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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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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30일 06시 47분 등록
월리의 유럽여행 일지




2006. 4. 7. 금


암스텔담 경유 14시간 만의 비행 끝에 도착한 로마.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아무 정신이 없었다.

호텔(Satellite Palace)에 도착하자 간단히 세수하고 그 자리에서 뻗어 버렸다

그제야 뼈가 제자리를 찾은 듯
(내가 쓴 표현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근사한 표현이다) 상당히 편하였다

특별이 할 말은 없다. 그 자리에서 뻗었다는 것 외에는.



2006. 4. 8. 토

로마에서의 첫 관광.

8시에 출발하여 그 유명한 바티칸 대성당에 갔다.

박물관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줄을 보니 할 말을 잃었다

정말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줄 맨 뒤로 가는데만 20분 정도 걸은 것 같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안보고 가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였고

1시간 30분 정도를 기다려 겨우 입장을 하였다

정말 웅장하였다. 특별히 천장에 그려진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은 대단하였다

난생 그렇게 멋진 그림은 처음인 것 같다.

여기 저기 흩어진 조각들은 거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조각상들로 내게는 너무 익숙한 것들이었다.

엄마는 내가 상당히 박식하다며 감탄을 연발!!

이어서 들어간 성베드로 성당!

성당의 돔이 123M 라고 한다.

정말 모든 것들이 보지 않고서야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있고 웅장하고 말 그대로 '판타스틱하다'고나 해야 할까.

그 후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도 던져보고 유명하다는 이태리 아이스크림도 먹어보고 ㄲㄲ

엄마랑 잠시 일행을 일탈해서 피자도 한쪽 주문해 먹어보고..

피자의 나라답게 다양한 피자가 진열대에 놓여져 고르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전자렌지에 뎁혀주는데 얇은 피자의 자연스런 그 맛! 일품이다!

콜로세움, 팔라티노 언덕, 카라칼라 목욕탕 유적, 베네치아 광장, 독립기념관 등

시내 전체가 박물관인 로마를 둘러보고 피렌체로 이동,

‘스타호텔 베스푸치노(Star Hotel Vespucci)’에 하룻밤 여장을 풀었다.

정말 내 생의 한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할 만한 하루였다.




4.9. 일

피렌체 관광 후 북부 이태리 소타운 리바로.

도중 휴게소에서 피자로 점심을 떼웠다.

힘들게 여행하여 도착한 리바의 절경에 감탄하다.

합창대회 개폐막식이 열리는 주세페 성당 바로 앞의

‘아스토리아 파크(Astoria Park Hotel)’ 호텔 도착,

서둘러 준비하고 나간 퍼레이드가 리바 시장 선거 때문에 갑자기 취소되었다고.

전통 한복을 귀엽게 차려입은 펠리체 만의 가두행진 시작,

리바의 시선 집중.

광장에서 노래를 시작하자 그곳의 모든 관광객과 시민들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으며 환호,



저녁 8시부터는 모던하게 지어진 타원형의 넓은 주세페 성당에서

50여개 참가팀이 모여 개막식을 하였다.

개막 연주를 하는데 다들 긴 여행에 지쳐 마지막에는 잠들이 들어버렸다.

돌아오는데 비가 조금씩 뿌리기 시작, 한기가 몸에 들어 매우 추웠다.


어제부터 시작된 목감기로 컨디션이 점점 심상치 않다.

모든 게 힘에 부친다.




목이 심하게 부었다

‘미칠 것만 같이’ 기침이 많이 나고

가래도 심하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을 지경,

힘들게 잠을 청한다.




4.10. 월

아직도 목이 부었다

열도 심하게 나고 목이 따가워서 힘들다.

뭐든 할 의욕이 안나고

11시까지 잠만 잤다.

그 후 엄마의 안내 하에 보트를 대여,

우리들은 가르다 호수변의 리모네라는 마을까지 ship cruise를 하고

쇼핑도 좀 하였지만 모든 것이 다 힘들기만 한 하루였다.

호텔에 돌아와 또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은 안오고 땀만 뻘뻘 흘렸다

그 덕에 열은 내렸지만 목은 더 심해졌다.

그동안 엄마는 펠리체 리허설에 동반하고

나는 저녁 식사를 하고 방에 돌아와 잠을 잠시 자고,

우재형아 방으로 자릴 옮겼다.

여행 전부터 우재형아랑 함께 방을 쓰겠다고 약속하고는

한 번도 약속을 못지켜 오늘은 우재형아 방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그런데 아직 열이 몸에 있어서 약을 먹고 잤는데

약 기운이 떨어졌는지 중간에 잠이 깼다.

엄마에게 전화해 데려가 달라고 해서 엄마 방으로 다시 왔다.

역시 엄마가 옆에 있어야 안심이고 애기처럼 마냥 위로를 받을 수 있어서 좋다.

헬쓱한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초리가 안쓰럽다는 메시지를 가득 담고 있다.

그런데 내 어리광이 좀 지나쳐 엄마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4.11.화

펠리체가 어린이 합창종목에 참가,

세계의 여러나라들의 어린이합창단들과 대회를 한 날이다.

엄마는 펠리체가 좀 더 좋은 성적을 얻게하려고 리허설 장소를 확보해주고

여러 정보를 주면서 격려도 많이 하셨다.

실력이 그다지 좋다고는 볼 수 없는 펠리체는 연습 때와는 달리

무대에서 열심히 노래를 불렀고, 아름다운 한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펠리체의 참가 순서는 5번째였다.

나는 몸이 계속 안좋아 일행과 다니는 걸 포기하고 호텔에서 되도록 쉬려고 노력하였다.

유럽 여행이 처음이고

이렇게 그룹을 돌보는 일도 처음해본다는 우재형아는

마음을 다해 엄마를 도와주긴 하여도 영어가 안되어서

도와주는 일에 한계가 있다며 아쉬워하였다.

영어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건 우재형아 뿐 아니라 나의 결심이기도 하다.




펠리체는 언제나 노래보다는 참가팀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점과

독특한 한복을 입었다는 것으로 눈길을 더 끌었다.

나를 친 오빠 보다 더 따르는 예지는 정말 귀엽다.

예지가 한복을 입은 모습은 너무 앙징맞고 얄밉도록 귀엽다.

합창단 지휘자 선생님은 아이들을 잘 이해하고 재밌게 해주신다.

내게도 매우 친절하신데 내가 아파서 엄마를 귀찮게 하는 걸 혼내주시기도 하지만

대부분 농담도 잘하시고 나를 친구처럼 잘 대해주시고 비타민이랑 약도 주셨다.

합창단 어머니 두 분도 싸가지고 오신 한국 감기약을 주셨다.




펠리체는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바로 예쁜 한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우정의 무대에서 노래하기 위해 주세페 성당으로 가는데

문제는 그때쯤 내가 열이 너무 심하고,

목이 완전히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몸살이 심해졌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완전히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합창단을 동반해 도와주어야 하는데 오늘 나를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가

일이 잘못되면 내일부터 관광을 위해 유럽 곳곳을 이동해야 하는

일정에서 나 때문에 합창단 일정을 완전히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여행길에 어떻게 될지 몰라 엄마는 그것도 무섭다고 하셨다.

애를 태우며 안절부절 못하던 엄마가 드디어 용단을 내렸다.

다행히 주세페 성당이 호텔 옆에 있어 버스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되고

지휘자 선생님이 이태리에 10년 동안 사셔서 이태리 말을 잘하고

우재형도 옆에서 도우면 엄마 없이도 그런데로 우정의 콘서트 참가를 무리없이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프론트 데스크에서 근처 응급병원을 알아보니

다행히 근처 마을에 한 종합병원(Ospedale di Rovereto)이 응급실을 열고 있다고 했다.

여행 내내 나와 엄마에게 친절을 다하며 친하게 지낸 기사 아저씨 라파엘로가

우리의 위급상황을 알아차리고 직접 나서서 함께 병원에 가주기로 하였다.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가서 순서를 기다려 알베르토라는 멋진 레지던트 의사 아저씨에게

이것저것 검사와 진찰을 받고 다시 우리는 소아과 응급실이 있다는 옆 마을 종합병원으로

안내되었다. 라파엘로 말로는 아주 먼 곳이라는데..

그곳이 택시로 이동하기에는 너무 멀다고 판단한 라파엘로는 우리를 잠시 기다리게 하고는 30분이 되지 않아 덩치 큰 자기 버스를 끌고 나타났다. 와우!! 영어를 몇 단어로만 이야기하는 아저씨와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내 일처럼 성심을 다해 우리를 도와주려는 라파엘로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씨와 호의에 너무나도 감격해 엄마와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그 큰 유럽형 장거리 버스를 타고 세 명이 덩그마니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이태리 시골길을 달리자니 무섭기는 하지만 웃음이 났다.

정말 이런 일을 다시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

한참을 달려 소아과 병동에 도착, 라파엘로 아저씨가 이태리어로 그쪽 소아과 의사에게서 내 병에 대한 소견을 듣고 처방을 받아 나온 것은 꽤나 밤이 깊어진 후였다. 엄마가 돌돌 말아준 목도리가 따뜻해 스르르 잠이 들고, 눈을 떠보니 어느새 호텔이었다.

녹초가 된 엄마는 다시 나를 간호하느라 밤새 잠을 제대로 못잘 것이지만

그래도 위기를 넘겼다는 사실에 얼마나 안도하시는지..




4.12. 수

오늘은 페막식 전에 베니스 관광을 다녀오기로 한 날이다.

관광을 가기엔 좀 무리가 따를 몸 상태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엄마는 각별한 주의를 내게 주며 함께 베니스에 가야한다고 말했다.

모든 여행을 엄마가 준비한 상황에서 호텔에 남아 날 간호할 수도 없고

아픈 나를 끌고 가자니 엄마 몸이 다는 건 당연하다.

엄마를 잘 도와 줄 거라고 믿은 내가 짐이 되고 있는 것이다.

힘들지만 조심하며 함께 버스를 타 베니스로 향했다.

어느새 라파엘로 아저씨는 약국에서 내 약을 조제해 놓았다가

버스에 오른 엄마에게 건넸다.

감사로 엄마는 약값에 얹어 후한 팁을 주니 아저씨는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국아줌마인 우리 엄마가 포기할 리가.

아저씨 운전대 콘솔에 돈을 막무가내로 집어넣었다.

산마르코 사원 드넓은 광장에서, 몰려드는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는 일이 재미있었다.

비둘기들은 먹이를 든 내 손과 어깨에 마구 달려들었다.

엄청난 금으로 장식한 성 마르코 성당과 두칼레 궁전, 한숨의 다리를 보고

스파게티와 생선 스테이크 점심을 먹고

우리들은 크리스탈 공장도 견학하였다.

뜨거운 불에 녹인 유리를 단순한 도구 하나로

순식간에 멋진 말로 만드는 아저씨의 솜씨라니!

4시간 가까이 달려 다시 리바에 도착한 것은 거의 저녁이 다되어서다.

다행히 몸이 많이 나았다.

서둘러 식사하고 다시 시상식과 폐막식장으로 갔다.

펠리체는 실버 메달을 받았다.

다른 합창단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사진 촬영을 하고

아쉬운 리바의 일정을 마감하였다.




4.13. 목

밀라노로 향하다.

고속도로에 차 사고가 나서 한참 서있었다.

밀라노 대성당을 둘러 보고 다들 자유 쇼핑을 나섰지만

엄마는 내가 무리를 할까봐 멋진 아치를 자랑하는 밀라노 갤러리 내

한 카페에서 생과일주스를 시켜놓고 나와 쉬었다.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다들 스포르체스코 성과 박물관을 둘러볼 때도

엄마와 나는 버스에서 라파엘로 아저씨와 얘기하며 쉬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들르기로 한 제네바는 생략하고

샤모니 몽블랑으로 직접 이동,

저녁 늦게 도착한, 눈덮인 샤모니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조문행이라는 사장님께서 운영한다는 운치있는 산장의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치즈 뽕뒤와 그린 샐러드를 저녁으로 먹었다.

아주 색다르고 맛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겁이 나서 많이 먹을 순 없었다.

Mercure Chamonix 호텔에 여장을 풀고

티브이를 보는 동안 엄마는 어머니들에게 한잔 사러

호텔 바로 내려가셨다.

창문을 어쩌다 열면 찬 바람이 쉴새없이 몰려드는

이곳은 정말로 겨울 나라이다.




4.14. 금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친 후 우리는 각자 따뜻하게 무장을 하고,

특히 나는 커다란 파시미나 목도리로 머리와 입까지 단단히 싸고

알프스 영봉인 몽블랑의 브레방 등정을 하였다.

급경사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보는 샤모니의 아름다운 전경과

높이 올려다보이는 몽블랑.

그러나 몸에 열이 나고 콧물도 심해진 나는 고통스럽기만 했다.

다들 멀리 나가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는데

나는 마땅히 쉴 곳도 없는 브레방 정상에서 엄마에게 기댄 채 짜증만 부려야 했다.

아득히 내려다 보이는 슬로프로 정신없이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많은 유럽 사람들,

5-6살도 안되보이는 어린 아이들도 얼마나 스키를 잘타고 내려가는지.

아찔해 보이는 경사진 슬로프, 아프지만 않다면 나도 저런 스릴을 즐기고 싶은데..

브레방에서 내려와 버스로 파리를 향해 출발,

얼마간 달려서 정원 벤치가 잘 마련된 휴게소에서 어제 그 식당 사장님에게 주문한

한식 도시락 점심을 먹었다. 라파엘로 아저씨는 센스를 발휘해 직접 준비해온

몇 병의 레드 와인으로 엄마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다시 마냥 달리고 달려서 도착한 파리. Mercure Nosi Le Grand Hotel.

파리에서 다른 일을 위해 우리와 헤어지기로 한 라파엘로 아저씨는

다행히 그 일이 취소되서 우리와 마지막 일정까지 함께 하기로 하였다며 기뻐하였다.

파리에서는 그곳에서 섭외된 작고 불편한 빨간 버스를 타고 시내 관광을 하였다.

늦어서 다 돌아보지는 못하고 개선문이 잘 내려다 보이는 엘리제 궁과,

개선문 앞에서 자유시간을 좀 갖고, 나머지 콩코드 광장 등은

버스로 지나가며 설명을 들었다.

아픈 나를 언제나 잘 돌봐주시는 라파엘로 아저씨.

나를 ‘kim'이라고 부르며 항상 웃어주는 아저씨 인상이 매우 착해 보인다.

시내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귀가.




4.15 토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

역시 내 지식이 엄마를 놀래킨다.

평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수없이 읽은 덕분이다.

몽마르트 성모성당에 올라가 기념품 가게에서 몇가지 선물을 사고

다시 버스로 벨기에 브뤼셀 까지 4시간의 긴 이동길에 오름.

이동 중에 박제응 지휘자 선생님의 주재로 노래 자랑이 열렸다.

상품으로 주는 ‘오다리’ 때문에 제법 열기가 뜨거웠다.

노래방에서도 절대 노래를 부르는 법이 없는 엄마의 입을 열어

노래를 하게 만든 박선생님의 실력이 대단한 것 같다.

엄마는 양희은의 ‘아침 이슬’을 불안한 음정으로 간신히 마쳤다.

우재형의 못말리는 끼가 아줌마들 사이에서 인기..

브뤼셀에 도착하니 작년에 엄마를 도와주었다는 깔끔한 인상의

‘남정훈’ 가이드님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분은 네덜란드 대학에서 관악을 전공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그랑팔라스 광장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

사방 고건물들로 에워싼 아름다운 광장에서 펠리체가 노래를 시작하자

그 울림이 장난이 아니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광장 주변의 모든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이방에서 날아온 어린 천사들을 열렬히 환호해 주었다.

물론 펠리체는 앵콜도 잊지 않았다.

‘오 솔레미오’였다.

이 노래는 아마도 이 여행이 끝나기 전까지 계속 울궈먹을(?) 것이다.

오줌싸개 동상을 보려고 들어간 골목은 기념품 상점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골목 코너에 오줌싸게 동상은 정말 별 것 아니게 서 있었다.

브뤼셀을 상징하는 동상치고는 정말 별 볼 일이 없었다.

엄마와 친구들 줄 기념품을 사가지고 버스에 올라 벨기에 왕이 산다는 궁전을 돌아보고

Mercure Brusseles Airport Hotel에 투숙.

엄마는 대학 친구인 희선이 아줌마(브뤼셀에 시집와서 사는)에게 전화해 안부를 전하고,

그곳에 찾아온, 라파엘로 아저씨 여자친구의 안내로 예지 어머니 등 몇몇 분방한 아줌마들과 주말에만 연다는 브뤼셀 댄스 바에 답사(?)를 나갔다 오셨다.

내일은 길고 힘들었던 여행을 마감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그래도 지나놓고 생각하니 시간이 빨리 간 것 같다.




11.16 일

아침을 마치자 풍차를 보존해놓았다는 네덜란드 관광단지 ‘잔세스칸스’로 출발하였다.

그곳에서 풍차 마을을 보고 치즈 공장 견학도 하였다.

암스텔담 북쪽에 위치한 한국 식당에 들러 육개장을 맛있게 먹고

운하 크루즈에 나섰다.

해수면 보다 낮은 땅을 일구어 오늘처럼 아름다운 나라를 만든

네덜란드 사람들의 기술과 노력이 대단해 보인다.

운하를 따라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 세로로는 길지만 앞에서 볼 때는 너무나 좁아보이는

집들을 많이 보았다. 어떤 집은 가로 길이가 90센티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곳에 침대를 두고 산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답이 안 나와 보였다.

운하 위해는 ship house들도 많이 있었는데 조그만 집에 정원은 다 있었다.

배집 값이 일반 집보다 더 비싸다니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배는 안네의 일기가 쓰여진 안네의 집도 지나쳤다.



스키폴 공항으로 이동, 나는 우재형이 아빠 선물을 산다고 해서 함께 면세점 쇼핑을 했다.

그곳 현지 시간 오후 6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11시간의 비행 끝에 다음날 한국 시각 11시 3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 마중 나온 아빠 차를 타고 귀가.




긴............................여행.....................끝
IP *.127.9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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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7.30 07:37:14 *.36.210.11
어찌 닮았는지 한숙의 글을 보는 듯. 그 어미의 그 아들. 대성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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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
2008.07.30 09:09:55 *.246.146.12
길다....
근데 나는 이시간에 왜 다 읽었을까? 이러다 짤리지 ㅋㅋ

아무튼 그림같이 여행을 묘사하는 재주가 있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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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7.30 13:28:10 *.127.99.61
제가 그애가 쓴 일기를 다시 만진겁니다.
이것은 칼럼은 아니고 함께 읽으면 좋겠다 싶어 올립니다.

제가 외국에 합창단 데려갈 때 우리 아이들을 데려갈 때가 있습니다.
네 놈 중에 한 놈을 솎아서(?) 데려가는 것이지요.

이글에 등장하는 펠리체 합창단은 일산의 어린이 합창단입니다.
우리 막내의 나이 또래라서 막내를 여행에 데려간 것입니다.
그런데 애가 병이 나는 바람에 제가 면목이 안섰습니다.
일을 총괄하는 제가 없으면 그룹의 일이 돌아가지 않는데,그렇다고 아픈 아들을 버려둘 수도 없었으니..

그런데 그날은 그애가 정말 많이 아파서 '면목' 같은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그때의 버스기사였던 이태리 남부 출신의 라파엘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그 밤에 우리 막내가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칠흙같이 어두운 이태리 북부 산악지대의 시골 마을 의 소아 전문 병원을 찾아 달리던 덩치 큰 버스와, 그 안에 앉은 우리 셋, 생각할수록 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내게 호감을 내내 보이던 라파엘로는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서
작별 허그를 할 때 다음에 유럽에 오면 자기 버스를 다시 꼭 이용해달라고 거듭 부탁을 하였습니다.
성질이 카멜레온 같아서 불그락푸르락 하루에도 열두번씩 얼굴을 바꾸는 보통의 이태리 남자들과는 달리 라파엘로는 친절하고 내내 헌신적이었습니다. 물론 이태리 남자 특유의 느끼한 웃음을 전혀 안 날린 것은 아니지만...
제가 기사에게 친절한 것은 기사들 기분을 잘 다독여두지 않으면
여행하는데 애로가 많기 때문입니다.
기사가 기분이 나빠지면 버스 안 공기가 살벌해지고,
모두 기사의 기분을 살피느라 즐거운 여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이태리 기사들은 가장 친절하다가도 순간 가장 개떡같이 변하기 때문에 방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라파엘로는 달랐습니다.
조각같이 생겨서 옆에 앉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여행 내내 즐거움을 주는 그런 미남은 아니었지만 표준은 될 정도의 외모에
영어가 전혀 안되는 것도 아니고..
여행내내 아이들과 함께 따라온 아주머니들에게도 친절한
다소 예외적인 기사였습니다.
당근, 다음 여행 때 랜드사 사장에게 라파엘로가 어베일러블하면 우리 그룹에 붙여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그러나 우리와 운대가 안맞은 그는 그 이후 지금까지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이 글을 쓰다보니 나의 그룹 여행에 함께 했던 수많은 유럽의 기사들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글을 쓴다는 것은 이렇듯 다 잊었다고 생각한 기억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주는 신기한 작업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저도 아들 여행기를 오랫만에 읽어보니 그 때 기억이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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