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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3일 23시 33분 등록

몇 일전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영상 광고판을 부착한 교육감 선거차량을 봤다. 처음 치루어지는 교육감 선거전이 치열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수장을 뽑는 선거 홍보를 마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 치르듯 저렇게 요란하게 해야 하는가? 교육감 선거라면 그래도 좀 더 교육적인 방법으로 선거를 치루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아이가 어리다. 그래서 인지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에 대해 아직 둔감한 편이다. 주위 사람들이 자녀 교육의 어려움을 얘기 할 때면 안타까운 마음으로 동조하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런지 의견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여섯 살 짜리 딸애는 바쁘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한다. 뭐에 그리 바쁘냐고 물으면, 월요일부터 주말까지 자기의 학원 스케줄을 줄줄이 읊어댄다. 발레, 미술, 피아노, 책읽기선생, 영어, 수학... 유치원에 다니는 것을 제외하고도 대여섯 가지의 과외를 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은 세 가지 과외가 겹치는 날이다. “아빠, 나 수요일은 정말 바빠”
이게 여섯 살짜리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

집사람은 아이가 힘들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딸애에게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픈 욕심이 있는 것 같다. 반면에 난 어릴 때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자유롭게 놔두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냥 자유롭게 놀게 놔둔다는 것도 쉽지가 않다. 부모가 모두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함께 해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고, 외동딸이라 형제도 없이 혼자 크는 아이의 환경을 생각하면 그렇다. 또 어디서 놀아야하는지, 누구와 놀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나의 의견 제시는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비교적 자유롭게, 안전하게 친구들과 놀만한 공간이 학원 밖에는 없는 것이다. 학원에 가지 않으면 집에서 혼자 자유롭게 노는 방법이 주로 TV 시청 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교육문제를 주로 집사람 의견에 맡겨 놓고 난 그냥 따라가는 편이다. 그나마 아직은 아이가 학원가는 걸 즐거워한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스러운 점이다.


교육 문제라면 흔히 과도한 사교육비, 조기유학, 기러기 아빠, 사교육비를 벌기위해 비교육적인 아르바이트를 하는 엄마, 학원으로 뺑뺑이 돌면서 혹사당하는 아이들, 학교에서는 졸고 학원에 가서 진짜 공부를 한다는 아이들, 공교육 제도의 문제, 교원 평가제도 도입... 등 수 많은 문제들이 떠오른다.

과도한 사교육비 문제는 우리나라 어른들의 ‘일류 병’과 ‘따라하기 문화’가 크게 일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평생 주눅 들지 않고 살 수 있고, 다른 집 애들이 하니까 우리 애도 해야 한다는 무분별한 부모들의 사고방식이 문제다. 자신의 수입을 고려하지 않고 교육에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자식에 대한 ‘투자 심리’가 발동한다고 볼 수도 있다. 나중에 혹 덕을 보지 않을까?(요즘 이런 부모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또는 나중에 ‘아빠 엄마는 내게 뭐 해줬냐’며 자식에게 욕먹지 않을까?....... 하지만 부모들은 이제 이런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자식들에게 당당해져야 한다. 내가 능력에 벅차면 벅차다고 말하고 그걸 이해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애들이 바로 클 수 있다. 없는 돈 빛내가며 자식 교육에 투자하는 부모는 자신의 생활을 포기하는 무책임한 부모다. 부모들은 그 비용으로 오히려 자신의 미래나 노후를 위한 투자를 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조기 유학과 그로 인한 기러기 아빠도 큰 문제다. 난 조기 유학을 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생활하며 커야한다. 애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나이에 유학을 가서 무슨 대단한 걸 배우겠나? 그 나이에 유학을 보내는 것은 부모의 결정에 따른 행동일 것이다. 책임은 온전히 부모에게 있다. 그걸 뒷받침 한다고 한국에 남아있는 아빠는 등골 휘게 고생을 하고, 불행한 이산가족 문화가 생겨나고, 그런 고생을 해서 애를 키워 논들 그 애들이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아이로 클 수 있을까? 그 애들이 그렇게 고생해서 키운 부모 고마운 줄을 알까?


난 우리나라의 부모들이 조금은 애들에게 무심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좀 더 자식들에 대해서 냉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퍼주는 사랑’식으로 자식을 끼고 돌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애들도 애들이 겪어야 할, 혼자서 지고 살아야 할 짐이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를 하게 되더라도 그게 자신이 져야할 짐이라면 그걸 지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도록 가르치는 게 훌륭하게 애를 키우는 방법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려면 애들을 이해시키기도 해야 하고 가끔은 애들과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

우리 집 애는 밥을 잘 안 먹는다. 밥을 잘 먹지 않는 애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서 엄마는 안간힘을 쓴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키워와서 인지 어떤 때는 밥을 먹는 게 마치 부모를 위해 먹는 것인 냥 안 먹겠다고 배짱을 부린다. 밥을 먹지 않으면 배고픈 건 자기이고, 결국은 자기 손해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때문이다. 난 밥 먹기 싫어하면 몇 일 굶기라는 주의다. 몇 일 굶어서 배고픈 게 뭔지를 알아야 스스로 밥 먹을 욕망이 생긴다. 이건 그래야 고쳐진다. 몇 번을 얘기 했지만 집사람은 그렇게 실행하지를 못한다. 엄마가 갖는 측은지심이 문제다. 당장 눈 앞에서 자기 애가 밥을 굶고 비실비실대는 아픈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나약함이 문제다. 가끔 애 엄마가 없을 때 나는 이 방법을 실험해 봤다. 내가 실험해본 바로 보면 효과가 좋다. 그러데 문제는 그 기간이 길지 못해서 습관으로 자리 잡지를 못한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내가 이 못된 버릇을 반드시 고쳐놓고야 말리라는 생각을 하지만 언제 그걸 실행 할 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애가 지금보다는 좀 더 이해력이 커질만한 나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느 때 쯤이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 전에 집사람을 이해시키고, 집사람과 완벽한 각본을 짜야겠지만 말이다.

몇 년 전 대학 입학시험을 치루는 날 외국에서 온 손님을 접대한 적이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대학입시 날 공무원과 정부산하기관 직원들은 1시간 늦게 출근하는 것이 관례처럼 자리 잡았다. 대학시험 보러 가는 학생들이 교통체증으로 시험에 늦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인 배려다. 그날 뉴스에는 의례 시험에 늦은 학생을 경찰 오토바이가 시험장까지 태워다주는 장면이 나오고, 이게 마치 무슨 사회적인 선행이나 되는 냥 생각하는 분위기다. 외국 손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분은 우리사회의 그런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분 생각은 이랬다.

“대입시험 보는 날 지각을 하면 안 된다는 건 그 나이의 학생이라면 누구든지 다 안다. 그리고 교통체증이 문제라면 집에서 1시간 일찍 출발하면 되는 것 아닌가. 대입 수험생도 사회 구성원의 일원이고,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니다. 대학시험을 보는 게 특별한 건가? 더 큰 문제는 그런 특별 대접을 해주는 게 과연 교육적인가? 하는 점이다. 그건 오히려 비교육적이다. 그렇게 중요한 날 지각을 했다면 지각한 것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오히려 교육적이지 않은가?”....... 맞는 말이다. 이건 “수험생 숭배, 자녀 숭배”라는 그릇된 문화가 만들어 낸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왜 그럴까?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에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풀뿌리 교육혁명” 이야기가 나온다. 기술이나 기능 교육 위주의 공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학생들에게 공동문화에 친숙해지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혁신에 관한 이야기다. 학생, 교사, 부모, 지역 사회의 각종 기구가 함께 커리큘럼을 짜고 체험학습을 이끌어 간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대안학교와 비슷한 실험교육인 모양이다.

< 미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시민 사회와 저변 문화에서 책임 있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으로 교육시키는 데 목적을 둔 풀뿌리 교육 혁명이 조용히 퍼져나가고 있다..... 시민 교육은 학생이 살아가는 동네와 지역 사회에서 직접 체험하는 교육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기본 가정에서 출발한다. 가령 동물이나 자연 생태에 관한 공부를 할 경우 야생 동물 보호 시설이나 수목원으로 현장 견학을 가는 것이 학습효과가 가장 높다는 것이다.> [374]

< 많은 미국 학교가 오래전부터 핵심적 교육 목표로 표방해 온 경쟁력 있는 기술의 습득은, 마차를 말 앞에 놓는 것처럼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라고 시민 교육 이론가들은 비판한다.
시장에서 자기 노동력을 팔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것은 21세기의 교육 이념으로는 지나치게 옹색하다. 이런 교육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 의식을 가진 균형 잡힌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남에게 팔아먹을 수 있는 재산쯤으로 치부하는 어른을 양산한다.> [376]

<시민 교육 옹호론자들은 문화를 자기 삶의 중요한 일부로 여길 수 있도록 학생의 자기 정체성을 심화 확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교육은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육성하고 타인과의 유대를 권장하며 문화가 문명 생활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는가를 학생에게 일깨워주어야 한다.... 시장에서 팔아먹을 수 있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수적인 조역에 그쳐야지 시민 교육을 희생시키면서 맨 앞자리를 차지해서는 곤란하다.> [376]

지금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한번쯤 그 의미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내용들이다.

교육이 바뀌려면 부모가 바뀌고, 교사가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나이 어린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결국은 사회 구성원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이건 제도나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의 문제다. 우리사회의 교육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해봐야 하고 또 용감해져야 한다. 특히 사회의 주도세력인 어른들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

내가 교육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키워보고 나서 그런 얘기 하라”고 내 말을 자른다. 자기가 경험해보지도 않고 무책임하게 얘기하지 말란 얘기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교육을 시켜야 할 부모 입장에서 미리 이런 고민을 하고 내 나름의 교육관을 확실히 갖도록 노력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게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이정도의 고민도 하지 않으면 좀 거시기 하지 않은가? 말이다.
IP *.5.98.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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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08.08.04 08:29:17 *.67.52.197
교육 = 욕망
교육경쟁력이 사회에서의 경쟁력인 지금의 현실은 참 어둡고 답답합니다.
저는 학교가 가끔 공장같다고 생각합니다.
A급 공장, B급 공장.
아이들에게 무엇때문에 가혹하게 교육을 시켜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일정 수준의 교육을 시켜 줄 기관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 교육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조금만 능동적이면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 보다 그 이상의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기 때문입니다.
인성교육이 먼저라고 말들은 하지만 현실은 개인의 경쟁력이 우선인 사회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구조에서는 교육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없다는 것 입니다. 20대 중후반을 지나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현격히 줄어듭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25세 이후의 대학 진학률이 30%정도 된다고 합니다. 약간의 사회 경험을 쌓고 공부한 후 다시 현업에 종사할 수 있는 문화가 부럽습니다.
성적을 중요시 하는 것은 옳습니다. 노력을 반영한 결과이므로 정당합니다. 문제는 특정 한 시기를 가지고 평가를 내리는 우리나라의 무서운 잣대입니다. 아이들 여기서 정말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현재 중고등학교 20~30% 정도 아이들의 가정이 한 부모 가정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아이들은 두 가지 어려움을 격습니다. 첫째는, 정서적 어려움. 둘째는. 경제적 어려움.
학업 성적은 가정 환경과도 매우 밀접합니다. 종종 어른들은 '자기 나름이다.'라고 말씀 하시지만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심지가 그다지 굳을수는 없습니다. '개천에서 용나기'는 옛 말이 되가고 있습니다.
한 부모 가정이 경제적으로 넉넉 할 수 는 없습니다. 대부문 경제적 이유로 부모가 이혼했을 가능성이 높은 한 부모의 가정의 아이들이 사교육으로 성적이 좌우되는 현 기형적 교육체계의 구조에서는 밀릴 수 밖에 없습니다. 참, 괴물같은 구조입니다.
우리나라의 사회의 가장 문제점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그가 가진 배경,교육 정도로 보는 것 입니다. 평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적 구조가 그 사람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외부 변수가 너무 많이 작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공교육안에서 경쟁이 치열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현상입니다. 문제는 이 괴물같은 사교육 경쟁이 공교육을 잠식하고 공교육의 변화하는 정도에 따라 사교육은 너무 빨리 적응을 잘하는 것입니다. 참 답이 없습니다.
지식, 기술이 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저는 자신있게 '아니오'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어떻게 살래라고 물으면 답할 수 없습니다. 모순이죠.
하늘은 높고 푸른데 발 딛고 있는 현실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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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8.04 11:21:45 *.179.68.77
형님께서 가지고 계신 교육 철학에 빙고!
나중에 아이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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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08.08.04 16:16:01 *.47.186.98
저는 서른셋 입니다.
거암님이 저 보다 연장자가 아니신지요?
저는 미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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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4 23:54:32 *.180.129.173

김지현씨가 서른셋이시군요. 어떤분인가 궁금했는데. ㅎ
정산오라버니. 좀만 계셔 보세요. 금방 발등에 불 떨어 집니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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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8.05 09:04:05 *.41.103.229
아 정말 바쁘겠습니다..^^
제 큰아들은 일곱살인데요. 얼마전에 아내가 영어과외를 시키는 것이 어떠냐고 묻길래.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잘한건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요.
저는 아이들은 충분히 놀면서 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인것은 동생이 있어서 집에서도 둘이 잘 놉니다.
가끔 친구들도 집에 와서 함게 놀기도 하구요.
아이들끼리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자지러지게 웃구요.

어른들이 아이들을 무조건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들의 조바심이 아이들도 그렇게 만들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뭐든 빨리 배워야 뒤처지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기는 하겠지만, 스스로 그것이 필요함을 느낄 때 교육적 효과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라고 그러한 생각을 못할 것 이라는 고정관념이 아이들의 창의성을 발견하지도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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