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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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시인의 <그꽃>이라는 시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산에 올라갈 때는 위만 보면서 올라갑니다.
내려올 때는 좀더 시야가 넓어지죠. 마음 한켠 여백이 생겨난 덕분입니다.
올라가는 길에서 놓쳤던 풍광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옵니다.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지자체에서 현수막을 내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정확한 문구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삶의 희망을 되새기는 좋은 글귀를 적어서 자살의도를 누그러뜨리려는 목적이었을텐데요.
문제는 현수막이 다리로 올라가는 방향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내려올 때만 잘 보였다고 합니다.
담당 공무원들이 걸기 편한 곳에 현수막을 걸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니면 내려올 때 더 잘 보인다는 고은 시인의 말을 공무원들이 철썩같이 믿었거나요.
그냥 우스개 소리였으면 좋을 이야기입니다.
고은 시인의 다른 시 한편 더 볼까요?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 곳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언젠가는>이라는 시입니다. 버스를 기다리며 우리의 시선은 버스가 오는 방향에 고정됩니다. 요즘에는 정류장마다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이 정확하게 안내가 되어서, 이런 풍경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대신 이제 모두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죠. 여하튼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버스가 오는 방향 아니면 스마트폰입니다. 정류장 한켠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 한송이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닌 거죠.
이런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고속일수록 좋습니다. 길 역시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길입니다. 오직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만 길의 가치와 의미가 존재하게 됩니다. <강의>에서 신영복 선생이 한 말을 빌리면 도로는 궁극적으로 속도가 제로(0)가 되면 자기 목적성에 최적 상태가 됩니다. 하지만 '길'이라는 정체성은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길은 결코 도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인생이 도로라면 모든 종착지는 단 하나의 예외없이 '죽음'입니다.
이것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30분이 걸리든, 스마트폰이 5G를 넘어 10G로 발전하든지간에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 길을 다른 누구보다 앞서 달려서 종착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결코 여러분 인생의 목표는 아닐 겁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면, 잠시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는 여백의 시간을 가져보시는 것을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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