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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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일리톨 껌과 달콤한 인생]
오늘은 껌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껌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풍선껌? 풍선껌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아직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풍선을 좋아하고 놀이를 좋아하고 마냥 자유를 만끽하며 마음껏 뛰어다니고 싶어하는 동심을 보유한 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입냄새 제거? 이렇게 대답한 사람은 본인의 입냄새를 감추기 위해 주로 껌을 애용하는 아픔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또는 한창 연애의 심연으로 빠져들어가기 직전의 연인들이 불의의 일을 대비하기 위해 임시 입냄새 제거용의 목적으로 사용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요즘에는 껌을 대신할 각종 구취 제거용 제품들이 많이 나와있긴 하지만. 그 외 입이 심심할 때, 놀이 대용(‘짝짝’ 소리내며 씹기), 임시 접착제 대용, 남 골려줄 때(의자에 붙여놓기)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를 것이다.
나의 경우 아무래도 돈관리 연구원이란 중요 직책을 맡고 있다보니 자연스럽게도 ‘껌값’이란 단어가 떠오르게 된다. 예전에 껌은 ‘껌값’이란 표현을 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것 같다. 소위 ‘껌값’이란 그냥 별다른 생각없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의 액수를 뜻하던 말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썼었던 단어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껌값’이란 표현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모두들 그 이유를 알 것이다. 소위 어떤 껌의 등장으로 인해 ‘껌값’이 진정한 ‘껌값’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 어떤 껌은 우리 국내 마케팅 역사에도 막중한 영향을 미쳤다. 더 이상 껌을 누구나 쉽게 또는 우습게 볼 수 있었던 천민의 자리에서, 그래도 어느 정도 대우를 해 줄 수 밖에 없는 중산층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자일리톨 껌>이다. '제과시장 매출 최고', '단기간 누적매출 최고' 등 신기록을 세운 껌이자, 구취제거의 기능을 넘어 충치예방까지 그 기능의 영역을 넓힌 껌이 바로 <자일리톨 껌>이다. 또한 CF에서 껌 모델로는 껌과 상극이라 알려진 치과의사들을 동원하고, 심지어는 카피 멘트로 ‘자기 전에 씹으세요’라니? 처음엔 귀를 의심했었다. 껌 팔아 먹으려고 별의 별 소리를 다하는구나.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맞는 이야기였다. 자기 전에 씹으면 좋은 껌이 바로 자일리톨 껌이었다.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 메커니즘을 간단히 살펴보자.
이 껌과 다른 껌들과의 차이는 감미료인 ‘자일리톨’에 있다. 이것은 청량감을 주는 천연 소재의 감미료로 주로 자작나무, 떡갈나무 등에서 추출하고 있다. 자기 전에 양치를 하고 자일리톨 껌을 씹은 후 잠자리에 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 입안에는 각종 균들이 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해로운 것은 역시 충치를 일으키는 뮤탄스균(S.Mutans)이다. 이 놈은 입안에 남아 있는 당분을 먹고 활동하는 균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양치를 안하는 환경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고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충치를 일으킨다. 즉 치아의 표면을 구성하고 있는 세균막인 프라그를 다 깨뜨리고 치아로 침입해 들어가 썩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양치를 했다 하더라도 입 안에는 일부의 뮤탄스균이 자리를 잡고 있다. 다만 치약의 잔여효과에 의해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때 감미료인 자일리톨을 입안에 넣어 주게 되면 이 뮤탄스균은 좋아서 떼굴떼굴 구르는 정도가 된다. 자일리톨의 당도는 설탕과 비슷할 정도로 달기 때문에 이 균들에게는 마치 꿀을 준 것과 같다. 뮤탄스 균들은 입안에 투여된 자일리톨을 맘껏 먹으며 좋아라 한다.
하지만 뮤탄스균들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자일리톨은 결코 충치균들이 소화시킬 수 없는 분자구조를 가지고 있다. 고로 맛있게 먹긴 하지만 소화가 안 되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몸 밖으로 배출되고 만다. 배출된 자일리톨을 다시 다른 뮤탄스균이 먹게 된다. 하지만 역시나 다시 소화되지 못한 채 그냥 배출된다. 계속 이런 식이 반복된다. 맜있고, 양도 풍부한 식사가 여기 저기 널려 있는데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 히동구(히딩크)처럼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I'm still hungry.)'다.^^;; 결국 한 놈 한 놈씩 쓰러지고 만다. 이유가 너무 슬프지 않은가? 배고픔에 굶주려서 라니. 손만 뻗으면 먹을 게 널렸는데, 그것도 그 놈들이 제일 좋아하는 감미료인데. 달달하니 먹기만 하면 힘을 얻어 몇날 며칠이고 입안을 수십바퀴 달려도 끄떡없을 정도가 될 터인데 말이다.
뮤탄스균의 어리석은 죽음은 우리 사회 많은 군상들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도 동료 뮤탄스균이 쓰러져 가는 와중에도 다른 놈들은 계속하여 죽을 때까지 자일리톨을 허겁지겁 먹고 있을 것이다. 왜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이 여기 먹을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죽어만가는지 그 이유조차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머리 속엔 온통 ‘어서 먹고 힘 내자’란 의식만 가득할 것이다.
여기 하루하루를 죽이면서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신념없이, 뚜렷한 가치관 없이, 삶의 목적 없이, 비전 없이, 꿈 없이 그리고 왜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이유조차 모른 채 뮤탄스균들의 죽음마냥 하루를 죽여가며 살아가는 수 많은 인간들이 있다. 단순히 눈 앞에 보이는, 사회가 정치ㆍ구조적으로 만들어 놓은 미끼를 덥썩 물고 히히낙낙하며 즐거워 하는 가엾은 족속들이 우리 현실엔 많다. 나 또한 그랬다. 하루를 잘 죽이면 만족한 삶이었다. 아니 하루를 잘 낭비하면 내일도 잘 낭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살아왔던 게 사실이다. 내 삶은 영원의 삶을 살 수 있을거라 착각하는 하루살이의 삶과 다름없었다.
우리는 하루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죽여야만 한다. 그리고 새로 태어나야만 한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의 저자 구본형은 말한다.
‘죽지 않고 새로워지는 것은 없다. 죽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새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
오늘과 같은 내일을 맞이하는 삶은 가치없는 인생이다. 오늘의 나를 죽이고 다시 새로 태어난 나로서 내일을, 다시 신선한 하루를 맛볼 수 있는 삶은 진정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달콤한 인생이다. 인생의 달콤함은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새로운 달콤함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에 있는 것이다. 다시 새벽이 밝아온다. 그 새벽과 함께 옅은 달콤함이 바람에 실려 날아온다. 음.. 온 몸의 감각들이 깨어난다. 새로움, 도전, 즐거움, 삶의 기쁨.... 오감으로 느껴지는 달콤한 인생이다.
IP *.178.33.220
오늘은 껌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껌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풍선껌? 풍선껌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아직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풍선을 좋아하고 놀이를 좋아하고 마냥 자유를 만끽하며 마음껏 뛰어다니고 싶어하는 동심을 보유한 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입냄새 제거? 이렇게 대답한 사람은 본인의 입냄새를 감추기 위해 주로 껌을 애용하는 아픔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또는 한창 연애의 심연으로 빠져들어가기 직전의 연인들이 불의의 일을 대비하기 위해 임시 입냄새 제거용의 목적으로 사용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요즘에는 껌을 대신할 각종 구취 제거용 제품들이 많이 나와있긴 하지만. 그 외 입이 심심할 때, 놀이 대용(‘짝짝’ 소리내며 씹기), 임시 접착제 대용, 남 골려줄 때(의자에 붙여놓기)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를 것이다.
나의 경우 아무래도 돈관리 연구원이란 중요 직책을 맡고 있다보니 자연스럽게도 ‘껌값’이란 단어가 떠오르게 된다. 예전에 껌은 ‘껌값’이란 표현을 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것 같다. 소위 ‘껌값’이란 그냥 별다른 생각없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의 액수를 뜻하던 말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썼었던 단어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껌값’이란 표현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모두들 그 이유를 알 것이다. 소위 어떤 껌의 등장으로 인해 ‘껌값’이 진정한 ‘껌값’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 어떤 껌은 우리 국내 마케팅 역사에도 막중한 영향을 미쳤다. 더 이상 껌을 누구나 쉽게 또는 우습게 볼 수 있었던 천민의 자리에서, 그래도 어느 정도 대우를 해 줄 수 밖에 없는 중산층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자일리톨 껌>이다. '제과시장 매출 최고', '단기간 누적매출 최고' 등 신기록을 세운 껌이자, 구취제거의 기능을 넘어 충치예방까지 그 기능의 영역을 넓힌 껌이 바로 <자일리톨 껌>이다. 또한 CF에서 껌 모델로는 껌과 상극이라 알려진 치과의사들을 동원하고, 심지어는 카피 멘트로 ‘자기 전에 씹으세요’라니? 처음엔 귀를 의심했었다. 껌 팔아 먹으려고 별의 별 소리를 다하는구나.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맞는 이야기였다. 자기 전에 씹으면 좋은 껌이 바로 자일리톨 껌이었다.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 메커니즘을 간단히 살펴보자.
이 껌과 다른 껌들과의 차이는 감미료인 ‘자일리톨’에 있다. 이것은 청량감을 주는 천연 소재의 감미료로 주로 자작나무, 떡갈나무 등에서 추출하고 있다. 자기 전에 양치를 하고 자일리톨 껌을 씹은 후 잠자리에 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 입안에는 각종 균들이 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해로운 것은 역시 충치를 일으키는 뮤탄스균(S.Mutans)이다. 이 놈은 입안에 남아 있는 당분을 먹고 활동하는 균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양치를 안하는 환경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고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충치를 일으킨다. 즉 치아의 표면을 구성하고 있는 세균막인 프라그를 다 깨뜨리고 치아로 침입해 들어가 썩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양치를 했다 하더라도 입 안에는 일부의 뮤탄스균이 자리를 잡고 있다. 다만 치약의 잔여효과에 의해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때 감미료인 자일리톨을 입안에 넣어 주게 되면 이 뮤탄스균은 좋아서 떼굴떼굴 구르는 정도가 된다. 자일리톨의 당도는 설탕과 비슷할 정도로 달기 때문에 이 균들에게는 마치 꿀을 준 것과 같다. 뮤탄스 균들은 입안에 투여된 자일리톨을 맘껏 먹으며 좋아라 한다.
하지만 뮤탄스균들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자일리톨은 결코 충치균들이 소화시킬 수 없는 분자구조를 가지고 있다. 고로 맛있게 먹긴 하지만 소화가 안 되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몸 밖으로 배출되고 만다. 배출된 자일리톨을 다시 다른 뮤탄스균이 먹게 된다. 하지만 역시나 다시 소화되지 못한 채 그냥 배출된다. 계속 이런 식이 반복된다. 맜있고, 양도 풍부한 식사가 여기 저기 널려 있는데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 히동구(히딩크)처럼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I'm still hungry.)'다.^^;; 결국 한 놈 한 놈씩 쓰러지고 만다. 이유가 너무 슬프지 않은가? 배고픔에 굶주려서 라니. 손만 뻗으면 먹을 게 널렸는데, 그것도 그 놈들이 제일 좋아하는 감미료인데. 달달하니 먹기만 하면 힘을 얻어 몇날 며칠이고 입안을 수십바퀴 달려도 끄떡없을 정도가 될 터인데 말이다.
뮤탄스균의 어리석은 죽음은 우리 사회 많은 군상들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도 동료 뮤탄스균이 쓰러져 가는 와중에도 다른 놈들은 계속하여 죽을 때까지 자일리톨을 허겁지겁 먹고 있을 것이다. 왜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이 여기 먹을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죽어만가는지 그 이유조차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머리 속엔 온통 ‘어서 먹고 힘 내자’란 의식만 가득할 것이다.
여기 하루하루를 죽이면서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신념없이, 뚜렷한 가치관 없이, 삶의 목적 없이, 비전 없이, 꿈 없이 그리고 왜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이유조차 모른 채 뮤탄스균들의 죽음마냥 하루를 죽여가며 살아가는 수 많은 인간들이 있다. 단순히 눈 앞에 보이는, 사회가 정치ㆍ구조적으로 만들어 놓은 미끼를 덥썩 물고 히히낙낙하며 즐거워 하는 가엾은 족속들이 우리 현실엔 많다. 나 또한 그랬다. 하루를 잘 죽이면 만족한 삶이었다. 아니 하루를 잘 낭비하면 내일도 잘 낭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살아왔던 게 사실이다. 내 삶은 영원의 삶을 살 수 있을거라 착각하는 하루살이의 삶과 다름없었다.
우리는 하루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죽여야만 한다. 그리고 새로 태어나야만 한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의 저자 구본형은 말한다.
‘죽지 않고 새로워지는 것은 없다. 죽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새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
오늘과 같은 내일을 맞이하는 삶은 가치없는 인생이다. 오늘의 나를 죽이고 다시 새로 태어난 나로서 내일을, 다시 신선한 하루를 맛볼 수 있는 삶은 진정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달콤한 인생이다. 인생의 달콤함은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새로운 달콤함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에 있는 것이다. 다시 새벽이 밝아온다. 그 새벽과 함께 옅은 달콤함이 바람에 실려 날아온다. 음.. 온 몸의 감각들이 깨어난다. 새로움, 도전, 즐거움, 삶의 기쁨.... 오감으로 느껴지는 달콤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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