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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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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31일 18시 11분 등록
뉴질랜드(일명 신질도(新質島))에 다녀온 지도 이제 일주일이 지났다. 뉴질랜드 체류기간인 7일 내내 급체끼가 있어서 너무나 힘들었다. 배가 체했다면 소화제를 먹으면 될 일이었지만, 눈(眼)이 체하니 어떤 약도 무용지물이었다. 일생 태어나서 그런 자연을 대면한 적이 없었던지라, 뇌도 놀랐지만, 그 첫번째 게이트인 눈(眼)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탈이 난 거였다. 그만큼 대단한 감동이였고, 결코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작품이었으며, 대단한 예술이었다.

자연을 만끽하던 여행 중 하루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나카 호수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퍼즐링 월드(Puzzling World)를 가보기로 하였다. 와나카 호수의 시원한 아침 풍경을 통째로 들여 마시고 싶었지만, 어른들만 자연을 즐기고 아이들은 다소 방치(?)한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우리 차 한대에 쌍둥이와 차칸양 주니어 그리고 정화이모를 싣고 그 곳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쉽게 찾으리라 생각했던 퍼즐링 월드는 쉽게 눈에 뜨이지 않았다. 게다가 6번 국도만 보고 가면 된다했는데, 표지판이 문제인지 내 눈이 문제인지 84번 국도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 길이 아닌가봐.... 쩝'.

어쩔 수 없이 유턴이다. 그리고 다른 길로 들어섰지만 아무리 봐도 이 길은 진짜 아니다. 다시 돌아야겠다. 차 뒷편에선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 놀고 있다. 일정상 빨리 가야 제대로 놀 시간이 확보가 되는데, 이렇게 해 매다가는 가더라도 놀지도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마음이 급해지니 자꾸 엑셀을 더 밟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간 네비게이션 길치 홍선생이 너무나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더 가니 드디어 '퍼즐링 월드 400M'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휴~ 안심이 된다. 재빨리 주차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한 사람이 정리 겸 청소를 하고 있다. 우리가 첫 손님인가보다. 티켓을 끊고 드디어 안으로 들어갔다.

퍼즐링 월드는 미로게임을 하는 곳이다. 사각형의 양 모서리에 각각 Yellow, Green, Blue, Red 이렇게 4개의 Tower를 세워두고 그 가운데를 널판지로 골목형태의 미로길을 만들어 목적지인 해당 Tower를 찾아가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다. 코스는 약 30분에서 1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Standard Course와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Difficult Course가 있었다. 간단한 규칙을 알려주고 아이들을 풀어 놓았다. 우당탕 쾅쾅~, 아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없이 뛰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와 정화 이모는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놈이 '찾았다!!'하며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아우성을 쳐댔다. 다른 두 녀석의 얼굴에 부러움이 올라온 것도 잠시, 두 녀석도 곧 타워에 올라가 얼굴을 내놓고 '나도 찾았다!!'하며 소리를 질러댄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저렇게 금방 찾나? 나도 빨리 찾고자 움직였지만 자꾸만 막다른 골목길이다. 헤매다 보니 만나는 건 정화이모뿐. 서로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가득 차 있다. '그래도 어른의 자존심이 있지, 이렇게 물러설 수는 없다'고 중얼거렸지만, 그래도 만나는 건 다시 막다른 길이다. 슬슬 머리 위로 열기가 올라올 즈음 드디어 타워 한개를 발견했다. 반가웠다. 자랑스러웠다. 타워에 올라선 채 '심봤다~!!'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체면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다른 타워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하지만 이번엔 더 어려웠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두번째, 세번째 그리고 마지막 타워까지 정복하였다. 이건 게임 자체가 안되는 거였다. 아이들을 불렀다. 가지고 간 간식을 꺼내 먹이고 이번엔 조금 더 어려운 코스로 아이들을 집어 넣었다.

하지만 아이들 특히, 쌍둥이 녀석들은 어려운 코스도 금방 찾아냈다. 차칸양주니어는 이제 헤매고 있었다. 쌍둥이 녀석들이 의심스러워서 불렀다. 그리고 아래 위를 훑어보니 무릎쪽에 흙이 너무 많이 묻어있다. 옳커니. 널판지로 만든 길 아래쪽은 약간의 공간이 있는데, 녀석들은 길이 막히면 그 공간으로 넘어 다녔던 거다. 그러니 미로찾기가 쉬울 수 밖에. 그러면 반칙임을 주지시키고 다시 게임을 시켰다. 그러니 이제 본격적으로 모두 다 헤매기 시작했다. 공평했다. 다행이었다. 어른의 자존심이 세워지는 듯 했다.

하나의 타워를 찾는데 10분이상을 헤매다 보니 이제는 화가 슬슬 치밀기 시작한다. 그러다 간신히 타워를 찾게 되면 그 화가 누그러짐과 동시에 만족감이 입가로 번져온다. 자긍심과 자만감이 동시에 나를 채운다. 그리고 다시 미로 속으로 들어간다. 역시나 또 헤매기 시작한다. 머리 속으로 길을 외우고 하나하나씩 지워가며 길을 선택하지만 어느 순간 보면 다시 그 자리다. 이제는 얼굴 까지 빨개져 온다. 스스로를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화가 난다. 헐크가 되어 널판지를, 이 미로를 하나도 거칠 것 없는 깨끗하고 넓은 운동장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하지만 참는다. 나는 합리적이며 논리적인 이성인이고, 어른이기 때문에.

순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한국으로 치면 늦가을처럼 푸르르고 높다란 하늘이 너무나 맑게 펼쳐져 있다. 그 하늘 끝 하이얀 눈 옷을 걸친 산이 그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한쪽 하늘 아래엔 초지로 가득찬 산이 있고 그 초지 안에 구더기처럼 꿈틀거리는 양의 무리들이 한가로이 놀고 있다. 시원하고 넓으며 쾌적한 자연이 바로 가까이에 있는데, 난 왜 이 안에서 이러고 있을까.

미로 안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갈지 모른채 방황하고 헤매기만 하는 우리. 아니 이 곳이 미로인지도 모른채 앞 사람이 가는데로 그냥 무작정 따라가고만 있는 우리. 어쩌다 우연하게 타워를 발견하면 인생의 성공인냥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자랑스러워하다가 다시 미로 속으로 들어오면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그냥 살아가는 우리. '인생 뭐 있어?'라며 애써 자위하지만, 사실 인생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뭐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미로 안에서 타워(눈 앞의 목표)를 먼저 찾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과연 선의의 경쟁이라 표현하는게 맞을까? 타워를 먼저 찾은 사람은 정말로 성공한 사람일까? 아니 좀 더 넓게 생각해서 정작 우리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이 미로 안이 아닌 저 바깥 자연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린 우물 안 개구리마냥 이 미로 안에서 머리 부대끼며 쓸데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보다 넓게 생각하지 못하고 눈 앞에 보이는 결과물에만 급급해 소위 '잔머리'만 굴리고 있는건 아닐까?

미로 안에서 보는 자연은 너무나 황홀했다. 그 곳은 내가 평생 머물고 싶은 곳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 곳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기 전에는 결코 볼 수 없는 곳이었다. 현실에만 급급한 사람들에게 자연은 그 모습을 허락치 않았다.

이제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하늘을 봐야만 겠다. 아무리 바빠도 현재의 바쁨에서 잠시 손을 떼고 나를 다시 돌아봐야만 겠다. 내가 진정 가야할 곳으로 가고 있는지,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인지,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현재에 파묻혀 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개/들/어 하늘을, 맘껏 마셔봐야 겠다. 그 맛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킬 때까지.

IP *.178.3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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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환
2008.08.31 18:37:21 *.34.17.28
대타도 없이 혼자 운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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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8.31 22:29:58 *.179.68.77

먼저 도착한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내 안의 행복을 찾아 인내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귀환을 통해 많은 것을 되돌아보실 수 있는 것 같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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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9.01 17:38:20 *.97.37.242
조옷타! 글 좋고. 표현 좋고. 의미 또한 훌륭하고...
뉴질랜드 미로 찾기가 차칸양을 한층 성숙 시킨듯 하군.
미로를 지나 차칸양의 천복을 찾아가길 바라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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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9.02 07:47:35 *.41.103.229
형이 헤메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더 미치는줄 알았어..ㅋㅋ
후미를 책임져 주신 차칸냥형님께 박수를~~~~~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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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9.02 13:33:45 *.247.80.52

미로를 헤매다가 그런 생각을 하셨구나.
끝까지 finish를 찾지 못해서 서운했지만, 뭐 미로에서 헤맨 기분도 괜찮았어요.
아이들은 열심히 뛰어나니니까 잘 찾기도 해서 그것도 부럽고.
미로에서 찍은사진을 떡하니 덧글로 달아드리고 싶은데... 여기엔 사진이 없네요. 나중에...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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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9.02 17:20:03 *.152.235.217

미로 찾고 도 닦기인가?

저두 뉴질랜드 자연에 체했나봐요. 돌아 오고 나니 이 치열한 한국에서의 싸움 같은 삶이 갑자기 허무해졌어요.
지구상 한 곳에 이렇게 넓은 땅 덩어리를 두고서 내가 여기서 왜 이리 머리 디밀고 싸우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바로 이 곳이 아닌가 싶더군요.

조만간 뉴질랜드에서 양치는 소녀 하나 발견하덜랑 전줄 아세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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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9.03 01:57:43 *.240.107.137
우주는 한달 쯤 양치다가 졸면서, 왜 이리 심심하지 할 게 뻔해. 그래도 한국이 재밌잖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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