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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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쪽으로 한 뼘 더
이은규 흰옷을 입고 걸어갔다, 고집스럽게 누군가 고집은 투명한 슬픔이라고 말했다 하자
우리라는 이름으로 도착한 세상, 꿈결도 아닌데 왜 양을 세며 걸어갔나 몽글몽글 구름옷을
입은 양떼들이 참 많이도 오고 갔다 포기 없을 다정이여 오라, 병(炳)이여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한 마리에 사랑을 양 두 마리에 재앙을 양 세 마리에 안녕을
푸른 풀포기에 맺힌 이슬방울 만큼 떠오르는 생각들 얼굴들 약속처럼 추억이 방울방울 피어오르다 이미 추억이 될 수 없는 이름들과 오고
있는 무엇, 무엇들아
날씨보다 한 발 먼저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하자
오늘의 세상 한쪽에서 비가 내리는데 한쪽에선 흐린 하늘이 펼쳐져 있다면 또다른 한쪽에선 맑음이라면,
믿을 수 있나 믿지 않을 수 있나 우연이라는 운명을
문득 비 오는 날과 흐린 날과 맑은 말 중에 어느 것을 가장 좋아해*
비 오는 날과 흐린 날과 맑은 날 중에 어느 것을 가장 좋아해, 묻는 목소리를 가장 좋아해
투명한 슬픔을 고집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하자 고집스럽게, 흰옷을 입고 천천히 발을 내딛는 *애니메이션 <추억은 방울방울>에서. 이은규 시집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문학동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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