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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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마치 웃는 듯 거칠게 호흡하고 있다.
입사 후
3년, 나는 첫 진급심사에서 누락됐다. 수치스러웠다. 업무는 지지부진했고 반복되는 일과는 지루했다. 최선을 다하지도 그렇다고
형편없지도 않았다. 삶은 나를 떨리게 하지 않았다. 조직의
사다리 맨 끝을 로망처럼 우러러 봤지만 첫 관문부터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구석에 내팽개쳐진 내 목발처럼
어두운 시간들이 거듭 밀려왔다. 세상과 맞짱 뜨리라던 호기 넘쳤던 신입사원은 온데간데없고 거북목을 한
월급쟁이가 되어 갔고 매력 없는 사람이 되어 갔다.
나에겐 꿈이 있었노라 외치는 1그램의 회심이 내 안에 살아있음을 알았다. 나는 3일간
단식을 하며 그 1그램의 부피를 찾으려 필사적으로 내면을 헤맸다. 어제의
나와는 이제 영원히 단절하고 말리라는 의식(ritual)처럼 곡기를 끊었다. 절실함만 남겨두고 일상의 모든 습관으로부터 나를 단절 시켰다. 그리고는
오로지 나에 대해서만 고민하기 시작한다. 나의 맨 아래, 그
내면의 고요함이 흘러 넘치는 지점에서 앞으로 10년을 그렸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지점으로 나를 미리 데려다 놓고 지난 10년간을 마치 나에게
벌어진 일처럼 기쁜 마음으로 회상했다. 나에게 일어날 그러나 이미 일어난 숨 막히는 광경 10가지를 뽑아 들고 생생한 기록으로 남겼다.
난 마치 웃는 듯 거칠게 호흡하고 있다. 기도를 하고 또 했다. 나는 간절했었고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의사는 다소 놀랐지만 내 왼발의 빠른 회복에 자신의 공인 듯 이내 우쭐했다.
정상에서, 내 옷은 눈이 덕지덕지 묻어 있고 난 마치 웃는 듯 거칠게 호흡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게 벌써 8년 전 이었구나. 에베레스트 pre몬순기, 4월이었다.
자신을 가두었던 사람은 나였다. 발목은
부러졌지만 여전히 내 등뼈는 곧추세워져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발목은 산산이 조각났으나 내 단단한
허벅지는 아직 부러지지 않았음을 알지 못했다. 매일의 오늘을 부러진 발목으로만 살았었다. 단 하루를 살아도 나답게 살아보려 했는가. 나에게 남아있는 날 중
가장 젊은 날, 바로 오늘, 그것을 시작하리라. 내 꿈을 세상에 내놓고 세상과 멋지게 한판 붙어 보리라.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그들 사이에서 내 안에 타고 있던 불씨를 드러낼 순 없었다. 조건도 되지 않고 쥐뿔도 없는 주제지만 가슴에 삭혀놓은 꿈이 몽글몽글 올라와 작은 불씨를 맞닥뜨린 떨리던 그
순간을 나는 기억한다. 흰 산, 손에 땀을 닦아가며 자세를
고쳐 앉아 뚫어져라 쳐다보던 만년설, 내 가슴을 뛰게 했던 그들의 숨소리, 눈 감으면 들리던 청량한 바람소리, 높은 준봉들을 거느리듯 서 있는
정상 봉우리들의 의젓함. 뼈가 으스러져도 차마 잊지 못했던 그들을 볼 마음에 내 속은 타 들어 가고
있었다.
대상지가 어디든 상관없었다. 어디든
내 한계를 넘어서는 그곳이 에베레스트가 될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내 존재를 시험할 그곳은 진짜 에베레스트가
되었지만 만년설 덮인 흰 산 어디였든지 간에 그 곳이 내 마음 속 에베레스트였을 테다. 누군가의 가슴
속에 어떤 형태로든 극복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에베레스트고 넘어서야 할 무엇인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에베레스트다. 가리라. 아주 오랫동안 나는 그곳을 꿈꾸지 않았는가. ‘불같은 화살이 내 핏줄을 타고 지나가는 것 같은’ 당황과 흥분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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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럽 Mt. Elbrus 5,642m, 아시아 Mt. everest 8,848m, 북미 Mt. Mckinley 6,194m, 남미 Mt. Aconcagua 6,962m, 아프리카 Mt. Kilimanjaro 5,895m, 오세아니아 Mt. Kalstents 4,889m 이 6대륙에 걸친 최고봉 산들이다. 여기에 남극 Mt. Vinson Massif 4,897m 를 더하면 7대륙 최고봉이고 남극점, 북극점, 에베레스트 정상은 지구의 3대 극지점이다. 7대륙 최고봉과 3대 극지점에 더해 히말라야 14좌 (8,000m 이상 높이의 14개 봉우리)까지 이 모든 걸 오른 사람은 산악 그랜드슬램에 등극한다.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사람은 한국의 故 박영석 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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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에베레스트(Mt. Everest, 8,848m), 2,500km에 달하는 히말라야 산맥 중 쿰부 히말라야 지역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네팔 사람들은 사가르마타(Sagarmate, 세계의 이마), 티벳 사람들은 초모룽마(Chomorungma, 대지의 여신)라 부른다.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은 1849년부터 영국이 식민지 인도에서 히말라야 산들의 측량 사업을 시작하며 처음엔 ‘peak b’로 명명했다가 1850년에 ‘peak h’ 이후 ‘peak 15’로 이름을 바꾸어 불렀다. 1852년 이 산은 해발 8,840m로 측량되어 세계 최고봉임에 증명되었고 1865년, 당시 측량 사업에 평생을 바친 영국인 조지 에베레스트 경의 이름을 따 산의 이름으로 명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