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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9일 11시 58분 등록



시련을 극복한 사람들. (1)

직업 택시 기사. 36세. 인터뷰 시간 30분.

  그는 밤늦게 집에 돌아 갈 때 부르는 콜택시운전기사였다. 콜택시 회사에서 연결해 준 그에게 호기심이 생긴 것은 그의 전화가 올 때 뜨는 문자 때문이었다.  번호 대신, ‘행복 하세요’ 라는 문구가 뜨는 것은 여러번 봤는데 ,  그의 문구는 ‘움직이면 돈이다’ 라는 문구였다.  핸드폰 폴더창의 문구는 대부분 핸드폰 주인의 의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나는 그의 의지가 궁금해져 그를 인터뷰 하기로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편의상 그를 박이라 부른다.


앤: ''움직이면 돈이다' 란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박: 내 직업의 특성상 그렇지 않은가? 일분이 아깝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택시는 밤공기를 가르며 경인 고속도로를 그야말로 스피드하게 달렸다. 손잡이를 꽉쥐고  나는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었다. 

앤: 언제부터 택시를 하게 되었나?

박: 지금부터 2년 전이다. 원래 다른 일을 했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곁에 있으려 시작한 일이다.

앤: 어머님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다. 그렇다면, 전에 하던 일은?

박: 수산물 도매라고 하면 될 것이다.

앤: 수입은 어느 쪽이 더 좋은가?

박: 택시는 벌이가 안 된 다. 먼저 하던 일이 수입이 정말 좋았다.

앤: 그런데 어머니때문에 어떻게 그일을 그만뒀나?

박: 어머니에게는 나뿐이다.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영덕에서 들었는데 택시를 대절해서 병원으로 달려 갔다.
 택시는 이달말까지만  하고 다시 본업으로 복귀할 것이다. 어머니도 건강을 되찾으셨다.

앤: 잘 되었다. 수산업은 언제부터 했는가?

박: 크게 하던 일이 망하고, 시작하게 되었다.

앤: 아 IMF였나? 그때 좋았던 사람이 누가 있나. 태풍을 견디느라 다들 힘들었지.

 탁구공을 주고받는 것 처럼 오가던 대화가 잠시 끊기고, 차내는 잠시 정적이다.
박은 어느사이 앤이 처음 택시를 탈 때 크게 들리던 오디오의 볼륨마저 줄인 상태다.

잠깐의 침묵을 깨고, 박이 차창을 조금 내리더니 ‘담배 좀 피워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창문까지 내린 그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할 수 없었다. 경험으로 미루어 그는 하기 힘든 이야기를 어찌할까 망설이는 중이다. 이럴 때는 가족 이야기가 최고다.

앤: 지켜보는 어머니가 힘드셨겠다.

박: …… 정말 힘들게 해 드렸다. 어머니 돈까지 다 투자해서 집까지 날리고. 아들이라고 나밖에 없는데, 회사 부도나고 칠 개월을 차에서 살았다. 다 정리하고 보니 트럭이 하나 남아 있더라. 그 차를 몰고 무작정 가다가다 영덕까지 갔다.

그가 드디어 입을 뗐다. 이럴 때는 잠자코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된다. 

박: 가지고 간 돈도 없고 카드는 정지되고, 차에서 컵라면으로 때우며, 숙식을 해결하다 어느날, 농약 두 개와 소주 두병을 샀다. 그날 밤. 달이 어찌나 밝은지 그 달빛이 기가 막혀 눈물도 안 났다.
 소주병과 농약병을 들고, 둑에 앉아 뚜껑을 땄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부도가 난 이후에 내가 보던 세상은 총천연색이었는데, 그 이후에 세상은 완전흑백필름 같더라. 그때 알았다. 세상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 돈을 사랑한 거라는 것을. 어머니 생각을 해봐도 나 같은 인간은 빨리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효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 같은 분은 아마도 그 심정 모를 것이다.

컵에다 농약 삼분의 일과 소주를 섞는데 누가 날 불렀다. 처음엔 순찰 나온 경찰이 부르는 줄 알고, 놀랐다. 그런데,

앤: 그런데 아름다운 아가씨였나?

듣고 있기가 너무 우울해 앤은 부러 농을 했다. 하기 힘든 이야기를 굳이 듣고자 했던 미안함이이기도 했다.

박: 아가씨는 아니고 아줌마들이었는데, 농약을 먹으려는 내게 안주를 가져다주었다. 그게 참 이상한 것이  그 안주가 멍게였다. 인천 사람이라 멍게를 참 좋아한다. 어릴 때 학교 앞에서 옷핀 꽂아서 한 개 씩 팔 때 그거 먹으려고 며칠씩 공병을 주워 돈을 모아 사먹곤 했다.

그래 기왕 죽을 거 좋아하는 안주삼아 마시자하고 접시째 들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랬더니 아주머니들이 ‘총각 더 줄까’ 하고 물었다. 알고 보니 그날 장사하고 남은 떨이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며칠씩 그 앞에서 죽치고 있는 내가 배를 곯는 것 같아 준 거라고 했다.

앤: 멍게도 먹었는데 왜 안 죽었나?

박: 웃음. 그러게,  좋아하는 멍게 몇 개를 한꺼번에 씹고 있으니,  오랜만에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그 날 이후 그 트럭으로 멍게 장사를 시작했다. 수입도 늘었고, 어머니께 작은 빌라도 사드렸다.

앤: 이젠 농약은 치웠나?

박: 그날이후 며칠 지나 버렸는데, 사람들이 뭘 먹고 사는지 관심이 가지더라. 그러면서 다시 살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돈도 어떻게든 벌게 되고.

앤: 전에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난 것은 순전히 IMF 가 이유였나?

박: 아니다. 그렇다고 생각하려 했는데 지금 와 생각하니 택배운송차가 늘고 직원이 늘면서 거만해졌던 것이다. 운송사업이었는데 종업원이 200명이 되니 브랜드를 빌어 사업을 더 확장하고 싶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아직도 그 대기업과 소송 중이다. 문어발식 확장으로 소기업 잡아먹는 거 여전한 행태고. 프랜차이즈 약관은 아직도 대기업 위주로 불합리한 채고.

앤: 어머니는 편안해지셨겠다.

박: 7개월동안 살았는지, 죽었는지 전화 한 통화 못 하다 장사 시작하면서 전화 했더니 말없이 우시기만 하셨다.

앤: 이제 어떻게 살고 싶은가?

박: 나는 다시 돈을 벌 것이다. 돈 없는 세상은 나의 존재가 없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려야 했던 것이다.  무언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그,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게되었다며,  택시비를 받지 않으려는 그에게 나는  우수리를 받지 않았다.  아주 적은 것이지만, 그의 꿈, 부자로 사는 것을 돕고 싶었다. 

부자가 되어 잠시 그를 홀대했던 세상에 되돌려 주고 싶은 그의 별명은 '스피드박' 이라고 했다.

그가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은 부를 축적하는 것이었다.

위기를 극복하고, 그의 상처에 딱정이가 제대로 앉은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상처의 안전장치가 되어줄 것인지, 궁금해진다.

어쨌거나 그는 사막을 건너 건강한 일상을 꾸려 가고 있다. 그리고 한가지 그가 자신에 대해 간과한 것이 있다.

돈을 버는 것만이 전부라던 그가 한 분 밖에 안계신 어머니가 쓰러지자 소득이 높은 일을 그날로 동댕이치고 ,
(그는 멍게를 영덕에서 배째로 떼어, 큰 물탱크에 실고 인천에 도매로 파는 일을 한달에 21회정도를 했는데, 그 수입이 정말 좋았다고 한다)  어머니를 돌봤다.
 그가 사실은 돈보다도 어머니, 사람을 더 귀히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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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9 13:12:18 *.38.102.233
아직 사부님 말씀의 포맷을 제대로 잡지 못해 헤메는 중. 쓰다 보면 지푸라기라도.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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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년지혜
2008.09.09 14:01:09 *.251.5.1
그날 내가 쓸 책 이야기를 끝낸 뒤에 예기치 못하게 발생(?)한 이런 인터뷰 기회가
'시련을 극복한 사람들'쪽으로 써보라고 손짓하나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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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9 14:06:30 *.227.22.57
아~ 이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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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9 15:19:22 *.38.102.233
삶이 더 드라마틱 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들으면서 마음이 짠했어요.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압축한 거. 종윤 선배의 그말은 무슨 뜻인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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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9.09 16:56:41 *.97.37.242
서른 여섯에 많은 경험을 한 거네요.
이 사람 극복하고 다시 일어날 것 같군요.  그냥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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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09.10 10:04:41 *.122.143.151
흥미있게 잘 읽었어요..
한가치 '책'을 잡자면..
대화의 중간에  ...., !!!, (자연스럽게 웃으며-지문), ??? 등 문자 기호를 적절하게 써 넣으면 좋을 것 같아요.
글이라는게 그렇잖아요..
단어와 단어사이, 문장과 문장사이 여백과 여러 기호들을 잘 이용하면 독자의 호흡, 감정, 생각을
좀 더 자극하거나 깊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내 말 맞죠?

아.... 난 넘 차캐...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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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9.10 11:00:45 *.247.80.52

너무 좋아요. 시련이나 실패를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가까이 있다니, 앤님의 코멘트도 힘을 팍팍 실어줍니다. 집에 가는 잠깐 동안 벌써 한건을 하셨네. 이제 마구 책과 연결시키실 것 같아요.

응원합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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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9.11 12:02:06 *.240.107.137
자긴 이런 글이 좋구나.
글에 연륜이 있어. 땡기는 힘이 있다고. 긴박감도 있고,
사소한 이야기를 사막을 건너는 사람들 일반의 이야기로 연결하는 그대의 글 솜씨도 빼어나고.
시련을 극복한 사람들이란 제목은 진부하게 다가왔는데 자기 글은 진부하지 않아.
집에 가는 길에 벌써 한 건을 했다는 정화씨 말, 내 얼굴에 미소를 주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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