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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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지금 너희에게 가지 못한다
혈기 넘치던 스무 살 그 해 여름,
나는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밟으려 짐을 싼 적이 있다. 험난하고 길었던 대간 길에서도 그
곳은 유난히 내 마음을 잡아 끌었는데 험한 지형만큼이나 날씨 또한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곳을
지날 때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았고 한 여름 산중에서 저체온증으로 온 몸을 떨며 서로의 체온을 체크하며 걸었던 기억이 새롭다. 거짓말처럼 맑게 개인 다음 날엔 내리쬐는 햇살에 걷기가 힘들었지만 그날 밤,
이름이 아름다운 고개가 평당 천 개의 별을 품고 고생했다며 나지막이 속삭이듯 그 하늘을 보여줬었다.
나는 지금 이화령 고개를 얘기하고 있다.
“말은 가자 울고 임은 잡고 아니 놓네.
석양은 재를 넘고 갈 길은 천리로다.
저 임아 가는 날 잡지 말고 지는 해를 잡아라.”
나는 고개가 좋다. 높은
곳에 있지만 다투지 않고 애쓰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그 묵직함이 좋다. 젠 체하는 인간들은 오를 수
없고 허약한 인간에겐 허락하지 않는 삶이 의인화된 형이상학이 좋다. 길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고개의 길은 오로지 넘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의 잡놈들과 장삼이사들이 오가는 길일 테니 분명 온갖 사연과 낮은 욕지거리와 쓸데없는 농들을 다
들어주고 안아주는 품이 넓은 사람일 테다. 바람과 안개와 구름은 또 어떤가, 그것들은 고갯길의 그 웅장한 매력에 푹 빠진 열성 팬처럼 늘 곁에서 불어 대고 흩날릴 것이니 날려서 사라지는
것들이 안식처럼 머무는 마루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큰아이의 이름에 고개를 뜻하는 峴(현)을, 둘째에겐 ‘들어라’는 의미의 聆(령)을 새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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