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0년에 <나의 침실여행>이란 희한한 책이 나왔다.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라는 프랑스인이 자신의 침실을 여행하고서 쓴 책이었다. 그의 방구석 여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먼저 문을 잠그고 파자마를 갈아입은 뒤 소파를 텀험한다. 그 전까지 보지 못했던 소파 다리의 우아함에 감탄하고 푹신함에 다시 한번 감탄한 뒤 이번에는 소파에 앉아 침대를 훔쳐보기도 한다. 방에서 죽치고 있는 인간이라면 자신의 여행법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 자신했던 그는, 코로나 19 덕분에 유행하고 있는 #방구석여행의 선구자였다!
방구석여행은 일상을 작정하고 완전히 다르게 보는 데 비법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책 <여행의 기술>에서 여기에 이런 주석을 덧붙인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행하는 심리는 ‘수용성’에 있고, 이는 겸손한 마음으로 대상에 새로운 눈으로 다가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알다피시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리지 않은 이상, 일상을 ‘아주 낯설게 볼 수 있는 시야’를 장착하기는 쉽지 않다. 눈을 크게 뜨고 봐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뿐이다. 그런데 그 순간이 우연찮게 찾아왔다.
다음 날, 침 맞으러 동네 한의원을 방문했다. 진료실에 누워있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30분 누워있으면서, 잡생각 하나 없이 꿀휴식을 취했다. 집에서는 공간이 있어서 푹 쉬는게 어려운데 한의원에만 가면 그렇게 잡념도 사라지고 푹 쉴 수가 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르지? 생각해보니, 공간이 주는 분위기도 있지만 내 마음이 크게 한몫했다. 나는 이 한의원을 ‘치료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마음가짐이 이 공간에 있는 나를 그토록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유레카! 그거구나. 꼬리표 달아주기! 일상을 다르게 보는 눈이 이거였구나!
집으로 돌아온 나는 주변 공간에 꼬리표를 달기 시작했다. 온갖 잡념으로 뒹굴거리던 침상은 밤새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회복실>로, 하릴없이 들락거리던 부엌은 건강을 지켜주는 <건강창고>로 이름붙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배회하던 거실은 쉬고 책도 보고 즐겁게 놀 수 있는 <집안 카페>로, 욕실은 나를 깨끗하게 가꿔주는 <클린룸>으로 붙였다. 또 내가 눈 빠지도록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책상은 상상을 현실로 옮겨놓는 <크리에이티브 랩>으로 꼬리표를 달아주었다. 마음으로 꼬리표를 단 거지만, 과연,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유레카!!
내가 얼마나 기뼜는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대했던 공간이, 꼬리표를 하나 붙이는 것만으로도 생생히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나만의 <회복실>에 누워 5분 만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잠들기 전에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들이 많이 떠오를 터였는데. 회복실에 누워있다고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다. 그 날 꿀잠을 잤다.
일상에서 뭔가 다른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공간에 원하는 꼬리표를 달아주면 어떨까? 참고로 영국작가 조지버나드 쇼는 자신의 작업실을 두고 ‘런던’이라고 이름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전화하면 자신은 런던에 있어서 만날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단다. ㅎㅎ 기발한 발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