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2102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22년 1월 17일 00시 08분 등록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 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을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신경림 시집 『쓰러진 자의 꿈』, 창작과비평사, 1993



IP *.37.189.73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4 [리멤버 구사부] 정면으로 살아내기 file 정야 2019.10.14 1619
123 [시인은 말한다] 타이어에 못을 뽑고 / 복효근 file 정야 2019.10.14 1440
122 [리멤버 구사부] 변화의 기술 file 정야 2019.10.14 1306
121 [시인은 말한다] 자작나무 / 로버트 프로스트 file 정야 2019.09.23 2186
120 [리멤버 구사부] 아름다운 일생길 file 정야 2019.09.23 1426
119 [시인은 말한다] 별 / 이상국 file 정야 2019.09.23 1583
118 [리멤버 구사부] 한 달의 단식 file 정야 2019.09.02 1565
117 [시인은 말한다] 푸픈 힘이 은유의 길을 만든다 / 배한봉 file 정야 2019.08.26 1675
116 [리멤버 구사부] 양파장수처럼 file 정야 2019.08.20 1549
115 [시인은 말한다] 자유 / 김남주 file 정야 2019.08.20 1573
114 [리멤버 구사부] 품질 기준 file 정야 2019.08.05 1371
113 [시인은 말한다] 현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file 정야 2019.07.29 1592
112 [리멤버 구사부] 바라건대 file 정야 2019.07.22 1531
111 [시인은 말한다] 잃는 것과 얻은 것 / 헨리 왜즈워스 롱펠로 file 정야 2019.07.15 1695
110 [리멤버 구사부] 지금이 적당한 때 file 정야 2019.07.08 1408
109 [시인은 말한다] 새출발 / 오보영 file 정야 2019.07.05 2576
108 [리멤버 구사부] 비범함 file 정야 2019.07.05 1383
107 [시인은 말한다] 늙은 마르크스 / 김광규 정야 2019.06.17 1652
106 [리멤버 구사부] 우정 정야 2019.06.17 1349
105 [시인은 말한다] 생활에게 / 이병률 정야 2019.06.17 15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