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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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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8일 11시 17분 등록
 

내가 다시 고등학생이 된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내가 다시 고등학생이 된다면 어떻게 학교생활을 할까? 뜬금없는 생각을 해봤다. 몇 년 전 두사부일체라는 영화 속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건달조직의 넘버2가 어떻게 들어갔는지 늦은 나이에 고등학교에 들어가 생활하는 모습이 비춰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해댄다. 내가 저 나이라면 못할 것이 없겠다고 고등학생들을 보면서 살아온 것에 대한 회한을 말로나마 분풀이 하듯 한숨 쉰다.


나는 공업계고등학교를 다녔다. 내가 다시 고등학생이 된다면 그때도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할까? 나에게 스스로 다시 물어본다면 “그러고 싶다.”라고 말하겠다. 혹자는 너무 속 드려다 보이는 거짓말을 무책임하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거짓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입학해서 다닌 때의 학교 분위기를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 실업계고등학교의 상황이 많이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공업고등학교에 2번의 원서를 냈다. 첫 원서는 지금으로 치면 수시전형이어서 학교내신으로 선발하는 곳이었는데 중3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지원을 했다가 떨어졌다. 그리고 학력고사 점수로 선발한 두 번째 학교에 합격해서 입학했다. 사실 어지간하면 다 합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두 번째 학교에 원서를 낸 사실을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었다. 그냥 고등학교는 다 가는 것으로 부모님은 알고 계셨다. 초등학교도 정상적으로 졸업하시지 못한 농촌 출신의 어머니, 아버지는 내가 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모든 공부가 다 된다고 믿고 계셨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  누나와 함께 온 어머니께서 그때서야 아들이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을 아셨다. 그러나 학교에 대해서 별 말씀이 없으셨다.

“니가 알아서 선택했을 것이니 열심히 하거라.” 이 말씀이 전부셨다.


입학 후 3년 동안 열심히 놀았다. 공부하지 않는다고 뭐라는 선생님도 없으셨다. 수업시간에 떠들지 않고 얌전히 있으면 선생님들은 만족하신다는 눈치셨고 공업고등학교는 대학입시를 염두 해 두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조금 일찍 철이 든 아이들은 취업을 위해 자격증 준비를 일찍 시작하곤 했었는데 나는 그것도 하지 않았다. 1학년이 그렇게 지나갔고 2학년 때도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갔다. 1학년 때는 방과 후에 합기도 도장을 다녔고, 2학년 때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당시 달력을 만드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시간당 700원 했던 기억이 있다. 한 달 치 월급을 받으면 몽땅 털어서 등산용품을 샀다. 버너, 코펠, 야외 등, 침낭 등등........ 가장 멋진 일은 등산화를 샀던 것이다. 가죽으로 된 등산화는 ‘월간 山’ 이란 잡지에서 많이 봐두었던 것으로 정말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공부는 자연을 닮아가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한다며 역정을 내시겠지만 영어와 수학보다 나는 그것이 더 좋았다. 그리고 좋아하는 곳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렇지만 아쉬운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나에게 “꿈” 이란 것이 없었던 것이다. 선생님들이 이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을 텐데 내가 기억하는 “꿈”에 대한 고등학교 때의 추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중학교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냥 하루하루를 무덤덤하게 살았다. 무엇이 되고 싶은 지에 대해 고민해 본 기억이 없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사실 난 잘 몰랐다. 아마도 그래서 공부를 잘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중학교 3년과 고등학교 3년을 “꿈”과 인연이 없는 상태에서 졸업했다.


“꿈”이 찾고 싶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겠지만 최소한 이런 것을 찾아보는 실습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규 교과목 시간에 배정하기 어렵다면 방과 후에 라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내가 다시 고등학생이 된다면 우리학교에는 “꿈 프로그램”이 과목으로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많은 사람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내 친구들의 꿈도 들어볼 수 있겠지. 그리고 내 “꿈”에 대해 고민 할 수 있을 것이다.


상급학교 진학이 전부였던 중학교 시절과 막연하게 졸업 후 취업만을 생각했던 고등학교 생활에서 난 “꿈”을 이야기하거나 찾으려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학교 안에서 아니면 교문 밖에서라도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


내가 다시 고등학생이 된다면 이런 사람들을 찾아 배움을 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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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9.08 16:49:49 *.97.37.242
얼마나 좋을까? 내가 다시 고등학생이 된다면....... 생각만 해도 입이 벌어지는 일이다.
난 튼실한 내 꿈을 만들어 갈 것 같다. 그때 그렸던 어설픈 꿈이 아니라 확실하고도 매단단한 진짜 내 꿈을... 
내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에 색칠을 하고, 나만의 명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 같다.
늘 푸른 생각을 잃지 않고, 건강과 열정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 갈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고등학생이 될 수는 없겠지? 그럼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런 꿈을 한번 만들어 보는 건 불가능할까?
불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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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9.09 07:30:12 *.244.220.254

지금, 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꿈 프로그램을 만들고 계시잖아요........홧팅!
그나저나 길잃은(?) 고등학교 시절에 비하면, 지금 정말 드래곤 되셨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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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9.11 11:23:17 *.247.80.52

홍스... 저도 학교와 학생이 무척 좋은데요. 고등학교에 대한 추억은 거의 없네요.
입시에만 몰두해서 그런가 봅니다.
난 중학교 때 88년도 그때는 중3에 TV에서 '맥가이버 시리즈'를 를 토요일마다 해주어서 그것보다가 물리학과에 나도 들어가야지하며 고등학교 3년을 공부하다가 보냈네요. 어이구... 맥가이버가 사람 여럿.. 이.상.하.게.
그러고 보니... 꿈에 대해서 고등학교 때에 들어본 기억이 없네. '어느 대학에 갈래?' 만 들었잖아.

홍스 지난 보충수업에서 '혁신적인 출판사' 이야기가 나왔을 때, 홍스에게 말 걸고 싶었어요.
학생들의 활동을 후원하는, 학생들의 활동을 책으로 낼 수 있게 후원하는 출판사를 하고 싶어졌거든요. 
그것이 문예반의 시집, 학교의 교지, 혹은 기악부 연습 악보집, 판화집, 미술반 작품 도록과 전시회를 준비 일지,, 연극반의 1년 기록..... 이런 걸 책으로 후원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어때요? 
몇 년후의 모습으로 이런 출판사를 꿈 풍광에 넣어서...크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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