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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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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5일 20시 31분 등록

며칠 전 우연히 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천직 찾아 휴가가요'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은 자신의 천직을 찾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직업을 잠시나마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그곳에 지원을 한 사람들 모두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잘 살아가고 있는 듯 했으나, 정작 그들의 마음 속에는 다른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아닌 다른 일, 그것도 기존에 하던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일들을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뿐인 황금 같은 휴가기간을 투자하여 그 일을 직접 경험해보고자 그 곳에 모였다. 최종적으로 선발된 두 명의 주인공은 중학교 교사와 3D에니메이터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중학교 교사는 중식 요리사가 되기를 원했으며, 3D에니메이터는 목수가 되기를 원했다. 그들은 2박3일 동안 자신의 천직을 실제로 체험하고 나서는 모두 현실의 벽을 다시 한 번 실감하고 마음을 고쳐먹는 듯이 보였다. 목수를 희망했던 참가자는 체험이 끝난 후 밝힌 소감에서 그 일은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느꼈으며, 나중에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듯하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실제 그들이 나중에 자신의 일을 찾아 갈지는 모르겠지만, 프로그램은 오히려 현실이라는 커다란 벽을 더 크게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진정으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직장생활을 하건 자기사업을 하건 모두들 마찬가지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종자돈을 모아 직장에서 나가 조그만 사업이라도 하며 자유롭게 살길 원하고, 자기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또 매달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직장인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업가가 그리 자유롭지도 않고, 직장인들이 그리 안정적이지도 않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어찌되었건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삶을 꿈꾸는 이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 중에서도 정도가 좀 더 심각한 사람들은 지금하고 있는 이 일은 나의 일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서도 단지 지금의 일이 적성이나 자신이 원하는 삶과 맞지 않아 막연히 이 일은 내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지만 지금의 일을 버리고 떠나지 못해 마음만 애태우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짝사랑하는 이성에게 고백하지 못한 채 속앓이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럴 때 우리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그 고민 끝에 내리는 결론은 대부분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지금하고 있는 일이 나에겐 최고일 거라고 자신 스스로를 설득시키는 것이다. 설령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실제 해보기 전까지는 그것이 정말 자신과 잘 맞는 일인지 알 길이 없으니, 이렇게 자신을 설득하는 편이 편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어디 그렇게 쉽게 단념이 되는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계속 자신을 괴롭힐 것이고, 현실에 대한 불만감은 더더욱 커지고 그로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갈등과 괴로움은 커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기나긴 장고 끝에 결국 훨씬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난 후에야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과거를 쉽게 떠나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미래가 달린 문제이다. 하지만, 그것을 결정하는데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내가 살아온 길이며 과거이다. 그동안 내가 공부한 것을 모두 버려야 할 때도 있으며, 그동안 쌓아온 경력을 모두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돈이 얼마인데 이걸 버릴 수가 있을까하며 본전 생각이 날 수도 있다. 물론 자신의 과거를 몽땅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는 그 선택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29살이었던 어느 봄날, 야구장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던 중 한 선수가 2루타를 치는 순간에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그 순간의 영감을 충실히 따라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 또 이와는 달리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접어두고 다른 길로 갔지만, 엉뚱하게도 그 곳에서 자신의 천직을 발견하고는 큰 성공을 거둔 이도 있다. P&G의 CEO겸 회장인 앨런 파플리가 그러하다. 그는 르네상스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가 되고 싶었으나 그의 계획은 2년 간의 해군 복무로 대학원을 중퇴하면서 접어야 했다. 그는 도쿄 해군기지 근처에서 6개월 동안 채소가게와 잡화점을 운용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개인마다 상황은 다양하고, 하고 싶은 일도 다양하고, 그것을 찾아가는 길도 다양하다. 경영의 대가 잭 웰치는 은퇴 후 발간한 <위대한 승리>에서 '어느 곳에 당신을 위한 일자리가가 기다리고 있는 지를 미리 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말로 이런 어려움을 표현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찾아낼 수도 있으며, 우연히 찾아오기도 한다. 또한 자신이 그동안 쌓은 경험을 활용할 수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자신의 경험을 전혀 활용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직접적으로 그것들 사이에 연관성이 없어 보일 때 그 고민은 더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요리사가 되고 싶은 교사가 있는가 하면, 목수가 되고 싶은 에니메이터가 있다. 또한 내 주위만 봐도 파티쉐가 되고 싶은 웹기획자가 있으며, 성우가 되고 싶은 CEO가 있다. 동시통역사가 되고 싶은 교직원이 있으며,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은 의사가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실제 자신의 꿈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들 모두 한결 같이 하고 싶으면서도 그곳으로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살아오던 적응되고 편안한 삶을 놓기 싫어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의 경우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것을 선택했을 때 내가 얻을 좋은 점만 생각한다. 그것을 선택했을 때의 발생하는 문제점, 그것에 도전해 실패했을 때의 악영향 등 모든 것을 생각하고 고려하는 것이 치밀하고 준비성 있어 보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것이기에 하겠다면 굳이 그런 것들을 꼼꼼히 따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나에게 그것은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방해하는 짐으로만 작용할 뿐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다른 어떤 것을 할 때보다 성장속도가 빠르다. 무엇보다 그 과정 또한 재미있다. 자신의 생각지 못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 일을 통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 원하는 것을 어느정도까지 성취할 수 있겠는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삶보다 나은 삶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좋다. 당연히 정신적, 물질적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 만족도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것을 이루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지치고, 지치면 결국 포기하게 된다.

무엇을 선택하는 것, 특히 직업과 같이 나와 내 가족에게 중대한 사항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심사숙고는 당연한 단계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할 최종 목적지는 단지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만족감, 자유로움, 경제적 안정, 즉 내가 생각하는 모든 행복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그것을 이루는 과정인 것이다. 결국 도달해야할 목적지를 놓고 봤을 때, 과연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좋겠는가를 생각해보면 조금 고민이 덜어질지 모르겠다. 역시 선택은 자신의 몫일 뿐이다. 배운것이 도둑질이라는 말로 자기를 위로하며 현실에 만족하든지, 아니면 뭔가 자신이 원하는 인생으로 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모색과 도전, 실패, 실험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자신의 내부에서 두 목소리가 열심히 자신의 소리를 높이며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겠는가?

'마지막 강의'로 유명한 랜디 포시 교수의 한마디가 가슴속에서 고개를 든다. "자신을 가로막고 선 벽은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 우리가 얼마나 그것을 원하는지 증명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이 그것을 얼마나 원하는지 고민해 볼 것이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면 미련을 버리고, 어쩌면 돌아올 수 없는 그 벽을 기꺼이 넘겠다면 뒤돌아보지 말고 넘어보자. 그 벽을 넘지 못하겠다면 내가 넘을 수 있는 다른 벽이 다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포기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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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9.15 21:13:42 *.36.210.60
지환아, 너의 글이 진화하는 구나. 마음먹고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드네. 좋다. 열심히 하면서 웃는 네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촌집 같은 너희들 만의 보금자리도 가꾸고 넉넉한 글쓰기와 함께 휴식도 취할 수 있는 그런 집에 너희 부부가 머물 공간이 하루 빨리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 꼭 그리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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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환
2008.09.16 09:17:05 *.34.17.28

감사합니다. ^^ 저도 빨리 그리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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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8.09.15 21:28:46 *.160.33.149

네 유머감을 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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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환
2008.09.18 09:02:22 *.34.17.28
그래요? 성공했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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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8.09.16 15:35:32 *.122.143.151
이 댓글도 웬지 웃긴걸!!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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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환
2008.09.16 09:17:37 *.34.17.28
네, 잘 될진 모르겠지만 한 번 웃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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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6 23:59:15 *.71.235.3

  그러게 다시 찾은 직장이 새롭게 반가웠다던, 그말. 의미있었어. 
  그런데 현실보다는 그의 적성에 안맞은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한 경향이 있던 것도 같지. 아이 책상을 만들어 주는 취미 수준이었는데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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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환
2008.09.18 09:00:47 *.34.17.28
그런 것도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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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9.17 06:23:14 *.37.24.93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옮겨놨네. 잘 정리된 글 읽기좋다.
지환이의 왠지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어. 이야기하면서 보여주는 그 미소.
그거 살인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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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환
2008.09.18 09:01:16 *.34.17.28
저도 살인미소의 소유자였군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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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9.17 15:25:38 *.97.37.242
'배운것이 도둑질?' ㅎㅎㅎ  그거 내가 자주 쓰는 말인데....

중년 이후에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것 같다.
젊었을 때 처럼 열정을 갖기도 어려울 것 같고,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아는 때문이겠지.
새로운 시도를 했다가 잘못됐을 때,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실패의 무게가 너무 버겁다고 느낄 수도 있고....

그래서 말인데, 중년 이후에 자기 일을 하면서 Second Job을 통해서 자신의 성취를 이루고
인생의 활력을 찾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건 불가능 할까?  한번 검토 해봐줘, 최코치님~~ 오프 수업때 보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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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환
2008.09.18 09:01:53 *.34.17.28
검토..네 알겠습니다. 형님..ㅎㅎ.
토욜날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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