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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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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9일 05시 43분 등록

 

20

 

Go to your limit, Jag-Air

 

My limit is set, strapped in, I’m ready to go, engine starts, a throaty growl, sweaty palms, adrenaline kicks in, pilot reassures, nerves calm, courage builds, let the adventure begin!!!- 잭에어를 타고

 

 

아래층에서 홍스가 부스럭대는 소리에 잠이 깼다. 노래를 부르진 않지만 부지런한 홍스는 언제나 나의 새벽을 깨우는 카나리아다. 네비스 번지점프에 도전장을 던진 겁 없는 무리들은 새벽 일찍 집을 나서기로 했다. 네비스 번지점프는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에 나오는 카와라우강의 번지점프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카와라우강 번지 점프는 43미터, 네비스는 그것의 세 배에 달하는 134미터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높을 것이다. 홍스는 그 겁없는 무리의 일원이었다. 그들은 8까지 시내의 픽업 장소로 나가야 했다. 나도 8 파크 리셉션으로 나가야 했다. 잭에어 회사에서 하수씨와 나를 직접 픽업하러 오기로 한 것이다.

약간 허기가 돌았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멀미가 나면 곤란할 것 같았다. 리셉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에서 일하던 아가씨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픽업 시간이 조금 지체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수씨가 나타났다. 눈꼽도 못 떼고 부랴부랴 나온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도 손에는 바나나가 하나 들려있었다. 작은 승용차가 와서 멎더니 앳된 청년이 나와 인사를 건넸다. 아담이라고 했다. 픽업만 담당하는 직원인 줄 알았더니 그가 오늘 우리가 타게 될 잭에어를 직접 조종할 파일럿이란다. 26살인 이 총각은 14살부터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운전을 배우기 전에 비행기 조정을 배운 셈이다. 그가 하고 싶다는 걸 밀어준 부모도 대단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일찌감치 정해 시작한 그도 대단하다. 지금 그는 어엿한 비행기 오너로 자기 비즈니스를 멋지게 하는 청년이다. 그가 처음 훈련을 받은 경비행기는 북한 공군이 사용하던 조종기였다고 한다. 오늘 우리가 타게 될 스트라이프 무늬의 쌈박하고 미려하게 생긴 잭에어는 무게가 600킬로그램, 시속300마력으로 5,000피트 상공을 날 수 있는 초경량 비행기라고 한다. 뉴질랜드에 오직 두 대 밖에 없는 것을 자신이 한 대 보유한 것이라고. 그는 잘 웃었고, 친절했다. 그의 사무실은 퀸즈타운 공항 내에 있었다. 이륙할 때 공항의 활주로를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무실에서 간단한 페이퍼 작업을 했다. 비상시에 연락할 연락처와 연락할 사람의 전화번호를 적고 사인을 했다. 무슨 일이 있겠냐만은 그래도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누가 먼저 타실 건가요?’

아담이 물었다.

내가 먼저 타면 그거 보고 괜히 더 겁나니까 로이스 먼저 타요.’

그럴게요.’

하수씨는 친절하게도 그의 장갑을 내게 건네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주었다. 우리 셋은 사무실 계단을 내려와 잭에어로 다가갔다. 걷는 동안 공항 벌판의 바람이 따가웠다. 하수씨는 비행기에 올라탄 내 모습을 찍었다. 나는 비행기 윗부분에 난 홈을 잡고 앞 자리에 올라탔다. 아담의 지시대로 3개의 안전 벨트를 전방위로 단단히 맸다. 안전벨트를 매자 그가 모자를 건네주었다. 영화에서 보던 바로 그 모자, 제트기 조종사들이 머리에 눌러쓰는 압착모자다. 모자에는 라디오 세트가 달려 있었다. 아담은 어떻게 수신하는지 잘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이어 몇 가지 수화도 가르쳐주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두 손의 엄지를 이렇게 위로 올려주세요, 이렇게요(그는 자신의 두 엄지를 들어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냥 적당하다고 말하고 싶을 땐 엄지와 검지를 모아 원을 그려주세요 이렇게요(그는 이번에도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힘들 때는 위로 올린 두 엄지를 아래를 향하게 내려주세요 이렇게요. 그러면 제가 곡예를 자제할게요.’


그의 지시에 따라 몇 번 연습을 해보았다. 그러나 내가 엄지를 과연 위로 치켜세우며 좀 더요, 좀 더요하고 외칠 일이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뒷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맨 아담은 자 이제 출발합니다하고는 캐노피를 닫았다. 곧 비행기는 활주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긴 활주로로 진입하는 동안 그는 관제탑과 대화를 나누었다. 747 점보 여객기에서나 듣던 파일럿 대화 이 조그만 비행기에서 듣고 있으니 조금 우스웠다. 그러나 그런 여유도 잠시, 프로펠라 소리가 요란해지더니 (거의 굉음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들렸다. 나는 바로 프로펠라 아래에 앉아있었던 것이다) 이내 비행기 속도가 빨라졌다. 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비행기는 활주로를 매끄럽게 차고 올라 하늘로 직진하였다. 나비의 날개짓처럼 가뿐한 이륙이었다. 비행기가 높이 솟아 오를수록 내 눈의 시계는 넓어졌다. 숨도 못 쉴 만큼 긴장했던 몸은 서서히 이완되었다. , 위에서 내려다 보는 리마커블 산의 정상과, 에스자 형의 늘씬한 몸매를 완전히 드러낸 와카티푸 호수, 그리고 그 아래 펼쳐져 있는 퀸즈 타운의 아기자기한 건물과 집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광활했다. 이제는 그 정경 때문에 숨을 쉬기가 곤란했다. 내 입에서는 terrific 이란 단어만 무성히 쏟아졌다.


내가 그다지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자 아담은 첫 번째 묘기로 천천히 스윙을 시작했다. 비행기를 양 옆으로 흔드는 동작이었다. 천천히 내 반응을 살피며 비행기 몸체를 한쪽 방향으로 틀던 아담은 내가 두 엄지를 들어올리자 이번에는 조금 빠르게 반대편으로 스윙을 했다.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번에 조금 더 빨리, 다시 또.. 조금 어지러웠지만 참을 만 했다. 

아담은 유능한 조종사였다. 그는 계속 나의 반응에 주목하며 서서히 강도를 높여나갔고, 드디어 내가 어제 하늘로 머리를 치켜들고 어떻게 저런 걸 할 수 있을까가슴 졸이며 쳐다보던 모든 동작을 시도했다. 그가 다소 과도한 묘기를 선보여도 나는 절대 두 엄지를 아래로 내리는 동작은 하지 않았다. 그가 비행기 몸체를 180도 뒤집어 잠시 멈추었을 때 내 몸은 완전히 허공에 매달린 상태였다. 아마도 우주선에서 무중력 상태로 날아다니는 것이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받치고 있는 벨트가 아니라면 나는 바로 호수 속으로 낙하할 판이었다. 잠시 속이 좀 울렁거렸지만 이내 진정되었다. 360도 돌기와 수직 낙하 등도 참을 만 했다. 묘기를 멈추고 그는 다시 빠른 속도로 날았다. 독수리가 비상하는 건 이런 기분일까. 나는 묘기보다 빠른 속도로 허공을 나는 것이 더 좋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 몸이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려고 하는 순간 비행은 끝났다. 15분은 너무 짧았다.

활주로로 사뿐히 활강해 사무실 쪽으로 달려오자 기다리던 하수씨가 다시 사진 한 방을 찍어주었다.


괜찮아요?’

, 생각보다 무섭지 않던데요.’

괜찮아보여서 정말 다행이다.’

그는 꽤 걱정을 한 모양이었다. 

전 좀 아쉬웠어요. 리얼 어드벤처를 원하면 하수씨는 두 엄지를 무조건 많이 올리세요.’

이렇게 말이죠, 알았어요.’


이번에는 내가 그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무실 발코니로 올라가 그가 탄 비행기가 작은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15분쯤 후 카메라를 들고 다시 발코니로 나갔다.

그의 비행기가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의 얼굴이 창백했다. 그는 비행 내내 고공 공포증보다는 구토증세로 고생했다고 했다. 그는 창백하고 나는 담담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ㅎㅎㅎ

그는 오늘 이 멋진 비행을 내게 선물했다. 그가 내 몫까지 결재를 해버린 것. . 이런.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아담은 우리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비행기에 장치된 무비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을 보여주었다. 한 자리에서만 잡은 영상은 뒤 배경의 변화에 따라 비행기의 움직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비행기가 360도 회전할 때, 비행기 모습은 그대로 있고 뒤의 배경이 되는 산들이 뒤집히는 식이었다. 긴박감이 떨어졌다. 하수씨만 55불을 내고 DVD를 구입했다.


아담은 우리를 다시 파크에 데려다 주기 위해 차를 끌고 나왔다. 우리는 아담에게 시내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이 추위에 긴장한 몸을 풀기 위해서는 따뜻한 국물이 필요했다. 우리는 커피나 차가 아니라 뜨거운 매운탕이나 김치찌개 국물이 먹고 싶었다. 먼저 Vodafone 대리점에 들러 임대한 전화기의 핀코드를 알아내고 한국식당(Kim’s)에 가서(왜 해외에 널린 한국식당들은 이름이 다 구태의연한 건가. 아리랑, 킴스, 가야, 경복궁, 귀빈, 서울식당, 코리안 하우스, 코리안 팰리스, 김치..) 대구 매운탕을 먹었다. 국물이 정말 시원했다. 추위에 언 몸이 일시에 녹아내렸다. 우리만 이렇게 맛있게 먹는 것이 마음에 걸린 하수씨는 오늘 저녁 모두 여기 데려와서 대구탕을 먹이자고 했다. 어제에 이어 오늘 다시 한 턱 쏘겠다는 것이었다. 쏘겠다는 사람 안 말리는 게 나의 특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두 명이 아니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매번 쏘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지라 그럴 필요 없다고 몇 번 말려보았지만, 의지가 워낙 강건하신지라 결국 못이기는 척 넘어가주기로 했다.


파크로 돌아오니 옵션 투어에 갔던 사람들이 서서히 돌아와 서로의 모험담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소설 한 권은 엮어질 분량의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꽃을 피웠다. 점심을 서둘러 먹고 우리는 루지를 타러 갔다. 루지는 봅슬레이를 변형한 일종의 썰매다. 눈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포장된 시멘트 코스를 달리는 것이다. 우리는 곤돌라를 타고 올라간 스카이라인 레스토랑 뒤 편에서 루지 타는 곳까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루지 조작은 간단했다. 핸들이 브레이크였다. 안으로 잡아당기면 서고 다시 풀면 앞으로 나갔다. 루지 코스는 초보자와 상급자 코스 두 개가 있었다 우리는 전망이 좋은 초보자 코스를 선택했다. 루지를 타고 급커브를 사정없이 돌며 구불구불한 길을 내려오는 동안 우리의 오른 쪽에는 와카티푸 호수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루지를 타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루지를 타고 내려오며 만끽하는 풍경은 (홍스 표현대로)더 작살이었다. 이 도시는 곳곳의 풍경을 관광 자원으로 너무나 잘 활용하고 있었다. 와인 농장 견학이 있어서 한 번 밖에 탈 수 없었던 루지, 그래서 더욱 아쉬웠다. 그런 아쉬움이 우리를 다시 언젠가 뉴질랜드로 부를 것이다.

 

퀸즈타운에서 카와라우 강 계곡을 거쳐 30여분 달리면 나오는 깁슨 밸리(Gibston Valley) 와이너리. 뉴질랜드 중부 지방의 피노 누아 산지로서는 꽤나 이름있는 와이너리다. 그곳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만 남은 포도밭을 둘러보았다. 수율을 보장하기 위해 한 포도 나무에 7가지만 남기고, 그 가지에서 각각 두 송이 씩, 14송이만 수확한다고 한다. 이어 둘러본 와인 케이브, 60 미터에 달하는 동굴 안에는 피노누아(전체의 80%)와 샤도네이 오크통들이 쌓여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곳의 주요 품종인 피노누아, 샤도네이, 리슬링을 시음했다. 깁슨밸리 와이너리는 춥고, 건조하고, 돌이 많은 땅에 어떻게 제대로 된 포도 수확을 기대할 수 있을까하는 사람들의 의혹을 깨고 중부 오타고 지방의 와인 산업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2,000년 빈티지 피노누아 리저브 2001년 런던 국제 와인 챌린지 대회에서 세계 피노누아 챔피온상을 거머쥐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들에겐 달달한 리슬링이 최고 인기였다. 26불짜리 리슬링을 사서 모두에게 선물로 돌렸다. 그러나 이 와인들은 무사히 한국까지 동행하지 못했다. 계속되는 밤 파티에 하나 둘 동원되어 결국 우리들 입의 즐거운 희생제가 되었다.(그들은 이것이 주최측의 전략인 걸 뒤늦게라도 알았을까. 선물 준 생색은 다 내고, 술 값은 따로 안들이고 파티는 계속 벌이는...)

 

퀸즈타운에서의 광란의(?)

 

어제에 이어 연구원 수업이 있었다. 오늘은 좀 더 큰 라운지를 차지하였다. 라운지를 차지하는데 우리의 쪽수 전략은 유효했다. 사람들이 이미 라운지를 점령하고 있어도 우리가 쪽 수로 밀면 그 공간은 곧 우리 차지가 되었다. 오늘도 그랬다. 그런데 끝까지 버티고 나가지 않는 손님이 하나 있었다. 멀쩡한 차림의 젊은 여자였는데 조그만 보따리를 들고 있는 것으로 봐서 파크 손님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딱딱한 의자에 잠이 든 그녀에게 안락의자를 건넸다. 화들짝 놀라 깬 그녀는 괜찮다고 했지만 얼마 있다 쳐다보니 어느새 그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잠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연구원 수업을 하는 동안 내내 그곳에 있었다. 그녀가 왜 그 시간에 지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거기에 있어야했는지 아무도 물어보진 않았지만 모두들 내심 궁금한 눈치였다.
오늘은 은미씨와, 정산과, 현정씨가 발표를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드디어 완전히 맛들이 갔다. 너나 할 것 없이 번갈아 가며 고개를 떨구었다. 어느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맛사지하는 걸 의식하고 깨어났다. 사부님이었다. 고단한 나를 안쓰럽게 여기시는 마음이 사부님 손을 타고 내게 전달되었다.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어찌 어찌 수업은 끝이 났다. 그 동안의 강행군에 지친 내 몸은 잠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지치지 않는 군중들은 퀸즈타운에서의 마지막 밤을 못내 아쉬워하며 한 잔 하러 시내에 나가자고 졸랐다. 내심 나 자신도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모른 척 따라 나섰다. 이왕이면 춤을 추고 싶다는 dance club팀과, 한잔 걸치며 이야기를 나누자는 beer bar 팀으로 나뉘었다. 전자팀에 속한 것은 옥균님과 나. 옥균님이 터프하게 내 쪽으로 합류할 때 그의 예기치 못한 박력에 나는 거의 뿅 가버렸다. 춘희씨는 중간에서 어쩌지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우유부단한 여인은 박력에 엮이게 마련, 그녀는 졸지에 우리에게 낚여 댄스 클럽팀이 되었다. 우리는 <더 월드>라는 클럽으로 올라가 젊은 아이들 틈에 끼여 신나게 춤을 추었다.


노동의 스트레스를 날려보내는 노동이 있다면 그것은 춤이다. 그래서 나는 춤을 사랑한다. 춤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춤을 추고 싶은 충동은 언제나 내 몸 안에 숨겨져 있다. 어떤 환희의 순간이 찾아오면 뇌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더 먼저 반응하는 것이 나의 몸이다. 춤을 추면 굳은 것이 풀어지고 막힌 것이 뚫리고, 묶인 것이 놓여난다. 사실, 남을 의식해, 혹은 스스로 교양을 놓치 못해, 내 몸은 평소 많이 굳어있다. “춤을 춰라,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이것은 춤에 관한 한 가장 위대한 강령이다. 이 위대한 강령에 따라 그곳에 가득 모인 노랑머리, 갈색머리, 검은머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주저하지 않고 춤을 추었다. 얼마를 추었을까. beer bar 팀이 우리가 춤추는 클럽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야호!> 저절로 우리 입가에 환호가 터졌다. 조금 뜸을 들인 후 사부님 이하 그쪽 사람들이 우리 대열에 합류했다.

사부님은 그곳에서 시킨 맥주잔을 들고 혼자 무언가에 빠져 무아지경의 춤을 추셨다. 어깨에 힘을 빼고 가로세로 엉거주춤 찔러넣는 7080 세대 춤을 자기 식으로 조금 변형한 사부님의 춤은 순식간에 우리 무리 속에서 유행이 되었다. 생명이 그대로 용솟음치는 위대한 해방의 춤추기.. 팀들이 모두 돌아가도 춘희씨와 나는 남았다. 처음에 다소 쭈뼛거리던 춘희씨, 분위기 파악하는데 단 몇 분도 필요없었다. 몸이 리듬을 타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춤은 순식간에 일취월장을 했다. 은미씨와 현정씨가 뒤늦게 등장해 우리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는 넘쳐나는 에너지를 어쩌지 못하고 새벽 3까지 춤을 추었다.

리고 어제 처럼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개 들어 바라본 하늘에는 어제 보다 조금 작아진 달이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 청명해서 슬픈 달, 그리고 슬퍼서 더 아름다운 이국의 밤!


 

21

 

하하루는 어김없이 다시 우리 앞에 열리고, 우리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내일이면 떠난다는 걸 마음 속으로 저마다 계산하고 있었다. 느즈막히 아침을 먹고 11 퀸즈타운을 떠났다. 이틀이었지만 우리는 이미 퀸즈타운에 듬뿍 정이 들었다. 자그만 시내 도로와 전망대에 오르는 언덕길과, 축구장이 있고 학교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리고 쇼핑가에서 호반으로 내려가는 길, 한국식당 킴스가 있는 쇼핑거리를 우리는 촘촘히 밝고 다녔고 우리의 발은 그 길들의 감촉을 정직히 기억하고 있었다. 여왕의 도시여 안녕, 우리 다시 만나지 못한다해도 그리 슬퍼하지 않기를, 우리의 인연은 꿈 속에서라도 이어지리니….


6
번 도로를 타고 달리다 크롬웰에서 8번 도로를 바꿔 타고 올라오는 동안 나는 자꾸 잠에 빠졌다. 풍경에 빠질 새가 없이 몸은 녹초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린디스 패스를 넘는 동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시 눈 덮힌 장대한 산맥이 우리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구비구비 가까이 다가왔다 멀어지는 산맥들, 그 장쾌한 파노라마를 눈에 다 담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캠퍼 밴 뒤에 비스듬히 기대서 나는 쉴새없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창문 가득히 담겨오는 풍경 속에 열 두번도 더 풍덩 빠졌다 나온다. 하늘의 구름은 또 왜 그리 멋있는지. 햇빛은 거대한 레이저 빔처럼 직진으로 쏟아져 내리고, 그 강렬한 햇빛을 후광처럼 두른 희 고 푸른 구름은 최후의 날 심판자가 타고 내려올 영광의 구름처럼 보였다. 스케일이 큰 린디스 고개는 아기자기하고 험한 아서스 패스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우리는 반지의 제왕 촬영지였던 푸카키 호수에서 자리를 펴고 점심을 만들어 먹었다. 호수는 장대하고
신비로왔다. 마운트 쿡 빙하에서 흘러내린 이곳의 물빛은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웠고, 호수의 수평선이 산과 하늘과 맞닿아 이루어내는 풍광은 신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와인을 마시고, 각자의 책에 담길 사진을 촬영하고 음악을 틀어놓고 즐기는 동안 호수는 여러번 자신의 얼굴을 바꾸었다.


조금 더 달려 선한 목자 교회를 둘러 보고 데카포 호수가 파크에 체크인을 했다. 오늘은 마지막 저녁. 예의 그 분주한 협동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처리하지 못했던 음식들은 모두 챙겨 공동 주방으로 날랐다. 배급에 심각한 불균형이 있었나. 음식이 부족하다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쌓인 음식을 보니 구멍가게 하나는 족히 차릴 분량이었다. 다음에 오는 여행자들을 위해 남는 음식은 그곳에 두고 가기로 했다. 급히 시장팀이 수퍼에 달려가 고기를 공수해오는 바람에 마지막 바비큐 파티를 열 수 있었다. 밀가루를 모아 부침개도 만들고, 김치찌개도 끓이고, 정산의 번데기 탕에 사부님의 골뱅이 무침까지 등장한 굉장한 식탁이었다 


 

여행의 마지막 밤

 

여행은 사람들에 대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게 해준다. 마지막 날, 데카포 호수가의 할리데이 파크에서 우리는 돌아가며 여행에 대한 소감을 나누었다. 우리는 우리가 서로에게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도 이야기하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제 조금씩 스미기 시작했는데 내일이면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야 하다니, 모두들 너무 아쉬운 표정이었다. 모두의 이야기가 끝난 후 우리는 서로를 위해,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건배했고 박수를 쳤다.

박수 끝에 사부님이 한 말씀 하셨다.

 

(여행온 날부터 깎지 않아 제법 덥수룩해진 수염을 어루만지며)

수염을 안 깎고 이렇게 내버려두면 자라서 손으로 쓸어 내릴 만큼 부드러워지거든,
그런데 이번 여행은 부드러워진 수염을 쓸어 내릴 만큼 긴 여행은 아니었어,
아주 짧은 여행이었지. 그렇지만 최고의 여행이야, 아주 훌륭했어.
 
연구원 여행은 할수록 좋아. 이번 여행이 최고이고, 아마도 다음 여행이 다시 최고가 될 거야.’

 

다른 파크보다 약간 시설이 낡긴 했지만 그곳의 라운지는 주변이 한산해 우리들만 고립된 채 신나게 놀 수 있었다. 사부님 멘트가 끝나자 즉시로 테이블과 의자들이 치워지고, 넓은 댄스 플로어가 만들어졌다. 현정씨의 노트북을 가져다가 빠른 음악을 틀고 너나 할 것 없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제 이미 워밍업을 마친 우리들의 스텝은 나름 눈이 부셨다. 전날 위세를 떨쳤던 사부님의 춤은 Mr Goo Dance로 불리며 다시 그곳에서 맹위를 떨쳤다. 컴퓨터 음량이 시원치 않자, 우리는 일제히 육성으로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기 시작했다. 그곳에 있는 우리들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이성의 옷을 멀찌감치 벗어던졌다. 한 사람이 미치니 다음 사람은 좀 더 쉽게 미쳤고, 그 다음은 사람은 그보다 더 쉽게 미쳤다. 우리는 어느새 다 미쳤다. 미친 사람들의 춤은 가관이었다. 몸에서 정직한 땀이 흐르고 우리는 더할 수 없이 행복했다. 몸치를 자청하며 절대 춤판에 끼어들지 않는 김하수씨는 성능 좋은 자신의 카메라 플래쉬로 연신 사이키 조명을 터트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명은 그 어느 댄스 클럽의 조명 보다 훌륭했다. 그 속에서 몸을 흔들어대는 우리들은 마치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서 테크노 춤을 추는 무사들처럼 멋져 보였다. 옥균씨는 노래를 아주 잘 불렀고, 공중에 자주 몸을 날렸다. 날렵했다. 와이프와 아이들을 떨구고 나타난 김영훈씨는 춤의 교주로 완전 변신해 온 방을 헤집고 다녔다. 써니는 양푼같이 생긴 그릇 하나를 들고 꽹과리 치듯 포크로 마구 쳐대고, 우리는 그 리듬에 맞추어 저마다 아아 우우 괴성을 질러댔다.


 

나 죽고 싶지 않아

 

파티가 끝나자 이미 2가 훌쩍 넘었다.

, 너희들 산책 안갈래?’

사부님은 아직 일장춘몽에서 깨고 싶지 않은 게 분명했다. 참한 나와, 홍스, 춘희, 재우가  사부님 뒤를 따랐다. 우리는 이내 달빛에 샤워를 하고 있는 호숫가 모래 밭에 내려 섰다. 가져간 와인 두 병을 모래 사장 위에 내려놓았다. 구름 속에서 남극성이 반짝이고 있었다.  반쯤 사윈 달도 구름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쌀쌀한 바람을 안주 삼아 우리는 기분 좋게 와인을 홀짝였다.

그 때 느닷없이 사부님이 외치듯이 한 마딜 던졌다.


아 나는 죽고 싶지 않아. 사는 게 너무 좋아. 이렇게 좋은 걸 어떻게 죽는단 말이니?’


삶에 대한 그의 간절한 긍정은 순간 우리에게도 전염되었다.

그때 갑자기, 춘희씨가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지를 말아 올리더니 물 속을 향해 내달렸다. 물을 한 두번 튕겨보더니 그녀는 팔을 날개처럼 펼쳤다. 자기가 무슨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이 그 포즈를 유지한 채 해변가를 마구 뛰기 시작했다. 여행 내내 신기가 넘쳐 주체하지 못하던 그녀가 마침내 달에 홀려 맛이 간 것이다. 우리가 그곳에 머무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녀는 쉬지 않고 물가를 뛰어다녔다.

아까 마저 부르지 못했던 노래를 내가 불러주마.’

사부님이 말씀하셨다.

코트 깃을 세우고 호숫가 밤의 정취를 음미하던 우리들 사이로 사부님의 노랫소리가 흘렀다.

적당히 두껍고, 적당히 가벼운, 아름다운 저음이었다.

그가 부르는 트윈 폴리오의 축제의 여인은 달빛과 아주 잘 어울렸다.

이어지는 로미오와 줄리엣역시 그랬다. 노래를 부르시는 사부님은 영락없는 시인이었다. 열정적인 한 때의 연애를 사모하는 음유 시인처럼, 그는 쉬지 않고 여러 노래를 불렀다. 재우씨와 홍스의 답가가 하늘을 물들일 때 어둠 속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볼도 와인에 붉게 물들어 갔다. 그제서야 우리의 월광녀 춘희씨는 물에서 나왔다.

물이 차지 않아요, 발 안 얼었어요?’

하나도 안 차요, 오히려 따뜻해요. 물 속에 난 풀들이 오히려 발목을 간지르며 자기들을 찾아줘서 고맙다고 하던데요.’

ㅎㅎㅎ


달이 익어가는 동안 우린 모두 다시 제 정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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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9.09 05:46:44 *.240.107.137
사진올리다 힘들어 사진 올리는 건 포기합니다.
읽는 글로 사진 이미지를 대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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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9.09 06:46:06 *.72.153.57
아~ 정말이지... 아름다운 밤이예요.

댄스를 즐기다가 달빛을 밟으며 숙소로 돌아오던 그밤.
춤에 취했던 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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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9.09 07:42:16 *.244.220.254
문학적 재능이 분명히 있으시네요. 멋진 한편의 여행기를 읽는 듯한 착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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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09.09 09:43:22 *.122.143.151
큰바위야.. 여행기 맞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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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09.09 10:06:25 *.122.143.151

한숙씨.. 여행기 중 깁슨 밸리 와이너리에서 리슬링 한병씩 사서 돌린거 말유.. 꼭 주최측의 노림수라 폭로했어야만 했나유? 아무도 우리의 고도의 전략을 눈치채지 못한 거 같았는데 말임다... ㅎㅎ

신질도에서의 마지막 날, 잠에 취해 있다가 간신히 눈을 뜨고 나가니 모임이 이미 파한 후 였죠... 다행히 몇 명이 데카포 호수로 산책을 간다해서 무작정 쫓아나갔는데, 만약 그 시간마저 제대로 보내지 못했으면 무척이나 후회했을 듯 싶어여... 어스름한 달빛 아래, 데카포 호수는 술렁이고 끝없이 중얼거렸죠.. 우리는 그 음률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고 와인을 마셨고, 월광녀 춘희씨는 호수의 정령들과 함께 춤을 추었죠.. 하늘엔 구름에 가려 모든 별이 다 보이진 않았지만, 서쪽 하늘 별들은 어릴 적 아주 어두운 시골하늘에서 보던 별처럼 선명히 그리고 아주 밝게 빛나고 있었죠...

사부님은 제게 물었죠... 너의 별은 어디에 있냐고. 그리고 수 많은 별들이 환히 빛나는 쪽을 가리키며 '저 별 어딘가에 너의 별은 이미 환하게 빛나고 있을거야'라고 말씀하셨죠... 그래요... 죽기에 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워요... 아직 우리가 모르는 아름다움은 아직 우리가 가보지 못한 이 세상 어디에든 쫙~ 펼쳐져 있을 겁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감동받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감사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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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3 03:14:02 *.139.103.196

이후에 생긴 Macau Tower  번지 점프가 현재는 가장 높다. 장장 233m(764Tf)다.

필생의 위시 리스트에 올려보지만, 후덜덜.. 과연.

가격도 만만치 않다. 한 번 뛰어내리기 위해 적잖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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