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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31일 22시 19분 등록


8월 15일 34만 명의 대사면이 있었다. 죄를 지은 사람의 형벌을 면제하는 게 사면이다. 8․15사면이라 불리는 이번 사면의 특징은 사면된 사람 중 경제인이 많다는 것이다. 재벌 총수 등 많은 경제인이 사면되어 죄를 면제받고 자신의 삶터로 돌아갔다. 이번 사면의 또 다른 특징은 많은 사람들이 좋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조차 스스로 이번 사면이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사면을 단행한 이유는 “기업들이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 투자를 늘리고 고통을 분담해 달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죄를 면제해주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이 그렇게 좋은 선택이 아니고 탐탁치는 않지만 경제를 살리는데 힘쓸 것이라는 기대로 풀어주겠다는 말이다.
대사면이 있은지 열흘이 조금 더 지난 시간. 여당은 기업인에게 투자를 압박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일부에서 사면 받은 기업인들이 왜 투자를 안 하느냐고 하자 나온 말이다. 여당의 논리는 ‘기업인 사면과 투자를 연계하는 것은 반시장적’이라는 것이다. 덧붙여서 투자여건 개선을 위해서 기업들과 약속했던 규제 개혁, 법인세 인하 등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사면해 줬다고 투자를 압박하면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말까지 했다.
사면을 할 때의 정부 말대로라면 기업인들에게 사면을 해 준 것은 분명히 부정적인 일이었다. 그럼에도 사면을 해줬다. 그 이유는 죄를 사하여 줄 터이니 경제를 살리기 위한 투자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보름도 지나지 않아 여당에서 기업인을 압박하지 말라고 한다. 반시장적이라는 말까지 동원했다. 시장경제를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견주어 보면 반시장적인 일은 해서는 안 될 일로 보아야 한다. 게다가 규제개혁이나 법인세 인하도 해주지 못했는데 투자하라고 압박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마치 미안하다는 말투다. 해줄 것도 제대로 못해줬는데 자꾸 부담주지 마라. 이런 논법이다. 가히 ‘기업의 시대’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새로운 사회민주주의를 꿈꾸는 자크 아탈리의 말을 들어보자. 사회민주주의자라고 하면 곁눈으로 보는 사람이 있을 테니 그냥 미래학자라고 하자. 명망 있는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그의 저서 ‘인간적인 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장 민주주의는 부정할 수 없는 삶의 형식이 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에 대한 시장의 승리로 인해 국가는 시장이 조장하는 소득과 자산의 불공평한 분배구조를 바로잡을 수단을 박탈당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투명성은 불공평에 대한 인식과 평등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시장의 효율성은 시장에서 자기 자리를 잡아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에게 최상의 보상을 해줄 것을 요구한다. 민주주의는 원칙상 각 시민에게 같은 권리를 인정하지만, 시장의 다양한 주체들 사이의 역학적 관계는 국민 전체 소득 중 임금노동자의 몫을 줄이는 쪽으로 움직인다. 민주주의는 정치권력을 가난한 다수에게 주려고 하는 반면, 시장은 부유한 소수에게 경제적 권력을 부여한다.’
또 한사람의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말도 들어보자.
‘다가올 시대의 가장 큰 화두는 <정부와 문화 영역이 크게 축소되고 상업 영역만이 인간 생활의 으뜸가는 매개 고리로서 남아 있는 상황에서 과연 문명이 살아남겠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과정에 너무나 깊이 얽혀 있어, 이제 우리는 인간사를 시장이 아닌 다른 틀로 이해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시장은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으로 파고 들어오는 힘이다.’
시대를 뛰어넘어 미래를 읽는 두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이미 시장의 힘에 사로잡혀 있다. 정부는 영역이 줄어들고 상업영역이 삶의 으뜸가는 매개 고리가 되었으며, 시장의 효율성은 시장에서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에게 최상의 보상을 해주며 부유한 소수에게 경제적 권력을 부여한다.

현대는 경제의 시대이다. 경제는 이 시대의 모든 것이고 이 시대의 모든 길은 경제로 통한다. 각국 대통령마다 경쟁적으로 “나는 세일즈맨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구호를 외쳐댄다. ‘경제를 살리는 대통령’은 지상과제 이고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정책의 주요한 기둥이 된다.
경제의 주체는 누가 뭐래도 기업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기업 활동이 촉진되고 기업이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호황이 와야 경제가 살고 사람들도 형편이 좋아진다. 결국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좋아지려면 경제가 살아나야 하고, 경제가 살아나려면 기업이 돈을 잘 벌게 되어야 한다.
기업의 역할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기업이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누구를 위한 호황이고 누구를 위한 기업의 수익이냐는 것이다. 기업의,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시대로 불러도 좋을 이 시대에 누구를 위한 ‘기업 지상주의’인가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조건 경제는 살아나야 하고, 기업은 잘되어야 한다. 경제가 살아나야 하는 이유, 기업이 잘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다. 목적을 잊고 수단에만 함몰되고 있다. 아니면 시대를 끌어가는 이념의 조류에 자신도 모르게 쓸려가고 있다.

‘기업은 사람이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은 잭 웰치다. GE를 20년 동안 이끌며 세계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어낸 잭 웰치는 5년간 11만 명을 해고한 사람이다. 건물은 그냥 두고 사람만 골라 죽인다는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도 ‘기업은 사람’이라고 외친다.
기업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의 주체는, 삶의 주체는 인간이고,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서 움직인다. 사람들은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믿어왔고 그러하리라고 여기고 살아왔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지금도 그렇게 가르친다. 그러나 교과서에서 보던 글은 학교를 나서면 마술의 책에 쓰여 있는 글자처럼 스르르 사라져 버린다. 대신에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책의 글들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자크 아탈리나 제러미 리프킨처럼 시대를 읽어가는 혜안이 들춰낸,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회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아탈리가 말한 시장 민주주의는, 그리고 리프킨이 말한 상품시장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이용하고 도구화 한다. 현대를 꿰뚫는 경제라는 화두가, 기업이라는 경제의 주체가 이미 그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미 기업은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고, 그 힘을 이용해서 대중에게 자신들이 필요한 부분만 강요하고 있다. 문화와 감성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대중들의 가슴에 호소라는 껍질을 씌운 세뇌를 하고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사회의 구조 자체를 바꾸려고 시도 한다.
정부는 경제를 살려 인기를 얻어야 한다는, 실적을 내서 업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욕심에 기업을 압박하지 못한다. 대중들은 돈의 논리에, 남부럽지 않을 만큼 재산을 누려보겠다는 원초적 욕심에 의해 기업에 끌려간다. 대중들은 경제가 살아나고 기업이 수익을 많이 내면 자신의 살림도 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그런 기대에 휩싸여 있는 대중의 입에서는 어렵지 않게 기업인의 논리가 흘러나온다. 자신도 모르게 이미 기업의 논리에 푹 젖어있는 대중들은 언젠가는 자신들의 목을 죄게 될 기업인의 논리를 애용한다. 지금 당장은 자신의 차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간단한 이유 하나에 대중들은 기업에 쉽게 종속화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 관료처럼 생각하고 기업인처럼 말한다. “노조가 문제야.” “시위를 하면 경제가 타격을 받아.” 그래서 노조가 깃발을 들고, 어느 집단이 길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면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한다. 그들의 논리는 비슷하다. 사회가 혼란해지고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들이 기업들의 활동이 위축 되어서 경제가 어려워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국가적 차원의 사고가 아니다.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이 적어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그 근원이다. 그러나 반대로 한번 생각해보라. 경제가 좋아지고 기업이 막대한 수익을 올렸던 시절에 대중들의 주머니가 풍족했었는지를.
기업이 이 시대의 절대선(善)이 아니듯 노조나 사회단체도 절대선(善)은 아니다. 세상에 절대선(善)이라고 부를 만한 가치는 많지 않다. 그래서 많은 것들은 함께 걷고 함께 뛰고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현재의 조류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경제는 절대적인 시대의 과제이고 기업은 그 과제를 풀어낼 핵심 키워드다. 세상은 그리고 사람은 기업이라는 키워드에 모든 것을 내맡긴 듯 하다. 기업이 지배하는 시대라고 부를만한 거스르기 힘든 흐름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흐름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러한 수용 뒤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원하지 않았지만 필요에 의한 것도 있고, 스스로 원해서 적극적으로 달려든 것도 있다. 한편으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논리로 자리 잡은 것도 있고, 한편으로는 강요당한대로 살다보니 제 모습처럼 변해버린 것도 있다.
그러한 흐름에 몸을 맡긴 사회는 이제 다양화 다원화라는 말을 잊어버렸다. 모든 것은 절대선(善)이라고 불릴 수 있는 하나에 종속되어야 하고 그것에 거스르는 논리는 묻혀버렸다. ‘잘살아보자’는 개발독재시대의 구호가 대중의 삶을 옥죄던 긴 시간이 있었다. 하나의 구호아래 모든 가치는 무릎을 꿇어야 했고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잘살아야한다’는 하나의 목표아래 사람이 짓밟혔다. 잘살아야 하는 것은 사람임이 분명할 텐데, 구호의 목적이었던 사람은 구호를 위해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수단이 목적을 무참하게 짓눌렀다.
민주화라는 시기를 지나고 새 밀레니엄 이라는 시간까지 지나간 시점에서 다시 그 시대의 구호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제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은 없다. 개발독재라는 체제도 없다. 상대적 빈곤이 문제가 될 뿐이지 악을 써야 하는 시대는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시 악을 쓰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악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자신이 종속화하고 자신이 도구가 되어가는 것을 모른다. 그 시점에 사람들이 서 있고 기업이 서 있다. 그들은 함께 서 있기만 할뿐 함께 걸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상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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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8.31 22:49:06 *.179.68.77
"사람들은 다시 악을 쓰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악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자신이 종속화하고 자신이 도구가 되어가는 것을 모른다. 그 시점에 사람들이 서 있고 기업이 서 있다. 그들은 함께 서 있기만 할뿐 함께 걸으려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안철수씨 책을 잠깐 읽었는데.........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추신 : 형님~ 칼럼 속도 너무 내시는거 아닙니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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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9.02 07:46:09 *.41.103.229
형님! 기업이 그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세상이 달라지겠죠.
그렇더라도 개인의 가치가 조직의 가치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아탈리의 '인간적인 길'은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를 다시 만들어 갈수 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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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9.02 11:06:39 *.97.37.242
기업도 변화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네.(결과가 아직은 신통치 않지만.)
자크 아탈리나 제레미 리프킨이 시장경제, 시장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면
이번 달에 읽게 될, 짐 콜린스나 안철수는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 할 것 같은데,

9월 과제를 읽고 나면 답을 구하기가 좀 쉬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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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9.03 22:23:11 *.36.210.220
바뀐 툴을 몰라 왜 이리 덧글을 달 수 없나 한참 고민했네. 어려버. ㅋㅋ 신문의 한 칼럼을 읽는 듯 하네. 카랑카랑 해서 좋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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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08.09.04 21:09:00 *.47.182.103
대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한다해도 고용이 늘지 않을 것은 분명합니다.  반도체, LCD  등에 대규모 시설투자는 하고 있지만 이런 첨단 업종은 고용 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중소기업이 독자적 기술력 확보가 안되어 있는 상태에, 대기업에 종속되어 있고, 금융자본의 도움은 불가능하고,
대기업의 납품단가 이하 요구는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니 연구개발은 엄두도 못냅니다. 인력을 줄이는 방법외는 없습니다. 대부분 아웃소싱형태로...
경공업산업 분야- 섬유,염색,봉제,완구등은 중국으로 이전했고(중구에서도 곧 이전해야 하겠지만)
백색가전 분야도 국내 몇몇 곧을 빼고는 중국으로 이전했고
산업 공동화 현상은 가속되고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고 - 보통 국가는 건설 토목 분야가 12%를 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20% 정도 되구요.
너무 규모가 큽니다.
전세대란..뉴타운 때문에 서민들만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고용의 질은 분명히 악화될 것이 분명합니다.
 100%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자동차 회사도 있다고 합니다. 
맞교대로 일하면서 월150~180만원 급여를 받습니다. (관리자들은 꿈의 공장이라고 합니다.)

신문을 보면 <고용창출>이 이념적 구호로 보입니다.
투자=고용창출
경제발전=고용창출
그런데 실제로는 고용창출이 이루어 지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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