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숙
- 조회 수 5482
- 댓글 수 8
- 추천 수 0

지난 주말(8월 2일) 이태리계 젊은 뉴요커 마이클 콘스탄티니가 모티프원(Motif#1)을 찾았다. 그는 그리스와 터키를 돌다가 한국까지 오게 되었다. 한국의 문화에 매료된 그는 당분간 한국에 눌러 앉을 방법을 찾다가 과천의 한 기관의 영어 교사가 되었다. 평소 관심을 갖고 헤이리를 주목하던 그는 주말 휴가를 이용해 모티프원(www.motif1.co.kr)에서 하루를 묵었다. 그는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짧은 글을 남겼다.
Sometimes when I look at the sunset, I would only see the light.I would never notice the life around me. Now, being here, in this lovely country, I have come to appreciate what the 'view' is supposed to look like.Thank you for showing me the proper direction to look. I will never forget this. Ciao.
'때때로 저녁 노을지는 하늘을 바라볼 때 전 단지 그 빛만을 보았지요. 제 주위의 삶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못했답니다. 이제서야, 여기, 이 사랑스런 나라에서 '풍경'이란 어때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풍경을 보는 바른 방법을 내게 가르쳐주신 (이안수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2008년 8월 3일 마이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다지 넓지도 않은 모티프원에 손님으로 놀러 와서,주인장과 몇 시간 대화를 나눈 것밖에 없는 그가 그런 고백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마이클은, 그곳을 방문했던 우리가 전에 그랬던 것처럼, 전날 저녁 모티프원의 주인장 이안수씨와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몇 시간의 편안한 대화가 그에게 무언의 영감을 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지금껏 여러 나라를 떠돌며 많은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풍경들과 만났을 것이다. 젊은 그가 정착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도는 건 단지 이국적인 풍물을 보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숱하게 해지는 광경을 보았지만 그 속에서 정작 삶은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마이클은 이제 다시는 어제의 그일 수 없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집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체험을 한다는 것이다. 모티프원은 디자인과 건축 자체만으로도 할 얘기가 많은 집이다. 그 동안 수많은 잡지에서 다투어 이 집을 소개했고, 많은 패션 모델들이 화보를 촬영하러 들렀었다. 그러나 나는 이 집의 구조나 모양새보다는 이 빼어난 집의 주인장에게 관심이 있고, 그를 소개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모티프원엘 다녀가는 사람들 중에는 마이클과 같이 감동적인 메시지를 남기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절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통상적인 손님과 주인 간의 관계에서는 나올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마이클의 글에 풍경이라 명명된 것은 바로 이 집 주인장 이안수 그 사람이 사는 삶의 방식이고, 그의 삶이 대표하는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이름하는 것일 것이다.
나 역시 모티프원의 손님으로 이안수 선생과 대면한 적이 있다. 지난 12월, 12주 프로그램을 잘 마친 첫 모닝페이지 기수들과 쫑파티를 그곳에서 했다.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싶었던 우리들은 모닝페이지의 이념대로 뭔가 색다르고 창의적인 공간을 찾고 있었다. 긴 시간, 여러 경로를 통해 가장 적합한 장소를 찾던 우리들에게 갑자기 다가온 것이 바로 모티프원이었다. 우리는 그토록 멋진 공간이 우리에게 찾아와 준 것이 동시성(chronicity)이라며 기뻐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흥분시킨 것은 집 주인의 철학이었다.
나는 준비해간 CD를 그에게 선물하였고 사진 전문가인 그는 손수 우리 활동을 사진에 담아주었다. 그는 늦은 밤까지 잠자지 않고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된 그의 서재 라이브러리영(Library zero:)에서 우리와 함께 영화를 보았다. 나는 그가 궁금했고 특별한 집을, 특별하게 운영하는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적어도 그 집은 그가 꿈꾸는 여행을 앉아서 멋지게 실현하는 또 하나의 획기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는 것으로 그날 우리의 프로그램은 모두 끝났지만, 우리 몇은 물러서지 않고 그와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에게 많은 질문을 했고 그는 진심으로 우리와의 대화를 즐겼다. 그날 밤 우리의 대화 속에는 우리를 둘러싼 7,000권의 책들도 함께 하였다.
그의 집 모티프원은 말 그대로 ‘삶의 제 1 동기’,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최고의 이유’ 를 뜻한다. 그는 그곳에 들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모티프원을 꼭 찾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초부터 이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지었다.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모티프원이기 이전에 그의 삶의 모티프 원이다.
20년쯤 여행과 디자인 관련 월간지와 단행본을 만드는 일을 하던 그는 나이가 지긋해진(그러나 무엇을 포기할 만큼 늙지는 않은) 어느 날, 낯선 땅과 낯선 공기 속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오랜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 실업자가 되었다. 그는 떠나기 위해 보따리를 쌌고, 뜬금없이 시카고 교외 머다나 대학의 늙은 유학생이 되었다. 애초 공부에 뜻을 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2003년 여름방학을 맞아 지도와 코펠만 들고 4개월간의 북미 여행에 나섰다. 두 다리와 대중교통, 히치하이크를 동원해 대학기숙사, 유스호스텔, 길에서 만난 여행자의 자동차 안, 현지인의 집, 택시 회사 사무실, 심지어는 게이클럽까지 전전하며 미국의 메인 주들과 캐나다의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퀘벡의 오지를 포함 15개주, 90여개 도시를 돌았다. 걸어보지 못했던 길에 대한 원한을 어느 정도는 풀었다 생각할 즈음 그는 귀국했다. 당시 호구지책을 책임지던 아내를 더 이상 혼자 버려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을 하러 나가는 아내 대신 설거지하고 밥하는 생활을 시작하였다. 아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것 때문에 항상 세계의 길 위에 있을 수 없는 현실이 슬펐다. 고민 끝에 그는 그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신통한 묘안을 찾았다. '내가 나갈 수 없으면 그들을 오게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세계의 여행자들을 내 집으로 끌어들여 그들과 내 집의 서재에서 수다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가 가고 싶어 안달인 그곳의 내음을 묻혀다 그의 코 앞에 풀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구체적인 결단의 결과가 오늘의 헤이리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여러 넘어야 할 산들이 있었다. 먼저는 자신을 위해 마냥 꿈을 희생하라고 강요할 수 없는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야 했고, 자신이 꿈꾸는 공간을 만드는 하드웨어 구축에 소요되는 경제적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그는 예술이 생활과 분리되지 않는 공간 안에 살고 싶다는 단 하나의 희망으로 헤이리 마을에 땅을 분양 받아 놓고 있었다. 당시 토지 분양가는 아주 쌌다. 그러나 그것이 그가 20년 고생한 결과로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건축 디자인과 시공에 드는 비용은 제대로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숱한 미무(迷霧)의 고개를 넘는 동안 도움의 손길들을 많이 만났다. 그 집을 멋지게 설계해준 조민석 작가가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50년 가까이 한국에 살면서 이 땅에서 생을 마치는 것에 회의를 가졌었다.그러나 미국에서의 짧은 유학과 북미 유랑 4개월의 경험을 통해 지구 어딘가 한국과는 다른 유토피아가 존재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버렸다. 이 땅에 내 집을 두지 말자던 그가 2003년 한국에 돌아온 즉시 건축을 감행한 이유이다. 그 때 그는 설계를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수십 명에 달하는 헤이리 건축가 풀에서 가장 젊고 실험적이며, 한국에서의 건축 경험이 제일 적은 사람 순으로 접촉하자는 게 당시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에서 수학하고 국제 경력을 쌓다 한국에 갓 입성한 조민석 작가를 마음 속으로 지명하였다.
글로 평생을 벌어먹은 사람답게 그는 가족의 성장 배경과, 성향, 그리고 그의 가족이 그 집에서 기대하는 것, 자신이 그 공간에서 이루고자 하는 후반기 삶의 내용 등을 수십 페이지의 리포트로 만들고 자기가 생각했던 공간들의 이미지를 넣어, 자신만의 건축 설계안을 준비했고, 그것을 들고 조민석 작가를 만났다. 반려될 게 뻔한 까다로운 요구에, 건축에 넉넉한 비용을 할애할 형편도 아닌 것을 강조하면서 그는 한없이 주눅이 들었다. 그런데 그의 설계안을 꼼꼼히 훑어본 조민석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마디 던졌다.
“대단히 도전적인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그 후 1년 이상의 숱한 조율 끝에 모티프원의 설계도가 완성되었다. 집이 완공되기까지 그는 여러 좋은 인연과 연결되었다. 그중에서도 북한산 아래, 세상에서 제일 작은 컨테이너 찻집을 운영하며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계신 다니엘과 젬마 부부는 조민석 작가를 통해 만난 소중한 인연이다. 그렇게 해서 그의 집은 그의 생각대로 지어졌고, 그의 생각이 숨쉬는 그 집에서 그는 오늘도 세계 각국에서 각자의 마음 속 그 어딘가에 도사린 여행의 미혹을 끊지 못하고 떠나온, 갖가지 사연의 사람들과 그의 서재에서 만나는 황홀을 누리고 있다.
일본 현대회화의 우뚝한 별, 나카무라 카즈미씨, 우쯔노미아 미술관 관장이자 미술평론가인 아라타 타니씨, 중국예술계의 거두인 중국미술관 관장 판디안씨, 포셀린 페인팅의 세계적인 권위자 독일의 한스 바우어씨, 홍콩의 건축가 게리 챙씨, 이탈리아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안토니오씨,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김세정씨와 바이올리니스트 올리비에 퀘라스씨 등이 그의 모티프원의 밤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때로는 제주도에서, 때로는 부산 혹은 광주로부터 달려와 삶의 짙은 앙금을 풀어놓곤 하는 미지의 친구들.. 그는 길 떠날 수 없는 처지를 이토록 멋지게 위로 받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온 이가 모티프원에 들면 그는 뉴질랜드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고, 동해에서 갓 돌아온 여행자가 그곳에 짐을 풀면 그는 동해를 다녀온 듯한 착각 속에 빠진다.
그곳을 방문해 그와 함께 밤을 보낸 이들은 하나같이 그를 자신의 나라로 초대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또 하나의 꿈을 꾸게 되었다. 10년쯤 뒤 모티프원을 방문했던 그들을 찾아 세계를 여행할 꿈이다. 이미 15개국 쯤의 사람들이 모티프원을 다녀갔고, 10년 뒤면 80개국, 200여 지역 이상의 사람들이 세계의 도처에서 그의 방문을 즐겁게 기다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흥분된 여로를 위해 기꺼이 일년 쯤을 할애할 생각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길을 떠나고 싶은 이유는 바로 ‘사람’이다. 나의 가슴을 달뜨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 내게 참을 수 없는 순수로 다가오는 그들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피어스의 근면과 RJ의 꿈, A의 고통과 클리프의 재능, 데니스의 외로움과 낸시의 정... 이것들이 자꾸 나를 안달나게 한다. 과거의 향수와 현재의 욕망이 만나는 솔기의 시접을 들추어보는 듯한 도시의 뒷골목과 600 킬로쯤 외길 만이 존재하는 툰드라의 숲도 여전히 구미가 당긴다. 하지만 나의 여행 욕망을 잠재울 수 없게 하는 것은 그 욕망하는 도시의 한 구석에서 선홍색 순수의 피를 가진, 내 심장을 뛰게하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댓글
8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소은
'부의미래'를 정리하다가 오늘 새벽 문득, 만족스럽지 못한 리뷰를 올리고 계속 찜찜한 기분 속에 지내느니 차라리 리뷰를 올리지 말자고 자신을 위로합니다. 사실, 뉴질랜드 여행을 어레인지하다 보니 제가 두 가지에 마음을 분산할 만큼 여력이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시간에 쫓겨 두 가지 일을 손에 잡고 허둥대는 제 모습에서 둘 다 잘하고 싶은 허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행에 계속 매진하기로 했습니다.
뉴질랜드 현지 렌트카 회사, 각 캠프장 사이트, 관광지, 그외 필요한 모든 것을 모두 컨택하고 만약의 경우를 위해 예약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곳에 도착하는 때가 주말이라 그곳 모든 사무실이 문을 닫기 때문에, 현지에 당도해서 예약한다는 것은 사실, 매우 불안합니다.
우리가 단체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구요.
거기다 아무리 경험이 많다해도, 현지에서 대충 순발력으로 떼울 수 없는 것은, 그곳이 제게 첫 여행지이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건 부탁드리지만, 지금 몰두하는 일은 누구에게 부탁할 수도 없습니다. 개입하는 사람이 분산되면 더 혼동이 생기거든요.
변명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닌데 변명이 되고 있네요.
사부님, 최선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한 번 페이스를 잃으면 회복하기 힘든 경우가 있지만,
여행이 끝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다시 스스로 위로해봅니다.
일단 뉴질랜드 여행 끝내고 나서, 열심을 다시 내 보겠습니다.
동료들에게도 죄송!!!!
.
뉴질랜드 현지 렌트카 회사, 각 캠프장 사이트, 관광지, 그외 필요한 모든 것을 모두 컨택하고 만약의 경우를 위해 예약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곳에 도착하는 때가 주말이라 그곳 모든 사무실이 문을 닫기 때문에, 현지에 당도해서 예약한다는 것은 사실, 매우 불안합니다.
우리가 단체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구요.
거기다 아무리 경험이 많다해도, 현지에서 대충 순발력으로 떼울 수 없는 것은, 그곳이 제게 첫 여행지이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건 부탁드리지만, 지금 몰두하는 일은 누구에게 부탁할 수도 없습니다. 개입하는 사람이 분산되면 더 혼동이 생기거든요.
변명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닌데 변명이 되고 있네요.
사부님, 최선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한 번 페이스를 잃으면 회복하기 힘든 경우가 있지만,
여행이 끝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다시 스스로 위로해봅니다.
일단 뉴질랜드 여행 끝내고 나서, 열심을 다시 내 보겠습니다.
동료들에게도 죄송!!!!
.

나그네
<한국의 글쟁이들>에서 이곳의 존재, 연구원제도 이런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심하게 마음이 동해서 이곳을 처음 들렀고 우연히 둘러보다 이 글을 읽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덧글.
모티브원 이안수 주인장님은 십수년전 저의 직장 상사이셨습니다. 편집장님이셨지요.
모티브원, 마음은 굴뚝이어도 여적 찾아뵙질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글로나마 옛 상사님의 삶을 접하니
반갑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예전 이안수 부장님은...^^... 독특한 분이시긴 했지만 지금의 이런 삶을 사시리라고는
상상이 잘 안되던 분이셨습니다.
뜬금없이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이런 말이 떠오르네요.
갑자기 들러 몇자 적고 물러갑니다. ^^*
VR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