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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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이야기(2)
지난 주 재규의 무용담에 한 것 고무된 반 아이들은 이상한 선생님의 국사시간이 빨리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눈치다. 선생님이 뜬금없이 왜 갑자기 고슴도치를 재규에게 물어본 걸까? 그리고 재규의 이야기를 자르지 않고 끝까지 하게 한 것도 궁금했다. 재규의 개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면 교무실이나 개인적으로 불러 들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너무도 궁금하다는 표정까지 지어가며 다 들어주었다.
누구보다도 이번 주 국사시간을 간절히 기다린 건 재규였다. 재규는 그런 자신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연신 앞에 있는 책상 다리를 툭툭 차고 있다.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뒷문으로 이상한 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은 언제나 뒷문으로 들어왔다. 부임한 날부터 다른 선생님들과 다른 이상한 선생님의 행동 하나는 이야기 할 때 교단위에 서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한 선생님은 키가 그리 큰 편이 아니어서 교단위에 서지 않으면 뒤에 있는 아이들은 선생님의 허리는 보이지 않았다. 교탁위에 책을 올려놓고 칠판에 글씨를 쓸 때 외에는 항상 교단에 내려와 학생들과 이야기를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교단에서 내려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떨 때는 교탁위에 턱을 고이고는 일부러 자세를 낮추는 것 같은 착각이 일정도로 눈높이가 낮아졌다.
“자~ 지난 시간에 내가 고슴도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고 했지.”
“넵”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함을 지르듯 외쳤다.
이날은 재규도 자기가 뭔지는 모르지만 한건 했다는 듯 싱글대고 있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재규가 해준 무용담을 재미있게 들었다.”
“정말 재미있었냐?”
이상한 선생님은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 아이들에게 물었다.
여러 소리가 들렸다. 짧은 “넵”소리와 함께 최고라는 말까지 들리자 재규의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싫은 기색은 아니다. 재규는 자신의 이야기를 수업시간에 했다는 것에 무척 고무되어 있었다.
“재규야. 넌 니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뭐라고 생각하니?”
이상한 선생님의 질문은 사뭇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재규는 누구에게도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순간 뭐라 대답해야할지 몰랐다. 그래서인지 재규는 장난삼아 대답했다.
“싸움요.”
이상한 선생님의 분위기 전환 노력은 일단 패하고 말았다. 아이들은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 큰소리로 웃었다.
“재규야 나도 니가 싸움 꽤나 한다는 거 잘 안다.”
“한 가지 더 생각하고 대답할게 있어.”
“아주 옛날에 중국에 주자라는 양반이 있었다. 그 분이 쓴 『주역』이란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와”
“선생님이 보기에 재규뿐 아니라 너희들 모두가 큰 사람이 될 꺼다. 그러니 잘 들어둬.”
재규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뭔가를 받아 적으려는 듯 옆에 있는 연남이의 볼펜을 가로챘다. 이상한 선생님은 말을 계속 이었다.
“주역이란 책은 ‘점’을 치는 책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너희들 점쟁이 알지. 사주팔자, 토정비결 이런 거 들어본 적 있잖아. 그게 다 ‘점’이다.”
“사람의 앞날을 예견할 수 있다는 건데. 그런 이야기 하려는 건 아니고.”
“그 책에는 큰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이 나온다. 그중에 이런 말이 있어”
이상한 선생님은 교단에 올라 칠판에 쓰기 시작했다.
“큰 사람이 되려거든 국가와 사회가 원하는 일을 하라.”
분필을 살며시 내려놓고 다시 교단에서 내려왔다.
“재규야 니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그것은 또 국가와 사회가 원하는 일이어야 한다.”
재규가 국가니 사회니 하는 이런 어려운 말을 이렇게 고상하게 들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재규 뿐만 아니라 이상한 반 아이들 모두 자신이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본 것은 고사하고 국가와 사회가 원하는 일이라는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이들 대부분이 중학교 때 공부를 못했거나 집안이 가난해서 빨리 돈을 벌고자 하는 생각에 실업계고등학교를 선택한다. 물론 공부도 못하고 집안이 가난한 아이들의 수가 월등이 많다. 대부분 아이들이 중학교 때는 실업계고등학교에 입학 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진실은 잘 알지 못한다. 그냥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풍월이 전부다. 부모님들은 자식이 실업계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가문의 수치로 여기는 듯하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불행하게도 이건 사실이다. 어쩌면 그 잘난 국가와 사회는 우리를 진작부터 방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너희는 원래 태생이 그런 넘들이야 하고.......
“선생님 그게 고슴도치하고 뭔 상관이 있는데요?”
갑자기 왼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느냐는 듯 승진이가 물었다. 승진이는 이상한 선생님이 이야기할 틈도 주지 않고 계속 이야기했다.
“그리고 국가와 사회가 어떤 걸 원하는데요.”
“어쩌면 우리가 여기 있는 것도 그들이 원한 거 아닌 가요?”
“만약에 그렇다면 우린 다 큰사람이 될 수 있는 건가요?”
아마 이상한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승진인 이런 질문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승진이 손은 부르르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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