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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9일 23시 01분 등록


어느 날 오후,
그는 홀로 영업지점을 지키고 있었다.
다른 동료들은 모두 가망고객들을 만나기 위해 외근을 나간 상태였다.

만날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컴퓨터 화면에는 이미 정리해 놓았던 가망고객 리스트가 있었다. 그러나 상담 약속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가망고객 리스트에는 수 십 명의 사업가, 의사, 샐러리맨의 이름과 연락처가 분명히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전화 수화기를 들 수가 없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이고 있었다.

“사업하는 사람이 나를 만날 시간이 있겠어?”
“의사인데 이미 많은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겠어?”
“대학원생이 보험료를 납입할 여유가 있겠어?”

수 십 명의 가망고객 리스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 한 명 가망고객의 이름에는 그들을 만나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만이 존재했다. 세일즈는 ‘가망고객을 만나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전문적인 금융지식, 상담화법, 클로징 스킬과 같은 변수들도 중요하지만, 결국 세일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한참을 망연자실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금주까지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었다. 자신과의, 동료와의 약속이었다. 어렵게 용기를 내서 절친했던 대학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스럽게 대학동기는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었다. 현재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대학동기는 담당 교수님이 좋아하는 커피라며, 은은한 향이 기분좋은 헤이즐넛 커피를 내주었다.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이 웃음 속에서 오고 갔다.

이 후 그는 대학동기를 상대로 최선을 다해 생명보험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눈빛은 진실했으며, 진지하게 상담해 임했다. 계약체결 여부는 뒤로한 채, 온몸의 혼을 담아 생명보험의 필요성에 대해 상담하였다. 한참을 설명한 후, 대학동기에게 상담내용이 어떠했는지 물었다. 대학동기는 잠시 침묵 후 이렇게 이야기했다.

“OO야, 너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니?”

그는 당황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답변을 이어갔다.

“그게 무슨 말이니?”

그의 서슬퍼런 눈빛에 당황했는지, 대학동기는 주춤거리며 답변을 했다.

“오해는 하지 마라. 대학에서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그렇고, 인정받고 잘 나가던 네가 꼭 이런 보험영업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서 그래. 다른 폼나는 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잖아.”

그는 더 이상 상담을 진행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더 이상 설득할 마지막 힘조차 남아 있지 없었다. 저녁도 먹지 않은 공복 상태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신념과 철학이 철저히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는 깨끗하게 자료를 챙기고 자리를 일어섰다. 영업지점으로 복귀하는 시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대학동기와의 상담은 그를 처참하게 무너지게 만들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영업지점에는 모두 퇴근하고 아무도 없었다. 텅빈 사무실에서 그는 혼자였다.
양복 상위를 벗었다. 와이셔츠는 땀으로 모두 흔건히 젖어 있었다. 아무말 없이 멍하니 있었다. 그런데 그가 울기 시작했다. 그냥 우는 것도 아니고, 펑펑 우는 것이었다.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과거 수많은 고객과의 거절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 였다. 그런 그가 울고 있는 것이었다. 가슴에 남아있는 한스러움을 아낌없이 토해내는 사자후처럼.

그런데 갑자기 사무실 한귀퉁이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이 아닌가?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알았던 사무실에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 누군가는 지점의 선배 컨설턴트였다. 그는 조용히 다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한테 모두 말해보라고 하였다. 그는 오늘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위로 받고 싶었다. 그리고 그 선배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복음을 전해줄 것만 같았다.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그 선배의 화두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 선배는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 일이 다 그런 거야.”

선배는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외마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무실을 나가는 것이었다. 광야에서 길 잃은 양에게 신비스런 복음은 없었다.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그 선배의 외마디 조언은 그에게 잊혀지지 않았다. “우리 일은 다 그런 거야.”라는 말. 놀라운 것은 그 선배의 조언이 그를 구원했다. 그 단순한 조언은 참호 속에서 두려움에 떨던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랬다.
생명보험을 통한 가치, 신념, 보람. 이 모든 단어들과 거절, 수치, 자괴감이라는 단어들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세일즈는 본질적으로 이 대립되는 단어들의 설명할 수 없는 혼합물이었다. 가치, 신념, 보람과 같은 긍정적인 측면이 거절, 수치, 자괴감이라는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동거동락(同居同樂)하는 유기체인 것이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상처받는 것이 싫어서, 거절받는 것이 두려워서 주춤거리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최고의 영업컨설턴트가 오를 수 있는 존경받는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되었다.

위의 글은 내가 직접 경험한 내용이 아니라, 함께 근무했던 한 동료의 실제 이야기이다. 당시 무척이나 가슴으로 공감했던 일화라 글로 정리해보았다. 보험영업을 경험해 보지 않은 분들께 어떤 느낌으로 전달될지 사뭇 궁금하다.

문득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이 수많은 경계 속을 걸어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어떤 일은 가치가 있고, 어떤 일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허구다. 자신의 일에 대한 가치(Value)는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의 일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 의미, 보람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자신의 절실한 믿음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

지금 헤어나지 못할 절망에 있는가? 광야를 홀로 걸어가는 외로움에 떨고 있는가? 훗날 만나게 될 신(神)은 이렇게 이야기할지 모른다.
“인생이 다 그런거야.”라고.

“그는 고등학교도 온전히 졸업하지 못했다. 변변한 직장을 얻기도 어려웠고, 무엇을 해도 시원찮았다. 보통 이하의 삶을 살도록 정해진 것만 같았다. 그런 그가 보험영업을 시작했다. 42번의 거절 끝에 첫 계약을 하였다. 두 번째 달에는 여섯 건의 계약을 받았으나, 그 다음달 모두 취소되었다. 그는 실패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8년만에 MDRT(백만달러 원탁회의)회원이 되었다. 10년 후 MDRT 종신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보험업계의 전설이 되었다.”
– 토니 고든, [보험왕 토니고든의 세일즈 노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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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8.10 08:43:06 *.36.210.156
짧은 문장으로 쉽고 간결하게 빠르게 전개시켜 나가는 가운데 흡인력을 발휘하네요. 재미있다. 좋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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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8.11 20:28:25 *.213.88.196
절절하다. 감정이입이 되어 내가 그가된것 같은 착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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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08.11 22:24:59 *.178.33.220
중환아.. 말야..
맞다.. 인생은 다 그런거일수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눈 감는 날,
행복할 수 있다면..
인생은 다 그런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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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1 22:50:04 *.123.204.118
중환을 뭐라 불러야 좋을지 고민중이야.
구라현정. 명상지환처럼 좋은말 없을까...
마땅한게 영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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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8.12 00:32:28 *.72.153.57
처음에 퍼득 스친 닉네임은 사나중환

그리고, 거암 중환, 세번째로 생각난 건 보험 중환, 크크크.
왜 이게 떠올랐는지는 글쎄....

'오사게 사나이스럽네'

중환이 다른 데서는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만화책 베껴그린다고 열심히 뒤적이다 봤지.
주인공이 뒤돌아서 울더라. 그걸 보고는 나는 '그래, 싸나이는 그래.' 만화가는 왜 그 뒷모습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중환이... 글 속에서 같이 울어서 생각났어. '사나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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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8.12 08:31:48 *.244.220.254
써니누님.
엄마의 편지. 간절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사람 자꾸 울리지 마세요.

현웅형님.
이 칼럼은 형님때문에 썼습니다.
지난번 실제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셔서........

야생마형님.
지금 위험한 영혼이세요.....바람 조심하세요. 위험한 중년!

창형님.
저도 좀~ 멋있는 닉네임 붙여주세요....허접한 내공을 커버할 수 있는~

정화!
개인적으로 무척 수줍음을 많이 타는 동물이라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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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양
2008.08.12 13:33:25 *.122.143.151
불쑥 좋은 별명이 떠올랐어.

중환의 매력은 안 그런거 같으면서도 참 잘 챙기는데 있는거 같아.
지점장의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부하직원들 챙겨주는거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어쨋든 중환은 4기 총무를 떠나 이것저것 참 잘 도와주고, 챙겨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마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모두 그렇게 생각할거야. 아닌가?
아니면 내가 잘못 생각한거고..ㅋ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환은 실속은 잘 못챙기는 것 같아.
참 열심히 하고, 행동으로 직접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에 비해 얻어지는 결과는 웬지 초라한 듯 느껴져.
이것도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아니, 이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거야, 반드시!!!

그래서 말이지..
조심스럽게 별명을 붙여보자면 말이지..
이건 어떨까?

허/당/중/환 ....

좋아? 맘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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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8.12 15:10:38 *.244.220.254
인생도 '허당'인데......사람 여러번 죽이시는군요. ㅜ.ㅜ
요즘 실적도 안나와서 죽겠는데..........암튼 도움이 안돼. 도움이~

지금 그로기 상태에 있는 권투선수에게 하이킥을 하는 셈이네요.
야쿠르트 본사 앞에서 1인 시위하는 사람이 있으면 조심하세요.
아니면 밤길 스타킹 쓰고 나타나는 사람도.........

다시 작명을 부탁드립니다. 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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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2 21:20:02 *.228.146.136

성실남 중환, ㅎㅎㅎ 매잡이 중환.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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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2 22:40:26 *.123.204.118
허/당/중/환 이거 괜찮은거 같은데 왜 거부하지?

그게 싫다면 이거 어떨까? - 허/탕/중/환
이것도 싫다면 또 있지 - 꽈/당/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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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불쑥양
2008.08.13 08:46:56 *.122.143.151
어제 거암의 피끓는 절규에 가슴이 아팠어.
인생도 '허당', 이제는 별명까지 '허당'이라고 아파하는 모습에
웬지 측은지심이 발동했어...

하긴 그로기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하이킥까진 아니래도,
헤드록 정도 수준은 되는 것 같지?

그래서 밤새도록 다시 생각을 했어...
거암을 그대로 나타내줄 수 있는 단어는 무얼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갑자기 또 불쑥 떠오르네..
이거 어떨까? 웬지 있어보이기도 하네..
궁금하지? 기대되지? 캬캬캬!!


무/위/중/환

어때? 근사하지? 웬지 허무한 듯 하면서도
무게감도 있고, 뒤에 감춰진 무한한 의미가 있는 듯하지?

보충설명을 좀 해주께. 무위의 뜻이야.


[무위 無爲 ]

<철학>중국의 노장 철학에서, 자연에 따라 행하고 인위를 가하지 않는 것. 인간의 지식이나 욕심이 오히려 세상을 혼란시킨다고 여기고 자연 그대로를 최고의 경지로 본다.


어때? 멋있지? 황홀하지? 재밌지? 쥑이지? ㅋㅋ
하지만 당근 알고 있지? 이 뜻 아닌거..
내가 인용한 진짜 뜻은 이거야..


[무위 無爲 :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음. 또는 이루지 못함.]

허당을 웬지 있어 보이는 말로 바꾼거지...ㅋㅋ
암튼 내 생각에 이보다 더 좋은 별명은 없을 뜻 하다!!!


무/위/중/환

아~~!! 아무리 생각해도 참 잘 지은 것 같다...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다니 넘 행복하다. 캬캬캬~~
내 특별히 작명비는 무료로 해줄께.
총무로써 대견하게 일 잘하고 있으니까.(엉덩이 툭툭툭~) 캬캬~!!


구/라/현/정
명/상/지/환
무/위/중/환


다음은 누굴 지어줄까나~~

희/촐/지/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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