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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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역사를 아는 것이 그 나라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 중 하나라면, 나는 그 의무를 대단히 소홀히 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난 그야말로 역사맹(盲)이요, 역사치(癡)다. 때때로 막연하게 내가 역사에 대해 너무도 무식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기본이라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이 읽는 만화로 된 역사서에도 몇 번 도전해 봤지만,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주변에 보면 역사가 재미있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난 그 사람들이 맛보는 그 재미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흥미를 가지고 역사를 접했던 기억, 그것은 고작 TV속의 사극을 통해서였을 뿐이다. 그것도 역사라기보다는 '허준', '대장금' 과 같은 단지 역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였을 뿐이다.
학창 시절부터 역사는 그저 암기과목일 뿐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에 박혀 있었다. 책 속에 수도 없이 나오는 년도와 읽기도 힘든 사람들의 이름은 그저 외워야만 하는 것들에 불과했다. 외운다기보다도 머리속에 쑤셔 넣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식으로 접근했으니 그것에 대한 정이 떨어지고, 그렇게 싫어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같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바보 같은 공부 방법을 고수해온 나의 책임도 크지만, 다른 많은 과목들도 그런 식으로 공부하도록 만드는 우리나라의 교육의 허망함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아무튼 어릴 적부터 그런 인식이 머리에 있으니, 역사와 결코 친해질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역사 과목은 겨우 반타작을 넘기는 수준이었다. 공부를 해도 안 되었다기 보다, 아예 공부자체가 싫어 다른 과목으로 점수를 만회하는 것이 속 편했다. 그러니 어느덧 내 머릿속에는 역사는 그저 지나가버린 옛이야기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런 나에게 '사기열전'에 '역사속의 영웅들'로 이어지는 5월 한 달은 정말 힘든 고비였다.
작년, 나에겐 큰 사건이 있었다. 역사에 대한 나의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 둔 사건. 그것은 사부님의 책 두 권이었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그리고 '사람에게서 구하라'. 첫 번째 책은 사부님 자신이 쓴 자신의 역사였다. 사부님은 그것이 자신의 책 중 가장 좋아하는 것임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 밖에 없던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가 탄생했음을 자축했다. 사부님의 자축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렇다면 나에게도 나의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한 동안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나 역시 세상에는 그, 그녀, 그들의 역사만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에게도 역사가 있었다니, 그것이 그렇게 놀라울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책은 역사 속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 것인지 알려주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현재의 수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그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라는 말을 그야말로 교과서적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제대로 한 번 보고 나니, 더 이상 역사를 단지 과거의 기록으로만 쳐다볼 수 없었다. 나에게도 역사가 있고, 역사 속에서 나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는 두 가지 사실이 나에게 준 충격의 강도는 실로 대단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었다.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들어온 그 이름, 난중일기. 이제야 읽어봤다. 이순신 장군이 역사속의 뛰어난 영웅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면, 굉장히 평범한 일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기의 내용은 대략 그렇다. 우선 날씨가 나온다. 초등학생,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나이 때는 국민학생이었다. 국민학생들이 쓰는 일기의 대표적인 형식인 날짜, 날씨, 본몬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난중일기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중 두 개는 아마도 '맑음'과 '비' 인듯하다. 그리고 전쟁중이라 그런지 일기 속에는 몇 개 되지 않는 생활의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왜군과 싸움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늘 있는 업무들의 수행이다. 공문을 보내고 받고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그것도 아니면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은 만나서 술을 먹고 활을 쏜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의 이야기들이다. 한 영웅의 삶도 매일 매일의 일상은 우리들과 다르지 않았다. 평범했다. 오히려 나의 인생보다 더 지루하고 답답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람들에 의해 각색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영웅 자신이 들려주는 영웅의 이야기는 영웅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단지 그때의 상황이 전쟁 중이었다는 사실만 빼면, 그야말로 소소한 일상의 기록일 뿐이었다.
본래 다른 사람의 일기를 읽는 다는 것은 얼마나 짜릿하고 재미있는 일인가. 어린 시절 친구의 일기, 동생의 일기를 훔쳐보며 키득거렸던 스릴있고 짜릿한 그 경험. 그러나 이순신의 일기를 읽는 것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다. 몰래 훔쳐보는 맛이 없어서였을까? 만천하에 공개되어 책으로까지 발행된 것이라 그랬을까? 무엇보다 기대한 것과 달랐다. 영웅의 삶도 별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신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마도 전사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빛나는 순간은 자신 스스로 일기에 기록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그의 일기는 평범했다.
영웅의 삶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느낌 그대로 영웅의 삶도 별것 아니구나와, 영웅의 삶도 나와 다르지 않으니 나도 영웅이 될 수 있겠구나. 그럼 뭐야. 나도 영웅이 될지 모르니, 일기를 써놔야 하는건가? 일기는 잘 안쓰는데... 변경연 레이스의 첫 관문은 개인의 역사를 쓰는 것이었다. 변경연 홈페이지에도 '5천만의 역사, 5천만의 꿈'이라는 메뉴가 있을 만큼, 사부님께서는 개인의 역사를 중시하신다. 우리 모두에게도 각자의 역사가 있다. 나에게도 역사가 있다는 것은 사부님의 책을 통해 처음 갖게 된 생각이었다. 항상 평범한 진리는 뒤늦게 깨닫는 듯하다.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나의 역사라는 것에 대해 또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글로써 기록을 하건 안하건 나의 역사는 계속되고, 그것은 차곡차곡 역사라는 이름으로 쌓인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나의 역사에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일까? 오늘 나의 역사 속에는 날씨 맑음이라는 말과 함께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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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부터 역사는 그저 암기과목일 뿐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에 박혀 있었다. 책 속에 수도 없이 나오는 년도와 읽기도 힘든 사람들의 이름은 그저 외워야만 하는 것들에 불과했다. 외운다기보다도 머리속에 쑤셔 넣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식으로 접근했으니 그것에 대한 정이 떨어지고, 그렇게 싫어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같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바보 같은 공부 방법을 고수해온 나의 책임도 크지만, 다른 많은 과목들도 그런 식으로 공부하도록 만드는 우리나라의 교육의 허망함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아무튼 어릴 적부터 그런 인식이 머리에 있으니, 역사와 결코 친해질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역사 과목은 겨우 반타작을 넘기는 수준이었다. 공부를 해도 안 되었다기 보다, 아예 공부자체가 싫어 다른 과목으로 점수를 만회하는 것이 속 편했다. 그러니 어느덧 내 머릿속에는 역사는 그저 지나가버린 옛이야기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런 나에게 '사기열전'에 '역사속의 영웅들'로 이어지는 5월 한 달은 정말 힘든 고비였다.
작년, 나에겐 큰 사건이 있었다. 역사에 대한 나의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 둔 사건. 그것은 사부님의 책 두 권이었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그리고 '사람에게서 구하라'. 첫 번째 책은 사부님 자신이 쓴 자신의 역사였다. 사부님은 그것이 자신의 책 중 가장 좋아하는 것임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 밖에 없던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가 탄생했음을 자축했다. 사부님의 자축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렇다면 나에게도 나의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한 동안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나 역시 세상에는 그, 그녀, 그들의 역사만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에게도 역사가 있었다니, 그것이 그렇게 놀라울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책은 역사 속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 것인지 알려주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현재의 수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그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라는 말을 그야말로 교과서적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제대로 한 번 보고 나니, 더 이상 역사를 단지 과거의 기록으로만 쳐다볼 수 없었다. 나에게도 역사가 있고, 역사 속에서 나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는 두 가지 사실이 나에게 준 충격의 강도는 실로 대단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었다.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들어온 그 이름, 난중일기. 이제야 읽어봤다. 이순신 장군이 역사속의 뛰어난 영웅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면, 굉장히 평범한 일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기의 내용은 대략 그렇다. 우선 날씨가 나온다. 초등학생,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나이 때는 국민학생이었다. 국민학생들이 쓰는 일기의 대표적인 형식인 날짜, 날씨, 본몬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난중일기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중 두 개는 아마도 '맑음'과 '비' 인듯하다. 그리고 전쟁중이라 그런지 일기 속에는 몇 개 되지 않는 생활의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왜군과 싸움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늘 있는 업무들의 수행이다. 공문을 보내고 받고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그것도 아니면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은 만나서 술을 먹고 활을 쏜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의 이야기들이다. 한 영웅의 삶도 매일 매일의 일상은 우리들과 다르지 않았다. 평범했다. 오히려 나의 인생보다 더 지루하고 답답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람들에 의해 각색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영웅 자신이 들려주는 영웅의 이야기는 영웅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단지 그때의 상황이 전쟁 중이었다는 사실만 빼면, 그야말로 소소한 일상의 기록일 뿐이었다.
본래 다른 사람의 일기를 읽는 다는 것은 얼마나 짜릿하고 재미있는 일인가. 어린 시절 친구의 일기, 동생의 일기를 훔쳐보며 키득거렸던 스릴있고 짜릿한 그 경험. 그러나 이순신의 일기를 읽는 것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다. 몰래 훔쳐보는 맛이 없어서였을까? 만천하에 공개되어 책으로까지 발행된 것이라 그랬을까? 무엇보다 기대한 것과 달랐다. 영웅의 삶도 별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신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마도 전사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빛나는 순간은 자신 스스로 일기에 기록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그의 일기는 평범했다.
영웅의 삶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느낌 그대로 영웅의 삶도 별것 아니구나와, 영웅의 삶도 나와 다르지 않으니 나도 영웅이 될 수 있겠구나. 그럼 뭐야. 나도 영웅이 될지 모르니, 일기를 써놔야 하는건가? 일기는 잘 안쓰는데... 변경연 레이스의 첫 관문은 개인의 역사를 쓰는 것이었다. 변경연 홈페이지에도 '5천만의 역사, 5천만의 꿈'이라는 메뉴가 있을 만큼, 사부님께서는 개인의 역사를 중시하신다. 우리 모두에게도 각자의 역사가 있다. 나에게도 역사가 있다는 것은 사부님의 책을 통해 처음 갖게 된 생각이었다. 항상 평범한 진리는 뒤늦게 깨닫는 듯하다.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나의 역사라는 것에 대해 또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글로써 기록을 하건 안하건 나의 역사는 계속되고, 그것은 차곡차곡 역사라는 이름으로 쌓인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나의 역사에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일까? 오늘 나의 역사 속에는 날씨 맑음이라는 말과 함께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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