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그미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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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나에게 상처를 준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아니 일부러 상처 줄려고 한 말이 아닌데, 그것을 상처라고 여기며 자신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중 3 교실. 어머니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 수학 선생님이다. 아들이 들어간 반을 가르치게 되었다.
해넘이는 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어머니는 해넘이 선생님이다. 3년째 아들이 들어간 반을 가르친 셈이다.
내가 그 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이다. 수업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늘 과제검사를 한다.
이전 시간에 배웠던 것을 노트에 쓰면서 복습하는 거였다. 과제검사를 하면서 노트에 도장을 찍어주는데, 한 학생이 숙제하지 않았다.
그 학생이 다름 아닌 수학 선생님 아들이었다. 뒤에 있던 어떤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현식이 때문에 수학샘하고 토킹어바웃(talking about)” 해야겠네요. 크크큭 “
순간, 현식이가 “야! 이 개새끼 씨빨새끼야”이라고 말했다. 순간 교실은 고요해졌다.
갑자기 당황스럽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속으로는 ‘이 새끼가 나를 뭘로 보고 내 앞에서 저런 욕지거리를 하지?’라고 순간 버럭이가 확 올라왔다.
정신을 차리려야 했다. 학생들이 수업을 받아야 하는데, 한 학생 때문에 화를 내고 야단치면서 수업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되었다.
따로 불러서 이야기하면 될 일이었다. 음……. 순간, 내가 좋아하는 만화영화 쿵푸팬더에서 사부가 한 말이 떠올랐다.
‘카암 다운(진정해, calm down) 이너피스(마음의 평화, inner peace’)를 반복하며 벌렁벌렁한 가슴을 가라앉히고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을 무사히 끝낸 후, 종례 후 현식이에게 나를 만나고 가라고 말했다.
학생들도 모두 집에 가고 선생님도 퇴근 한 에듀케어센타에서 현식이와 나만 있었다.
Oh쌤: 현식아! 내가 왜 불렀을까?
현식: 잘 모르겠는데요. (내 눈을 피하면서 다른 곳을 본다)
Oh쌤: 그래? 짐작하는 게 없을까?
한참을 있다가
현식: 죄송해요. 선생님. (고개를 숙이며)
Oh쌤: 그래. 네가 그리 화낸 건 뭔가 마음속에 돌덩이 같은 응어리가 있는 것 같아.
왜 그런 욕을 순간에 하게 되었는지.
무엇이 너를 그렇게 화나게 만들었는지 20줄 이상 한번 써볼래. 저기 저 책상에 가서.
네가 쓰는 동안 선생님은 수업 준비 하고 있을께.
지시문을 주지 않으면 대강 쓰고 얼렁뚱땅 검사받고 가는 식이다.
하지만 20줄 이상 쓰려면 행동을 하게 된 원인과 마음을 자신에게서 끄집어 내고 머리를 쥐어 짜야 한다.
자신도 모르는 내면을 보게 하는 과정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A4용지를 주고 쓰라고 한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글을 쓰는 행위는 과거의 행위를 복기함으로써 사건을 묘사한다.
사건을 묘사하면서 자신과의 거리를 두고 제 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볼 수 있는 힘을 키운다.
둘째, 글을 씀으로써 억울했던 마음을 토로하게 되고 정말 ‘이일이 화를 낼 정도 였나?’ 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의 진정을 가져온다.
자신도 모르는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관찰자 입장에서 보게 하는 능력이 있다.
셋째,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이 무슨 말과 행동을 했는지 상대의 행위에 대해 화를 가라앉게 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화와 분노가 조금씩 누그러진다.
현식이가 사건을 쓴 종이를 가지고 왔다. 옆 의자에 앉혀놓고 본인이 썼던 글을 소리 내서 읽게 했다.
자신이 묘사한 글을 읽는 행위는 자신의 귀로 다시 한 번 듣게 하는 효과가 있다.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듣는 행위는 남이 말하는 행위보다 더 집중한다. 왜? 말하면서 들어야 하는 능동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읽는 것과 소리 내서 읽는 차이는 집중과 몰입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김보경의 <낭독은 입문학이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때론 낭독에서도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 순간에 짧은 시간이지만 다른 생각이 끼어들 때가 있다. 하지만 이내 물리치게 된다.
낭독을 통해 공간 속으로 걸어 나온 활자들이 주변을 맴도는 잡생각이 끼어들 틈을 막아 주는 것이다.
소리가 리듬을 갖추게 되면 활자와 활자 사이의 느슨한 공백을 소리가 채워나가면서 견고한 막을 형성해 책을 읽는 사람에게 단단한 몰입감을 만들어 주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현식이가 쓴 글을 보면서 의문 생긴 곳에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질문했다.
Oh쌤: 현식아! 네 입으로 무슨 말을 하건 자유야. 그런데 수업 시간에 선생님 들리게 “개새 끼 씨빨새끼”라고 말을 하면 듣는 내가 나한테 말하는 것 같고, 나 들으라고 한 것 같아 당황스러웠어. 내 기분이 가라앉았어. 내가 이런 말 들으려고 학생들을 가르치나 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해. 네가 만약 내 입장이고 어떤 학생이 너에게 들리게 이런 말을 했다면 넌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아.
현식: 더러울 것 같아요.
이렇게 내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난 후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하지만, 현식이에게는 뭔가 억울한 게 있었다.
선생님인 나에게 억울한 게 아니라, 그동안 친구들에게 놀림 받았던 그 아이만의 상황에 대한 억울함이었다.
분함과 억울함으로 울먹울먹한 것을 그대로 말하게 했다.
이유는 이랬다. 현식이가 이 중학교에 오기 전부터 현식이 어머님은 해넘이(방과 후)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다음 해에 어머니가 다닌 같은 학교에 입학한 현식이는 방과 후 수업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같은 학년 친구들은 현식이 어머님이 수학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현식이는 알게 모르게 엄마에 대한 좋은 말과 좋지 않은 소리를 동시에 들었을 것이다. ‘너무 무섭다, 수업 시간에는 꼼짝도 못 하겠다. 숙제 안 하면 혼난다.’라 등등.
그런 것들이 3년 동안 쌓였으니. 더군다나 처음 온 영어 선생님에게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을 현식이는 순간 화가 났었다. 잘 보이고 싶은 현식이가 그런 상황들로 인해 틀어졌으니 속상했다고 했다.
상대가 상처를 준다고 느꼈을 때는 정식으로 요청하자
속상하다고 말한 현식이에게 처방을 내렸다. 자신이 속상하고 마음 상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식으로 친구에게 말하라고.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참는 사람보다 갈등이 더 적고 긍정적이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현식이처럼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감정에 휩싸여 화를 낼 수도 있고 소리 지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그저 감정을 쏟아내는 것에 불과하지 다음에 또 이러한 상황이 일어날 때도 같은 상황 즉, 욕하고 화내는 일이 반복된다. 더 개선하거나 발전하는 일이 없이 그저 패턴의 반복에 따라 화내고 상처받고 속상해할 뿐이다.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렇게 해보라.
첫째, 상처를 준 친구를 정식으로 대화하자고 요청한다. 그런 다음 자신에게 집중하게 하라.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영석아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잠시 시간 내줄 수 있니?".
공손하고 정중하면서도 존경하는 태도로 단호하게 말한다.
둘째. 바로 즉시, 간단히, 짧게 이야기해야 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상황이 발생했을 시 바로 즉시 간단히 하라. 그렇지 않으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설명은 간단하고 짧게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게, 쉬는 시간에 바로 이야기한다..
“네가 자꾸 그런 말을 하는데 나는 그게 싫어”
셋째, 상황을 묘사할 때, 오로지 문제에만 집중해서 말해야 한다. 나를 화나게 하고 불편한 감정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라.
“네가 자꾸 나와 엄마를 연관시키는 게 불편해. 나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지 엄마와 연관 짓지 않았으면 좋겠어. 영석이 네가 내 입장이고, 내가 자꾸 너와 엄마를 연관 지어서 이야기하면 네 기분은 어떨 것 같아. 그러면 내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넷째,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효과를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내 잘못으로 인해 엄마까지 욕먹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고 힘들어”
다섯째, 그 사람에게서 기대하는 반응을 묘사하고, 그것이 어떻게 너의 문제를 풀어줄 것인지도 설명하라.
“그러니 다음부터 내가 잘못하면 내 잘못에 관해서만 이야기해. 그러면 나도 내 행동을 되돌아보고 좋아지도록 노력해볼게. 네가 엄마와 나를 연관시키는 것에 대해 사과하고, 다음부터는 그렇게 말 안 했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동의의 조건이나 말에 대해 둘 다 만족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래! 현식아, 내가 미안해. 다음부터는 말할 때 조심하도록 할게.“
이것을 ASSERT 공식이라 한다. (주의집중, 곧-간단히-짧게, 구체적이며, 효과적으로, 반응을 기대하는 말, Attention, Soon-Simple-Short, Specific, Effect, Response, Term)
상대가 나를 그냥 놀린다거나 별로 원하지 않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식으로 요청하자.
“네가 네 입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말릴 수 없지만, 내가 그런 말을 들을 때는 기분이 좋지 않으니 조심해주면 고맙겠어.”
이런 말을 하면 아이들은 서로에 대해 예의를 표시한다. 그러니 상처받고 꿍하니 몸살 앓지 말고 솔직하게 감정을 터놓고 살자. 감정이 뭉치면 몸의 약한 부분에 병이 온다. 이것을 스트레스라고 부르지 않던가. 스스로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안 주고 혹은 스스로 자신이 상처받았다고 하는 자신을 보라. 상대에게 말할 용기가 없지 않은가. 자신을 진정 사랑하고 존중한다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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