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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마을의 모습이 사라진 폐허. 집들은 무너져 내려 잔해만 남아있다. 무너진 담장, 부서지고 흩어진 벽돌, 여기저기 널려있는 건자재.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폐허를 배경으로 한 여자가 울고 있다. 울고 있는 여자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다. 여자의 한쪽으로는 결혼사진으로 보이는 제법 큰 사진이 무너진 담장 위에 놓여있다. 여자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무너진 집터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중국 쓰촨성의 어느 날을 찍은 사진은 수백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해준다. 활자를 앞서는 이미지의 힘이다. 사진 속 여자가 앉아있는 곳은 예전 자신의 집이었을 것이다. 사진 속의 모습은 결혼식 때였음이 쉽게 짐작이 된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대지진이 지나가고 여자는 혼자 남았다. 집도, 사랑하는 사람도, 추억도 한 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거짓말 같은 현실 속에서 여자는 다시 그 자리를 찾았다. 결혼식 때의 사진을 들고 웨딩드레스를 입고서. 그리고 추억만 남아있는 폐허에서 오열한다. 지진의 폐허 위에서 울고 있는 웨딩드레스의 그녀. 그녀의 사랑의 무게는 세상의 저울로는 재기 힘들 것이다.
서울서 멀지 않은 김포 대곳면. 3학년 2반 교실에서는 수업이 한창이다. 무릎높이 밖에 되지 않는 책상과 앉으면 바로 주저앉을 것 같은 걸상들. 1970년대 책상과 걸상에는 21세기의 꿈나무들인 세련된 아이들이 앉아서 풍금을 치는 선생님을 따라 노래하기 바쁘다.
김포 덕포진의 교육사 박물관. 그곳엔 추억이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담겨있다. 1층에는 30여년전 교실이 있고 난로와 그 위에 쌓인 도시락들이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교복과 교련복, 지금은 보기 힘든 지폐와 동전도 있다. 2층은 ‘교육자료 100년전’. 일제시대 자료부터 비교적 근래의 교과서등 학습 자료가 자리를 잡고 있다. 3층은 ‘농경문화 전시관’. 추억 속에서나 존재하는 농기구들이 가득하다. 아궁이에 불을 피울 때 공기를 불어넣던 풍구부터 키, 채, 달구지등이 지난시절을 새삼 떠올리게 만든다.
교육박물관은 소장하고 있는 사료보다 더 귀한 사랑이 있다. 박물관을 만든 김동선, 이인숙씨는 20년 넘게 초등학교서 교사생활을 한 부부. 함께 교사 생활을 하던 중 1992년 부인 이인숙씨가 사고로 시력을 잃으면서 교사생활을 마감했다. 그런 이씨에게 남편인 김씨는 학생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도대체 어떻게…
부인 이씨가 교사시절 마지막으로 담임을 맡았던 3학년 2반은 그렇게 김포에서 다시 수업을 시작했다. 부인 이씨는 이제 학교가 아닌 박물관에서 수업을 한다. 시골의 조그맣고 정리되지 않은 박물관 이지만 부인 이씨는 풍금을 치고 노래를 하면서 매일 다른 학생들을 만난다. 그 학생들은 어느 날은 병아리 같은 꼬마들이고 어느 날은 늙수레한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이다. 건너기 쉽지 않았을 그들만의 사막을 사랑의 이름으로 건넌 부부는 이제 고개 너머 바다가 있고 푸른 숲이 둘러싼 교실에서 수업을 한다.
그날. 박물관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사람에게 운전을 맡기고 조수석에 몸을 뉘였다. 햇볕 가득한 차 안은 뜨거우면서 시원하다. 운전을 하는 집사람을 보며 내 사랑의 무게와 깊이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 나에게 그런 사막이 펼쳐진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 그 사막을 건널까. 건널 수는 있기나 한걸까. 제대로 한번 울어보기나 할 수 있을까. 햇볕 속에 스르르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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