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3217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21년 11월 15일 00시 33분 등록




오래 말하는 사이


                       신달자


 

너와 나의 깊은 왕래를 말로 해왔다


오래 말 주고받았지만


아직 목마르고


오늘도 우리의 말은 지붕을 지나 바다를 지나


바람 속을 오가며 진행 중이다


종일 말 주고 준 만큼 더 말을 받는다


말과 말이 섞여 비가 되고 바람이 되고


때때로 계절 없이 눈 내리기도 한다


말로 살림을 차린 우리


말로 고층 집을 지은 우리


말로 예닐곱 아이를 낳은 우리


그럼에도 우리 사이 왠지 너무 가볍고 헐렁하다


가슴에선 가끔 무너지는 소리 들린다


말할수록 간절한 것들


뭉쳐 돌이 되어 서로 부딪친다


돌밭 넓다


살은 달아나고 뼈는 우두둑 일어서는


우리들의 고단한 대화


허방을 꽉 메우는 진정한 말의


비밀 번호를 우리는 서로 모른다


진정이라는 말을 두려워하는


은폐의 늪 그 위에


침묵의 연꽃 개화를 볼 수 있을까


단 한 마디만 피게 할 수 있을까


단 한마디의 독을 마시고


나란히 누울 수 있을까


 


신달자 시집, 『오래 말하는 사이』, 믿음사, 2004


 


IP *.37.189.73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4 [시인은 말한다]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 다니카와 슌타로 정야 2021.11.22 3986
243 [시인은 말한다] 빗방울 하나가 5 / 강은교 정야 2022.01.03 3404
242 [시인은 말한다] 새출발 / 오보영 file 정야 2019.07.05 3391
241 [리멤버 구사부] 나를 마케팅하는 법 정야 2021.12.13 3384
240 [시인은 말한다]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다스릴 바람이 없다 / 이은규 정야 2021.12.13 3380
239 [시인은 말한다] 어떤 나이에 대한 걱정 / 이병률 정야 2021.12.20 3351
238 [시인은 말한다] 너에게 보낸다 / 나태주 file 정야 2020.09.21 3337
237 [시인은 말한다] 작은 것을 위하여 / 이기철 정야 2021.10.25 3319
236 [리멤버 구사부] 실재와 가상 정야 2021.12.31 3268
235 [리멤버 구사부] 나는 트리맨(treeman)이다 정야 2022.02.28 3228
» [시인은 말한다] 오래 말하는 사이 / 신달자 정야 2021.11.15 3217
233 [시인은 말한다] 깨달음의 깨달음 / 박재화 정야 2021.10.11 3197
232 [시인은 말한다] 제도 / 김승희 정야 2021.09.27 3194
231 [시인은 말한다] 세상 쪽으로 한 뼘 더 / 이은규 정야 2022.02.03 3162
230 [리멤버 구사부] 삶에 대한 자각 정야 2021.11.15 3151
229 [시인은 말한다] 벌레 먹은 나뭇잎 / 이생진 file 정야 2020.10.05 3145
228 [리멤버 구사부] 한잠을 자고 일어나면 정야 2021.10.11 3129
227 [리멤버 구사부] 삶의 긍정, 그것은 이렇다 정야 2021.11.01 3103
226 [리멤버 구사부] 이해관계 없는 호기심 정야 2021.10.18 3092
225 [리멤버 구사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정야 2022.01.10 3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