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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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그리고 좀 더 우둔해지리라
가급적 모든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더 자주 여행을 하고
더 자주 석양을 구경하리라
산에도 가고 강에서 수영도 즐기리라
아이스크림도 많이 먹고 콩 요리는 덜 먹으리라
실제적인 고통은 많이 겪게 되겠지만
상상 속의 고통은 가급적 피하리라
보라, 나는 시간시간을, 하루하루를
좀 더 의미있고 분별있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리라
아, 나는 이미 많은 순간들을 맞았으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그런 순간들을 좀 더 많이 가지리라
그리고 실제적인 순간들 외의
다른 무의미한 시간들을 갖지 않으려 애쓰리라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대신에
오직 이 순간만을 즐기면서 살아가리라
지금까지 난 체온계와 보온병, 레인코트, 우산이 없이는
어디에도 살 수 없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제 내가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보다 한결 간소한 차림으로 여행길에 나서리라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신발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지내리라
무도회장에도 자주 나가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데이지 꽃도 더 많이 꺾으리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나딘 스테어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라는 시입니다.
시 전체를 읽은 적이 없어도 부분 부분 많이 인용이 된 덕에 어디선가 한번쯤은 본 문장들일 겁니다.
나딘 스테어는 미국의 평범한 할머니로 85살에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체온계와 보온병, 레인코트, 우산이 없이는 어디에도 살 수 없는 사람'에서 뜨끔했습니다.
딱 저거든요.
그래서 이제껏 살아오면서 별로 실수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상상 속의 고통을 많이 겪었죠.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애쓰다 보면 상상속의 고통을 겪을수밖에 없습니다.
잔뜩 몸과 마음에 가득한 긴장과 함께 만사를 심각하게 보며 살아왔습니다.
그 탓인지 살면서 별 기회다운 기회를 만난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실수를 하지 않은 덕분에 성공의 문고리도 잡아보지 못 한 셈이죠.
나딘 스테어가 그리는 삶은 카잔챠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극중 인물 조르바와 같은 삶입니다.
극중 주인공인 나(실제 카잔차키스)는 도저히 될 수 없는 인간군상이 바로 조르바죠.
소설에서 조르바가 주인공에게 한 말을 한번 들어보시죠.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에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이 잡것이! 줄을 놓쳐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노란 양국 맛이지. 멀건 양국 차 말이오. 럼주 같은 맛이 아니오.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아, 그냥 다짜고짜 눈 딱 감고 줄을 잘라야 하는건가요? 우리 목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는 그 줄을 자르지 못한다고 우울해 할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조르바가 될 수는 없죠. 조르바는 조르바고 나는 나입니다.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이 조르바나이제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딘 스테어 할머니가 다시 태어났다고 해서, 체온계와 보온병, 레인코트를 놓고 다녔을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체온계와 보온병을 가지고 다녀야 마음이 편하다면 굳이 놓고 다닐 이유는 없는 겁니다. 다만 체온계와 보온병이 없어도 인생은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체온계와 보온병이 없다고 그냥 쉽게 단념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한주의 시작이 왔습니다. 힘차게 한번 외치고 하루를 시작합시다. 도오오~~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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