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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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노트(Distraction note)
집에 있으면 아무리 마음을 다져먹고 책상에 앉아도 여러 방해 요소에 맞닥뜨리게 된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방해꾼은 인터넷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흩어지는 관심이고, 그것을 딱 끊어내지 못하는 내 우유부단함이다. 도서관에 앉아있으면 일단 집안 일과 아이들 때문에 생기는 방해는 차단할 수 있을지 모르나 문제의 원인은 여전히 내게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방해를 받는지 나는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개선이 잘 안된다는 게 내 함정이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어떻게 방해를 받고 있는지’ 가감없이 기록해보기로 했다. 그것이 내 현실을 보다 선명하게 보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아침 6시 50분, 늘 그랬듯이 핸펀 알람이 울린다. 어제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와 새벽 3시가 다 돼서 잤기 때문에 오늘 아침 눈을 뜨는 일이 힘들다. 학교에 가야하는 셋째를 깨운다, 그 애가 10분만! 하는 소리에 알람을 10분 후로 조정하고 나 역시 그 달콤한 10분을 즐긴다. 다시 알람이 울리고, 한 번의 10분을 더 반복한다. 다시 알람이 울리자 다시 셋째를 흔들어 깨워 욕실로 밀어넣은 다음 주방으로 달려가 식사를 준비하고, 막내도 마저 깨우고 식탁을 차린다. 두 아이 밥 먹여 각자 학교와 학원으로 보내고, 서둘러 설거지를 마친다. 어제 여러가지 일에 휘둘려 내 시간을 빼지 못했다. 오늘은 꼭 도서관을 가기로 결심한다. 세수를 하고 간단히 화장을 한다. 책상 위에 펼쳐둔 노트북을 챙기다 필요한 메일 ‘하나만’ 체크하려고 책상 앞에 앉는다.이럴 때 단호히 물리쳐야 하는건데, 엉덩이를 붙이고 의자에 앉는 것이 문제다. 마음 속에선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합리화를 한다. 메일을 체크하다 보니 올 10월 베니스 국제 합창제에 나가는 수정구 여성합창단의 유럽 여행 견적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견적을 빨리 보내달라는 메일을 쓴다. 밤새 몇 건 들어와 있는 모닝페이지 3기 모집 지원서를 읽는다. 일일히 마음을 담아 짧게 나마 답장을 보낸다. 다른 일들도 눈에 잡힌다. 이미 손에 잡힌 일이니 ‘잠깐, 빨리’ 처리하기로 ‘마음 먹는다’. 벌써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이제 가방을 챙긴다. 오늘은 그동안 시작하다 끝을 맺지 못한 글 세 편을 완성하는 것이 미션이다. 책은 남은 시간에 읽기로 한다. 가방에서 어제 넣어둔 ‘라즈니쉬 자서선’을 꺼낸다. 그런데 이게 왠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책상에 올려놓는 순간, 책이 반으로 열리더니 ‘섹스 구루’라는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라즈니쉬가 프리섹스를 주장한다더니 깨달은 사람은 섹스를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잠시 읽는다. 역시 그답다. 절대 천박한 주장이 아니다. 읽다보니 그의 성 담론을 담고 있는 책이 소개되어 있다. ‘성으로부터 초의식으로’(From Sex to Superconsicousness)라는 책이다. 구입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잊기 전에 카트 안에 넣어두려고 ‘예스 24’의 사이트로 간다. 한글 제목으로 검색하니 뜨지 않는다. 아직 번역이 안되어 있나보다. ‘오쇼 라즈니쉬’로 검색해 본다. 역시 없다. 그런데 번역된 그의 책이 수 십권이 넘는 것에 놀란다. 하기는 그의 이름으로 400 여권의 책이 나와있다니 무리도 아니겠다. ‘라즈니쉬 자서전’을 누른다. 이 참에 책 소개와 그 밑에 달린 독자후기 두 편을 읽어본다. 인용된 몇 구절이 인상적이어서 내가 가진 책에서 직접 찾아본다. 찾아보는 게 잘못이지, 다시 주변의 몇 페이지를 읽고야 만다. 그런데 재미있으니 멈추지 못하고 좀 더 읽는다. 다른 급한 것이 있을 때일수록 읽는 재미는 더 커진다. 책이 작아서 페이지까지 잘 넘어가니 그 맛에 몇 장을 더, 단숨에 읽는다. ‘아, 이러면 안되지’ 자각하고 책 읽기를 중단한다. 아까 찾던 책의 번역본이 없으니 영어 책으로라도 검색을 해서 카트에 넣는다. 저자 소개에 도움이 될까 하고 영어로 된 책의 설명을 클릭해 잠깐 읽는다. 그리고 페이지를 닫으려고 하는 순간, 그 밑에 여러 물건이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는 ‘추천 상품’이 눈에 띈다. 상품 중에 ‘죽기 전에 꼭 보아야할 위대한 영화 Vol.1’ 이 눈길을 잡는다. 누른다. ‘안달루시아의 개’, ‘윈체스터 73’과 같은 20개의 영화 속에 한국영화 ‘공공의 적’이 들어있다. '공공의 적'은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못본 영화다. 클릭한다. 그 순간 전화가 온다. 뉴질랜드 항공 예약 문제다. 사장과 직접 통화해 약속한대로 좌석을 정확하게 확보해야 한다고 여러 번 못을 박는다. 그리고 그 동안 유보석으로 잡아두었던 세 명에게 전화로 다시 확인, 가기 어렵겠다는 말을 듣고 최종 명단에서 지운다. 그 대신 새로 확정된 사람들의 이름을 채운 새 명단을 작성하여 여행사에 바로 보내준다. 제 때 처리하지 않는 일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을 다투는 항공예약과 같은 일은 더욱 그렇다. 업무 전화가 하나 더 걸려온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시계를 본다. 벌써 12시가 넘었다. 도서관에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그냥 주저앉는다. 오늘도 ‘도서관에 가느니, 이동 시간을 줄이고 그냥 집에서 작업하자’는 결론을 내린다.
결국 그렇게 하루가 순식간에 흘러갔다. 방해들을 수없이 허락하면서(아니 끌어 들이면서) 아침에 우선순위로 스케줄러에 올린 일들은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그 일들은 밀려서 내일도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나를 압박할 것이다. 아, 저녁 잠자리에 들면서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것은, 그리고 잠은 늘 불충분하면서도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그것은 번번히 우선순위를 무시하고 방해를 허락하는 나의 태도, 이런 습관에 있다. ‘누구나 비슷할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해 보지만, 내 경우는 정도가 ‘좀’, 아니 ‘상당히’ 심하다.
이렇게 ‘방해 노트’를 적고 보니 예상한대로 내 문제가 더 분명하게 보인다. 무슨 수를 써야지 안되겠다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이 작은 습관이 내 목표를 위협하고, 내 성공의 발목을 잡는다. 진정 원하는 일들로 하루를 채우고 싶은 내 바램은 이렇게 작은 방해들로, 너무나 쉽게, 어처구니 없이 공중분해되는 것이다. 아이고, 하루를 탐닉할 여유가 다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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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으면 아무리 마음을 다져먹고 책상에 앉아도 여러 방해 요소에 맞닥뜨리게 된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방해꾼은 인터넷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흩어지는 관심이고, 그것을 딱 끊어내지 못하는 내 우유부단함이다. 도서관에 앉아있으면 일단 집안 일과 아이들 때문에 생기는 방해는 차단할 수 있을지 모르나 문제의 원인은 여전히 내게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방해를 받는지 나는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개선이 잘 안된다는 게 내 함정이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어떻게 방해를 받고 있는지’ 가감없이 기록해보기로 했다. 그것이 내 현실을 보다 선명하게 보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아침 6시 50분, 늘 그랬듯이 핸펀 알람이 울린다. 어제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와 새벽 3시가 다 돼서 잤기 때문에 오늘 아침 눈을 뜨는 일이 힘들다. 학교에 가야하는 셋째를 깨운다, 그 애가 10분만! 하는 소리에 알람을 10분 후로 조정하고 나 역시 그 달콤한 10분을 즐긴다. 다시 알람이 울리고, 한 번의 10분을 더 반복한다. 다시 알람이 울리자 다시 셋째를 흔들어 깨워 욕실로 밀어넣은 다음 주방으로 달려가 식사를 준비하고, 막내도 마저 깨우고 식탁을 차린다. 두 아이 밥 먹여 각자 학교와 학원으로 보내고, 서둘러 설거지를 마친다. 어제 여러가지 일에 휘둘려 내 시간을 빼지 못했다. 오늘은 꼭 도서관을 가기로 결심한다. 세수를 하고 간단히 화장을 한다. 책상 위에 펼쳐둔 노트북을 챙기다 필요한 메일 ‘하나만’ 체크하려고 책상 앞에 앉는다.이럴 때 단호히 물리쳐야 하는건데, 엉덩이를 붙이고 의자에 앉는 것이 문제다. 마음 속에선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합리화를 한다. 메일을 체크하다 보니 올 10월 베니스 국제 합창제에 나가는 수정구 여성합창단의 유럽 여행 견적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견적을 빨리 보내달라는 메일을 쓴다. 밤새 몇 건 들어와 있는 모닝페이지 3기 모집 지원서를 읽는다. 일일히 마음을 담아 짧게 나마 답장을 보낸다. 다른 일들도 눈에 잡힌다. 이미 손에 잡힌 일이니 ‘잠깐, 빨리’ 처리하기로 ‘마음 먹는다’. 벌써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이제 가방을 챙긴다. 오늘은 그동안 시작하다 끝을 맺지 못한 글 세 편을 완성하는 것이 미션이다. 책은 남은 시간에 읽기로 한다. 가방에서 어제 넣어둔 ‘라즈니쉬 자서선’을 꺼낸다. 그런데 이게 왠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책상에 올려놓는 순간, 책이 반으로 열리더니 ‘섹스 구루’라는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라즈니쉬가 프리섹스를 주장한다더니 깨달은 사람은 섹스를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잠시 읽는다. 역시 그답다. 절대 천박한 주장이 아니다. 읽다보니 그의 성 담론을 담고 있는 책이 소개되어 있다. ‘성으로부터 초의식으로’(From Sex to Superconsicousness)라는 책이다. 구입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잊기 전에 카트 안에 넣어두려고 ‘예스 24’의 사이트로 간다. 한글 제목으로 검색하니 뜨지 않는다. 아직 번역이 안되어 있나보다. ‘오쇼 라즈니쉬’로 검색해 본다. 역시 없다. 그런데 번역된 그의 책이 수 십권이 넘는 것에 놀란다. 하기는 그의 이름으로 400 여권의 책이 나와있다니 무리도 아니겠다. ‘라즈니쉬 자서전’을 누른다. 이 참에 책 소개와 그 밑에 달린 독자후기 두 편을 읽어본다. 인용된 몇 구절이 인상적이어서 내가 가진 책에서 직접 찾아본다. 찾아보는 게 잘못이지, 다시 주변의 몇 페이지를 읽고야 만다. 그런데 재미있으니 멈추지 못하고 좀 더 읽는다. 다른 급한 것이 있을 때일수록 읽는 재미는 더 커진다. 책이 작아서 페이지까지 잘 넘어가니 그 맛에 몇 장을 더, 단숨에 읽는다. ‘아, 이러면 안되지’ 자각하고 책 읽기를 중단한다. 아까 찾던 책의 번역본이 없으니 영어 책으로라도 검색을 해서 카트에 넣는다. 저자 소개에 도움이 될까 하고 영어로 된 책의 설명을 클릭해 잠깐 읽는다. 그리고 페이지를 닫으려고 하는 순간, 그 밑에 여러 물건이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는 ‘추천 상품’이 눈에 띈다. 상품 중에 ‘죽기 전에 꼭 보아야할 위대한 영화 Vol.1’ 이 눈길을 잡는다. 누른다. ‘안달루시아의 개’, ‘윈체스터 73’과 같은 20개의 영화 속에 한국영화 ‘공공의 적’이 들어있다. '공공의 적'은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못본 영화다. 클릭한다. 그 순간 전화가 온다. 뉴질랜드 항공 예약 문제다. 사장과 직접 통화해 약속한대로 좌석을 정확하게 확보해야 한다고 여러 번 못을 박는다. 그리고 그 동안 유보석으로 잡아두었던 세 명에게 전화로 다시 확인, 가기 어렵겠다는 말을 듣고 최종 명단에서 지운다. 그 대신 새로 확정된 사람들의 이름을 채운 새 명단을 작성하여 여행사에 바로 보내준다. 제 때 처리하지 않는 일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을 다투는 항공예약과 같은 일은 더욱 그렇다. 업무 전화가 하나 더 걸려온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시계를 본다. 벌써 12시가 넘었다. 도서관에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그냥 주저앉는다. 오늘도 ‘도서관에 가느니, 이동 시간을 줄이고 그냥 집에서 작업하자’는 결론을 내린다.
결국 그렇게 하루가 순식간에 흘러갔다. 방해들을 수없이 허락하면서(아니 끌어 들이면서) 아침에 우선순위로 스케줄러에 올린 일들은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그 일들은 밀려서 내일도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나를 압박할 것이다. 아, 저녁 잠자리에 들면서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것은, 그리고 잠은 늘 불충분하면서도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그것은 번번히 우선순위를 무시하고 방해를 허락하는 나의 태도, 이런 습관에 있다. ‘누구나 비슷할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해 보지만, 내 경우는 정도가 ‘좀’, 아니 ‘상당히’ 심하다.
이렇게 ‘방해 노트’를 적고 보니 예상한대로 내 문제가 더 분명하게 보인다. 무슨 수를 써야지 안되겠다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이 작은 습관이 내 목표를 위협하고, 내 성공의 발목을 잡는다. 진정 원하는 일들로 하루를 채우고 싶은 내 바램은 이렇게 작은 방해들로, 너무나 쉽게, 어처구니 없이 공중분해되는 것이다. 아이고, 하루를 탐닉할 여유가 다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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