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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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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9일 11시 51분 등록

잭 웰치의 위대한 승리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자신감의 보고 (reservoir of self-confidence)- 즉 든든한 가족 그리고 과거 자신이 성취한 일들과 자기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저장해 놓은 곳에 의지한다는 것이다. 318


나는 이 대목에서 뜬금없이 
나의 성장 에너지의 보고’는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 워낙 허약해서 병치레를 많이 했고, 친구들과 뛰어 놀다가도 털썩털썩 주저앉아야 했던 나는 마음의 성장통을 심하게 앓았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초등학교시절 몇 년에 걸쳐 매일 주사를 맞고, 많은 약을 먹어야 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지 못했다.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하다가도 친구들이 고무줄을 하러 우르르 가버리고 나면, 해가 지고 어둠이 스며들때까지 멍하니 앉아있고는 했다. 그렇게 내 마음의 성장통은 깊어만 갔다.

 

어릴적 우리집 뒤뜰에는 울창한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게 대나무는 아주 친숙한 나무이다. 대나무 숲은 내겐 피난처 같은 것이었다. 담벼락과 대나무 숲과의 사이엔 텅 빈 공간이 있었는데,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할 때, 혹은 할머니에게 꾸중들을 일이 있을때, 그 사이에 꼭꼭 숨어 있고는 했었다. 한 여름에는 시원하기가 말할 것도 없었고 한 겨울엔 그 안에 있으면 오히려 포근했다. 나의 성장통은 대나무 숲에서 대나무의 서걱거리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대나무의 깊은 성장통과 함께 자랐다.


 

봄이면 땅을 뚫고 치솟는 죽순이 장관을 이루고 텃새들이 찾아와 알을 품는 서식지가 된다. 청량한 바람이 한바탕 날아가면 나무는 슥슥 석석 자신들만의 언어로 시를 읊는다. 키가 기다란 몸에 여린 이파리들을 달고 외유내강을 자랑하고 있지만, 마치 어린아이가 성장통을 앓으며 우람한 청년으로 변해가듯 그렇게 대나무는 끝없이 치솟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대나무1.jpg
 

아들, 진하가 성장통을 심하게 겪었다. 워낙 운동량이 많은 아이라서 그런지 심할때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혹시 다른 질병의 영향일지 몰라 병원에 엑스레이며 여러가지 검사를 해보니 건강엔 지장이 없단다. 성장통이 심한거 같다며 약을 조금 처방해 주며, 혹시 너무 고통스러워 하면 먹이라고 한다.

아이에게 성장통과 대나무 이야기를 해준다. “대나무가 하늘로 치솟기 위해, 곧고 튼튼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매듭을 만들어야 클 수 있는데, 대나무가 매듭을 만들 때 아주 고통스럽다고 한다고…” 그러니 “우리 진하도 튼튼하고 곧게 자랄려고 그러나 보다” 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정말 그러냐고 묻는다.

글쎄~~ 대나무와 대화를 할 수 없으니 정말 그럴런지 사실여부는 알 수 없으나, 그렇다고 말해 주었다.  아이는 그 이후로 다행이도 성장통을 잘 참아내고 있다. 아마도 자신에게 대나무의 매듭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나보다. 글쎄! 뭐 그리 큰 위로가 되었을까만 감수성이 예민하고 영민한 아이이니 성장에는 그만한 아픔이 따르나 보다 생각했나보다.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어있는 대숲을 찾은 적이 있다. 담양호를 중심으로 추월산과 금성 산성의 맥을 따라 펼쳐져 있는 대나무 숲을 바라만 봐도 섬뜩 찬 기운이 몸에 와 닿는 듯하다. 어느 하나 휘거나 굽은 것 없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대나무들은 쉬쉬 서걱서걱 비밀스런 저들만의 이야기를 수런거린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숲에 서서 염원을 바라며 서 있는 듯한 나무들을 한참 올려다보고 있자니 뒷목이 뻣뻣해온다.. 한 손으로 뻣뻣한 목을 주무르며 올려다본 긴 대나무들의 모습이 마치 옛 고고한 선비의 모습을 닮은 것 같다. 올곧고 서릿발 같은 정신이 엿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가슴속은 텅 비워 온갖 소리를 받아 안아주는 나무, 그 가슴에 받아 안는 것이 어찌 소리뿐이겠는가

 

삶에 대한 성장을 맞추지 못하고 여전히 심하게 성장통을 겪고있는 엄마와 매일밤 한뼘씩 자라나기 위해 성장통을 겪는 아이가 하늘을 향한 염원을 품은 꼿꼿함과, 무엇이든 품어 줄 수 있는 속을 지닌 대나무처럼 성장하게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깊은 땅 속 대줄기에서 자라나는 어린 죽순은 마치 피침모양으로 뾰족하고 신비스런 결들로 겹겹이 쌓여있다. 깊은 땅 줄기에서 연한 순을 잉태하는 나무, 텅 빈 몸통에 긴 세월의 가락을 채워 온유한 숨결을 품어 자신만의 소리를 갖게 되듯 우리의 삶이 그렇게 성장하게 되기를 꿈꾼다.

우스스스 바람이 대나무자락을 스치며 지나간다. 파르르 떨며 인사하는 댓잎들이 정겹다.

IP *.161.25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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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
2008.09.09 12:08:11 *.161.251.172
이미지가 안 올라가요. 우~~ 멋진 대나무 사진  중간에 쏙 넣을라 했는디...
못하겠다는.... 힘든 과정 끝에 이미지 다시올립니다. 재동씨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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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8.09.09 16:04:56 *.160.33.149

은미야, 

내가 산에 갔다 오다  네 생각을 하다 떠오른 것인데,   나의 성장 에너지, 그것 말야  10대 풍광을 매우 치밀하게 써보면 어때 ? 

과거의 돌이켜 나를 키운 성장에너지를 찾지말고,   '나를 키운 10개의 생의 풍경' - 이런 컨셉이야.
여행, 출판사, 카페, 떡집... 등등 10개의 풍광을 자세히 생생하게 창조적으로 흥미진진하게 상상력을 다 동원하여 그리고  미래의 그것이 나를 끌어주는 에너지로 그려보면 매우 다이내믹하고 흥미진진하고, 너처럼 생각하면 행동이 되는 기질에는 딱 맞겠구나. 

그러니까 과거에 나를 키운 에너지를 찾지말고, 나를 이끌 미래 에너지,  그 에너지를 10대 풍광에서 찾아 보면 재미있어 보인다.  어떠냐 ?   가장 아름다운 여행기를 하나 쓰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가득한 출판사를 이루는 장면을 쓰고, 작가로 성장하는 너를 그려내는 것은 어떠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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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9.09 17:06:35 *.97.37.242
은미야. 사부님 출판사 얘기 또 하신다.
4기에선 너밖에 없는 모양이야. 사부님 아이디어를 실현시켜 줄 사람이.
출판사 사장님되면... 내 책 알지?  잘 부탁드립니다. 이사장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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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남
2008.09.10 10:10:58 *.122.143.151
은미씨, 사부님 얘기 잘 알아들었지?
일단 '성장'이란 키워드는 상당히 좋아 보여. 그리고 항상 진행, 진보가 필요한 긍정적 단어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어떻게 풀어가느냐의 문제인데...

지금의 나를 '성장'시켜 준 것은 뭐뭐뭐 였다...
이건 조금 재미가 떨어지는게 사실이겠지?
사부님의 말씀도 좋은 아이디어가 될 듯 해.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를 수 있는 성장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찾아보는 것도 필요할 듯 하고.
흠....
성장이 필요한 사람들이 진심으로 알고 싶어하는 건 뭘까?
좀 더 생각해보자.... 머리 아프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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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
2008.09.10 13:21:31 *.161.251.172
사부님, 미래 에너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더 많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점점 글쓰기가 어렵습니다.
'성장'이란 키워드를 가슴에 하나가득 안고 파고들면 길을 만날 수 있을것이라 믿습니다.

정산형님, 출판사하게 되면 형님책은 당연히 제가 내겠습니다.
열심히 쓰시고 계신거죠. 형님을 응원합니다.

책코치, 책코치는 아무나 하나 ~~ 형 고마워요.
자기 일처럼 생각해주는 책코치 복받을겨
'성장'이란 키워드는 정말 마음에 든단 말이야.
어떻게 주제를 이끌어 갈 것인가가 문제겠지만...

모두 넉넉하고 풍성하고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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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9.11 11:40:47 *.240.107.137
아이와 자기를 이어가는 글 맛이, 예전의 어느 글에서도 느낀 것인데, 아주 좋아.
좋은 그림이 그려져.
아주 따뜻하고, 그 따뜻함이 읽는 이의 어깨에도  황혼처럼 내릴 것 같은 위로의 메시지..
그런 게 은미씨에겐 잘 어울린다.
성장이란 키워드는 그런 은미씨 이미지에 왠지 무척 잘 어울리는 단어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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