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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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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8일 22시 18분 등록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즉 직장인이 되기 이전에 내가 경험한 음식들은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내가 먹는 먹거리라는 것은 고작해야 집에서 만들거나 학교 앞 식당 혹은 대학교 구내 식당에서 접하는 일상적인 밥과 반찬들이 대부분이고 가끔씩 주문이나 외식을 통해 먹는 피자나 치킨, 고기 정도가 특별했다.
지금은 도처에 깔린 패밀리레스토랑이라는 장소들을 몇 년 전에 나는 알지 못했고 그곳의 주요 고객이라는 요즘의 대학생들만큼 먹거리에 대한 장소와 경험도 풍부하지 못한 완전히 시골스런 먹거리 패턴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어 나 스스로 돈을 벌게 되고, 다양한 식사 자리가 생겨나기도 하고, 정식으로 데이트도 하게 되면서 내가 접할 수 있는 먹거리 경험 스펙트럼은 순식간에 넓어졌다.
물론 TV, 잡지등의 먹거리에 대한 집중적 소개에 따른 관심의 대중화는 물론 음식점의 전문화 및 독특성이 트렌드를 이루는 분위기에 따라 끊임없이 새롭게 선보이는 다양한 레스토랑들의 등장 또한 한 몫 하기 시작했다.

직장인이 되고부터는 내가 비오는 날이나 속에서 느끼한 걸 원할 때 떠올리는 음식들의 수준이 김치전, 파전과 피자, 통닭의 수준이 아니게 되었다.
먹거리 경험의 폭이 넓어지게 되면서, 느끼한 게 먹고 싶은 날에는 모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파는 오지치즈 후라이즈와 샤워 쉬림프가 생각나고 비오는 날에는 고대 앞 XXX 국수집의 매콤한 비빔 국수와 빈대떡이 땡긴다. 또 김치찌개가 생각나면 반드시 압구정에 있는 그곳이 생각나 기를 쓰고 달려가기도 한다.

이처럼 점차 다양한 음식과 장소의 경험을 통해 내가 원하는 음식의 종류와 수는 늘어나게 되었고, 게다가 그 음식을 잘하는 곳, 즉 장소에 대한 선호도까지 덧붙여 지면서 나의 먹거리에 대한 욕구는 점점 복합적이고 만족시키기가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먹거리들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욕구가 증가하는 만큼 나의 신체적, 정신적인 자유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원하는 장소에서 파는 땡기는 음식들을 입에 집어 넣다가도, 3,4만원이 훌쩍 넘는 음식의 가격을 계산할 때 내가 돈을 벌지 못한다면 이런 먹거리 경험들은 포기해야 할 것이라 생각들이 종종 들곤 하는 것이다.
즉, 먹거리에 대한 경험들을 충족시키는 것의 하나의 수단으로 내가 나의 직장 생활을 해나가고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든 것이다. 아니 먹거리뿐 아닐 것이다. 내가 원하는 물건을 갖거나 원하는 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또 나는 현재의 직장에서 마약과 같은 월급을 바라보며 달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할부금이 남아서,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직장에 얽매이고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들도 점차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닐까. 현재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나 내가 추구하는 바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을 위해 쉽게 발을 빼지 못하고 버티는 장소로서의 직장 말이다.

과도한 먹거리, 물건, 놀이등의 경험이 욕구를 넘어선 욕망을 부추기게 되면서 나의 정신적 여유와 내가 생각하는 가치들은 더욱 작아지게 된 것은 아닌지.
과도한 욕망만큼 내가 누릴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자유도는 줄어들게 되는 것은 아닌지.

“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 할 수 없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 없이 밀어닥쳤다 – ‘칼의 노래’ 中 “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절절히 묘사한 ‘끼니’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 ‘끼니’는 삶을 위한 기본 욕구의 해결이 아닌 과도한 욕망의 상징이 되었다.

즉, 소비가 다양화, 고급화 됨으로써 그 속 서 있는 나 또한 그러한 욕망에 길들여 지고 그것들을계속 지향하고 추구하다 보니 똑똑해야 할 현대인의 삶인 내 인생이 되려 더욱 피곤해 지고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 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참고 벌어야 한다’ 가 된 것이다.
현재와 쾌락과 수준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 그러한 과도한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정신적 자유도를 보류하고 스트레스를 감내해야만 하는 직장 생활.
나 스스로의 과욕 내지 이중성이 아닐까.
먹거리를 떠올리면서, 알고는 있지만 현재 수준의 생활을 버리기 힘든 나약한 모습의 나를 새삼 마주서게 된다.
안정적인 밥벌이가 만족시켜 주는 다양한 욕구 내지 욕망들을 과감히 털어 버리고 직장을 나선 사부님 및 내 옆 신랑의 순수함과 진실함, 고결함이 다시금 문득 존경스러워진다.
IP *.34.17.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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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6.08 22:40:54 *.36.210.11
그러게...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또 이리 말씀 하셨다. "지혜가 힘들겠구나" 하고. 일반적인 여자들의 입장을 대변하시는 것 같지는 않으셨다. 당신께서도 딸 아이를 생각하셨던 것일까? 마치 지환의 아버지께서 지혜에게 해주시는 말씀과 같이 따스했다.

젊어 씩씩하게 사서도 하는 고생처럼 의당 믿고 따르는 지혜의 사랑 또한 더없이 대단한 사랑의 신뢰와 의지임을 알겠다. 그래서 나는 이들 부부가 너무 신기하고 이쁘고 이들 부부의 행동에 귀 기울여 배우게 된다. 나의 욕심과 속된 마음들이 조금씩 걷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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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6.09 09:10:10 *.84.242.254
그러니까 말이야..얼마 전에도 소유에 대한 욕망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고서 반성해야 겠다고 생각했음..지혜 글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반성하고 있음...

지혜야 고생이 많다..배 속에 아기까지 데리고 먼 데까지 왔다갔다 직장 생활 하느라고..토닥토닥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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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6.09 10:13:24 *.122.143.151
그래,
돈, 밥벌이, 안정 모두 중요한 단어들이지..
눈으로 확인이 안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그냥 주저앉기를 반복하고 말지..
하지만 우리 모두는 지금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것이지.
그래서 헥헥 거리며 과정을 쫓아가는 것이고.
참자. 그리고 더욱 열심히 불살러보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2년, 3년이면 달라진 우리를 보게 되겠지.
스스로에 놀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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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6.09 13:07:16 *.244.220.254
결국 욕망 = 자유 의 변수를 통해서 '신랑' 자랑을 하는구나~ ㅉ ㅉ ㅉ
이그~ 지환이는 마누라 잘 얻었어~ 나도 사표쓰고 저런 말 좀 듣고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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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6.09 14:14:01 *.248.75.18
좋은 주제예요. 나도 그런 생각을 늘 하는데.
단순하게 살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꼭해야 하는 일이 되어
우리를 짓누르지요. 오히려 불편하게 살던 이전 사람들보다 더 힘들게 살고 있는 우리들....
새로 생겨난 신종 욕망들 때문에 악순환이 계속되는...

결론은 모두 귀농? 자급자족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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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
2008.06.09 14:35:56 *.161.251.192
흠...요즘 내가 문득 문득 하는 생각
아 그냥 놓고 샆구나!! 생각될때...
나는 왜 놓지 못할까? 그리 즐거워하지도 않으면서...
생각해봤더니 결국 욕망때문이더라구,,

더 많이 갖고 싶은 욕망. 더 잘 살고 싶은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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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뇌
2008.06.12 05:41:02 *.160.33.149

얼마 전에 네 신랑 만나 네가 결혼전 사기친 이야기 들었다.

연애하여 서로 사귈 때, 순댄간 머리고긴가 족발인가 모르겠지만 네 신랑이 그거 먹으러 가자고 했더니 너도 좋아한다 하며 냉큼 먹으러 가자 하더란다. 그래서 좋아 하는 지 알았단다. 결혼하고 그거 먹으러 가자했더니 '원래 부터 그건 거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더란다. 그래서 네 신랑은 결혼하고 족발집 처음와 본다 하더라.

애가 있을 때는 그 애가 비록 작더라도 그애 먹을 것을 따로 늘 챙겨 주어야 한다. 가리지 말고 잘 먹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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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2008.06.12 14:24:35 *.110.86.68
하하하!! 사부님 오해세요~ ^^;;
육아를 위한 충고는 깊이 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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