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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31일 22시 31분 등록
분주한 아침 출근시간.
나는 8시쯤 집을 나선다. 10시까지 출근이지만 이동시간이 있기 때문에 9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일반 직장인들과 같은 시각에 집을 나서는 것이다. 열심히 걸어 회사 셔틀을 타는 곳으로 도착, 버스를 기다리는 일상이다.
셔틀이 도착하고 버스에 올라서면 이전 장소에서 먼저 탄 동료들이 창가 자리를 모두 하나씩 꿰어 차고 있다. 나는 되도록 덩치가 큰 남사우들을 피해 여사우 옆에 앉기 위해 열심히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자리를 탐색하고 햇빛이 비쳐 밝은 곳을 선택해 앉는다. 1시간 30분 정도의 버스탑승 시간을 고려할 때 자리의 편리함 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 자리에 앉으면 이제 이어폰을 귀에 꼽고 책을 펴 든다. 나에게 축복받은 것들 중 하나를 꼽으라면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아무런 신체적 반작용 없이 마치 고정된 의자에 앉은 것처럼 한가지 것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때로는 일정하게 움직이는 차의 흔들림이 자장가로 느껴져 눈이 스스륵 감기며 잠을 청할 때도 있다.

이렇게 나의 출근은 1시간 30분 가량을 오롯이 버스에서 보내면서 시작하게 된다. 퇴근시에도 마찬가지이다. 1시간 30분 정도를 되짚어 집으로 9시면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결국 하루에 총 세시간. 이동을 위해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
나의 평일 시간은 오로지 직장과 그를 위한 이동 시간에 바쳐진다.

“도시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이동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누구나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을 노예화시키는 이동 시간은 동시에 소비와 노동의 시간으로도 활용된다.- 209P, 자크 아탈리 <미래의 물결> 중에서”

매일 서울 강북에 있는 나의 집에서 경기도 분당으로 매일 출퇴근하는 모습처럼 모두에게도 이러한 장거리 이동은 자연스럽게 감수해야 할 것이 되었다. 물론 회사 근처로의 이사 혹은 집 근처의 회사를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다른 성질의 얘기가 될 것이다. 어쨌든 이전보다 길어지고 빈번해진 이동 시간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많은 회사들 또한 이러한 것들을 인식하기에 회사가 있는 지역과 상당히 떨어진 곳으로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하기도 한다.

이동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버스에서의 시간을 좀 더 알차게 쓰기 위해 다양한 방안들을 궁리해 보곤 한다. 책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평소 시간이 부족해 놓치게 되는 중요하고 유익한 동영상들도 휴대용 기기에 넣어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준비해 둔다. 또 해야 할 회사 일이 있는 날에는 일도 한다.
좀 더 시간을 쪼개 쓰기 위해 다양한 정보와 기기들로 무장하고 이동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더 이상 버스의 용도가 이동을 위한 잠깐의 이용이나 여행을 위한 낭만적인 장소가 아니다. 나에겐 이동 수단이 아니라 내가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중요하게 보내야 하는 또 하나의 장소가 된 것이다. 같이 버스를 타는 동료들도 마찬가지이다. 모두들 아침 신문이며 각종 전자기기, 노트북들을 챙겨 버스에서의 나름의 시간들을 활용한다.

종종 셔틀에서 잠이 들어 버리는 날이면 그렇게 날려 버린 시간이 너무도 아까워 안타깝다.하루 중 내 자신을 위해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기회를 날려 버린 것이 너무나 애달다. 또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를 쓰면서도 종종 밀려드는 회의감과 상실감들은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런 하루하루 일상들이 가끔은 무겁고 성가시며 지겹게 느껴진다. 매일 매일 시간을 의식하며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는 그런 삶이 마냥 싫증이 나는 것이다.
과연 하루를 상쾌하게 기지개를 켜며 시작하고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여유를 가지고 책과 음악들을 감상할 수 있는 날들은 요원한 것일까?

현대사회에서 자기가 이루려 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것들이 뒷받침 되어주고 있다. 분명 좋은 일이다. 현대 교통의 발달은 거리, 장소를 극복하고 원하는 것을 달성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 시간들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각종 ‘유목민적 상품’들의 발전도 눈부시다. 하지만 그만큼 포기해야 할 것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나에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의 하나인 여유라는 것들이 다른 것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빼앗기는 시간과 장소로 인해 공허한 느낌이 드는 것들 말이다.

내 시간과 공간을 내가 원하는 만큼 맘껏 여유롭게 활용할 수 없다는 사실들이 종종 슬픔으로 다가온다. 차라리 땀 흘리며 노동을 하고 내가 먹고 살 것들을 일구고 또 시시때때로 풍류를 즐기던 이전의 농경시대의 모습의 이상향으로 자주 생각나는 건 왜일까.. 나의 기존 가치관과 현대적 형태의 자아 실현 및 환경 사이에서의 갈등이 드는 요즘이다.
IP *.34.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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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8.31 22:43:39 *.179.68.77
디지털 노마드족이라.......나와 같은 유목민 있어구먼!
나도 왕복 3시간을 올곶이 대중교통과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손양 말대로 슬프기도 하지만, 가끔은 행복하기도 하지요?

(아침 10시 출근이라~ 부럽네. 난 아침에 5시30분에 출발해서 7시에 회사에 도착하는데..... 그래도 임산부인데 대단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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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
2008.09.01 18:52:26 *.161.251.172
여행중에 가끔 지혜씨를 떠올렸다. 물론 지환씨와 한 조였던 영향이 컸겠지만, 건강하게 꾸준히 잘 하고 있어 박수를 보낸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것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지혜씨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글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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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9.02 07:54:17 *.41.103.229

단순한 일상 같지만.... 그것이 무엇을 만들지.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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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9.02 17:12:42 *.152.235.217

우리 지혜 본 지 너무 오래된 듯...보고 싶네..같이 여행갔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암튼 건강해야 한다..빨리 또 번개 함 하자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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