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양재우
  • 조회 수 2865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08년 9월 26일 05시 56분 등록

대범한 사람도 소심한 면은 있게 마련이다

오늘 팀 아침회의 때 본인이 가지고 있는 소심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눈치 챘는가? 그렇다. 내가 이야기하자고 꺼냈다. 사람들은 마지못해 응답했다. 반응들이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직급으로 밀어붙였다. 직급이 깡패 맞다... --;;) 4명의 팀원 중 2명(남자 2명)은 자신이 소심하다고 했고, 나머지 2명(남자 1명, 여자 1명)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소심하다고 대답한 남자팀원 2명 중 1명은 누가 보더라도 소심함을 느낄 수 있는 내향적 성격의 사람이었으나, 다른 남자팀원 1명은 전혀 그렇게 볼 사람이 아니었다. 소심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이며 때에 따라서는 공격적인 성향을 보여주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남자팀원에 대해서는 절대 소심함을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자못 궁금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자신이 소심하다고 주장하는 단 한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 이유인즉슨 한가지 일, 특히 다른 사람에게서 상처 받은 일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심함의 정의가 속좁음, 편향된 사고, 답답함이라고 본다면 한가지 일을 잊지 못하고 가슴 속에 계속 담아두는 행위 자체도 소심하기 때문에 생기는 속좁음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전체적으로 풍기는 외모나 이미지가 대범하거나 대담한 사람일지라도 가슴 한켠에 작거나 큰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면 그 사람에게도 일정부분의 소심함이 있다라고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본다면 소심함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성격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대심함과 소심함의 양면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성격에서 차지하는 정도에 따라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을 뿐인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람들에 대해 이 사람은 이러이러 하니까 대심한 사람, 이 사람은 저러저러 하니까 소심한 사람 그렇게 나누어 왔는데, 그러한 구분방식은 각 사람의 성격을 자세히 감안하지 못한 채 마치 여름날 수박을 고를 때 두드려보거나 꼭지 부분을 자세히 살피거나 하지도 않은 채 수박 크기만 보고 좋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과 같다 하겠다. 흑백논리와 유사한 것이다.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는 그 남자팀원에게 그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A라고 하자)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팀에 온 것은 3년전이었다. 그 당시 A는 직급은 낮았지만 팀에 빠른 적응을 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었다. A의 노력을 보며 같은 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흐믓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식 농사, 아니 후배 농사가 잘 되고 있었던 것이다. 팀 고참들은 그런 그를 평소에도 이뻐해주고 잘 대해주었다.

하루는 팀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간만에 하는 회식이라 모두들 많이 먹고 많이 마셨다. 그리고 술자리는 길어졌다. 2차, 3차가 이어지며 대부분 다 도망가고 최종적으로 2명만 남게 되었다. A와 고참 1명이 끝까지 함께 했는데, 고참이 거의 만취한 반면 A는 아무리 많이 마셨어도 취할 수가 없었다. 취하더라도 하늘 같은 고참을 모두 보낸 다음에 취해야 했던 것이다. 위대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던 중이었다. 참고로 그 고참은 평소에 밝고 활달하며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12시가 넘어가고 드디어 모든 술자리가 파했다. A는 고참을 술집에서 데리고 나와 택시에 태워 드리고, 드디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에 문자메시가 온 것이었다. '이 시간에 문자메시지는 스팸 아니면 없을텐데'하며 핸드폰을 열어 확인하자, 방금 헤어진 고참의 이름이 찍혀 있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A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하다. 저렇게 취한 상태에서 어떻게 문자를 보냈지? 그리고 왜 문자를 보냈지?'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문자를 확인하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A야 너 앞으로 잘해야 겠다!!"

잉? 이게 도대체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소리냐? A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것 같았다. 술이 다 깨는 것 같았다. 여지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술도 잘 마시고 잘 놀았건만, 헤어지자 마자 보내온 이 황당하기 그지없는 문자는 도대체 무슨 소리냔 말이냐!! A는 집에 돌아가면서, 그리고 집에 가서도 자신이 혹시 오늘 술자리에서 또는 평소에 무슨 잘못을 했는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 하느라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고민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뜬 눈으로 새우다시피 하고 출근한 다음날, A는 기회를 봐서 조용히 그 고참에게 다가가 물었다고 한다. 혹시 어제 자신에게 기분 나빴던 일이나, 아니면 평소 자신이 잘못 한 게 있었는지,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자신에게 솔직히 충고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고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왜 그러냐고 되물었다. 순간적으로 A는 고참이 자신에 대해 상당히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A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다시한번 마음에 안 드신 점이 있더라도 감추지 말고 자신을 위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재차 부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참은 역시나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A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지고 어두워졌다.

A는 결국 어제 받았던 문자메시지를 고참에게 보여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중하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고참의 표정은 의아하다 못해 의혹에 찬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한마디 했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내가 이거 보낸 기억이 없는데... 사람들이 그러는데 내가 술이 많이 취하면 가끔 나도 모르게 문자를 보내는 습관이 있다 하더라고..... 그러니 이거 아무 일도 아니니까 잊어버려~ ㅎㅎ"

".................."

단지 주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A에게는 그냥 웃어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들 그 이야기를 듣고 박장대소 했지만 A에게는 웬지 모르게 상처로 남는 일이 되고 만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던진 돌멩이에 작은 개구리는 이빨이 깨지고 코피가 터지고 골병이 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입원한 개구리는 소심함을 간직한 채, 혹은 그 소심함을 복수심으로 전환시킨 채 어딘가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IP *.122.143.151

프로필 이미지
은미
2008.09.26 12:13:26 *.161.251.172
하하하 설마 복수의 칼날씩이나....
그럴수도 있겠네. 나도 가끔 저런 실수하는데,
문자는 아니지만 회식중에 우수갯소리로
"너 내일부터 좀 힘들겠다" 이런 소리 하는데....
반성해야겠다.
프로필 이미지
대범
2008.09.28 23:07:10 *.179.68.77

술에 만취한 '고참'을 보며,  제 모습이 오버랩 되는군요~
내 주위에 있던 얼마나 많은 'A'들이 상처를 받았을런지...............반성 반성 ㅜ.ㅜ

프로필 이미지
현웅
2008.10.01 21:08:51 *.37.24.93
ㅎㅎㅎ "너 내일부터 회사생활 고달플줄 알어...."
회식자리에서 니시야마 고문님이 자주 하던 농담이 생각나네......
혹시 소심하다기 보다 민감한건 아닌지..^)^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