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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21일 22시 20분 등록


멀쩡한 사람들의 팔다리를 망치 등으로 때려 장애인으로 만든 뒤 산재사고로 꾸며 수십억원대 보험금을 타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실업자·신용불량자를 모아 유령 사업장을 차려놓고 이들에게 고의로 상해를 가한 뒤 직장에서 다친 것처럼 속여 45억원 상당의 산재·상해 보험금을 받아 챙긴 일당 30명을 검거했다. 그중 염모씨(42) 등 16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강릉의 가짜 중고가구판매점에서 신모씨(29)의 무릎에 냉장고를 일부러 떨어뜨려 복잡골절상을 입힌 뒤 보험금 7000만원을 받는 등 지난해 초부터 지금까지 같은 수법으로 21차례에 걸쳐 보험금 45억원을 타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실업자나 신용불량자인 환자 역할자에게 수건을 물린 뒤 야구방망이나 망치로 무릎과 손발을 내리치는 방법으로 총 27명에게 장해를 입힌 뒤 산재사고로 위장해 근로복지공단과 보험사에서 치료비와 요양비 등을 받았다.
이렇게 타낸 보험금 등으로 염씨는 고급 승용차를 몰며 호화로운 생활을 했지만, 환자 역할을 한 사람들 대부분은 염씨에게 보험급여마저 빼앗긴 것으로 조사됐다.


‘친구여 한탕하세’라는 카피가 있었다. 아주 멋들어진 영화 ‘스팅’의 카피였다. 이 영화 같은 범죄라면 사기도 예술이다. 정말 멋지게 한탕 한다. 폼 난다. 그것도 많이 난다.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는 또 얼마나 멋진가. 폼 나는 사기꾼이다.
영화처럼 사기를 치면 사기꾼도 멋지고 폼이 난다. 일석이조다. 돈벌고 칭찬받고 멋있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사기꾼 주제에 멋지다는 얘기를 듣기는 좀 미안하기도 하지만 뭐 어떠랴. 사실이 그런걸.
멋진 사기는커녕 끔찍한 사기사건이 있었다. 멀쩡한 사람의 팔다리를 망치로 때려 장애인으로 만들었다. 무릎에 냉장고를 일부러 떨어뜨려 다리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이 정도면 범죄가 아니라 엽기다. 인간이 행각이 아니라는 말이다.
엽기라는 단어가 요즘 하도 많이 쓰이고 유머로 쓰이는 바람에 뜻이 희석됐지만 불과 10년도 전에는 아무 때나 쓰던 단어가 아니었다. 인간의 상식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만 엽기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사전에 쓰인 정의도 ‘비정상적이고 괴이한 일이나 사물에 흥미를 느끼고 찾아다님’이다. 요즘은 아무데서나, 별것 아닌 상황에서도 엽기라고 한다. 엽기라는 단어를 아무 때나 쓰는 최근의 상황 그 자체가 엽기스럽다.

한국은 이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선진국이라면 선진국이다. 한국에서 이제 이런 사기범죄는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다. 나라가 발전하면 범죄도 국가 수준에 맞추어 줄 필요가 있다. 이런 범죄는 나라의 격을 떨어뜨린다. 범죄자들도 나라 생각을 좀 하면서 일을 하는 각성이 필요하다. 아니면 단체로 교육을 받아보던지.
돈 버는데 아무려면 어떠냐고? 돈만 벌면 됐지 무슨 상관이냐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과 상통하는 것이라고 목소리 높여 외칠지 모르겠다. 그래서 문제고 교육이 필요하다는 거다.
여기서 ‘모로’라는 단어의 뜻은 ‘옆으로’라는 뜻이다. 속담의 정확한 뜻은 ‘옆으로 가나 기어서 가나 서울만 가면 된다’ 이거다. 속담의 풀이를 보면 알겠지만 옆으로 가거나 기어서 간다고 했지 남의 것을 빼앗아 타고 간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의 마차를 뺏어 타고 가는 인간이 많다. 마차만 뺏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노잣돈도 맘대로 얻어간다. 심지어 남의 가마도 뺏어서 타고 가는 인간도 있다. 가마에 타고 있는 낭자는 어찌되었을지 굳이 말하지 않겠다.

서울을 가려면 제대로 가지 왜 모로 가거나 기어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모로 가거나 기어가기만 해도 괜찮은데 문제는 남의 것을 빼앗아 타고 간다는 거다. 더 문제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거다. 방법이 잘못 됐다는 말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을 너무 쉽게 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디를 가든 모로 가려고 한다. 모로 가는 게 편하고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편하게 온 길을 남에게 자랑을 한다. 그 길을 제대로 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그거야 그들이 알바 아니다. 아무려면 어떠냐? 자기만 먼저 가면 되는 거지. 참 당당하고 떳떳하기까지 하다. 그런 생각 때문에 소득 2만 달러시대에도 후진국형 범죄가 나온다. 각성들 해야 한다. 돈을 버는 걸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돈을 벌면 안 된다는 말이다. 멀쩡한 사람의 팔 다리를 부러뜨리고 돈을 버는 게 어떻게 ‘서울로 가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돈을 벌기 위해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범죄자들에게 한 소리를 하다보면 소리 높여 외치는 다른 사람들도 생각난다. 그들은 주로 선거철에 목소리를 높여 외친다. 한국사회를 살기 좋게 만들겠다고 한다. 살림살이가 펴지게 하겠다고 한다. 선거철이 끝나면 그들은 소리를 외치지 않고 조용해진다는 게 다른 점이다. 선거가 끝나고 재산 등록을 할 때가 되면 더욱 조용해진다. 공개된 재산 내역은 그들에게 표를 던진 일반인들에게 길잡이가 된다. 규모나 방법을 보면 따라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표를 던져 준 사람들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무언의 보답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 역시 가끔은 모로 갔던 길이 뜻밖에 드러나서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그런 일은 정말 뜻밖으로 생기는 일이다. 뜻이 있으면 생기지 않는다.
그들을 보면 빠르고 쉽다. 모로 가기는 했지만 참 쉽고 편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받아 배우고 익힌다. 배우고 익히는 행위는 장려해야 할 일이다. 국가에서도 평생교육을 장려하지 않는가. 그러니 이렇게 본받는 국민들에게 뭐하고 하면 안 된다.

공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 삼인행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 중에 선한 자를 가려서 따르고, 그 선하지 못한 자를 가려서 자신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또 있다. 공자는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이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 뜻이다.
옛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다는 말이 있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도 있다. 그러니 같이 가는 사람 중에 스승이 될만한 사람을 찾아 자신의 잘못을 고치라는 말을, 때로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다는 말을 따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인의 말을 따라 배우고 익힌다. 세 사람만 가도 스승이 있다는데 세상 속에는 스승이 너무 많아 배울 것도 너무 많다. 그렇게 어른 말씀을 따라 배우고 익혀보니 이건 떡 정도가 아니라 방앗간이 생기기도 한다. 역시 어른 말씀을 들으면 복이 오는 것이다.
옆에서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 길을 따라서 모로 가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간다. 곳간이 풍성해진 사람들은 모로 가는 비법을 후세들에게도 알려준다. 그 결과로 사회가 점점 변해간다. 한편으로 보면 살림살이가 펴지게 하겠다고 한 그들의 약속을 지키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사회를 바꾸겠다는 외침도 실현이 되는 것 같다.

이제 거리에는 제대로 걷는 사람이 없다. 모로 걷는 게 더 이익이니 제대로 걸으려 하는 사람이 없다. 어쩌다 제대로 걷는 사람이 있으면 신기한 구경거리가 된다. 눈이 모두 하나인 나라에서 눈이 두개인 사람이 구경거리가 되는 꼴이다.
이제 경쟁은 누가 더 많이 모로 걷느냐이다. 누가 더 심하게 모로 꼬아지느냐, 누가 더 이상한 자세로 걷느냐의 경쟁이 속도를 더해간다. 갖은 기법이 생겨나고 기법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다. 모로 걷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의료계는 한때 제대로 된 자세를 잡아주는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오히려 신체구조론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온다. 모로 걷다가 몸이 꼬인 사람들은 그 자체로 새로운 인간형이 되었다.

남을 따라 어설프게 모로 걷던 사람들은 조급해진다. 자기도 모로 걷는데 곳간은 채워지지 않고 남의 곳간만 크게 보인다. 마음이 급해지면서 몸도 급해진다. 비법을 알 수 없으니 나름대로 모로 걷는 방법을 찾아낸다. 비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비법은 모로 걷는 정도가 아니라 기형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망치를 들고 길로 나선다. 남들의 곳간이 부럽고 경쟁에서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거리에는 모로 걷는 사람들과 기형이 뒤섞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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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땐양
2008.09.24 16:29:00 *.122.143.151
형..
사람들이 아무도 댓글을 안 다는거 보니까, 댓글달기도 쉽지 않은거 같아...
내용이 무거워서 그러나, 아님 어려워서 그러나...

내생각에는 말야..
사회비평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평범한 비평보다는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까든가,
아님 이리저리 배배 배배배 꼬이도록 틀 수 있을 때까지 틀든가,
아니면 블랙 코미디식 유머, 천박한 B급 유머를 위에 덧칠하든가,
이런 독특한 맛을 얹는게 좋지 않을까?
나도 이야기는 하지만 어렵다... 쩝...
하지만 형이라면 가능할꺼야.. 그치? 내 말이 맞지? 글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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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돼
2008.09.24 21:51:06 *.37.24.93
처음엔 칭찬같이 들리는데 다 읽고나면 어딘가 캥기는 글
처음엔 비판으로 들렸는데 다 읽고나면 창찬으로 들리는 글
글에 반전을 주면 어떨까 형....
뒷통수를 얻어맞는 것 처럼 허를 찔리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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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9.25 10:21:16 *.97.37.242

창의 글이 좀 거북하게 내게 다가왔던 이유를 이 글에서 찾은것 같다.
난 이 세상이, 좀 더 크게 보면 인류의 역사는 느리지만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점점 더 이상망칙한 곳으로 비관적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
우리가 읽은 미래학자들 중에서 그런 미래를 예측한 사람도 있쟎아?
그런데 그런 비관적인 주장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논리적으로 비약하거나, 지나치게 감정에 호소한는 부분이 있으면 그점이  나를 불쾌(?)하게 하는 것 같다.

좀 리얼하게 표현해보면,  윗 글에서
"이제 거리에는 제대로 걷는 사람이 없다. 모로 걷는 게 더 이익이니 제대로 걸으려 하는 사람이 없다. 어쩌다 제대로 걷는 사람이 있으면 신기한 구경거리가 된다. "
이런 표현은 요즘 세상 사람들 대다수를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표현이거든. 이게 사람들에게 와 닿으려면 최소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로가고 있다는 사례를 들어줄 필요가 있다는 거지. 예를 들면, 사람이 않보는 곳에서 교통신호를 안 지킨다던지, 부동산 투기가 문제인 걸 알면서 자기도 부동산 투기 대열에 뛰어든다든지, 기업인들의 탈세를 비난하면서 자신도 연말정산 서류를 거짓으로 제출해서 탈세를 한다던지.....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들이 하면 불륜이라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남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자신을 보는 시각 간에 괴리를 갖고 있고 모로가고 있다는 마음에 와 닿는 사례 제시가 필요하다는 말이지. 그래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가 있다고 보거든.

그렇게 되면 글이 훨씬 부드럽게 다가오리라 생각되네.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이 접근하려는 주제는 아주 마음에 드는 주제고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지적 되고 함께 고민 되어야만 할 부분이라고 생각되네.

건투를 비네..... 내 얘기가 좀 리얼했나?  그랬다면 이해 바라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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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6 11:04:59 *.64.21.2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저도 답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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