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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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첫걸음은 제약영업으로 시작되었다.
제약회사의 영업 프로모션은 지속적인 방문과 관계 형성이 우선시 되었다. 물론 자사 제품에 대한 효능과 장점을 설명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러나 관계 형성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품 홍보는 무의미했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제약영업사원을 철저한 갑과 을의 관계로 여겼다. 대부분의 영업사원들은 전문화된 지식과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인간적인 관계에 의존했다. 관계형성을 위한 주된 방법은 일상적인 접촉과 대화였지만, 백미(白眉)는 술 접대였다. 가끔 해외학회 연수라는 명목을 빌려 골프나 스키 접대를 하는 것도 일상적인 관행이었다.
거래처 원장들과의 술자리는 생각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매너가 있는 원장들은 어린 나이에 고생한다며, 2차를 사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 촌놈에게 고급스런 활어회와 소고기는 색다른 경험이기도 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진기한 음식들도 많았다.
아무튼 시간은 흘러갔다.
설익은 의료지식과 제품지식을 가지고 시장을 개척한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오로지 단순, 무식의 정신으로 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운좋게 성과도 탁월한 편이었다. 회사의 인정과 경제적 보상은 힘든 영업환경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아무튼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는 잘나가는 신입사원이었다.
그러나 내 가슴속에는 말 못할 고민들이 하나 둘 쌓여가고 있었다. 실제 제약 영업 현장에서는 불법적인 리베이트 거래가 성행하고 있었다. 가장 도덕적인 영업운영 방침을 고수하는 회사였지만,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영업성과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고객들에 대한 세미나(우리는 접대를 이렇게 표현한다)의 횟수는 늘어갔다. 자연스럽게 술에 찌들은 채 새벽에 귀가는 일들이 일상화되었다. 주말에는 학회를 필두로 골프와 스키와 같은 접대행사가 이어졌다.
시간의 흐를수록 이런 영업형태가 내가 원하던 파트너적인 영업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가치(value)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보람을 느끼면서도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없는지 끊임없이 반문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변화의 불씨’가 자라나고 있었다.
또한 영업소에서는 붉은(?) 관리자의 폭압적인 관리에 직원들의 불만이 폭발 일보 직전에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탑 매니지먼트는 직원들의 볼멘 목소리에 암묵적 묵인으로 일관하고 이었다. 회사는 붉은 관리자의 비민주성과 비인격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출중한 영업성과를 보이고 있는 관리자였다. 회사가 그에 대해 징계나 불이익을 줄 이유가 없었다.
고민 그리고 고민했다.
처음으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어떤 job을 하고 싶은지 말이다. 한동안 질문에 대한 메아리는 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내면의 울림은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주도적인 job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위한 사업이 아닌, 내 비즈니스 말이다. 그리고 기여하고 공헌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신출내기가 가지고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자본, 인맥, 아이템 어느 하나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본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무엇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생명보험 세일즈였다. 이 비즈니스는 ‘자본’이 없이도 가능했다. 필요한 것은 건강한 신체와 성공에 대한 열정이었다. 억대 연봉자, 남성 전문 설계사, 1인 기업가, 최고의 프로조직. 이러한 수식어들은 가슴 속 욕망을 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자신에게 던진 질문은 간단했다.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러나 고민의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나는 행동하면서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실패를 한다 하더라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신의 세일즈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배우고 싶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간절함’이 익숙한 것과의 조우를 넘어서게 했다. 간절함이 깊어질 수록, 보험영업이라는 장애물이 그리 크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변화’가 찾아왔다.
그 당시 모습을 회상하면서,
문득 초기 변화의 원리에 대해 나름 정리해 보았다.
* 변화의 1 법칙 = 불만족 x 질문 x 간절함
익숙한 것들에 대한 ‘불만족’은 새로운 변화의 불꽃을 키우는 화두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익숙한 것을 원한다. 현재의 상황에 만족해하면 불꽃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불만족이 축적되었을 때, 임계점을 넘어 변화의 불꽃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질문’이다.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갈 때, 돌부리에 걸려 생채기가 나고 뿌연 안개 속을 헤매는 진한 외로움이 있다. 그렇지만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가 의미가 깊다. 수많은 질문들은 끊임없이 변화의 열기를 높여 간다.
‘간절함’은 ‘절실함’이다. 간절함은 가슴에서 떨리는 욕망이다. 일탈의 다른 이름이며, 변화의 완성이다. 간절함은 새로운 것을 꿈꾸게 한다. 그때 피어나는 불꽃은 예전의 불꽃이 이미 아니다. 이미 변화가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날기를 간절히 원해야 돼.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
“죽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있단다. 삶의 모습은 바뀌지만, 목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나비가 되어 보지도 못하고 죽는 애벌레들하고는 다르단다.”
- 트리나 폴러스,‘꽃들에게 희망을’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