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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7일 07시 38분 등록

고양이.jpg


제주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고양이 마을로 알려진 김녕미로공원이었다. 딸아이의 선택이었다. 아이의 선택 포인트는 오로지 고양이’. 아이 입장에선 고양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을 터였다. 문제는 엄마인 나였다. 하필이면 미로공원이라니.

 

언제부터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방향감각이 떨어져선지, 공간지각능력의 문제인지 길을 기억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초행길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가끔은 몇 차례나 오가던 길도 갑자기 가물가물해지며 머리가 하얗게 되곤 했다. 최단거리, 최고효율의 루트를 능숙하게 찾아내 폼 나게 안내하고 싶은 욕심과는 달리 길 위에만 서면 유독 더 느리고 한심하게 허둥대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도무지 편해지지가 않았다.

 

이런 나였으니 미로라는 말에 저항이 확 올라왔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가 가슴의 소리에 따라 처음 스스로 선택한 여행지가 아닌가? 게다가 미로라고 해봐야 공원’, 그러니까 가상현실일 뿐인데 예민하게 굴 일이 뭐가 있는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다보니 한편으로는 묘한 기대감도 차올랐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도착했던 제주에서 지난 사흘 펼쳐진 시간들이 마치 나를 위해 정교하게 디자인된 치유프로그램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혹시 알아? 여전히 막막하기만 한 삶의 미로에서 벗어나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라도 건네받게 될지. 버스 창문에 비친 표정이 조금은 편안해진 듯 했다.

 

헤매면 헤맬수록 건강해지는 향나무 미로! 충분히 헤매고 건강해지세요!’ 공원 입구에서 건네받은 안내문의 첫 장에서 이 문구를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헤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음 장을 넘기니 미로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 소개되어 있었다. ‘일행과 10초쯤 간격을 두고 출발하세요. 지도를 보지 말고 끌리는 대로 길을 가다 먼저 종을 치는 사람이 이기는 내기를 즐겨 보세요!’

 

물론 여기까지 와서 이기고 싶은 마음 따위는 1도 없었다. 빨리 탈출해봐야 다시 또 들어오는 것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없는 공간에서 굳이 승부에 집착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아니 아예 미로라는 것마저 잊고 정말 향나무 숲 산책한다 생각하기로 했다. 어깨가 스칠 때마다 조금 더 진하게 풍겨오는 나무향기를 의식하며, 발가락부터 뒷꿈치가 땅에 닫는 느낌의 변화에 집중하며 명상하듯 느리고 고요한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


딸아이는 이미 미로의 첫 갈림길에 누워있는 고양이를 하염없이 바라보느라 여기가 미로임을 정말로 잊은 것처럼 보였다. 아이에게는 사랑스런 고양이를 가까이서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듯했다그렇지, 여기서 정말 이기는 사람들은 더 빨리 출구를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미로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일지도 몰라. 어쩌면 내가 그토록 버거워하는 삶이라는 미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1997년 미로공원이 개장한 지 20년이 넘어가도록 그 어느 누구도 미로에 영원히 갇힌 사람이 없는 것처럼 우리 역시 아무리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영원히 삶 안에 갇히는 일을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미로공원에서든, 삶에서든 우리들의 모든 선택은 결국 같은 결과(미로에서는 탈출, 삶에서는 죽음)로 귀결된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더 유리한 선택을 저울질하느라 흘려보낸 무수한 시간과 에너지는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한 치의 낭비도 없는 최고 효율로 빨리 미로를 탈출하는 것?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길을 가늠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더 '효율'적으로 죽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희생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단 말인가?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다. 어떤 길이든 더 끌리는 쪽으로 가 그 길을 흠뻑 경험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은가? 이제는 더 이상 길 위에서 쫄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곳이 아닌 미로에서 이런 평화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삶의 미로에서도 이럴 수만 있다면 삶이 한결, 아니 완전히 달라질 수 있겠구나! 이거였구나! 나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그 누군가는 바로 이것을 깨우쳐주기 위해 미로공원으로 나를 데려온 것이구나! 이 엄청난 것을 미로 공원에 들어온 지 10분도 안 되어 깨달아버리다니! 바로 그때였다. 땡땡땡땡~! 들어서 첫 번째 종이 울렸다. 누군가 출구를 찾았다는 신호였다. 머리로 이해한 깨달음과는 전혀 다른 몸의 반응이 시작된 것도 그 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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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엄마에겐 미로, 아이에겐 그저 고양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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