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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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가장 심오한 인간의 감정에 해당된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자아의 울타리 밖으로 넘어가서 타인 안에서 감정의 둥지를 틀고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가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을 통해 동질성을 확인한다. (362)
전형적인 아날로그 시대 작가인 황석영씨가 지난 2월 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시도한 인터넷 소설 <개밥바라기별>이 얼마 전 책으로 나왔다. <개밥바라기별>은 6개월 가까이 네이버에 연재되는 동안 숱한 화제를 낳으며 수많은 네티즌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연 접속 180만)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거의 매일 연재 블로그의 덧글란과 게스트란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과 부대끼고 놀며 문학과 예술에 대해 세상사에 대해 때론 정담을, 때론 치열한 토론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인터넷 매체란 너무나 가벼워서 본격 문학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그간의 통념을 깨뜨린 쾌거로 받아들여질 만큼 우리 문단에서도 하나의 ‘사건’이요, 신선한 충격이었다.
연재를 마치고 황석영은 자신의 블로그에 감사의 글을 남겼다. 그의 글에서 나는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형태의 소통의 가능성을 보았다. 리프킨은 여러 연구 논문의 예들을 열거하면 사이버 시대의 새로운 인간형에 대한 여러 비관적 전망을 쏟아놓는다. 시장이라는 지리적 공간에서 물품의 교환을 가능케 한 것이 돈이었던 것처럼 디지털 혁명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문화적 체험을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가 워낙 전방위적인 의사 소통의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에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얼굴과 얼굴을 직접 맞대고 하는 전통적 의사 소통 형식은 비중이 점점 떨어지고 서로 간에 공감의 결핍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독자들 스스로 ‘별광장’이라 이름 붙인 황석영 씨의 연재 블로그는 실제로 광장이나 다름없었다. 전국 곳곳에서, 국경을 넘어 멀리 미국과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에서 별광장을 찾아온 수많은 독자들은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눴다. 비단 문학 뿐 아니라 영화와 음악과 미술에 대해, 소고기 협상과 촛불집회를 비롯한 시국에 대해, 그리고 소소한 개인사에 이르기까지 대화는 24시간 끊이지 않았다. 그날 연재분에서 작가의 첫사랑 얘기가 나오면 독자들은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머니와의 일화가 나오면 독자들은 모두 자기 어머니를 떠올리며 대화를 나눴다.
황석영은 자신의 불로그에 마련된 별광장에서 동베를린이 무너지던 날 비가 내리는 광장에 밀려나와 서로 껴안고 노래부르고 춤추며 샴페인을 터트리던 독일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동서독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서로 섞이며 기쁨을 함께 나누었지요. 온 광장은 빗 속에서도 질펀한 축제를 벌이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무너진 장벽 모퉁이에 이방인으로 혼자 서서 눈물과 빗물이 서로 어우러져 흘러내리는 가운데 혼자서 울었다. 거기서 그는 ‘아름다운 개인들’을 보았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인위적으로 세워진 장벽은 그처럼 언젠가는 무너지게 마련이고 그 한계가 무너지는 현장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그는 인간이 참 아름답다는 걸 느꼈다.
그가 스스로 밝히듯 그는 개체로서의 인간과, 세계적 현실이라는 양대 축 사이에서 후반기 창작을 해온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개밥바라기별의 창작과, 별광장 체험은 그의 문학적 연대기에 있어서 하나의 새로운 표지석이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성장적 자전소설인 개밥바라기별을 연재하면서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아날로그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은 디지로그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상반된 개념이 아니라, 서로 함께 갈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광장은 방이 없다면 성립되지 못합니다. 방은 내밀한 곳이며 개인적인 공간이고 광장은 그런 개인이 소통하기 위해 나오는 공간입니다. 광장이 없다면 개인은 자폐되고 맙니다. 개인과 광장은 그야말로 모닥불과 장작의 관계죠. 묘하게 툭터진 이 광장에 모여든 개인들은 저마다 개인의 언어를 가지고 소통을 시작합니다. 소통하는 동안 이해의 따뜻한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그렇게 형성된 공감대는 방과 방을 연결해서 끈끈한 연대의 그물망을 형성한다. 개개인의 일상이 다르듯이 이들 언어와 내용은 다르지만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사이에 연대의 그물망이 형성된다. 광장의 소통에는 합창처럼 하모니, 즉 조화가 필요하다. 광장에 들어선 사람이 처음부터 자신을 돋보이려고 광을 내거나 자신만 내세우면 금방 어색해지며, 어색한 공기가 감돈다. 조화는 그래서 광장을 활기가 넘치는 평화의 열린 마당으로 만드는 힘이다. 여기서는 생각이 다른 이가 적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도와 줄 벗이 된다. 이 보이지 않는 룰리 서로를 성장시키는 변화의 힘이 된다.
사이버 스페이스의 익명성에 대한 초기 비판적인 견해들이 많이 사라졌다. 사이버 스페이스 에서 쓰이는 인터넷 언어 역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진화되고 있다. 사람들이 표현하는 문자는 이미 기계적인 기호가 아니라 개인의 일상에서 흘러나온 숨결이다. 즉 디지털 전자의 기술적인 힘을 빌어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는 한 시대의 감수성이요, 아날로그인 우리 개개인의 삶의 언어이다. 이제 인터넷 스페이스는 더 이상 미디어의 세계가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우리들 일상의 현장이 되었다
황석영 작가는 오히려 고립된 자기만의 아날로그 방에서 글을 쓸 때 보다 사이버 공간에서, 개밥바라기 별광 장에서 더 큰 신명으로 소설을 마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저는 이번 작품을 쓰는 도중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무수한 광장의 벗들과 글쓰고 대화하면서 동시대의 글쓰기에 대해 오랜만에 신명을 느꼈습니다. 글 쓰고 덧글 다는 ‘폐인’이 되면서 나는 다른 이들과 생각을 나누는 과정이야말로 얼마나 큰 공부가 되며 상상력과 창조의 원동력이 되는지 경험했지요. 글쓰기란 최종적으로 세상과 대화하기 위한 행위니까요.”
나 역시 모닝페이지 카페를 통해서, 그리고 변경연 사이트와, 몇몇 단골 사이트를 통해서 여러 삶의 지향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며 많은 지지와 힘을 얻고 있다. 다수는 여전히 익명의 집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서 받는 무언의 지지가 고맙고, 또 오프라인을 통해 얼굴을 보는 사람들과는 인터넷 스페이스를 통해 더욱 깊은 소통이 일어난다. 이런 온 오프라인 쌍방향의 소통은 이제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소통의 풍속도이다. 이미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디지로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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