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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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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8일 17시 53분 등록
적을 적의 사정거리 경계점까지 유도해 놓고 갑자기 나의 함대를 거꾸로 돌려 공세를 바꾼다는 것은 힘들지만 가능한일일 것이다. 그때 나의 함대는 거꾸로 돌아선다. 선두는 후미가 되고 후미는 선두가 된다. 선두나 후미는 본래 없는 것이다. 선두는 돌아서서 후미가 되고 후미는 돌아서서 선두가 된다. 선두는 돌아서면서 날개를 이룬다 -칼의 노래 280-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 전투를 묘사한 내용인듯 싶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선두는 후미가 되고 후미는 선두가 되듯이 ,,,이미 어른으로 살고 있지만 어린시절의 순수와 모험을 내 삶의 선두에 놓고 살 수는 없는 것일까요?
배에서 선두나 후미는 본래 없는 것이듯이 우리의 삶도 원래 그런 것은 아닐까요?

아이들은 오랫동안 '안'이라는 공간에 앉아 있지를 못합니다.
집중력 을 논한다는 것은 터무니는 일임에 분명하며 어느 한 곳에 머무른다는 것을 따분해 하지요. 끊임없이 어딘가로 뛰고 걷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어린시절은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 없이 신발끈을 동여맬 줄 알았었습니다.
파아란 하늘처럼 무한한 자유로움을 소유하고 있었어요.
눈오는 겨울날의 미끄러운 길이 두려움이 되지 못했으며 운동장, 냇가, 논두렁 등 자유로운 터는 말그대로 '우리들세상'이었습니다.

보조개는 천사의 실수라고 합니다. 신께서 태초를 창조하시던 이레째의 날, 옆에서 거들던 천사가 실수로 천사들의 수액을 떨어뜨려 그 물방울이 사람의 얼굴에 보조개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나도 작은 보조개가 있었습니다. 분홍빛 얼굴을 하고 수줍던 때가 있었지요. 어느날 아침 거울 속에서 보조개와 분홍빛을 천사가 거두어 갔음을 알았습니다.

어른스러워진 나는 울지 않았습니다.

식당에서 오랜만에 외식을 나온 듯한 한 가족을 봅니다. 아기 새처럼 엄마, 아빠가 번갈아가며 젓가락으로 챙겨 넣어주는 고기나 밑반찬을 맛나게 먹으면서도 아이들의 시선은 밖으로 향해있습니다. 그렇다고 바깥에 아이들이 즐길만한 놀이터나 별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정도 배가 채워졌는지 남매는 촐랑거리며 뛰어가 신발을 찾아 신습니다. 식당 앞 주차장이 그들만의 두려움 없는 세상이 되는거예요.

새로운 것에 '낯설다'라는 단어가 아닌 '신기하다'라는 단어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 나는 그것을 모험심이라 부릅니다.
어느새 마음속에 자(尺)를 그려두고, 그것들로 잰 세상을 바라보는 나를 발견합니다.
해가 바뀔수록 자의 눈금은 더욱 오밀조밀해집니다.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먼저 살면서 배워 온 습성대로 생각들을 오밀조밀 재어보는 것이지요. 얼마나 나는 조신한가, 얼마나 어른스러운 가 말입니다.
그런 내가 슬픕니다. '선택' 앞에서 좀 더 과감하지 못한 내가 슬픕니다. 조심스러운 눈금으로 해서 나의 삶은 얼마나 '안전'할 수 있을 까요?, 내 자의 눈금이 정확하기는 한 것일까요?

잠 안오는 밤을 지새다가 막연히 옷을 주워 입고 길을 나섰습니다.
하루를 걸려 서해바다 앞에 조용히 섰습니다. 해가지고 있엇습니다.
황혼은 사람의 인생을 닮았습니다. 서해 바다의 노을은 특히나 아름답습니다. 거기 서있는 나도 아름답게 물듭니다.
작은 나의 하루도 노을이 됩니다. 나는 이 작은 '무모함'이 가져다 준 행복에 오랫동안 취해 봅니다.
지났던 길을 돌아와 다시 내 자리에 섰을 때, 막상 변해 있는 건 없을테지만 그 자리, 그 시간을 돌리고 있던 이전의 모습보다 더욱 당당해진 나를 발견합니다. 나에게는 이런 무모함 이라 불리우는 것들이 향수와 동등한 그리움으로 자리잡습니다.
나는 행복해 집니다. 나는 아직 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다른 이의 눈에 내가 무모하게 보이기도 하는 것이지요. 나는 두려움 없이 바깥세상을 거닐 수 있으며 놀이터의 그네 하나만 내것이어도 세상의 전부를 가진냥 행복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어릴 적의 기억들이 가물거릴 때, 어떤 지식의 기억 보다 더욱 절실하게 아쉬움과 갈증을 느낍니다.

물은 늘 거칠었고, 물은 늘 노에 저항했다. 배는 그 저항의 힘으로만 나아갔다.- 칼의 노래281-

삶은 우리를 순순히 받아들여 주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끊임없이 저항하고 밀쳐내며 사지로 밀어 넣으려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오밀조밀해지고 계획적이되고, 어릴적 그 순수와 천진한 웃음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어린시절의 철없음을, 순수한 농담을 아이처럼 신나게 하늘을 날 수 있을것이라는 희망을 조그만 오늘 하루에 끌어 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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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6.08 21:11:44 *.178.33.220
오늘 동네 앞산으로 가족산책을 나갔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나해서 준비해 간 우산은 단 하나.
저와 두 아이는 작은 우산 하나를 쓰고
하나,둘,셋,넷 발걸음을 맞추어 산을 내려 왔습니다.
어른은 내리는 비를 짜증스러워 했지만
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재미있어 했답니다.
아이들의 마음 속엔 눈금자가 없습니다.
그 끝을 모르는 눈금없는 줄자가 있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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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6.08 22:50:26 *.36.210.11
그게 무엇이건 원하는 대로 다가가 있게 되겠지. 그래서 우리는 좋은 꿈을 꾸려하고 좋은 책을 읽으려 애쓰고 좋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거겠지. 더 천진해 가는 싱싱하고 맑은 은미를 보게 되겠구나. 너무 귀여워지면 정말 깨물어버릴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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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6.09 09:16:52 *.84.242.254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어린아이로 사는 날..그런 날이 있었음 좋겠네요..그런데 저는 철이 없어서 매일 어린 아이로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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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8.06.09 12:34:20 *.244.218.10
여행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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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6.09 13:02:05 *.244.220.254
깨달음을 얻은 성자(聖者)들은 무릇 '어린 아이'와 같다고 하더군요.
세상의 모든 반응에 도전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신나게 날 수 있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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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6.09 13:46:44 *.248.75.18
잠 안오는 밤을 지새다가 막연히 옷을 주워 입고 길을 나서는 은미씨, 그 어깨에 내려앉은 붉은 노을과, 함께 물든 은미씨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이네요.
그 '무모함'이 건져낸 단상, 함께 나누니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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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뇌
2008.06.12 05:45:59 *.160.33.149

꼬마야, 유년기는 축복이다. 온갖 상상 속에 현실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인 유일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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