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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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또 엄마는 이성을 잃으셨다. 아침 먹고 출근하던 차에 엄마는 나에게 무언가를 던지셨다. 그러나, 그게 무언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러니까, 시집 안 간 딸은 이제 동네북이다. 마음 같아서는 집을 나가서 내 공간을 갖고 살고 싶은 생각이 굴뚝인데 재정적인 형편상 불가하다. 마음이 심란하다. 며칠 전 같은 노처녀 군번을 달고 다니던 아파트 같은 라인의 선희의 청첩장이 집에 도착한 것이 화근이다. 그걸 재빨리 숨겼어야 했었다.
엄마의 이성을 잃으심. 그것은 십분이 아니라 백분 천분 만분도 더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게 사실 나도 내 맘대로 안 된다. 글쎄, 잘 나가는 골드 미스가 되는 것. 그게 나한테도 꿈이었다. 그러니까,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 되어서 돈을 많이 벌고 그리고 홀로 독립하여 고고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마음껏 자유를 누리면서. 그런데 그것은 이루지 못한 꿈이 되고 말았다. 여차저차 여러 가지 시도만을 하다가 그러다 그냥 이 상태로 쭉 미적지근 잘 나가지도 않고 못 나가지도 않는 상태도 겨우겨우 밥벌이를 하며 부모님 눈치 보며 살고 있단 말이다.
글쎄, 나도 우리 엄마를 그런 ’狂‘의 나라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단 말이다. 그런데 어쩌랴. 그게 그렇게 되어 버렸다. 엄마는 또 狂의 나라에 가셨다. 오늘은 퇴근 후에 집에 들어가기도 어렵게 됐다.
그 날 난 회사에서도 죽을 쒔다. 실수를 연발해서 우리 부장님을 화나게 만들었고 여러 가지 일들이 꼬였다. 그랬다. 그런 날이었다. 꼬였다. 꼬인 거는 재빨리 풀어야 한다. 그래야 빨리 정상으로 돌아간다. 그건 아는 데 뭘로 푸나?
이 상태로 집에 갔다가는 회사에서 가져온 나의 무능에 대한 자책과 엄마의 ‘광’ 폭탄을 한꺼번에 맞아서 또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발길이 저절로 다른 곳으로 향한다. 갤러리다. 이 놈의 마녀 짓이다.
‘너 또 갤러리 가자는 거야?’
‘응’
‘그래, 집에 가서 뭐하겠니? 갤러리나 가서 마음이나 한 번 돌려 보자구?’
‘응, 근데 너 왜 그리 심각하니?’
‘뭐 그런 걸 다 물으실까? 마녀 주제에. 아실 건 다 아시면서? 추석은 낼 모레고 엄마는 또 새로운 청첩장을 받으셨고 회사에선 또 사고 쳤고’
‘히히히힝, 내가 다 풀어 주지’
‘야 마녀 근데 울 엄마를 좀 즐겁게 해 드리는 법이 없을라나?’
‘이 그림 보면 생각이 날 지도 몰라.’
‘왜 시집을 안 가면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지 난 잘 모르겠어. 아무튼 시집을 가던 안 가던 우리 엄마랑 잘 지내보고 싶단 말이야. 뭣 때문에 시집 가는 문제 땜에 서로 서로 속이 썩어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어.’
‘그림을 보면 또 나아질지도 몰라. 또 알아 그림이 너한테 또 좋은 해답을 가르쳐 줄지?’
‘야, 이 그림 뭐래는 거냐? 정말 웃기다. 저 얼굴 동그란 애 마치 누구 닮지 않았냐? 웃음도 묘하다.’
‘그런데 너 시집 가는 건 어때?’
‘시집?’ 그게 쉽지 않다니까요.’
‘뭘 그걸 진지하게 생각하래냐? 뭐 요즘 갔다가 되돌아오는 돌싱(돌아온 싱글)들도 그렇게 많다는데 어찌 생각하면 그리 어렵게 생각할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 저 그림 속에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냐? 얘 인생.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게 어렵게 생각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 게 인생이야. 뭐 별거 있냐?’
‘그래 맞다. 네 말이 뭐 그리 어려워졌나 몰라? 쉽게 생각하면 되는데 그림 속에 저 아이처럼 저렇게 생각하면 생각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심각하게 말고 안 심각하게 사는 법이……’
‘이런 건 어때? 얼마 전 내가 들은 이야긴데 말이야.’
‘가만, 네가 그 이야기를 하던 차에 문제의 해결 방법이 하나 생각난다.’
갑자기 마녀 덕에 어떻게 할지 생각이 났다. 결혼을 한다. 결혼. 그래 결혼을 하자. 상대는?
구해야지. 어떻게? 구인 광고를 하나 낸다. 뭐 이왕에 아무나 하고 하기로 마음을 먹은 고로 문제
는 매우 쉬워진다. 그러니까, 신문에 구인 광고를 하나 내는 거다.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체격
조건으로.
이 기회에 우리 부모님께 마음의 빚도 좀 갚는 거다. 사실, 나는 괜찮지만 우리 부모님이 받을 스
트레스를 생각하면 결혼을 해 주고 싶었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너무도 잘 된 일이다. 일단. 사람
들에게 내가 결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면 우리 부모님은 그 동안 겪던 스트레스에서 많이
해소가 될 것이다. 이야, 이런 기발한 생각이 왜 이제야 난 거지?
이렇게 좋은 생각이 있었는데. 왜 여태 몰랐지?
그래서 갤러리에 오길 너무 다행이라는 거다. 저 태평스런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한 번 웃으니까 좋은 아이디어가 저절로 생각이 났다.
참, 그런데 이 결혼의 목적은 뭐지? 이 결혼은 ‘부모님 위로용’이다. 거기다 나를 위한 보너스도 하나 있다. ‘사업 자금 마련’ 나중에 서서히 밝혀지겠지만 이거 성공만 하면 꿩 먹고 알 먹고 다. 우리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고 그리고 나서 나를 위한 보너스도 마련되어 있으니 말이다.
이쯤에서 밝혀 두자면 내 결혼은 일종의 거래가 될 것이다. 상대를 하나 구해서 결혼을 하고 적
당한 시기를 봐서 서로 헤어진 것으로 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우리에게는 축의금과 결혼과 관련
되어 양가의 나오는 지원금이 생길 거다. 그것은 정확하게 갈라서 각자의 소유로 하는 거다.
완벽한 시나리오를 위해서 몇 가지 더 자세하게 구상을 해 둔 부분도 있다. - 물론 지금까지는
내 머리 속에서 만의 시나리오 지만. 일단 커플에 헤어졌다는 사실에 상심하실 부모님의 충격을
줄여 드리려면 일단 우리는 결혼을 하고 얼마 안 있어 유학을 위해 해외에 가는 시나리오를 마련
해 두었다. 그리고 결혼 자금은 일단 되도록이면 현금으로 마련한다. 이 부분은 우리가 유학을 갈
것이라는 가정과 함께 아주 잘 맞물려 돌아간다.
아싸, 이 정도면 먼저 작업에 착수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뒤돌아 보지 말고 일단 인터넷 구인
광고란에 구인 광고를 하나 냈다.
“ 25 ~ 35세의 연기 경력 있는 단역 배우를 구하고 있음. 촬영은 3달 정도 간간히 지속될 예정.
직장인도 환영. “
자 일단 사람 모집 광고는 내 놨으니 곧 있으면 전화가 올 거다. 한 20명쯤 인터뷰를 보고 사장
그럴싸한 놈으로 고르는 거다. 배시시 웃음이 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도 기발한 아이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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