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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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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27일 05시 47분 등록
[그대를 사랑합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리고 코 끝이 찡해진다. 눈이 뻘개지면서 어느덧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루룩... 뺨을 타고 흘러 내린다. 가슴이 더욱 메어지기 시작한다. 눈물이 한번 시작하면 콸콸 솟아져 나오는 시골 펌프질처럼 고이다 못해 뺨을 타고 줄줄 흘러 내린다. 외마디 신음을 막기 위해 입술을 꼭 깨문다. 하지만 좁은 이 틈새로 나지막한 신음은 새어나와 안타까움 흐느낌으로 귀를 적신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흘러간다. 그리고 감성에 지배당했던 이성이 다시 제자리를 잡는다. 가슴의 커다랗던 울림이 저 멀리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산골 메아리처럼 아득해 질 때 가슴속 뭉큼함은 따스함으로 변하여 가슴에서 머리로 손끝으로 발끝으로 우리몸 구석구석까지 퍼져가게 된다. 그럴 때 행복해진다. 눈물이 우리의 온갖 더러움과 때, 잘못을 쓸고 간 듯 마음이 후련해지고 편안해진다. 그 행복한 감정이 바로 카타르시스다.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소설, 한 편의 감동적인 영화, 온갖 어려움 속 최선의 경기를 보여주는 스포츠. 이러한 여러 장르 속 장면들을 접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 뭉클해지는 순간을 맞게 된다. 나 또한 여러번 아니 수십번의 그러한 순간을 맞이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만화를 보고 그랬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만화란 소위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란 인식이 강하고 그나마 요즈음에는 어른을 위한 많은 장르의 만화들이 나오고 있어 이제는 만화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아직도 여러 정황상 만화가 소설이나 영화의 역할을 하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만화는 만화 나름대로의 강점을 가지고 있다. 쉽게 볼 수 있으며 글보다 작가의 표현에 따라 작가의 생각이 독자에게 더 쉽게 전달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게다가 요즘에는 웹툰이란 형식으로 인터넷을 이용해 볼 수 있으므로 편리성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만화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한 편 소개하고 싶다. 강풀이란 필명을 사용하고 있는 강도영씨의 2007년 작품 <순정만화 시즌3 그대를 사랑합니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청춘남녀가 아니다. 이제 살 날을 얼마 남기지 않은 70대 남녀 노인들이다. 그들의 삶은 매일 피곤할 수 밖에 없으며, 삶의 여유를 즐길만한 형편의 사람들도 아니다. 잠시 뒤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수도 있으며, 언제 어디서든 육체적 고통에, 그리고 뒤이은 심리적 아픔에 외로워하고 괴로워할,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아니 어쩌면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기억하기도 어려운 그런 노인들일 뿐이다. 작가 강풀씨는 처음 노인들에 대한 이미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전에 내게 노인의 이미지는 저기 어디메 탑골공원 같은 곳에 비둘기를 쳐다보고 앉아계시거나, 동네 노인정에서 쩜십짜리 고스톱을 치며 세월을 보내는 이미지였다. 나는 불경스럽게도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제는 청춘을 다 보낸 후 기력도 없고 감정도 희미해진 사람들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이 만화는 노인들의 사랑이야기이다. 아니 노인들의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라 하는게 맞을 듯 하다. 삶 속에 사랑이 있으며 사랑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삶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작가 강풀씨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이 만화를 그린 이유에 대하여 노인이라 해서 우리 세대와 동떨어져 사는 사람들도 아니며, 특별히 다를 것도 없기 때문에 젊은이의 감정이나 노인의 감정이나 다 똑같이 사람사는 이야기로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 다른 점은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이들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죽음이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죽음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다. 그 차선이 결국 최선의 길임을. 작품 중에서 주인공인 김만석할아버지는 자신의 손녀가 왜 최선을 선택하지 않았냐고 묻자 ‘산다는게 뭔지 아니?’라는 질문을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독백하듯 답변한다.

“젊어서 열심히 살다가 어느 정도 나이가 먹게되면 막막해 질 때가 있지. 그럼 그때서야 사는 게 뭘까 하고 생각하게 돼. 나이 들면 유난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 사는 건 말이다. 뭐 별게 아냐. 젊었을 때는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고, 나이 들어선 그 추억을 되씹으면서 사는게 인생이지.”

나의 경우, 무엇이 옳은 지도, 가야할 방향도 모른 채 무작정 급하게만 달려왔다. 주변의 사람들이, 이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달리고 있는데 나 혼자 걸어갈 수는 없었다. 걷는 다는 것은 곧 추락을 의미했다. 인생의 낙오자이자,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일단 달리는 게 일이었다.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출 수 있게 되고, 어디를 가냐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너무나 어이없게도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다른 사람이, 옆의 사람이, 앞에 간 사람이 이 방향으로 가는 거라고 말했단다. 이런 제길. 이 대답을 들으려고 10년을 넘는 시간을 달려왔다고? 주위 한번 제대로 둘러 보지도 못한 채 옆 가리개 찬 경주마처럼 달려왔다고?

이제는 돌아보며 살았으면 한다. 추억을 만들면서 살았으면 한다. 추억이란 머리에 남겨지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뇌에 정보로써 남겨지지만 추억은 가슴에 새겨지는 것이다. 아무리 눈을 감아도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많이 사랑하자. 추억은 서로 간의 마음 나눔에서 시작된다. 많이 보듬고 포옹하자. 많이 맞잡고 부비자. 많이 응시하고 서로의 눈동자에 서로의 감정을 담자. 웃음과 미소, 슬픔과 아픔 그 모두를 가슴에 나누어 가지자. 추억이란 이름으로 하나씩 하나씩 이쁘게 만들고 포장한 후 나중 찾아보기 쉽도록 큰 제목을 붙여서 가슴 한 구석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아두자. 미래를 대비한 식량처럼.


이 작품은 작가 강풀씨의 전작들인 <순정만화>, <아파트>, <바보>, <타이밍>, <26년>처럼 치밀한 구성에 의해 진행된다. 이미 모든 시나리오가 완벽하게 짜여진 상태에서 장면 장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그 의미는 다시 다른 장면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의미와 함께 감동을 전해준다. 어느 순간 이러한 감동은 가슴을 따스하게도 때로는 뭉클하게도 만들면서 독자들을 울리고 웃긴다. 이 작품은 마치 한편의 감동적 영화를 보고 난듯 그 여운이 오래가게 해준다. 그러한 이유로 강풀씨의 만화들이 최근 영화화가 많이 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강풀씨의 작품들은 모두 영화 또는 연극으로 상영되거나 제작중이다. <바보>와 <타이밍>은 이미 영화로 상영되었으며, <순정만화>와 <26년>은 영화로 제작중이며, 이 작품 <그대를 사랑합니다>은 연극으로 공연되었다. 그만큼 작가의 작품들은 만화의 범주를 초월하여 다른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우리 노년의 의미까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시간을 내어 꼭 한번 완독하기를 권한다.

추신 : <그대를 사랑합니다> 인터넷 주소
http://cartoon.media.daum.net/toon/series/iloveu/general/read?seriesId=16319448&cartoonId=1807&type=g


IP *.178.3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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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7.27 21:16:06 *.36.210.11
만화, 특별한 장르이지. 군더더기는 빼고 전개와 논리의 비약이 빠르게 진행되지. 그런 형식의 글쓰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깊은 통찰과 안목으로 메시지 전달도 강력하고, 무엇보다 유쾌 장쾌 통쾌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지. 그대라면 차별화시켜 가능할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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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7.28 11:17:44 *.244.220.254
소리없이 눈가에 액체가 고이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강풀'이지요~
오늘 칼럼, 잔잔하게 밀려드는 느낌이 좋은데요.....장난스럽지도 않고!
완독하라고 명령하셨으니, 사이트에 함~ 놀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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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7.28 11:37:01 *.117.68.202
강추!!! 그대를 사랑합니다.
나도 이거 보면서 좀 울었어 형...^)^
아내가 추천해서 보다가 아내보다 빠져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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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8 12:39:38 *.64.21.2
'순정만화' 본뒤에 강풀을 만나지 못했네.
짬짬이 만나봐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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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07.28 14:09:55 *.122.143.151
써니누나..
괜찮은 만화있어서 보래니까 뭔 차별화래여.. 걍 보삼..-_-;;

거암..
아는구나. 강풀. 난 요즘 '메카쇼킹'도 많이 땡기드라.ㅋ

홍쑤..
이거 보구 지난주 아내 쇼핑하는데 온 몸을 다 바쳤다.. ^^;

창형..
'26년'도 보3. 피가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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