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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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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3일 19시 09분 등록

산에 가면 돈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삶의 중심을 삶 속에 두지 않고 오히려 피안에 옮겨 놓는다면 이는 실로 삶에서 그 중심을 박탈해 버리는 것이 된다. 개인의 불멸에 관한 엄청난 거짓은 모든 이성과 본능에 있는 자연성을 파괴해 버린다. 본능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유익한 것, 삶을 증진시키는 모든 것, 미래를 보장해 주는 모든 것이 이제는 불신을 일으킨다. 삶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사는 것, 그것이 이제 삶의 의미가 되어 버린다. -니체, Der Antichrist 43, 중에서-

 

권위 있는 사람의 아포리즘을 내세우고 난 뒤 내 말을 이어가는 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죽은 지 기 백 년이 넘은 사람의 문장에다 대고, 이제야 옳다구나 무릎 치는 일은 이성과 지혜를 사랑하는 현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도무지 먹히지 않는 말빨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에게 으레 효과적인 것이 지적 권위에 빗댄 인용구를 들먹이는 것이니 니체라는 권위 뒤에 숨어 문장의 호흡조차 길게 하여 할딱거리듯 내 뱉는 사람들의 경박한 질문, 산에 가면 돈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고 묻는 시대의 물음에 답을 해야 할 것 같다.

 

돈이 나오는 구석만 쫓아 다니는 사람들은 얼마나 가련한가. 그렇게 쫓아다녀서 돈이라도 많이 나오게 된다면 안타깝지는 않을 터인데 돈, 돈 거리면서 인간 너머의 가능성을 엿보려는 시도를 폄하하는 경박성은 이제 사람들이 연약하고 초라함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게 된 건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세상으로써의 도덕이 있다. 사회는 사회로써의 도덕이 있는 법이다. 그 도덕이 반드시 나의 도덕이 되라는 법은 없고 그 시대의 윤리가 지금의 윤리로 받들어 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난 시대의 윤리는 이 시대의 광기가 되고, 이 시대의 광기는 지난 시대로 윤리로 추앙 받았던 예를 찾는 것이 빠른 지도 모른다.

 

우리는 도대체 역사와 시대를 관통해 한번도 같았던 적이 없던 도덕과 윤리를 스스로 내재하고 자기 검열해서 초라한 인간이도록 자신에게 강요하는 건 아닌가 한다. 종교, 교육, 국가, 학교, 부모, 형제, 친구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는 도덕과 윤리는 대학을 가야 사람 된다 하며 근엄하게 말했고, 회사 가서 돈 벌어야 어른이 된다고 말했다. 그들, 진리를 담지한 듯 말하는 현자의 명령을 열심히 따랐고 인생의 경로를 걸었다면 어엿한 어른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너그럽고 인격적인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왜 나는 이따위가 됐는지 모르겠다는 말씀이다. 징글징글 살았다는 삶에 대한 지겨움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이 겁이 나 밤을 샌 적이 있다. 그건 아마 나 스스로 이 따위로 살 수밖에 없었는가를 되묻는 자책의 밤이었고 이 삶이 계속될까 두려웠던 불안의 밤이었을 게다. 이제는 정확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세상의 도덕에 속았다는 배신감과 그 하나의 경로에 의존했던 자괴였다.

 

주어진 대로 사는 것에 대한 찬양, 삶에 근사한 사명이 둘러싸고 있다는 생각, 노동이 신성하다는 말들은 대체로 이제 믿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일종의 무대 장치의 붕괴와 같은 것인데, 하나의 온전한 인간의 삶은 주어진 세상이라는 무대장치에서 각본 대로 연기하는 배우일 수 없다는 자각이다. 이 자각은 삶을 무용성으로 인도한다. 세상의 눈에는 도무지 쓸데 없어 보이지만 자신의 시선은 자신의 저 밑에서 올라오는 욕망이 이끄는 곳에 머문다.

 

그것은 내 욕망에 접속한 그 순간 즉 내 이상과 꿈이 실제계와 맞닥뜨린 그 찰나(라깡은 이 순간을 쥬이상스’ Jouissance라 불렀다) 세상의 도덕을 무너뜨린 자리에 자신의 도덕을 세운 순간, 자유로운 결정의 쾌감이 삶을 지배한다. 주위를 온통 감싸는 희열, 무시간적 공간에 있으면서 앞으로 닥칠 일들을 장악하며 이끌어가는 주체적 자아가 된 느낌, 삶의 두려움이 말끔히 사라지고 사위가 자신감으로 둘러싸이며 지구를 통째로 들고 흔들고 있다는 착각 같은 것에 이끌린다. 따라 나서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사로잡혀 보지 않은 자들은 자신을 걸어 위대함으로 가는 길을 무모함으로 시기해선 안 되는 것이다.

 

사람들아 묻기 전에 생각해보라. 그 질문은 나의 질문인가, 아니면 세상의 질문인가를. 나의 질문이라면 세상의 욕망이 내면화된 질문일 테고, 세상의 질문이라면 나의 질문으로 바꾸어 물어야 할 테다. 산에 가면 돈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는 물음은 삶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사는 것, 그것이 이제 삶의 의미가 되어 버린초라하게 쪼그라든 볼품없는 사람들의 질문이다. 잘못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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