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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8일 19시 05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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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은 순탄했다. 적어도 ‘돈’의 관점에서는. 우선 월급 밀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고 급여수준도 괜찮은 편이었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이번 달에도 나는 여전히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인증이었고, 시간에 비례해서 늘어갈 존재감을 보장받았다는 것이 그리 뿌듯할 수가 없었다.

학창시절 성적표가 하던 역할을 급여통장이 완벽하게 대신해주고 있었다. 급여가 늘어나는 만큼,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만큼 너그럽고 관대해 질 수 있었다. 크게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인생을 꾸려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으로 충만해졌다.

그러나 이런 만족감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첫 아이를 가지면서 조금씩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던 균열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었고,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거쳐 입사 15년 만에 스스로 직장을 걸어나왔다.

뜻하지 않은 금단의 고통

객관적으로야 남편이 건재해 있었으니 굶어 죽기가 오히려 어려운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지켜야겠다는 믿음으로 한 결단이었지만, 막상 수입이 끊기자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경제력과 함께 존재의 가치도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이 끔찍하게 나를 괴롭혔다. 돈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무의식의 깊은 영역까지 뿌리 깊게 돈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형적인 금단현상이었다. 나도 모르게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대수롭지 않은 말 한마디에 마음을 다쳤다. 가족들에게도 버림받아 노숙자로 거리를 전전하는 꿈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나기를 수없이 거듭했다. 그 느낌이 너무나 생생해 한번 깨면 다시 잠들지 못했다. 깨어 있어도 비참한 상상력은 지칠 줄을 몰랐다. 직장생활을 견디며 그렇지 않아도 상해 있던 몸과 마음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그렇게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공포는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듣고 있는 동안에는 괴로운 생각이 끊어졌다. 생각이 사라진 동안에는 호흡이 깊어졌다. 신기했다. 그때 만해도 어찌 그럴 수가 있는지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라도 기운을 차려 밥하고 설거지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길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듣고 또 들어 타이틀만 봐도 스님의 답변을 달달 외울 정도가 되자 듣고 있는 중에도 끔찍한 생각이 비집고 올라왔다. 깜짝 놀라 찾아간 곳이 불교대학이었다.

그러나 타자의 경험으로부터 받는 위로에는 한계가 있었다. 스님의 법문 영상을 듣고 모인 사람들끼리 소감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그곳에서는 내 안에서 자꾸만 올라오는 질문들을 해소할 수가 없었다. 나는 궁금했다. 나는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이 끔직한 상황은 대체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 건지. 미망에서 깨어나면 된다는 모니터 속의 스님 말씀으로는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품고도 마치 모든 것을 다 이해한 듯 끄덕끄덕 덕담을 나누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내 안의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 돈과의 정면승부가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때마침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선배가 진행하는 생활경제 공부모임에서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개선점을 실행함으로써 1년 뒤에는 현재보다 나은 경제적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개인의 경제적 문제, 자기경영 그리고 내가 원하는 행복한 삶까지, 즉 경제/경영/인문의 최적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믿음으로 퇴직했으나, 막상 실제로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멘탈이 무너져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내게 그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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