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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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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일 16시 24분 등록

월급쟁이는 무엇인가

 

내 사는 집 옆으로 호젓한 숲길이 있다. 그 길을 느긋하니 가다 보면 외딴집이 하나 있는데 커다란 우리와 숲에 닭과 염소를 방목한다. 그들 옆엔 항상 닭과 염소를 지키는 개가 있다. 그 집 울타리를 지날 때면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그 개를 늘 눈여겨본다. 개는 주인이 없을 때 닭과 염소들의 주인처럼 행세한다. 내가 그들 앞으로 다가설라치면 노려보거나 으르렁댄다. 그런데도 내가 물러서지 않으면 무리의 앞으로 나서 닭과 염소를 지키려는 자세를 취한다. 그게 주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이기도 할 테다.

 

개가, 그것이 마치 월급쟁이 같은 것이다. 개는 주인행세를 하고 다니지만 주인과 개는 같아질 수 없다. 그들 사이는 역사만큼 깊고 넓은 강이 흐른다. 그러나 개는 목줄을 하고 주인을 향해 최선을 다한다. 돈을 벌려면 직장에 매일 수밖에 없다. 매인 곳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한다. 그 최선은 최선인가, 개의 최선은 아닌가. 마음 한 켠엔 굴욕이 늘 따라다닌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월급을 걷어찬 뒤 거친 삶에서 들개로 살기엔 우린 이미 틀린 것 같다. 그 사나운 고립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잠자코 다니자니 직장에서 매일을 질타와 시기, 압박과 굴욕으로 견뎌야 하는데 여기서 우리의 고민은 시작된다. 나는 이 고민의 끝을 보고 싶었다. 끝을 보기 위해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인지 현미경으로 보고 싶었다.

 

사람은 태어나고 또 사람은 죽는다. 이보다 명징한 건 없다. 당연하고 확실한 세계에서 우리는 고민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확실함 속에 숨은 근원적인 것, 그럼에도 나를 고민으로 몰고 가는 무엇에 관해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삽질은 이와 같이 시작된다. 이왕 시작된 헛발질은 끊임없이 계속 될 테다. 그러나, 그렇지만 뻔해 보이는 고민과 사유 속에 맥락이 생겨나고 맥락 속에서 자신만의 의제가 생겨나고 상정된 의제들을 하나, 둘 풀어나가며 우리는 의젓함으로 강해진다. 그래서 보잘것없는 삶과 죽음에도 두려움 없는 당당함으로 살 수 있다고 나는 믿는 것이다.

 

불멸의 이름을 남기려는 명예욕도 삶의 고통을 잊으려는 도피도, 쉽게 살면 될 것을 어려운 사유를 해가며 유식을 티 내려는 과시욕도 아닌, 서서히 그러나 끊이지 않고 태어난 자로서 지녀야 할 삶을 대하는 자세를 정초하려는 것, 먹고 싸는 생명체로서의 확실함 너머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행위가 우리를 비로소 존재한다는 동사적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필멸의 인간과 존재론적 인간, 이 긴밀한 관계의 가장 긴장된 형태가 바로 월급쟁이다. 우리는 날마다 의미적 인간과 똥 같은 인간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월급쟁이'. 우리가 함부로 입 밖으로 내는 월급쟁이라는 말은 그 존재를 감싸는 형태에서부터 결코 풀어내기가 만만하지 않고 쉽지 않은 정체성인 것이다. 월급쟁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여기를 사는 나를 규명하려는 시도다.

 

시도는 시도로 그칠 수 있고 내 일천한 사유로 핵심은 건드리지 못하고 변죽만 울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중단하거나 편한 길을 가다 엉뚱한 결론에 다다르진 않을 거라 다짐한다. 그것은 거대한 화강암을 등반하는 것과 같아서 처음엔 그냥 앞에 보이는 것부터 붙잡아야 떨어지지 않는다. 한번에 두 가지를 붙잡으려 하거나, 움켜쥔 손에 너무 힘이 들어가거나, 힘을 주지 않고 느슨하게 붙잡을 때, 또 하나를 생략하고 그 다음을 붙잡으려 할 때는 여지없이 추락한다. 홀드를 하나씩 붙잡아야 끝까지 오를 수 있는 암벽처럼 서둘지 않고 월급쟁이 실체를 꼭 붙들고 하나씩 규명해 나가야 나는 제대로 살 수 있다. 그와 같이 월급쟁이 처음과 끝, 그 예봉에 다다르고 싶은 것이다. 전전하며 배워라, 지나가는 잡놈에게도 배워라, 개에게도 배워라, 그러나 절대 떨어져선 안 된다. 손가락에 힘이 풀릴 때 주문처럼 의지를 다져라. 떨어져 다시 개가 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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