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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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툭! 몸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현실 속 공간이 아득해졌다. 속수무책,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힘을 짜내 후들거리는 다리로 상사에게 다가갔다. 과장님, 제가 컨디션이... 누가 봐도 이를 악물고 참고 있던 내가 보낸 첫 구조요청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던지 괜찮다는 나를 굳이 후배직원의 차에 태웠다.
미안해요. 괜히 기석씨만 번거롭게 하네. 차 안에서의 불편한 침묵 속에 마지막 남은 기운마저 다 써버린 나는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을 열고 들어가 쓰러졌다.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버티다보면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는 자위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무렵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이렇게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죽던지, 남은 시간이라도 편안하게 지내다 죽던지. 상황이 그 지경이 되고 나서야 사직서를 낼 수 있었다.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한 것은 퇴직을 하고도 한 참 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난 다음이었다. 나 자신이 아픈 아이를 돌보듯 돌보아야 할 존재임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게 일상을 완전히 재배치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야기를 인내심 있게 들어주고, 하고 싶다는 게 있으면 성과를 기약할 수 없다고 해도 어떻게든 해주려고 했다.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 하는 불안이 수시로 올라왔지만, 행여나 괜한 자극을 해 가까스로 달래 놓은 내가 다시 고꾸라질까봐 내색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가끔 ‘아~ 이게 행복인가보다’ 하는 순간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뭐가 되겠다는 생각, 뭘 이뤄내겠다는 욕심’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내가 아닌 누군가를 찾아 헤매느라 방치되어 있던 지금 여기의 내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간단한 거구나. 그리고 그후로는 내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욕심으로 가득 차 있던 시간 속에서도 느낄 수 없던 충족감을 욕심을 내려놓고야 비로소 맞이할 수 있음을 체험했으니 이젠 정말 다르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조금 살만해지니 욕심도 스물스물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절망하던 내가 지금의 평화에 이를 수 있게 된 과정을 나만큼 힘든 이들과 함께 나누어 보는 거야. 어쩌면 내가 그렇게 무너졌던 것도 이 소명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신의 장치였는지도 몰라. 나와 같은 고통 속에 있는 그녀들이 그 통증 안에서 신의 선물을 발견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낼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그럴 수만 있다면 그동안 해왔던 실패들이 한방에 만회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차올랐다. 그렇지, 이렇게 무너질 내가 아니지.
“이제야 실토하는구나. 하다하다 안 되니까 아픈 자신까지 이용하려고 드는 거니? 여전히 피고름이 철철 흐르는 환부를 억지로 닦아내고 다 나은 척하라고?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고 했니?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그러지 마. 너는 알잖아. 너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했다고 했지만, 내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끝까지 모른 척하고 있어. 너 내가 왜 이렇게 계속 아픈지 알기나 하니? 아니, 실은 나보다 더 아픈 게 너라는 걸 알기나 하냐구?”
윙윙 창밖 어디선가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등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 딸아이가 다가온다.
“엄마, 뭐 해?”
“글 써.”
“그런데 왜 울어?”
“원래 글은 울면서 쓰는 거야.”
“그래? 무슨 책 쓰는 거야?”
“책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나중에 나중에 엄마 죽고 나면 서영이가 한번은 꼭 읽어주면 좋겠다.”
“왜 그런 책을 써, 글구 나중에 나중에 나올 그런 책은 나중에 쓰면 안 돼?”
채 대답을 할 새도 없이 돌아서 방문을 닫는다. 우리 엄마 또 시작이네. 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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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
1. [출간소식] 『오티움』 문요한 저
'오티움ótĭum'은 라틴어로 '내 영혼을 기쁘게 하는 능동적 휴식'을 말합니다. 저자는 몇년 간운동, 춤, 공예, 사진, 글쓰기, 그림, 가드닝, 악기연주, 명상, 봉사 등 능동적 여가활동을 즐기는 약 40 여명의 사람들을 심층인터뷰했습니다.
'자력自力의 기쁨' 즉, 오티움으로 사는 건강한 이들은 자기세계로 초대합니다.
http://www.bhgoo.com/2011/861866
2. [출간소식] "인생에 답이 필요할 때 최고의 명언을 만나다" 김달국 저
'에머슨, 쇼펜하우어, 니체, 틱낫한, 안셀름 그륀, 발타자르 그라시안, 오쇼 라즈니쉬, 크리슈나무르티, 칼릴 지브란, 톨스토이' 삶의 길을 찾기 위해 철학자, 사상가, 종교인 등 10인의 스승을 만나다. 작가의 해석과 삶의 지혜를 덧붙인 167개의 보물을 담고 있다. 너무 짧지 않은 글에 진지한 생각거리와 깊은 지혜가 담겨 있어 곁에 두고 읽기 좋은 책입니다.
http://www.bhgoo.com/2011/861692#2
3. [프로그램] '내 인생의 첫 책쓰기' 18기 모집
9년동안 책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오병곤 연구원이, 하반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인생 반전을 위한 6개월의 책 쓰기 프로젝트>라는 부제로 운영됩니다. 제대로 글을 써보고 싶거나 좋은 책을 출간해보고 싶은 분이라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를 클릭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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