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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21일 00시 09분 등록
비슷한 취향이 있으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갈매기들 덕택에 데굴데굴하다 글을 써 봤는데 정산님 글과 일맥상통하기도 해서 올립니다. 요즘 제가 몰입하고 있는 짓인데 이게 은근슬쩍 중독성에 재미가 보통이 아니네요. 허접한 글이라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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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일 복면을 쓰는 여자

그러니까 이것에 얼마만큼 중독이 되었는가 하면 걸핏하면 날씨가 어떨지 하늘을 수시로 체크한다던가 창 밖으로 양재천을 걷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를 가늠하며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까 말까를 고민한다. 또 무릎 스트레칭을 일단 해 두자며 하체 근육을 이완시키는 운동을 하다간 그래 나가자! 하는 결심이 서면 5분내로 져지를 입고 복면을 쓰고 현관을 박차고 밖으로 나선다.

처음엔 그저 가볍겠다는 생각으로 티타늄으로 구성을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 한 일이다. 당시엔 경제 관념이 희박했는지라 그저 가볍고 편안하게 탈 수 있는 녀석으로 선택했는데 사실 지금 상황에서는 신께서 납시다가 여기가 아닌가비여 하며 발길을 돌리셨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탁월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컸음이 틀림없다.

무언가에 몰입해 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좋아하게 되면 무리를 해서라도 한번 잘해보고 싶어진다. 그 대상이 사람이거나 사물이건 쏟아 붓게 되는 애정의 농도는 그리 다르지 않는다는 한 표 던진다. 물론 그 결과에도 지가 좋아서 한 것이니 좋거나 나쁘거나 군소리는 나올 수 없다. 지금은 그저 한 번 씽긋 웃게 되지만 따끔따끔했던 지난 세월에게도 “아 그래, 그 땐 그랬었지”……썩은 미소로 면구스러움을 대신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제는 아침부터 비가 왔고 점심에도 저녁 나절까지도 비가 내렸다. 계속 밖을 내다보며 오늘은 글렀구나 포기하고 있는 차에 호랑이 시집간다는 날처럼 갑자기 날이 개고 있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온 몸은 저를 내보내 달라는 사인을 보내오고 허파엔 바람이 쉴 새 없이 들락날락 하는 것이다. 나는 유혹에 약한 사람이다. 게다가 한 시간 거리에는 맛 있는 공짜 저녁도 기다리고 있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래서 복면을 뒤집어 쓰고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길은 만만치가 않다. 처음 언덕을 내려가는 길에 바리케이트가 세워져 있었고 바닥은 스키장처럼 미끄럽다. 화려한 자빠링의 추억이 있는지라 그저 영광은 한 번으로 족하다는 겸손이 내 몸 구석구석에 배어있다. 그러나 좀 더 진행하기로 했다. 중간에 너구리가 한 마리가 광선을 뿜으며 레이져를 쏘고 있었고 어제 밤에 보았던 참게라는 녀석들도 찾고 싶기도 했다. 비 오는 줄 알았는지 전 날 밤에는 게들이 너무 많아 속도를 내지 못했었다.

바리케이트가 계속 나오고 있다. 그리고 떠내려 갈 것 같은 물 웅덩이들이 여기저기서 망설이게 한다. 내려서 끌바를 할까 하다 어이쿠 하고 다시 올라탔다. 거의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는 상황이다. 냇가를 건너는 기분으로 자전거에 올라타 넘어 가본다. 그러나 앞에서 나오는 길은 계속해서 진입금지 바리케이트다. 맛 있는 저녁은 포기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사인은 사실 아까부터 오고 있었다. 내려서 걸어 보니 자칫하다 또 한 번의 끝내주는 자빠링으로 지난 번 수상 순위를 갱신하리라는 느낌이 작렬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삼분의 일 지점에서 방향을 뒤로 틀었다. 그래도 집에서 나와 어느 정도 달린 셈이다. 많이 달리면 어떻고 적게 달리면 어떠한가. 그저 오늘도 복면을 쓰고 거리를 나섰고, 바람과 만나고 부실한 두 다리로 밟은 만큼 펄떡이는 삶과 만났다. 요즘 내가 빠진 사랑이 자전거라고 한다면 바람난 여자는 이렇게 매일 온갖 수를 써서 그와 만나고자 애쓴다. 그러나 나는 게걸스런 사람이 아니다. 잠깐의 만남이라도 서로에게 교감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노라는 부류이다. 그렇다. 비록 오늘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렇게 내 사랑을 만나고 돌아왔다.

이렇게 자전거에 폭 빠지게 된 계기는 사실 별게 아니다. 그냥 걷는 거보다 폼 나 보였고 밀폐된 공간에서 하는 자동차 운전보다는 좀 더 자연 구석구석에 다가갈 수 있어 보였고 또 무엇보다도 이미 내가 잘 하는 것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생활 자전거랍시고 동네 수퍼 갈 때나 또는 전철 역 앞까지 자전거로 가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에 별 부담 없이 다가온 것도 한 이유이다.

이번에 좀 달랐다면 자전거 사양이 MTB로 바뀌었고 헬멧에 쫄바지를 갖춰 입고 대낮에 떼잔차질을 하며 차도로 다닌다는 점이 좀 다르다. 아 그리고 수퍼 갈 때 맘대로 자전거를 가지고 가지 못한다. 주차도 대충 밖에 휙 던져 놓는 것이 아니라 좁디 좁은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는 것들을 다른 점으로 들 수 있겠다. 전 세계 자전거인들에게 있어 공통점은 그것은 거반 애인에 버금간다. 덕택에 냥이와 잔차라는 애인 둘과 비비적거리며 이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맛은 사실 끝내준다는 한 마디로도 표현 할 수 있고 좀 구라를 풀자면 책 한 권도 나올 수 있을 만큼 그 세계가 심오한 듯하다. 너무 길어지면 지루하니 이번엔 간단하게 복장의 어느 한 부분, 것도 내가 아주 맘에 드는 복면에 관한 이야기로 오늘은 이야기를 잠깐 하고 끝낼까 한다.

어느 세계에나 전문 용어가 있듯 이쪽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전거를 탈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장비에는 헬멧과 고글등이 있겠지만 복면(버프)또한 필수이다. 자외선 차단이란 목적도 있지만 달리다 보면 날벌레에 먼지, 심지어는 거미줄까지도 얼굴로 가까이 와선 친분을 맺고 싶어한다. 단백질이 부족한 이들은 그냥 입을 벌리고 잡수시면 되겄지만 이 몸은 충분히 영양이 넘치는 관계로 극구 사양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복면의 매력에는 또 하나의 아주 다른 즐거움이 있다. 몸이야 그렇다 치지만 헬멧에 스포츠 고글을 걸치고 복면을 뒤집어 쓰면 내가 봐도 아주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리는 것이 그것이다. 일단 그 주인이 늙었는지 젊었는지 구별이 안 된다. 또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지난번 완전군장을 하고 오피스텔 현관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나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이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마치 투명인간이 된 기분에 나도 모르게 휘파람이 나올 정도였다.

프레임이 한 16정도 되니 여자치고는 조금 큰 편이다. 까만 쫄바지를 입고 복면을 쓴 우량녀가 엘리베이터에서 자전거를 가지고 내리니 옆 사람이 이상하다 힐끗 거리는 게 당연할 터인데 도대체 뭐가 즐거운지 이 여자는 복면 속에서 연신 싱글거린다. 복면 속 그것의 연식이 오래되다 보니 다른 건 몰라도 착각의 자유만큼은 즐기자는 패턴으로 갔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한강에 나가는 날은 더욱 그렇다. 가끔 오밤중에 한 여름 밤의 강변을 질주하다 보면 증상이 더 심각해진다. 이쪽 세계에는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듯 자전거 동호회를 곁눈질 해도 그렇고 한강을 나가봐도 푹 빠져서 타는 이들은 대부분 남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때때로 매우 친절하다. 어느 세계든지 매너라는 게 있는데 특히 여성 라이더에게는 아주 신사적인 것이다.

나 역시 매너 하면 빠지지 않는 사람으로 뒤에서 추월하겠다는 신호가 오면 속도를 줄이며 먼저 가라는 사인을 보내거나 라이트는 반드시 하향으로 조절하고 보행자가 많으면 내려서 끌바를 하고 가급적 딸랑이는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게 나름 조신하게 타는 데 가끔 추월하는 남자분들은 지나가면서 꼭 점잖게 인사말을 건넨다. 흔히 말하는 작업이 아니라 먼저 지나가겠다는 표현인데 아주 매너가 젠틀 그 자체다. 왜 같은 말이라도 아가 틀리고 어가 틀리지 않는가?

어떤 경우에는 추월해 간 일행들이 다리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꼭 뒤를 돌아 천천히 달려오는 나를 보는 경우가 있다. 가끔 아주 어린 남성들은 엄지 손가락을 위로 올리기도 한다. 아마 멋지다는 표현인 듯하다. 그럴 때면 복면 속에서는 혼자 킥킥대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무릎은 다음 그늘이 나올 때까지 혹사를 당해야 한다. 라이더에게 물은 생명의 원천이고 그것을 공급해 주기 위해선 복면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목이 마르지만 그 곳은 내가 쉴 곳이 못 된다.

그래서 그런지 요 며칠 무릎이 좀 쑤셨다. 언덕은 당분간 삼가하겠노라, 기어도 가볍게 슬슬 타고 있지만 조금만 괜찮아지면 그냥 타고 나가고 싶어 안달이다. 내가 이 맛을 이제 알아서 다행이지 어렸을 때 알았다면 어찌할 뻔 했는가? 억울하지만 이 쪽 세계가 남성들이 넘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갑자기 어느 책 제목이 떠오르는 데,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 알았더라면..이라는 것이었나.?

자전거는 아주 솔직하다. 페달을 밟은 만큼의 희열, 삶이 아주 리얼하게 생생하게 다가온다. 가만 보면 좋은 것을 설명하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다. 싫은 일은 이러쿵 저러쿵 금방 읊어대는 데 왜 그렇게 자전거가 좋으냐는 질문을 받으면 말보다 먼저 씨익 웃게 된다.
“그냥, 다 좋아요..”

아마도 복면은 쉽게 벗기 힘들 것이다. 생얼에 후딱 뒤집어 쓰고 나가니 화장할 필요도 없고 그러면서도 요렇게 조렇게 하루에 한 번씩 인생을 신나게 바꾸어버리니 이토록 재미있으랴 싶다. 귀차니스트인 싱글에겐 아주 딱이다. 결국 오늘도 일기 예보와 하늘만 속절없이 바라보다 포기를 하고 헬스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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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7.21 14:18:59 *.97.37.242
자전거를 많이 사랑하시는군요.

자빠링, 너구리, 참게, 끌바...ㅎㅎ
모두 첨 듣는 용어인데, 그동안 새로운 용어가 생긴건지, 아님 향인선배의 창작품인지... 여하튼 참 재밌습니다.

자전거 도로에서 인사하는 예의는 산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인사하는 것과 비슷한거 같더군요. 다른 데서 보면 그냥 지나칠 사람들이 같은 곳에서 자전거를 타고있다는 동질감에서 그러는 것 같아요. 특히 여자에게는... ㅋㅋ

자전거 복장. 멋지죠... 저는 복면은 하지 않아요. 갑갑한게 싫어서. 대신 날벌레들이 가끔 입안으로 무찔러들어오면 타액과 함께 방출시키죠. 어쩔수 없이 넘어간건 그냥 단백질 보충으로 생각하구요.

양재천에서 주로 타시는 모양이죠? 탄천까지 이어지는 도로...
탄천교 밑은 출퇴근 할 때 추억인 많은 곳인데...
자전거로 컬럼쓰고, 생각하다 보니 타고싶은 맘이 간절해 지내요.
안그래도 요즘 운동부족인데, 한번 확 시도해 봐?
고민좀 해 봐야 것습니다.

선배님도 즐링(즐거운 싸이클링, 맞나?) 하시고...
자전거 사랑에 대해 좋은 글 마니 써 주세요.
재미난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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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2 00:32:21 *.41.62.203

선배 글을 보니 즐거워 집니다. 자전거 타는 모습, 언젠가 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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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8.07.22 01:04:50 *.250.10.63
정산님// 로드로 타시는군요. 저도 요즘 다니다보면 리컴에 미벨에 이것저것 한번씩 탐이 나지만 꾸욱 참고 있습니다.자빠링, 끌바(바이크를 끌다),멜바(..메다)..전부 공식전문 용어입니다. 너구리와 참게는 실제 양재천변에 서식하는 생물이구요. 밤에는 녀석들이 진짜로 마구 돌아다닌답니다. 주말엔 잠수교만 넘어가면 부식 공급처가 있는데 오직 먹겠다는 한 가지 일념으로 양재천, 탄천을 거쳐 잠수교넘어 한강 북단까지 다녀오곤 합니다. 즐라(즐건 라이딩), 안라(안전..)..이것도 전문용어..*^*

앤님//오랫만이지요..다 지켜보고 있답니다. 욜씨미들 하시고 혹시라도 배에 땀띠 안 나게 조심들 하세요..언젠가 그리운 분들, 자전거로 만나러 갑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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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07.22 15:25:09 *.122.143.151
허리는 이제 온전하신지요?
쓰시는 용어를 보아하니 이미 '매드 잔차 라이더'가 되신 듯.
여기서 질문 하나!
'냥이'와 '잔차' 중 하나를 고르라면? ㅋ
답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태클겸 해서리..ㅋㅋ

향인님의 '매복녀(매일 복면을 쓰는 여자)'를 읽고 보니
복면이나 가면이나 매한가지군여..
자나깨나 복면 조심, 가면 조심, 남자 조심, 여자 조심, 동물조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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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8.07.22 23:51:25 *.215.56.230
마치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는 질문처럼 몹시 어렵다는..
아칸양이 좋으나? 지현우가 좋으냐? 이런 질문을 해주심 냉큼 답해드릴수 있삼.
근데 그 "...조심"도 너무 할 게 아닌 듯...
언제부턴가 상대가 조심하고 있더라는 기막힌 현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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