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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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선생님과의 첫 만남
이상한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어떻게 오셨는지 아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다. 1학년을 마치고 2학년 1학기가 시작된 첫 날 선생님이 출석부를 들고 들어왔다. 1학년 때 까지 학교에서 한 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에 이제 막 오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교실 뒷문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칠판에 ‘이상한’이라고 썼다. 이상하게도 ‘상’자의 ‘o’을 쓰고는 분필이 부러졌다. 그때까지 그게 선생님 이름일 꺼라 생각한 아이는 아마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밑에 한 줄을 더 넣었다. ‘담당과목 국사’
선생님은 왠지 어색해 보였다. 아마 평소에 입지 않던 양복을 첫 출근이라고 세탁소에서 빌려 입고 온 모양이다. 바지가 좀 커보였다. 영락없이 아이들에게 무시당하기 딱 좋은 상태로 서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눈매는 예사롭지 않았다. 눈썹은 그리 짙지 않았고 눈도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얼굴 전체에서 오는 느낌 때문인지 뭔지 모를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때까지 반장 종안이는 일어설 겨를도 없었다.
“이상한 이라고 한다.”
순간 빽이 뭔가를 눈치 챘다는 듯 가슴을 치며 쿡쿡거렸다. 빽은 백승진이의 별명이다.
“야 이상한이 이름인가벼”
옆에 있던 인열이가 시큰둥하게 빽을 째려보고는
“그럴 수도 있지. 뭐가 웃기다는 거냐 넌.” 하며 소보다 좀 작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내가 국사를 전공해서. 너희들과는 일주일에 한번 밖에 수업시간에 못 보겠지만 어쨌든 담임이 되었으니까. 1년 동안 잘 지내보자.” 그러고는 “반장이 누구지” 라며 그때서야 반장을 찾았다.
종안이는 손을 번쩍 들어 선생님께 자기가 반장인 것을 알렸다.
우리 반은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반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올라갔다. 아이들 번호도 그대로다. 그래서 반장도 1학년 때 정한 종안이가 계속하게 되었다. 그냥 그러는 줄 알았다. 전공 선생님이 아닌 국사선생님과의 첫 대면은 정말 낯설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우린 선생님이 신출내기 인 것을 눈치 챘다. 1학년을 치룬 우리는 첫 조회시간을 의기양양하게 보냈다. 슬슬 떠드는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재규가 피곤한 기색을 보이며 책상에 머리를 묻었다. 뒷줄에 앉아 있는 다른 아이들은 재규의 그런 모습을 보며 선생님 눈치를 슬슬 살피기 시작했다. 빽은 아마 도시락 까먹을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신출내기 선생님과의 기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선생님은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재규 차례다.
“차재규”...... “차재규”
재규는 책상에 묻은 머리를 들지 않았다.
“차재규가 누구지.”
선생님 목소리가 이전과는 다르게 점점 더 작아졌다. 아이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선생님의 차분하고 작아지는 목소리에서 뭔가 낌새를 차린 것이다. 대부분 흥분하는 선생님들은 목소리가 커진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선생님은 절대 흥분하는 법이 없었다. 1학년 첫 담임선생님과의 악연을 떠올랐다. 그때 이경수 선생님은 화가 나면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운동장 끝에 있는 이른바 ‘공장’으로 우리 반 모두를 집합시켰다. ‘공장’은 말 그대로 공포분위기 조성하기 딲 좋은 곳이다. 우리 과 학생들이 실습하는 곳으로 줄질할 때 이용하는 입을 쫙 벌린 바이스가 잡아먹을 듯 널부러져 있었고, 한쪽 벽 용접 연습을 하는 용접실에서는 한 낮에도 귀신이 나올 것 같았다. 수업하는 교실과는 100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어지간한 비명소리는 그곳까지 들리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2시간 동안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는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해야 했다. 단체 기합의 위력은 대단했다. 1학년 1학기 두 번째 시간에 첫 집합이 있고 난 후 우린 찍소리 못하고 몇 일간을 기어 다닌 기억을 떠올렸다. 순간 교실의 기온은 차갑게 내려앉은 듯 했다. 어느새 선생님은 재규가 묶고 있는 책상 앞까지 왔다. 아주 천천히 걸어왔다. 발자욱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재~규~어”
재규가 고개를 들었다.
“니가 재규구나. 다른 선생님들이 니 얘기 많이 하시드라!”
“그 새끼만 잡으면 된다던데, 맞냐!”
순간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얼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재규가 어떻게 나올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대부분 선생님들이 재규는 이미 포기한 상태여서 잠을 자던 뭐하던 여태까지 아무도 그 아이를 뭐라 하지 않았었다. 분명 선생님들은 재규를 다루는 방식이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다. 우리들 사이에 들리는 소문이 선생님들 귀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면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상계동 일대를 주름잡는 꽤 큰 조직의 중간보스쯤 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선생님들도 재규를 쉽게 대하지는 못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선생님들이 재규를 대하는 방식은 말 그대로 ‘똥’을 대하듯 했다. 차라리 자빠져 자고 있는 것이 났다는 식으로 그 아이에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반 아이들은 재규가 ‘똥’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상한 선생님은 얇게 미소 지으며 재규에게 말을 건냈다.
“졸리면 자라. 코는 골지 말고.......”
그러면서 재규 머리를 강아지 털 쓰다듬듯 쓱쓱 빗어주었다.
선생님은 더 이상 출석을 부르지 않았다. 천천히 다시 교탁에 오르더니 작게 웃으며 말했다.
“난 내 이름 그대로 이상한 선생이다. 앞으로 나와 친해지고 싶으면 이상하게 굴면 된다.”
선생님은 재규 쪽으로 눈을 돌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면에서 재규는 나에게 처음으로 이상하게 군 녀석이다. 앞으로 기억하마!”
재규는 책상에 뭍은 머리를 끝까지 들지는 않았지만 눈은 뜨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선생님 목소리는 낮은 음성으로 쫙 깔렸다. 흥분하거나 긴장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너무나 평화로운 목소리였다. 이상한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짧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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