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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흔히 말한다. “글쓰기는 고통의 길이며 피를 말리는 일이다." "한글자도 쓰지 못하고 한 달을 넘기는 경우도 숱하다.” 그런 글쓰기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제 정신이 아니거나, 글쓰기를 스스로 찾아 나설 만큼 글에 빠진 사람이거나, 글쓰기의 그럴 듯한 겉모습에만 혹한 사람일 것이다. 글쓰기는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20대의 그 봄날, 몇 가지 짐과 함께 홀로 몸을 눕힌 지방도시는 많이 낯설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학교는 친숙해지지 않았고 태어난 곳이 달라서 말투도 다른 아이들은 쉽게 친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친구들이 생기고 낯선 거리를 몰려다니며 스물의 푸릇푸릇한 웃음을 뿌렸지만 방으로 들어서면 홀로 남았다. 그것은 자유였고 외로움이었다.
작은 부엌에는 코펠과 곤로가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반찬그릇 두세 개, 숟가락과 젓가락이 세 벌, 봉투에 담겨있는 쌀이 있었다. 책상도 없는 방은 가로 세로 1미터 정도의 창문이 햇빛을 받아들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방문을 열면 철대문과 작은 마당과 수돗가가 보이는 그 방에서 문지방을 베고 누워 책을 읽었다. 수돗가에서는 세 들어 사는 옆방 아줌마가 빨래를 하다 말고 이런저런 말을 걸기도 했고, 또 다른 방의 초등학생 세 아이들이 놀이를 하기도 했다. 햇살은 작은 마당을 덮으며 서쪽으로 흘러갔고 앞집 담장위로 솟아있는 감나무가 햇살 가득한 마당을 내려다보고는 했다.
친숙하게 지내온 책은 따뜻한 햇살을 내다보며 가지고 놀기에 좋은 장난감이었다. 쥐꼬리보다 작은 생활비로 월세를 내고 교통비를 하고 나면 쓸 돈은 별로 없었다. 그 돈에서 책을 샀다. 많은 책을 살 수 없었지만 읽기에 아주 부족하지도 않았다. 도서관에서 대출도 했지만 옆에 두고 싶다는 마음에 대부분의 책을 사서 읽었다.
산문집이나 소설이 한 권씩 손에서 놓여날 때마다 며칠씩 책의 분위기에 휩쓸려 침잠하고는 했다. 그 분위기 속에서 흔들리곤 하는 게 기분 좋았다. 그렇게 산문을 그리고 소설을 섭렵해갔다. 그것은 섭렵이었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작가를 수없이 만났고 그들의 작품을 끊임없이 읽어나갔다. 그게 누구였든지 그들을 만나는 것, 산문이든 소설이든 시(詩)든 그 작품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다. 사회과학 서적은 깊고 많이 접하지 못했지만 역시 손을 잡아끄는 책들이었다. 문학과 역사와 사회가 어우러져 몰려왔다. 그중에서도 단연 몸을 잡아당기는 것은 문학이었다.
어느 순간 신춘문예의 유혹이 다가왔다. 이렇게 멋진 문학작품을 저들처럼 쓸 수 있다는 것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몇 권의 신춘문예 당선 작품집과 이상 문학상 작품집이 쌓였다. 그 시대 유행처럼 일었던 신춘문예 바람에 문학월간지는 신춘문예 당선 비결을 특집기사로 싣고는 했다. 여러 작가들이 신춘문예에서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특집기사를 이 잡듯이 뒤졌다. 이제 작가는 분명 나의 몫이었다. 어느 신문인가 1월1일 신년호에는 나의 사진이 실릴 것이었다. 소설을 쓰기도 전에 당선소감이 먼저 고민되었다.
재미와 흥미와 욕심으로 시작한 글쓰기는 첫 발부터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틀을 만들고 써내려갔다. 괴발개발이란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쓰면서 고치고 또 고치고 하면서 한편의 글을 완성했지만 마감기한은 지나있었다. 마감기한이 남아있더라도 신춘문예라는 무대에 응모하기는 너무나 부족한 글이었다. 100매의 원고지는 쌓아놓은 책의 가운데에 던져지고 잊혀졌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왔을 때 학교신문에서 문학작품 공모전을 벌였다. 버려졌던 원고를 찾아 다시 손을 보고 다시 쓰며 한달을 보냈다. 원고를 다시 쓰다시피 했지만 여전히 글 같은 글은 아니었다. 햇살이 좋은 어느 날 쑥스러운 표정으로 원고를 응모했지만 입상을 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 기대를 하기는 너무 어림없는 글이었다.
그쯤에서 글쓰기는 멈췄어야 했다.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그럴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쯤에서 글쓰기를 멈추었다면 긴 시간 뒤에 다시 글쓰기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안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작은 글쓰기가 이어졌다. 일기를 쓰고 산문을 쓰고 편지를 썼다. 무언가 쓴다는 게 좋았다. 잡문으로 이어진 글쓰기는 참 오래 계속되었다. 마음이 안 좋을 때는 글을 쓰면 얹힌 게 내려가듯 시원해졌다. 비 오는 저녁, 햇살 좋은 날은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 일기를 썼다. 군대에서는 같은 시기에 군대를 갔던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글쓰기는 마치 마약 같은 쾌감을 줬다. 그 쾌감에 한 발 또 한발 빠져들었다.
처음의 글쓰기는 배설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쏟아내면 상쾌했다. 울적했던 마음도 금세 정리되었고 기분전환을 해주곤 했다. 배설의 맛을 본 글쓰기는 한 발 더 나아갔다. 표현하고 싶은 문장을 구성할 때 자신이 원하는 어휘를 족집게로 골라내듯 찾아내서 써내려가는 쾌감이 온 것이다. 배설보다 더한 쾌감이었다. 어떻게 그런 어휘를 찾아내었는지, 어떻게 그런 문장을 만들어 내었는지 스스로도 감탄하고는 했다.
그곳에서 한발 더 나아갔을 때, 그 때 고통이 왔다. 글은 써지지 않았다. 문장을 이어나가다 조사 하나를 붙들고 십분 이상을 생각하기도 했다. 더 나은 문장의 맛을 내려고 앞뒤를 바꾸어 보려하면 삼십분이 훌쩍 넘어갔다. 글은 정제되었고 글맛은 나아졌지만 그것은 즐거움이 아니었다. 예전에 느꼈던 글쓰기의 즐거움이나 쾌감은 그 곳에 없었다. 남아있는 것은 고통과 두려움 이었다.
그때까지 나를 지배했던 것은 글쓰기의 재미와 멋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멋이 있어 보였다. 작가라는 말은 폼 나는 단어였다. 뭔가 멋있어 보이고 지식인처럼 보이고 고뇌하는 듯이 보였다. 그런 사람이고 싶었고, 남에게 그렇게 보이고 싶었고, 남이 그렇게 보아주기를 원했다. 책 속에서 보았던 작가들의 말도 멋있었다. “창작은 피를 말리는 작업입니다.” “온 몸으로 살아내는 거지요.”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내가 그런 일을 한다니 그것은 또 얼마나 폼 나는 일인가.
그러나 고통과 두려움을 느꼈던 그 즈음에 글쓰기는 멈췄다. 폼 잡다가 사람 잡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고통과 두려움 속에 다시 빠져들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쓰려하면 두려움이 앞섰고 쓰기 시작하면 뻔히 보이는 고뇌와 퇴고의 늪 속으로 들어서고 싶지 않았다. 펜으로 활자를 조물거리며 말을 만들어내는 작가라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회의가 들었다. 그들은 ‘시장에 가보라. 시장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몸으로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라고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시장에서 온 몸으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처럼 사는 것 같지 않았다. 한다고 해봐야 책상에 앉아 펜으로 글을 쓸 뿐이었다. 글쓰기가 힘들다고 일삼아 술을 퍼부을 뿐이었다. 그것은 글쓰기가 아닌 말장난이거나 현학일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남에게 멋지게 보여주거나 보이고 싶은 멋 부리기의 하나일 것이었다. 삶의 모습도 생산이 아닌 허세로 보였다. 그들보다는 진정 몸으로 현실을 사는 사람들의 세상살이가 더 정직해 보였다. 이래저래 작가라는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니었다.
글쓰기는 그 곳에서 멈췄다.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아주 오랫동안. 학교를 졸업했고 취직을 했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글쓰기는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리고 더 긴 시간이 지났을 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글을 썼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썼다. 왜 쓰는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한 번, 저렇게 한 번 써 나갔다. 나쁘지 않았다. 좋지도 않았다. 그냥 글을 썼을 뿐이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글쓰기 같지 않은 글쓰기가 이어졌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냥 그것 뿐 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책을 쓰기 위해서가 아닌 책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예전의 그 두려움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지만 그래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적이 있는 책 만들기, 목적이 있는 글쓰기를 떠올렸다.
언제였던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목록을 공책에 적어 놓고 긴 시간을 고르고 골랐다. 별로 없었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지만 갖추고 있는 삶의 무기가 별로 없었다. 적혀 있던 목록 중의 하나인 글쓰기는 애써 외면하려 해도 외면하기 힘들었다. 다른 것보다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수월했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글쓰기는 그렇게 다시 찾아왔다.
글쓰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헉헉대기는 하지만 아직은 많이 고통스럽지 않다. 많이 두렵지도 않다. 그렇지만 곧 심한 고통이 찾아올 것이다. 많은 두려움도 찾아 올 것이다. 고통과 두려움 없이 글쓰기는 이루어지지 않음을 예전의 작은 경험은 이미 알려주었다.
고통과 두려움이 길을 막아설 때,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돌아설지, 힘들다는 표정으로 한번 웃어주고 온몸으로 밀어 나갈지, 안하면 어떻게 하려는데 하면서 이를 악물고 해나갈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지금은 다만 읽고 쓸 뿐이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도 나는 모른다. 그냥 길을 갈 뿐이다. 미약하게 시작하고 창대한 끝을 꿈꾸지만, 그것이 백일몽으로 끝날지 이루어지는 꿈이 될지는 모른다. 막연한 두려움 속에 발을 옮긴다. 글쓰기는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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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창님에게 그런 고통과 아픔이 있었구먼.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은 그만큼 더 크는 법아닌가?
이번 기회에 껑충 껑충 커나가서 훤칠한 모습의 창님이 되길 바라네.
"글쓰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헉헉대기는 하지만 아직은 많이 고통스럽지 않다. 많이 두렵지도 않다. 그렇지만 곧 심한 고통이 찾아올 것이다. 많은 두려움도 찾아 올 것이다."
난 아직 글쓰기의 고통이나 두려움을 모르네. 그냥 쓰는거지.
창님 글 읽다보니 글쓰기가 마치 인생 사는것과 비슷하단 생각이 드는군. 그냥 쓰고, 힘들면 좀 쉬고, 그러면서 웃고...
이건 뭐야?, 덧글 달고 있는데 창님이 문자를 보냈구먼
"놀기 좋은 6월입니다. 다들 열심히 놉시다. 노는게 남는거야"
그래. 놀자. 바이바이~~ 나 놀러 갑니당...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은 그만큼 더 크는 법아닌가?
이번 기회에 껑충 껑충 커나가서 훤칠한 모습의 창님이 되길 바라네.
"글쓰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헉헉대기는 하지만 아직은 많이 고통스럽지 않다. 많이 두렵지도 않다. 그렇지만 곧 심한 고통이 찾아올 것이다. 많은 두려움도 찾아 올 것이다."
난 아직 글쓰기의 고통이나 두려움을 모르네. 그냥 쓰는거지.
창님 글 읽다보니 글쓰기가 마치 인생 사는것과 비슷하단 생각이 드는군. 그냥 쓰고, 힘들면 좀 쉬고, 그러면서 웃고...
이건 뭐야?, 덧글 달고 있는데 창님이 문자를 보냈구먼
"놀기 좋은 6월입니다. 다들 열심히 놉시다. 노는게 남는거야"
그래. 놀자. 바이바이~~ 나 놀러 갑니당...

써니
그대의 마력은 바로 이것 인 것 같아.
누가 그대를 그 나이로 보겠어. 무지하게 맑고 순수한 이슬 방울 같은 소년아.
내가 정안수 떠 놓고 싹싹 빌어도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갈 걸세.
여태 참고 또 참고 꼭꼭 숨죽여 간직한 그대만의 보물이 많아서 공감가는 글들을 잘 쓰고 있고 사치도 객기도 멋도 아닌 화려함도 없는 더군다나 계산이라고는 주판알도 못 튕길 것 같은 심심한 듯 애잔하고 까칠한가 하면 물렁한 신선함과 따사함이 있다는 것 아슈?
시와 함께 마음 가는 대로 필 받아 꽂히는 대로 해뻔지면 될 것 같지 않우? 그대만큼 진솔한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다는 것 사람들도 척 보면 알껄.
누가 그대를 그 나이로 보겠어. 무지하게 맑고 순수한 이슬 방울 같은 소년아.
내가 정안수 떠 놓고 싹싹 빌어도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갈 걸세.
여태 참고 또 참고 꼭꼭 숨죽여 간직한 그대만의 보물이 많아서 공감가는 글들을 잘 쓰고 있고 사치도 객기도 멋도 아닌 화려함도 없는 더군다나 계산이라고는 주판알도 못 튕길 것 같은 심심한 듯 애잔하고 까칠한가 하면 물렁한 신선함과 따사함이 있다는 것 아슈?
시와 함께 마음 가는 대로 필 받아 꽂히는 대로 해뻔지면 될 것 같지 않우? 그대만큼 진솔한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다는 것 사람들도 척 보면 알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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