 대해서..한 번 고심해봐야 할 것 같아요..(너무 심각했음..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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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4 00:57:41 *.41.62.236


시리즈물 끝나고 나니 이렇게
재밌는 글이. 웃고 갑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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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6.06 00:14:55 *.36.210.11
현정이 글에는 가독성과 끌어당기며 밀어부치는 힘이 있다. 아마도 가장 거센 것 같다. 억센 낭자. ㅎㅎㅎ

게다가 미스테리를 가미해서 궁금증을 자아내며 박진감 넘치게 빨려들어가고 말게하는 육중함까지 말이야.

연구원 3기 향산과 같은 분위기가 나면서도 뒷심이 보통이 아냐. 한 번 잡았다 하면 꽉 물고 놓지 않고 끝까지 끌고가며 스토리를 엮어가네.
만화책을 병행해서 계속 많이 보는 것도 그대에게는 아주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글에 패기와 재치가 있어 읽고나면 통쾌한 느낌이 든다오.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여장군으로 이름을 날려 성웅 오현정이 되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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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6.06 09:33:39 *.72.227.114
써니 언니, 칭찬을 이렇게나 많이 써주시다니..저 자꾸 그러면 자뻑으로 바뀌어 버린단 말에요..자뻑으로 바뀌면 좀 위험해요..담에는 비판도 신랄하게 해 주삼...

그거 아세요? 어렸을 때 혼자서 이상한 상상을 하곤 했었어요. 성웅 이순신이 돌아가신 날하고 제 생일하고 같거든요.그걸 알고 나서 '아마도 내가 성웅 이순신의 영혼을 물려 받은 줄도 몰라..'이러면서 한 동안 제가 성웅 이순신이라고 착각을 하면서 살았어요...ㅎㅎㅎ

저 어렸을 적에 장군감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거든요. 근데 장군감이 여자로 살려니 얼마나 갑갑했겠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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