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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5일 22시 59분 등록

 

최근 들어 무심코 장만한 혼수 품목 몇 가지가 눈에 거슬린다.

가구의 다지인이 맘에 안 든다거나 품질이 별로라던가 하는 말이 아니다.  

결혼 전에 미리 남편과 얘기 된 것처럼 우리는 시골로 이사할 생각이었다. 분명 시골로 이사를 하게 된다면 조만간이 될 것이기에, 또 충분한 돈으로 TV에서 보는 것과 같은 전원주택으로 이사할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혼수 물품은 조금만 해야겠다, 꼭 필요한 것만 해야겠다라는 생각이긴 했었다. 단지 이사할 때 짐이 많지 않게끔만 물품을 사들이고 유지하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물품들은 현재 우리 공간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만큼 생각 없이 욕심을 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더불어 우리의 공간과 그것을 이용할 나와 남편의 라이프 스타일이 반영된 이 장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별 생각 없는, 단순한 본능과 욕망의 결과로 얻게 된 품목에 대해 살펴보면..

먼저 거실 가죽 쇼파.

짐을 줄이네 어쩌네 맘은 먹었지만 이 정도는 사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보자마자 별 고민 없이 사게 된 물품이다. 침대와 가구를 구매하면서 같은 브랜드의 제품인 이 쇼파도 마침 20%세일까지 한다 길래 냉큼 구매하게 된 것이다. 평소에도 부모님 집에 쇼파가 놓여져 있었기에 향후 내가 사용하게 될 빈도와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 생각 없이 구매를 하게 된 것이다. 거실이라는 확보된 공간이 있다면 쇼파가 있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사고의 결과인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구매는 단연코 돈 낭비였다. 그 쇼파는 현재 집에 누군가가 방문하면 가끔 앉거나, 바닥에 앉을 때 등을 기대는 역할로 주로 쓰인다. 그렇지 않으면 다 마른 빨래를 걷어다 쌓아두는 장소로 변하고 말았다.
단촐한 2,3인용 쇼파도 아닌 4인용에 스툴까지 포함되어 있어 공간 차지도 많이 하고 있어 요즘은 영 눈에 가시다. 향후 시골로 내려간다면 결코 함께 내려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면 구매에 들인 돈이 참 아깝다. 그 돈으로 책이나 실컷 살걸

그 다음이 서재 쇼파.

서재에 놓인 3인용 쇼파다. 이 쇼파는 완전한 충동 구매의 결정판이다.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 ‘XXX’를 구경하던 중 모던한 이 천 쇼파에 마음을 뺏겼다. 이미 쇼파는 있지만 이 쇼파는 왠지 서재의 휑한 구석 공간을 잘 채워 주며 시각적 만족감은 물론 서재에서의 나만의 즐거운 책 읽기 시간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구입한 그 쇼파는 현재 먼지만 수북이 뒤집어 쓴 채 뒷방 노인 신세다.

 

사실 나의 집을 이용하는 패턴을 보자면 평일은 주로 늦게 귀가하므로 씻고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고 작은 책상을 올려 두고 앉아 책을 읽다가 잠드는 편이다. 주말에는 주로 식탁이나 서재 책상을 이용해 독서를 하거나 컴퓨터를 이용한다. 거실의 푹신한 쇼파나 서재 구석의 천 쇼파는 거의 이용할 일이 없는 신체적 스타일과 삶의 패턴이다.

남편 또한 나와 비슷한 패턴을 가지는데, 그는 주로 서재의 책상이나 좌식 책상을 이용한다.

현재 드는 생각은 그 쇼파를 살 돈으로 나를 위한 책상을 하나 더 살걸..(현재는 서재 책상 하나라 나는 주로 식탁을 이용하므로) 그것을 거실에 두고 두 개의 서재를 마련할걸.. 그랬더라면 나를 위한 효율적인 거실 공간과 가구의 활용이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다.

 

이처럼 혼수 준비를 하며 미처 나의 주거 패턴에 대해서 고민하지 못해 저지른 실수들이 안타깝다.
남들이 사니까 나도 구매하고 아무 생각 없이 비슷한 아파트에 비슷한 위치에 같은 물품을 배치하고..

단순히 어느 브랜드가 이쁘고 튼튼할까, 이 정도는 사줘야 공간들이 적당히 차겠군 정도만 생각했던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나에게 있어 그 가구의 존재 이유와 나의 삶의 패턴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공간 활용 및 놓여짐에 대한 고민인데 말이다. 이 또한 물건 하나 하나를 나의 개성이 묻어나는 소중한 것으로서 인식하지 못하는 단순히 끌리면 혹은 보면 구매하기정도의 습관으로 행동했던 나의 어리석음일 것이다. 그로인해 현재 우리의 공간이 주인장의 개성이나 생활 습관이 묻어나는 공간으로서 100% 활용되지 못하고 개성 없는 앞 동, 뒷 동의 옆집, 아랫집과 같은 또 하나의 공간이 된 것 같아 아쉽다.

나의 이용 패턴과 습관을 모르겠거든 살아가며 하나씩 하나씩 필요할 때 신중히 생각하고 구매할 수도 있었을 것을 말이다.

 

결코 공간이라는 것과 그 공간에 들어가는 물품들은 돈을 많이 투자했다고 멋지고 좋은 곳이 되진 않을 것이다. 어디서 주워온 나무 선반과 벽돌을 가져다 만든 책 꽂이, 보기엔 투박한 나무 테이블이라도 그 주인이 활용하고 사용하는데 충분히 가치와 의미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좋은 공간, 그 사람 냄새가 나는 멋진 공간이 되는 것일 게다.

 

신혼 초, 다양한 잡지들의 집 꾸미기 사진들을 보며 동경했던 적이 있다. 이정도 하려면 돈이 많이 들겠지? 이정도 하려면 부지런해야겠구나.. 솜씨도 좋네.. 내가 해볼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나의 개성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이쁘기만 한 그런 꾸민 모습들보다는 우리를 위한 공간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좀 더 고민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특히 내가 시골로 내려 간다면 그때는 더더욱 우리만의 스타일이 묻어나는 그러한 공간을 꾸미고 싶다. 마주 보며 함께 앉아 독서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큼지막한 자연목의 책상을 둘 것이고 현재 계속 늘어나고 있어 감당이 안 되는 책들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는 정갈한 맞춤 식 책장 정도를 두고 싶다. 또 주변의 나무와 풀들이 내뿜는 신선한 그 공간 속에 정좌하고 앉아 내 속으로 쏙 빠져들어가 좀 더 탄탄한 나라는 사람만의 우주를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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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7 00:04:25 *.71.235.3
지혜는 참 기다리는 설렘이 많구나.  아가를 기다리는 일, 시골에 보금자리를 꾸미는 일,  생의 첫책을 쓰는일,
지혜뒤만 쫒아 다나면 되겠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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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9.17 07:45:57 *.37.24.93
시골집 어떤 집일까? 집앞이 훤히 내다보이는 그런집.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도 싱그러울꺼야.
무엇보다 주변을 애워싸는 높다란 아파트 빌딩숲 대신 푸른 산 나무들이 반겨주겠다.
지혜야 언능 가라. 내 놀러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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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9.17 19:40:57 *.179.68.77
그들만의 시골 생활이라~
서로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며, 정겨운 독서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조~타!
그러나! 아기 낳으면, 꿈도 못꿀걸........몇개월 간은 잠 한번 실컷 자는 게 꿈일껄.........너무 겁주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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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년지혜
2008.09.18 11:33:52 *.251.5.1
ㅋㅋ 아가는 어머님께서~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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