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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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연구원 11년차의 봄은 전염병과 함께 왔다. 곰처녀가 사람이 되는데도 100일, 아니 스무 하루면 충분했다지만 나는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절대로 서둘러선 안 된다는 것을. 35년 세월의 관성을 거스르는 일이 그리 쉬울 리 없지 않은가? 최대한 침착하게, 숨을 고르고 또 고른 후 마음으로 정한 시간이 10년이었다.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가장 긴 시간이었던 거다. 그렇게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10년을 보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어떻게 계산해도 분명히 10년이 흘렀는데 아무리 봐도 도무지 크게 달라진 것 같지가 않았다. 아니다. 분명히 달라진 것이 있기는 했다. 10년간 성큼 자라난 아이들과 집의 온 벽면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집 여기저기에 언덕처럼 쌓여있는 책들만은 10년 세월의 여실한 증거가 되어주고 있었다. 이 엄청난 양의 책들을 통과해 낸 나는 과연 어디가 어떻게 달라진 걸까? 차마 대놓고 물을 수 없는 질문이 틈만 나면 들이닥쳤지만 도무지 대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말할 수 없이 초조해졌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직면하는 것만 빼고는 어떤 모험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어떤 무리라도 기꺼이 감수할 작정이었다.
어떤 장애물이라도 가뿐히 뛰어넘어 집을 뛰쳐나갈 준비가 되어있던 내 손발을 묶은 것은 어이없게도 코로나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 자체가 치명적인 리스크라니, 너무나 당연한 루틴이라 믿었던 아이들의 등교마저 무작정 연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일을 새로 도모할 수 있단 말인가. 실망과 안도가 동시에 밀려왔다. 조급함에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었지만, 솔직히 막막한 게 사실이었다. 이대로 당장 집 밖을 나가 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집안에 있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뭐라도 해야 할 텐 데, 대체 뭘 하면 좋단 말인가? 아니,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잠을 설치며 바스락거리고 있던 삼월의 어느 새벽이었다. 뭐라도 해보겠다고 다시 시작했던 블로그에 이웃 새 글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습관적으로 훑어보던 중 ‘모집, 엄마의 비움 프로젝트’라는 포스팅이 눈에 들어왔다. 큰 기대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루에 고작 물건 3개씩 비워내 무슨 대단한 일이 벌어질까 싶었던 거다. 어차피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니 이참에 일단 책이라도 정리해 놓자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계절이 네 번 바뀌었다. 뜻하지 않게 시작된 이 작고 작은 움직임은 나와 공간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앞으로 몇 주간은 1년 동안 물건을 비워내며 체험했던 변화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어디에선가 꼭 1년 전의 나처럼 새벽잠을 설치고 있을 당신에게 작은 실마리라도 되기를 소망하며 정성을 다해보려고 한다.
오래 참아왔던 묶은 근심이 풀어져 내린 첫 한 달!
한 달 간은 명료했다. 아침에 일어나 집안 구석구석에 방치되어있는 '명백한' 쓰레기 3개를 찾아내는 게임. (마음먹었던 책까지 가는 데는 그 후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고장이 났거나, 작아졌거나. 왜? 나는 그것들을 집안에 그리 오래 모셔 두었던 걸까?
그래도 '언젠가'는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다시 써먹을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맞다. 그것은 미련이었다. 외출할 때는 결코 입지 않을 옷은 집에서 막 입을 옷으로, 먹다 남은 술은 요리용으로, 빈 선물박스는 정리용으로 쓰임새를 격하시키면 어떻게든 다시 써먹어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리 활용되는 물건들은 많지 않았다.
외출용 옷은 집에서 입기에 편치 않았고, 새 술 먹을 때도 배달음식이었는데 남은 술 쓰자고 요리를 할 가능성은 희박했으며, 빈 박스에 정리할 물건들을 가려내는 작업을 할 시간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용도를 다한 B급, C급 물건들이 집안에 하나 둘 씩 쌓여가는 동안 공간 역시 본연의 쓰임새를 잃어갔다.
앉을 수 없는 소파, 음식보다 잡동사니가 더 많이 올라간 식탁, 더 이상 수납이 불가능한 서랍들로 꽉 찬 이 공간에서 '언젠가의 필요'는 늘 잘 정돈되어 있는 집 밖의 새 상품으로 해결되었고, 당장의 필요가 해결되고 남은 것들은 이제는 그저 습관적으로 남는 공간 어딘가로 비집고 들어가곤 했다.
한 달은 눈에 보이는 '잡동사니'들을 집 밖으로 내보내는 것만으로도 눈 깜짝 할 사이에 흘러갔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물건이 빠져나갔는데도 걱정했던 '불편'은 정말 1도 없었다. 불편은커녕 신기한 홀가분함이 찾아왔다. 그것은 오래 참아 왔던 '근심'을 비로소 풀어내는 그 순간의 느낌과 너무나 비슷했다.
세상에나 세상살이 정말 별 거 없구나!! 몸 안의 노폐물만 제때 밖으로 내보낼 수 있어도 누릴 수 있는 이토록 가까운 '천국'을 두고 참 어렵게 돌고 돌며 헤매어 다녔구나! 하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바로 그 순간 말이다.
그 엄청난 해방감에 비하자면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는 공간의 변화는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