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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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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일 11시 57분 등록

2008.08.15-23
변경연 4기 연구원 뉴질랜드 여행기 (상)



여행에서 돌아와서

집에 돌아왔다. 여독을 푸느라 하루 동안 잠충이처럼 잠만 잤다. 잠 자고 일어나 앉아 있지만 아직 한국에 돌아왔다는 현실감이 없다. 머리 속엔 뉴질랜드의 풍광들이 넘실대고, 아직 여행의 환상은 내 몸을 떠나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아니 예상보다 훨씬 특별했다. 처음부터 좋아서 한 일이기 때문에, 마치 내 비즈니스를 하듯 열심히 여행을 기획했고, 일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사부님은 ‘로이스는 여행사를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겠어’ 하며 격려해주셨고 여러 사람들이 수고했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모든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얼굴이 이번 여행은 정말 특별했다고 말해주어서 참으로 행복했다. 강행군이었지만 이 여행은 나에게 소중한 의미 하나를 더 얹어주었다.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즐기는지 알게 된 것이다.

무모한 여행

애초 진행하려고 했던 그리스 신화 여행이 중국 차마고도 여행으로 밀리고 차마고도 여행은 다시 쓰촨성 지진 사태 때문에 유보되자, 사부님은 더 의미있는 여행이 없을까 고민하셨다. 그 고민은 곧 나의 고민이었다. 유럽 여행 기획을 오랫동안 해온 나는 이번 4기 여행 기획 역시 당연히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사부님이 제안한 몇 개의 대안 중에 뉴질랜드가 있었다. 뉴질랜드 여행은 현실적으로 우리가 책정한 비용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여행이었지만, 개인적으로 포기하기가 싫었다. 차마고도 못지 않은 자연을 경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개인들로서도 쉽게 하지 못하는 여행이라는 점에서 뉴질랜드는 단연 마음을 끌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항공요금과 택스 유료할증료 때문에 패키지 여행은 엄두도 낼 수 없을 뿐더러, 우리들 만의 고유한 여행을 위해서는 패키지 보다는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그때 사부님과 내 눈에 동시에 들어온 게 캠퍼밴 여행이었다. ‘그래, 그거야!’ 우리는 일시에 의기투합했다. 그보다 특별한 여행은 없을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에이전트를 끼지 않고 직접 현지와 컨택했고, 여러 현지 여행사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여행에 밝은 현지 친구들을 동원해 가급적 시행착오가 적은 일정을 짜기 위해 고심했다. 미리 선결제가 필요한 캠퍼밴 렌트 비용과, 보험료, 일부 홀리데이 파크 이용료와, 비용 절감을 위한 단체표 할인 티켓 등은 미리 카드로 지불했다. 이 일을 위해서는 흐르는 강물님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카드 두 개를 오픈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뉴질랜드 남섬 여행은 모두가 처음이고, 무엇보다 일을 진행하는 나에게도 뉴질랜드는 초행이어서 더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사실 이 한 겨울에, 변변한 투어 가이드 한 명 없이, 아무도 그곳 사정을 알지 못하는 23명의 그룹이, 그것도 운전 방향이 다른 캠퍼밴 6대를 끌고 뉴질랜드를 여행한다는 것은 거의 미친 짓에 가까웠다. 참으로 무모한 일이었다. 아무리 준비를 완벽히 한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런 예기치 못한 일들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우리의 운을 믿는 수 밖에 없었다.

여행을 가서 보니 뉴질랜드는 캠퍼밴 여행을 위해 완벽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캠퍼밴 여행은 안전하고 편안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여행이 즐거웠던 것은 참가자 23명 전원이완벽한 팀워크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팀워크에 있어서는 7살 난 기담이 규담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의 팀워크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누구도 보스가 되어 강제하거나 명령한 적이 없건만, 각자는 처음부터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였고, 필요한 곳에 작은 톱니바퀴들이 되어 존재하였다. 식탁 하나가 풍성하게 차려지기까지는 30분이면 족했다. 캠퍼밴 파크 공동 취사장에 모인 우리들이 협업하는 광경은 정말 한 폭의 그림이었다. 석쇠팀장, 춘장 등 모두가 완벽했다. 손발이 척척 잘 맞는 협업 시스템은 그곳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저절로 구축되었고, 떠나기 전날 부엌에서 우리들은 이토록 기막힌 협업을 마감하고 돌아가야 한다는데 모두 아쉬움을 떨치지 못했다. 생각만해도 오래도록 그리워하게 될 풍경 중의 하나이다.

15일(금)

공항에 가기 전


제사를 지내고 뒷 정리를 하고 나니 벌써 2시, 그제서 여행짐을 꾸린다. 짐을 꾸리고 나니 거의 새벽 4시, 잠을 자기도 애매한 시간이다. 잠들었다 일어나지 못할까 걱정이다. 그러나 1시간이라도 눈을 부치는 게 낫다. 23명 살림을 꾸려야 하는 여행이니 고달플 것이다. 어떻게든 몸을 챙기는 게 수다. 
어제는 아버지(시아버님을 나는 아버지라 불렀다) 제사였다. 아버지 제사인 걸 아가씨가 아침에 전화해서야 알았다. 요즘 깜박 잊고 지내는 일들이 너무 많다. 어떻게 아버지 제사를 잊고 있었을까. 나에게 그다지도 특별했던 그분의 제사를 말이다. 그래도 여행을 가기 전에 아버지 제사가 닥친 게 얼마나 다행인지.
여행을 앞두고 여러 악제들이 겹쳤다. 회사 재정이 어려워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진데다가 맘먹고 시작한 연구원 숙제도 여행 준비하느라 올리지 못했다. 유럽여행에서 달고 온 감기 마저 천식처럼 깊어져 추운 곳으로 떠나는 나를 위협했다. 즐겁게 여행을 떠날 정황이 아니다. 그러나 일은 일이다. 일과 상황을 분리하는 건 20년 동안 잘 훈련된 내 습관 중의 하나다. 공항에 나가면 나는 가장 밝게 웃을 것이고, 그건 가식이 아니다. 웃는 순간, 세상도 즐거운 얼굴로 나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7시에 인천공항 아시아나 체크 인 카운터에 도착하였다. 낯익은 얼굴들도 속속 도착하였다. 그들 중에는 메일과 전화로만 인사를 나눈 초면의 사람도 몇 있었다. 7시 25분쯤 재우씨와 희석씨가 도착하는 것으로 전원이 모두 집함하였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일상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9일 동안은 같은 공간의 기억과 추억들을 공유할 사람들이다. 그런 생각 만으로도 인생은 재미있어진다.

그룹 체크인 카운터에서 단체로 보딩 패스를 받은 다음, 짐은 각자 부쳤다. 그런데 상해에서 짐을 찾아 다시 부쳐야 한다는 사실을 체크인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23명의 짐도 문제지만 공동으로 시장 본 26박스의 짐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중국은 자동 짐 분류 시스템이 북경 공항에만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하필, 단체로 여행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올림픽 때문에 공항, 체육관, 건물 등 모든 인프라를 세계 최고로 바꾼 중국이 북경보다 인구가 많고 더욱 국제적인 도시인 상해에 짐 자동 분류 시스템도 하나 설치하지 않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비행기표를 어레인지한 아이 굿모닝조차도 이 사실을 몰랐던 게 분명하다. 알았으면 사전에 통보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았다고 한들 뾰족한 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표를 뒤늦게 구매한 우리에게는 상해를 경유하는 것 외는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상해에서 오클랜드행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려야했던 긴 시간은 덕분에 지루하지 않았다. 이민국을 통과하고 짐을 찾아 다시 부치다 보니 시간은 금새 흘러가 버렸다. 이민국을 통과하는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이민국 노란 선 밖에 밀려나 그들이 우리 서류를 처리하는 동안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서 상해 공항에 쭈그려 앉은 우리 일행의 모습은 영락없는 난민들의 그것이었다.

오클랜드에서

오클랜드에서도 크라이스트처치행 비행기를 갈아타기까지 2시간의 여유가 있었지만 까다로운 음식물 반입 규정 때문에 커스텀을 통과하느라 오히려 시간이 부족했다. 신고한 물품을 일일히 검사하는 바람에 우리는 크라이스트처치 국내선 비행기도 하마터면 놓칠 뻔 했다.
인천공항에서 개인 짐에 든 음식물들을 모두 거두어 두 박스로 만들어 시장 본 24개의 다른 박스와 함께 부쳤기 때문에, 개인들은 별다른 검사 없이 세관을 빠져나가고 박스가 실린 카트를 밀던 몇 명만 세관 신고서에 자진 신고한대로 음식물 박스를 검사 받기 위해 검역대 앞으로 갔다. 우리는 비교적 인상이 좋아보이는 남자 앞으로 가서 줄을 섰다. 우리 순서가 되자 나는 우리 짐이 신고서에 적힌 대로 가공되지 않은 야채나 식물, 고기 같은 것은 없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 단체가 서둘러 크라이스트처치 행 비행기를 타야하니까 박스를 몇 개만 랜덤으로 뽑아 검사해달라고 아주 정중한 모드로 부탁을 했다. 그의 표정을 보니 대충 나의 말대로 할 심산인 것처럼 보였다. 그는 먼저 박스 하나를 골라 열었다. 예상한대로 걸릴 것은 없었다. 그는 아래에 든 것까지 꺼내 꼼꼼히 검사했다. 검사한 것은 ‘검사 완료’라고 쓰인 테잎으로 다시 봉했다. 그는 다음 박스를 골랐다. 그곳에는 팩 소주 두 박스가 들어있었다. 혹시 그게 술이란 걸 알면? 아연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박스를 열자마자 그가 물었다.
‘이게 뭐지?’
‘음료수(drinks)!’
어떻게 그 순간 드링스라는 대답이 즉각 내 입에서 나왔을까. 신통한 일이었다. 다행히 소주 팩에는 리커라는 영어가 어디에도 쓰여져 있지 않았고, 위에서 볼 때 영락없는 음료수 팩처럼 보였다. 이번에도 무사 통과. 그는 내 말이 신빙서이 있구먼 하는 표정으로 박스를 이내 봉했다. 이제 한 박스만 더 골라 열면 된다. 그가 다른 박스를 가져다 열었다.
그런데 아뿔사, 이게 뭐란 말인가. 시장에서 인스턴트 식품을 일괄 구입해 포장한 것이라 문제될 물품은 하나도 없다고 누누히 강조한 내 말과 다르게, 이것 저것 먹다 만 음식들이 산만하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공항에서 사람들 짐에서 꺼내 싼 음식물 박스였다. ‘문제가 없겠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들의 손놀림을 바라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비닐 봉지에서 삶은 계란 3개가 으깨진 채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죽었다! 음식물 규정에 대해 다들 알고 있었을텐데, 어째 그런 음식이 거기에 있단 말인가.
그런데 더 문제는 다음 박스였다. 역시 각자의 가방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싼 박스였고, 거기에서 소고기 육포와, 심지어 청양고추 봉지까지 나왔던 것이다. 청양고추와 함께, 조사를 빨리 마칠 가망은 날아갔다. 이제 우리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그 남자는 동료까지 불러 우리 박스를 하나도 남김없이 개봉하기 시작했다.그들은 물건을 한 개 한 개 아주 꼼꼼하게 검사하였다. 한 사람은 번데기 통조림을 들고 오래도록 의아해하더니 다시 박스에 집어 넣기도 하였다. 검사 결과 소고기 육포 7봉지와, 슬라이스한 마늘 6봉지, 소시지 두 봉지가 걸렸다. 국물이 조금씩 흐르기 시작한 김치 박스에선 냄새가 역하게 올라왔지만 다행히 김치는 모두 통과되었다. 비행기 시간이 촉박한 사정을 알지만 이 사람들은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검사 때문에 우리 일행이 늦는다고 항공사 쪽에 연락 좀 해줄 수 있냐고 거듭 부탁했지만 그들은 단호했다. '여기 일이 끝나기 전에는 어디도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기분을 살피며 우리 항공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골라놓은 물건을 가르키며 그는 ‘이거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규정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규정 따라 신고를 했는데, 몇 명이 착오가 있었나보다.
규정을 어길 의사는 전혀 없었고, 무지해서 그런 것이다. 규정에 어긋난 것은 여기서 다 버리면 되지 않겠냐’는 내 애원에 그 남자, 약간 동요의 빛을 보였다. 그가 다시 물었다.
‘신고를 안 한 물품에 대해서는 벌금을 내는 건 알고 있지. 이거 누가 포장했지?’
한 사람이 포장했다고 하면 분명히 그 사람에게 벌금을 물릴 게 뻔했다.
‘함께 시장을 보고, 함께 포장을 했는데요.’
난감해진 그는 매니저를 불렀다.
둘이 뭔가를 계속 얘기하더니, 그는 짐짓 심각한 얼굴을 하고 다시 말을 했다.
‘이런 경우 벌금을 많이 내야 한다. 그러나 이번만은 경고로 끝내겠다,
다음부터는 각별히 주의해라, 반드시,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순간 나는, 속으로 주먹을 쥐고 ‘예스!’ 탄성을 질렀다.
우리는 카트를 힘껏 밀며 쏜살같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국내선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달렸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한 줄로 서서 박스를 버스로 전달하여 싣고 국내선 터미널로 갔다. 우리를 기다리던 체크인 카운터의 직원들은 무전기로 보딩 게이트의 직원들과 바삐 수신하며 우리 짐을 벨트에 부지런히 올렸다. 이미 짐딱지는 상해에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 붙여둔 상태였다. 짐을 부친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19번 게이트로 뛰었다. 비행기가 뜨기 일보 직전, 우리는 무사히 탑승을 완료하였다. 기다리던 일행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안도했고, 우리는 마치 007 작전을 수행한 자들처럼 기뻐했다. 스릴이 넘쳤고, 우리들 이마엔 구슬땀이 흘렀다.
청양고추 때문에 진땀 뺀 우리 생각은 안하고, 정산은 끼니 때마다 뺏겨버린 청양고추를 아쉬워했다.

‘그거 한 개 집어넣으면 이 된장찌개가 완벽해지는건데…’,
그 거 한쪽 찍어먹으면 이 소주에 최고의 안주가 되는건데...’
하면서 말이다.


16일

Who organized this trip?


서울을 떠난 지 만 하루 만에 크라이스처치에 도착했다. 도착 층에 내려 다른 사람들이 짐을 다 찾기 전에 마우이 카운터로 가니 사람은 없고, 인포메이션 센터 옆 공중전화에서 전화기를 들고 9번을 누르라는 메모만 남겨져 있다. 메모대로 전화를 하니 출발 층 밖에 미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나가보니 하얀 마우이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도착층으로 돌아와 짐을 찾은 일행들을 이끌고 대기한 미니버스로 갔다. 한 차에 다 탈 수 없어 2진으로 나누어 우리는 마우이 회사로 갔다.
공항 근처에 자리잡은 마우이 캠퍼밴 회사는 규모가 매우 컸다. 그곳에서 취급하는 밴 종류는 마우이-브리츠-백패커로 세 종류. 차의 연식에 따라 브랜드가 바뀌고 값도 그만큼 싸지는 것이다. 우리는 최신 풀 오토 마우이로 가장 좋은 차를 주문해 놓았다. 인수할 시간을 줄이기 위해 미리 서류작업을 많이 해서 보냈건만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서류는 많았다. 운전자마다 페이퍼에 일일이 사인하고, 차 사용에 대한 설명도 들어야 하고, 스노우 체인 끼는 법도 교육을 받아야 했다. 사고가 나도 우리 돈이 하나도 들지 않는 38불짜리 보험 옵션 2번을 선택한 건 잘한 일이다. 우리는 여행 동안 가볍긴 하지만 5건의 사고를 일으켰다. 첫 건은 차를 인수해 출발하는 순간에 일어났다. 정산이 코너를 돌며 차 옆구리를 부욱- 긁어버린 것. 우리를 교육시켜 주던 친구는 그 모습을 보고 으하하하 호쾌하게 웃었고, 걱정 말고 그냥 가라고 했다. 신고식을 제대로 치르고, 액땜도 미리 한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우리가 다음날 넘어가려고 하는 아서스 패스가 간밤에 눈이 많이 오는 바람에 막혔다는 것이다.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눈으로 길이 막힐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남쪽의 밀포드 사운드 고개 길은 길이 워낙 좁고 험해 눈길로 막히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다른 곳은 그런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 내가 얻은 사전 정보였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눈이 많고, 지난 밤 유례없이 눈이 많이 내려 아서스 패스 뿐 아니라 내일 모레 넘어야 할 하스트 패스까지 길이 막혔다는 것이다. 우리 일을 처리해주던 대니얼은 은 내가 너무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자, 눈 치우는 작업을 신속히 하는 편이니 하루 만에 길이 재개되기도 한다며 밤에 한 번 더 체크해 보라고 했다. 길이 열리지 않는다면 일정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순 없었다. 시내 관광을 하고 돌아와 숙소의 리셉션에 문의해보니 그곳에서 일하던 분이 컴퓨터 화면을 열어 보이며 길이 재개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아직 폭설주의보가 해제되지 않은 상태라 또 한가지 숙제가 남게 되었다. 아서스패스를 간신히 넘는다고 해도, 그 다음날 하스트 패스가 다시 막히는 일이 생기면 우리는 꼼짝없이 서해안에 갇혀있거나 경로를 수정해 북쪽으로 이동해 예정에 없던 루트를 개척하며 여행을 해야하는 최악의 경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아서스 패스를 넘고, 애초의 일정대로 하스트 패스를 거쳐 남부로 내려갈 수 있도록 날씨 사정이 좋아지게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이건 일종의 모험이다. 한 명도 아니고 23명을 놓고 벌이는 위험한 모험이다. 우리의 운이 억수로 좋지 않고서는 최악의 여행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박이다. 그래도 나는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계획되지 않은 루트를 택할 수는 없었다. 사부님의 동의를 얻어 서해안 여행을 강행하기로 했다. 꿈 속에서마저 내 기도는 간절했다.
다음 날 아침 8시, 출발하기 전 파크 사무실이 문을 열자 마자 다시 들렀다. 컴퓨터로 체크해본 상황은 우리 편이었다. 폭설주의보는 해제되었고 하스트 패스도 길이 열린 상태였다. 다행이었다. 다시 눈이 내리는 사태가 없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그래도 조금은 가벼운 기분으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당도한 아서스 패스는 놓칠 수 없는 장관을 우리에게 선물하였다. 눈에 뒤덮인 장쾌한 대자연의 풍경은 도저히 입술로 읊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설프게 카메라 화면에 담아놓은 풍경으로는 우리 눈 앞에 펼쳐진 대자연의 웅장함을 절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여행 내내 뉴질랜드 대자연의 풍경은 우리와 분리되지 않은 채로 존재하였다. 우리는 자연 속에 풍덩 빠져서 그 일부로 그곳에 있었다. 하나의 좋은 풍광을 찾아 발걸음을 이끄는 여행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자연 전체가 온전한 하나로 그 위용을 자랑하며 우리 앞에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풍경 속을 헤집고 달렸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모두가 그림이었다. 그곳의 자연은 아름다웠다. 위대하고 장엄했다.

인간 네비게이션 홍스

운전자 방향이 바뀐 캠퍼 밴을 인수받아 다들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당장 첫날 묵을 홀리데이 파크를 찾아나서는 건 짐작처럼 쉽지 않았다. 시내 사정도 잘 모르고, 금방 길을 찾을 것 같던 지도는 시내로 접어드니 믿을 게 못되었다. 서로 교신하기 위해 가져온 무전기도 처음이라 아직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길을 잘못 들어 방향을 수정해야 할 때는 정말 고역이었다. 선도차량인 우리 1호차만 바라보고 뒤에서 따라오는 5대 차량의 행렬은 생각보다 길었다. 적절히 교통 흐름을 타지 못하는 우리 차량들은 길을 헤맬 때마다 도로를 막아버렸다. 진풍경이었다. 손에서는 진땀이 절로 났다. 길을 여러 번 헤매다 홍스가 나서자 일이 일목요연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타고난 인간 네비게이터였다. 부족한 지도를 가지고도 그는 사냥개 같은 직감으로 길을 잘 찾아냈다. 방향을 잘 잡아 달리던 중 운 좋게도 크라이스트처치 관광청에서 일하는 중국 아가씨를 만나 그녀의 인도 하에 첫날 숙소를 무사히 찾을 수 있었다.
이후로 홍스는 가는 곳마다 미리 꼼꼼히 지도를 살폈고, 성능 최고의 인공지능 네비게이터로 거듭났다. 무전기로 방향을 지시하는 그의 목소리는 숙련된 군대 지휘관의 그것처럼 매끄러웠다. 모두에게서 길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고 여행은 한없이 즐거워졌다.
그의 재능을 첫 날 발견한 것은 참으로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에이본 펀팅과 트램

홀리데이파크에서 점심을 만들어 먹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하였다. 주차하려던 식물원 공용주차장이 안전한 곳이 못된다는 리셉션 안내자의 말을 듣고 밴을 끌고 가려던 계획은 취소하였다. 버스 기사들(두 개의 다른 버스)은 펀팅punting 장소를 묻는 나의 질문에 운전하던 차를 세워 두고 메모지에 메모까지 해주며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었다. 그 동안 승객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미안해 좌불안석이었던 건 나였다. 어렵게 크라이스트처치 종합병원 뒤쪽 강가에 자리한 선착장을 찾아갔다. 벌써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바람은 쌀쌀하고 을씨년스러웠다. 펀팅을 마감할 시간이 임박하자 애써 찾아온 것이 헛걸음이 될까 불안했다. 날씨 탓인지 배는 한 대만 운행되고 있었다. 선착장 사무실의 후덕하게 생긴 아가씨는 우리가 두 팀으로 나누어 30분씩 배를 탈 수 있게 해주었다. 한 팀이 배를 타는 동안 다른 팀은 그곳 카페에서 강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셨다. 우리를 태운 배는 60이 넘은 에이드리언이라는 상냥한 노인이 젓는 기다란 삿대에 의지해 작고 아름다운 에이본 강을 유유히 흘러 갔다. 그는 유명한 민요들을 불러가며 손님들의 흥을 한껏 돋아주었지만 한국에서 온 손님들은 그에게 적절한 답가를 보내지 못했다. 배가 흘러가는 강둑과 해글리 식물원 공원에는 물이 오른 나무들이 벌써 봄꽃을 피우고 있었다. 크라이스트처치의 저녁은 맑고 투명한 에이본 강물에 일렁이는 낙조와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나마 느긋하게 너벅선 쿠션에 기대어 이국의 정취에 흠뻑 젖었다. 펀팅 후에는 아트 센터까지 걸어가 트램을 탔다. 1905년에 시작해 50년 동안 시민의 발이 되주었던 트램은 1995년, 관광 목적으로 부활된 이래 옛날의 번영과 추억을 싣고 다시 달리고 있었다. 둘도 없는 크라이스트처치의 명물이 된 트램을 타고 우리는 캔터베리 박물관과 대성당을 거쳐 선물가게들이 즐비한 트램 역에 이르기까지 2.5킬로에 달하는 트램 노선을 두 바퀴나 돌았다. 그러는 동안 함께 타있던 몇 명의 관광객은 다 내리고 트램은 우리의 전용선이 되었다. 시내를 잠시 둘러보고 우리는 올 때처럼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기담이와 규담이는 요금을 낼 때마다 나이가 탄력적으로 변했다. 버스를 탈 때는 그곳 나이로 5살(5살 이하는 무료), 폭스 빙하 투어를 할 때는 7살(만 7살 이상이어야 빙하투어를 할 수 있다), 그리고 퀸즈타운에서 곤돌라를 탈 때도 다시 5살이 되었다.
마침 파크 근처에 대형 몰 수퍼가 있어 값싸고 질좋은 생고기와 와인을 잔뜩 사다가 첫날부터 근사한 바비큐 파티를 여는 바람에 석쇠장 최영훈도 일찌감치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여행 내내 미디엄 웰던과 미디어 레어로 잘 구워진 뉴질랜드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질리도록 즐길 수 있었다.

우리가 시장을 보는 동안 사고가 있었다. 규담이가 캠퍼밴 계단에서 넘어져 눈 주위를 다섯 바늘 꿰맨 것, 사부님이 나서서 근처 병원 응급실에 다녀왔다.  식사가 다 끝난 후에 규담이는 예쁜 밴드를 붙이고 나타났다. 그전에도 사고 한 건이 더 있었다. 규담이 아빠 흐르는 강물님이 캠퍼밴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지 않고 달려서 차 안이 온통 연기로 가득 찼던 것. 다행히 다음날 아침 아무일 없이 차를 운행할 수 있었다. 이런 크고 작은 사건들이 우리의 여행을 어드벤쳐로 만들어주었다.

17일

아서스패스를 넘어 그레이마우스로

아침 8시에 출발했으나 서부를 횡단하여 그레이마우스로 가는 길은 꽤나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양떼가 풀을 뜯는 초원지대에서 시작한 여행은 아서스패스에 이르자 갑자기 겨울 나라로 변신했다. 절경을 놓칠새라 그 풍광을 감상하기 위해 눈길 옆으로 차를 세웠다. 선도차량 1, 2호가 차를 세우다 눈에 빠져버렸다.바퀴가 헛돌자, 뒷차들은 아스팔트 길 위로 조심스럽게 차를 세웠다. 에머전시 콜을 해야할 순간이 너무 빠르게 찾아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부님이 사람들을 차에서 다 내리라고 했다. 장대와 바가지를 꺼내 바퀴 밑의 눈을 치우고, 장정 여러 명이 달려들어 한 호흡으로 차를 미니, 차는 거뜬히 차선으로 올라섰다. 아, 23명이라면 못할 것이 없구나. 단체의 힘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두 차가 그렇게 나란히 구조되자 우리는 눈 벌판에 몸을 던져 넣으며 송장놀이를 했다. 그곳은 우리가 웃으며 날리는 입김들로 어느새 훈훈해졌다. 우리는 좋은 풍광을 보면 될수있는 한 차를 세웠고 함께 감상하였다. 아서스패스 고개길에 도착하자 다른 편에서 일방으로 넘어오는 차들을 먼저 보내느라 우리는 고개에서 오래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고개길 카페에서 눈에 잠긴 세상을 바라보며 차와 케이크로 느긋한 점심을 즐겼다. 벌써 오후 3시가 가까워 오고, 경찰이 다가와 지금 고개를 넘지 않으면 다시 막히기 쉽다고 말해주었다.
서둘러 아서스패스를 빠져나오니 한 시간이 못되어 해변길이 시작되고 이내 그레이마우스 홀리데이 파크 사인이 보였다. 파크에 수속을 마치고 나니 4시. 그때부터 갈등이 생겼다. 오늘 일정에 둔 푸나카이키 '팬케이크락'과' 블로우홀' 관광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홍스는 오늘 이미 피곤한 일정이었고, 첫 수업도 해야하는데다가 내일 새벽 출발해야하니 오늘은 좀 느긋하게 쉬는게 좋겠다는 현실론을 내놓았다. 나는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가능한 일정을 포기하는 게 아쉬워 다시 리셉션으로 들어가 물었다. 우리가 그곳에 도달하면 이미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건 아니냐고, 파파로아 국립공원은 일찍 문을 닫지 않느냐고? 그녀의 말이 내 갈등을 모두 날려주었다. 그곳은 문을 닫는 법이 없고(기념품 가게들은 5시 전에 문을 닫지만) 그곳까지 빨리 달리면 30분 정도 걸리니 오히려 일몰 직전의 아름다운 풍광을 팬케이크락과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더구나 그곳까지 달리는 해안길이 아주 멋있다고!!! 다시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1분이라도 지체하지 않고 빨리 떠나는 것이 해답이었다.
'홍스, 우리 가보자' 설득하고,
(체크인을 하는 동안 파크 입구에 놓인 퐁퐁뛰기 놀이대에서 아이들과 놀고계시던) 사부님께로 달려가 여쭈니,
1초도 지체하지 않고,
‘거기가 멋있냐?’
’네.’
’그럼 가자’
명쾌하게 대답을 주신다.
즉시로 모든 차량이 출발하였고 못보았으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 그런 명풍경을 감상하게 되었다. 푸나카이키 공원은 자연을 그대로 살려 해안 언덕을 따라 걷게 만들어놓은 마주 훌륭한 공원이었다. 팬케익 락과 블로우 홀은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배경으로 멋진 해안 산책길을 걷는 동안 우리 옆에서 장관을 연출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기대어 바라보는 낙조 후의 바다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제주 사진을 평생 찍던 김영갑씨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대개 노을 사진을 찍을 때 해가 수평선 너머로 잠기면 카메라를 챙겨 돌아온다. 그러나 십오 분쯤 후의 노을은 더욱 장관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그렇게 따뜻하지 않을까. 차분하게 검붉은 빛으로 빛나는 바다는 하늘과 경계가 없이 하나였다. 하늘의 구름은 마치 나무숲의 그림자처럼 보였다. 가족, 사랑, 집, 귀향, 이런 단어들이 가장 생각나는 시간은 아마도 이런 일몰의 시간이 아닐까.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모두 뉴월드 수퍼에 들러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샀다. 그리고 공동 먹거리로는 양고기와 두꺼운 삼겹살을 샀다. 날마다 벌이는 바베큐 파티.., 고기 값이 싼 뉴질랜드라서 가능한 일이다.

“오늘 수업 없다. 혹시 수업하자고 하는 건 아니지?”

뒤늦은 저녁을 들며 사부님께서 한 마디 던지셨다. 어쩌면 그렇게 쪽 빠지게 이쁜 말을 하시는지, 금새 우리들의 얼굴이 활짝 폈다. 바비큐에 곁들이는 스타인라거는 더욱 깊은 맛을 내며 목구멍을 타고 내렸다.

오늘은 정말 스릴이 넘치는 날이었다. 막혔던 고갯길이 뚫리니, 눈이 와서 전날 길이 막혔던 게 우리에겐 오히려 기막힌 설경을 감상할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일정보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포기하려던 푸나카이키 관광도, 오히려 늦어져서 일몰 무렵의 더 할 수 없이 근사한 풍광을 볼 수 있었고, 돌아오는 길 내내 해 떨어진 후의 아름다운 바다를 눈에 넣을 수 있었다. 내일도 문제없이 폭스 빙하를 투어하고 하스트패스를 넘어 와나카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아, 어설픈 우리 여행을 누가 이렇게 완벽하게 세팅해주시는 것인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짤 수 없는 완벽한 여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대신 내일 아침은 무슨 일이 있어도 4시에 일어나, 4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한다, 이 말을 사람들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고 뉴질랜드에서의 두번째 밤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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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09.01 13:37:44 *.122.143.151
여행을 다시 떠나는 기분이 드네요.
좋아요. 듬성등성 해졌던 기억들이
일목요연 다시 살아나 뇌리 속에 쏙쏙 박힙니다.

23명이 아니면 해 볼수 없는 '무대뽀 트레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용감하기 때문에 더욱 무식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겠죠?

여행준비에 이은 여행 그리고 이어지는 락카펠라 공연까지..
조교님은 '사이보그'인가염?
입이 쩍 벌어집니다. 그 에너지는 대체 어디서 나온데요?
함 해부를 해보고 싶을 정도로 궁금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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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게이션
2008.09.01 14:44:47 *.41.103.229
너무너무 환상적인 여행이었어요.
졸지에 인간 네비게이션이 된 덕분에 뉴질랜드를 더 자세히 알게되었지 뭡니까.... 1호차에서 바라본 풍경은 대단함 그 자체였어요.
자연이 버물인 산과 들, 계곡 그리고 바다
아마 한숙 조교님 아니었으면 상상도 못했을 여행이었습니다.
옆에서 여행은 이렇게 기획하는거야를 어께 너머로나마 배울수 있어 더욱더 좋았습니다.

지도 보는 것이 취미라 네비게이션 역할은 무척 즐겁고 흥미로운 역할이었습니다. 마지막날 시내에 예약해 놓은 식당을 한방에 찾지 못해 핸들을 꺽어야 했던 아쉬움이 아직 가시질 않네요.

이동하는 내내 다음 일정을 위해 책을 뒤지고 예약을 하시는 모습에서
그리고 생각했던 일은 꼭 하고야 마는 강력 추진력
킹왕짱이었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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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
2008.09.01 15:18:16 *.161.251.172
다시한번 그때로 돌아간듯한 후기입니다.
참 멋진 여행이었지요.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고, 많은이들의 마음이 모아져
통제되었던 길마저 열리게 했던 여행^^

참 수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많이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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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고추 정산
2008.09.01 16:03:17 *.97.37.242
첫날과 둘째 날은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긴박감이 있어서 좋았어요.
셋째 날 부터는 자연스럽게 체계가 잡히고 안정되어 갔죠.

여행기에서 두 번이나 영과스런 이름을 올렸네요.
청양고추와 차 옆구리를 부욱- 긁어버린 사건. ㅋㅋ
근데, 청양고추만 있었으면, 사부님 골뱅이 요리보다 더 맛난 술안주가 준비됐을 텐데.... 정말 아까웠다는 거 아시죠? ㅎㅎㅎ

아마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겁니다. 소은님 정말 수고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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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9.01 17:12:21 *.240.107.137
ㅋㅋㅋ 정산님

정산님 재미있는 에피소드라서 이름을 그대로 올렸어요.
청양고추 미련은 끝내 못버리신 거죠?
사부님 골뱅이 요리보다 더 맛난 술안주가 나왔으리라는 보장은
글쎄요, 번데기 요리한 솜씨가지고는? 글쎄요...

차칸양, 퍼즐링 월드 미로는 정말 그렇게 재미있었던겨? 멋진 글로 엮어내는 솜씨가 대단해.

그리고 홍스, 나중에 우리 다시 한 번 의기 투합하자고. 우리 조 환상의 콤비가 잊혀지질 않아.
그리고 데카포 호수에서 불렀던 그 노래 뭐였지.
너무 멋있었어. 사부님 보다는 조금 못했지만..

은미씨 푸카키 사진 정말 근사해,
청명한 하늘과 잔잔한 호수를 닮은 글은 더욱 근사하고.

모두 함께 해서 정말 행복한 여행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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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9.01 19:45:19 *.152.235.217
전 7일 동안 버스 뒷자리에서 잠만 잤더니 머리가 완전 깨끗이 비워지더라구요. 돌아오니 뉴질랜드에서의 일들이 꿈결처럼 느껴지더군요.

암튼 모험의 뉴질랜드 여행 즐거웠습니다. 모두 다 한숙 언니 덕분이었죠...저도 시간 내서 빨리 여행기 현정 버전으로 써 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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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환
2008.09.02 09:42:53 *.34.17.28
여행내내 한숙누나의 내적 파워를 실감했습니다.
열정이라는 것, 추진력이라는 것, 긍정적이라는 것.
그런 것들이 무엇인지 확실히 봤습니다.
즐거운 여행과 더불어 얻은 크나큰 배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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